IIPPE: 경제학을 넘어 사회과학의 재편으로 (5/끝)

2. 연구경향: 워킹그룹들과 그간의 활동을 중심으로

당연하게도 현재 존재하는 워킹그룹의 목록을 보면 IIPPE 회원들의 관심사가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여기엔 ‘금융화’와 같은 오늘날 세계적으로 매우 인기 있는 주제도 있지만, ‘광물・에너지 복합체’와 같은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것도 포함된다. 다음은 워킹그룹들의 목록이다. 2010년 5월 현재 IIPPE에는 모두 18개의 워킹그룹이 있으며, 증가하는 회원수와 다양해지는 연구관심을 반영해 워킹그룹의 수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1) 농업 변화(Agrarian Change)
(2) 발전국가를 넘어서(Beyond Developmental State)
(3) 상품연구(Commodity Studies)
(4) 금융화(Financialisation)
(5) 국제금융제도(International Financial Institutions)
(6)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Marxist Political Economy)
(7)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8) 광물・에너지 복합체/비교산업화(Minerals-Energy Complex/Comparative Industrialisation)
(9) 제도의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 of Institutions)
(10) 일의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 of Work)
(11) 민영화(Privatisation)
(12) 사회자본(Social Capital)
(13) 사회주의(Socialism)
(14) 발전으로서의 이행(Transition as Development)
(15) 환경(Environment)
(16) 기타: 이단적 경제학(Heterodoxy), 국제정치경제학(International Political Economy), 갈등과 폭력의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 of Conflict and Violence)

각 워킹그룹과 그 활동에 대한 정보는 IIPPE 홈페이지에 있는 워킹그룹별 페이지를 참조하면 될 것이다. 여기서는 그런 정보를 통해 추출할 수 있는 주요한 연구경향들을 범지구성, 제3세계와 발전, 현대 자본주의의 물적 동학, 대안체제 등의 테마를 중심으로 간략히 짚어보겠다.

앞서 명시했듯이 원래부터 정치경제학은 자본주의 사회의 전체적인 물적 동학을 파악하고 나아가 그로부터 발생하는 각종 문제들에 처방을 내놓는 이론으로 출발했고,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을 비롯한 현대의 다양한 정치경제학들은 비록 때때로 세부적인 사항에 매달리기도 하지만 대체로 그런 역할에 충실해왔다. 따라서 오늘날 자본주의가 보이는 특이성을 전체 체계의 차원에서 구명하는 것은 정치경제학의 매우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사실상 현재 존재하는 모든 워킹그룹들이 현대 자본주의의 물적 동학을 밝히는 데 복무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 ‘신자유주의’, ‘금융화’ 등의 워킹그룹은 특히 체계 전체의 차원에서만 포착될 수 있는 자본주의의 변화양상을 추적하는 데 각별한 관심을 두고 있다.

둘째로, 위와 같은 맥락에서, 현대 자본주의의 범지구성(globality)을 고려하는 것도 IIPPE가 대표하는 거의 모든 연구들의 공통된 특성이다. 흔히 범지구성은 ‘범지구화’(globalisation)로 개념화된다. 흥미롭게도 이는 원래 “신자유주의를 그 논리적 극단으로 확장했을 때 닿는 결론”, 즉 “국민국가나 국제기구의 개입이 없는 단일한 세계시장”이라는 이상에 그 유래를 두고 있는데(파인, 2006[2004], 404쪽), 많은 경우에 그것은 가상(주의), 해체 등과 같은 포스트모더니즘적인 개념들과 연결되곤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다소 소모적여 보이기까지 하는 범지구화 시대 국가의 운명에 관한, 즉 ‘소멸이냐 존속이냐 (또는 강화냐)’ 하는 논쟁이 적어도 1990년대 중후반까지도 범지구화를 둘러싼 학술담론의 주류를 이뤘던 것도 이런 사정과 관련이 있다. 이렇듯 범지구화란 그 자체로 하나의 실체 없는 이데올로기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현실의 일정한 물적 발달을 반영하기도 한다. 따라서 IIPPE에 모인 오늘날의 다양한 비판적 정치경제학들이 현대 자본주의의 범지구성을 다룬다는 것은, 곧 범지구화가 (개념으로서) 반영하기도 하고 (이데올로기로서) 만들어내기도 하는 발전・빈곤・불평등・계급・성・노동・자본축적・권력 등 ‘정치경제학’의 전통적인 문제들과 관련된 지구상 곳곳의 현실들을 다룬다는 것이다. [이런 관심사들의 일부가 《네오리버럴리즘: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는가?》(사드-필류・존스턴, 2009[2005])에 소개되어 있다. 이 책에 참여한 저자들 중 상당수가 IIPPE에 다양한 정도로 개입하고 있기 때문에, 이는 IIPPE의 연구동향을 엿볼 수 있는 매우 좋은 통로다.]

이미 강조했듯이 이상의 두 가지 성격을 두루 담아낼 수 있는 이론적 틀로서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IIPPE에서는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의 이와 같은 성격을 보완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의 특수한 지위를 위협하기까지 하는 일종의 ‘대안적’ 접근도 배양되고 있다. 이를테면 ‘상품연구’가 그것이다. 여기엔 ‘범지구적 상품사슬’, ‘범지구적 가치사슬’, ‘범지구적 생산망’, ‘공급체계’(systems of provision: SOP) 등으로 불리는 다양한 접근이 포함된다. 대체로 이들은, 자본주의 경제의 물적 동향을 파악한다는 고전정치경제학 및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의 전통적인 문제의식을 따르면서도, 경제의 여러 분야들 사이의 상호관련성을 명확히 규명하는 데 실패하거나(고전파) 생산에만 지나친 관심을 기울이는 경향이 있던(마르크스주의) 그 선행자들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다.

세 번째로 강조될 수 있는 IIPPE의 연구테마는 제3세계와 발전이다. IIPPE에서 제3세계가 강조되고 있다는 것은, 그것이 제3세계 연구에 특화하고 있는 영국 런던의 아시아아프리카대학(SOAS)을 중심으로 출범했기 때문이라고 단순하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의 범지구성, 그리고 그것이 재생산되는 특수한 방식에서 이른바 ‘제3세계’가 갖는 핵심적인 의의를 고려하면, 오히려 IIPPE와 같은 기획이 SOAS에서 비롯된 것은 매우 적절했을 뿐만 아니라―특히 제3세계에 대한 비판적인 연구가 다른 곳에서는 계속해서 말살되고 있음을 떠올리면―불가피한 것이기까지 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실로 거의 모든 IIPPE의 워킹그룹들이 저마다 다른 주제 아래 제3세계의 문제에 특히 집중하고 있다. ‘농업 변화’나 ‘발전국가를 넘어서’, ‘광물・에너지 복합체/비교산업화’, ‘발전으로서의 이행’ 등은 거의 전적으로 제3세계만을 다루도록 짜인 워킹그룹들이며, ‘민영화’나 ‘사회자본’ 등도 대체로 제3세계의 문제에 치중한다. [사회자본 개념은 경제학이 무조건적인 시장숭배에 대한 안팎의 비판에 굴복해 ‘사회적인 것’을 받아 안는 과정―곧 신자유주의 제1기에서 제2기로의 전환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결정적으로는 이는, 세계은행에서 중요한 정책 키워드로 채택돼 세계은행의 국제개발업무에 적용됨으로써, 제3세계 발전을 다룰 때 가장 많이 마주치는 개념이 되었다. 이에 대한 가장 최근의 포괄적인 비판으로는 파인(2010) 참조. 국내에서도 김종엽(2008) 같은 연구자는 이상과 같은 파인 등의 논의를 거의 참조하지 않으면서도 사회자본 개념의 ‘신자유주의화’를 비판한 바 있다.] 재밌는 것은 IIPPE가 보통 제3세계의 입장에서 주체적인 발전전략으로 고려되는 ‘발전국가’에 상당히 비판적이라는 점이다. 그 자세한 내용은 ‘발전국가를 넘어서’ 워킹그룹의 설명을 참조할 수 있겠다. 한편 주로 아프리카와 같은 자원이 풍부한 지역을 대상으로 ‘광물・에너지 복합체’라는 새로운 접근이 발전국가론의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끝으로 대안체제의 문제를 들 수 있다. 사태에 대한 실제적인 접근을 선호하는 IIPPE의 성향을 반영해서인지 현재로서는 대안체제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워킹그룹은 ‘사회주의’뿐이다. 그러나 거시적인 차원의 큰 그림을 그리는 것만이 아니라 현실의 세부적인 문제들로부터 대안적인 요소들을 북돋는 것도 대안체제를 다루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본다면, 대안체제라는 문제는 IIPPE 전반에 스며있는 핵심적인 고민거리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이는 “진보적 정책을 고안하고 진보적 운동을 지원함으로써 실천 활동과 연계를 꾀한다”라는 IIPPE의 다섯 번째 목표를 떠올리면, 결코 작은 부분이 아니다.

이상과 같은 성격들이 일상적으로는 개별 워킹그룹들의 독립적인 활동을 통해 드러났지만, 좀 더 공식적으로는 지금까지 세 차례의 국제워크숍(2007년엔 그리스의 크레타, 2008년엔 이탈리아의 나폴리, 2009년엔 터키의 앙카라)과 무수한 중・소규모의 학술대회와 세미나, 또는 마르크스주의 학술저널 《역사유물론》이 주최하는 연례 학술대회에서의 발표 등을 통해 좀 더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몇몇 워킹그룹들을 중심으로 교육용 자료들이 개발되고 있기도 하며, 전세계의 대학원생들에게 그들이 현재 작업중인 논문을 IIPPE에 보내 거기 속한 고참 학자들의 조언을 받을 수 있는 기회도 주고 있다. 이는 현재 정치경제학이 처한 비참한 상황을 고려할 때 정치경제학에 투신하고자 하는 젊은 세대를 범지구적인 차원에서 재생산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고무적인 기획이다. 또한 이런 과정에서 일부 논문들은 선택되어 장차 활성화될 ‘IIPPE 워킹페이퍼시리즈’에 포함될 것이며, 현재 몇몇 출판사들과 진행중인 IIPPE의 자체적인 저널발간 협상이 마무리되면 저널에 실릴 수도 있게 된다. 다른 한편, 국제적인 학술전문 출판사인 플루토(Pluto Press)에서는 IIPPE 총서를 내기로 해, 올해 초 이미 그 첫 번째 권(파인, 2010)이 나왔으며 현재 다수의 후속편들이 준비중이다.

그간 IIPPE의 활동과 노력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열매를 맺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엔 주로 대학원에 재학중인 박사과정생들 위주로 행해졌던 국제워크숍이, 올해엔 대규모 정식 국제학술대회로 격상되어 9월 크레타에서 열리기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이는 동시에 첫 번째로 열리는 IIPPE의 공식총회를 겸하게 된다. 바로 이 자리에서, 현재까지 ‘가안’으로 남아있던 여러 이슈들―정관 문제를 포함한―이 토론되고 결정될 것이며, 그와 동시에 위에서 열거했던 다양한 기획들은 급물살을 탈 것이다. 하지만 몸집을 키우고 영향력을 넓히는 것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다. IIPPE의 목표는 오로지 정치경제학을 장려함으로써 경제학을 비판하고 나아가 사회과학 전체를 ‘사회과학답게’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V. 전망과 맺음말

앞서 IIPPE의 출현을 필연적으로 만들었다고 한 지적・역사적 배경들은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해당된다. 우리나라에서 ‘주류’ 경제학이라 하면 통상 서양에서 이해되는 그것보다 범위가 더 좁은데, 바로 이런 ‘주류’의 범주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논의들은 대학을 비롯한 경제학의 장(場)에서 가차 없이 배제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동시에, 무엇보다 이번 범지구적 경제위기를 맞아, 그것을 적절히 해석하고 대응방향을 제시해주지 못한 경제학에 대한 불만이 우리나라에서도 적지 않게 쌓여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특히 사회경제학회에서 올해 봄 정기학술대회를 ‘글로벌 금융위기와 현대경제학’으로 정하고 주류경제학에 대한 다양한 ‘이단적’ 대안들을 검토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그러므로 이상과 같은 IIPPE의 발전이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밀로나키스와 파인의 ‘경제학의 역사’에 대한 저작들(Milonakis and Fine, 2008; 2009)이 충격적으로 보여주듯, 현재 경제학의 위기는 경제학이 발생해서 지금까지 발전해오는 동안 서서히 형성된 매우 뿌리 깊은 것임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본질적으로 서유럽에서 형성되었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그것이 도입되고 발달한 역사가 짧은 만큼, 우리는 특히 이런 사항에 주의해야 한다. 문제 자체를 올바르게 파악해야만 그에 대한 올바른 해결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IIPPE가 경제학에 대한 올바른 비판과 개혁을 위해서는 다른 사회과학들과 활발하게 교류해야 한다고 힘줘 말하는 것을 특히 눈여겨 봐둬야 한다. 이는 경제학과 사회과학이 지금까지 발전해왔던 과정(이 글의 제3절)을 떠올리면 하나의 ‘당위’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이는 오늘날과 같이 경제학 내부에서 이단적 목소리들이 위축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경제학 내부의 세력결집만으로는 경제학의 진정한 개혁이 어려울 것이라는 ‘현실적인 한계’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적어도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사회경제학회를 중심으로 여타 사회과학들의 비판적 전통들과 교류하려는 흐름이 꽤 강하게 존재했음을 떠올리면, 우리에게 이는 그런 전통을 새삼 되새기고 복원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IIPPE는 이렇게 ‘학문분야 간의 국제주의’만 강조하는 게 아니라 ‘연구와 교류의 국제주의’도 강조한다. 이 또한 한편으로는 비판이 일국 내에만 머물렀을 때 나타날 수밖에 없는 무기력함을 극복하려는 방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의 범지구적 자본주의 자체가 국제주의적인 시각을 견지하지 않고서는 적절하게 다뤄질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것은 거기 속한 한 지역이나 심지어 지방을 다룰 때도 마찬가지다. 바로 이와 같은 국제주의에의 요구는, 우리나라 연구자들이 IIPPE에 효과적으로 결합하여 생산적인 기여들을 행할 수 있는 가능성은 물론 그래야만 하는 당위성까지도 가리킨다.

지금까지 IIPPE가 처한 여러 맥락들과 그로부터 IIPPE가 갖게 된 문제의식, 그리고 그동안 IIPPE가 이 문제의식을 어떻게 다뤄왔는지를 살펴봤다. 통상 이와 같은 글은 대체로 ‘선진국’의 학술동향을 단순히 소개하는 데 그치곤 하는데, 지금 필자에겐 IIPPE를 한국의 연구자들을 포함한 기타 관심 있는 이들에게 소개함으로써 거기에 동참하기를 독려하고픈 욕심도 크다. IIPPE는, 한국과 같이 오늘날 범지구적 자본주의 체제의 재생산에서 매우 중요한 고리이면서도 그동안 정당한 학문적 주목을 받지 못한 지역 출신의 연구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물론 이는 과거 제국주의 시대의 선진국들에서 유행하던 ‘지역학’적 관심과는 다르다. IIPPE가 설정하고 있는 진정한 경제학, 진정한 사회과학의 과업은 “지금까지와 같이 서구의 주도적 연구자 몇몇의 능력만으로는 이뤄낼 수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현대사회의 다양한―결국은 필연적인 연결고리로 서로 연결된―문제의식을 가진 전 세계 각지의 연구자들의 참여, 우리의 참여가 필수적이다”(김공회, 2008, 251쪽). 더구나 IIPPE는 올해 가을(!)에 ‘정식으로’ 출범하는 신생집단으로 우리가 참여해서 주체적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는 여지도 크다.

참여를 원하는 이들은 공식적인 절차에 따라 IIPPE의 대표 이메일주소 iippe@soas.ac.uk로 인적사항과 가입희망 메시지를 보내면 된다. 필자에게 메일을 보내도 좋은데, 이 경우엔 다양한 한국어 문의도 가능하다. 관심 있는 많은 독자들의 참여를 바란다. (끝)

IIPPE: 경제학을 넘어 사회과학의 재편으로 (1)

IIPPE: 경제학을 넘어 사회과학의 재편으로 (2)

IIPPE: 경제학을 넘어 사회과학의 재편으로 (3)

IIPPE: 경제학을 넘어 사회과학의 재편으로 (4)

IIPPE: 경제학을 넘어 사회과학의 재편으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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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oughts on “IIPPE: 경제학을 넘어 사회과학의 재편으로 (5/끝)

  1. 글이 완결될 때를 기다리다 지금 막 다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결국, 고전파에 의해 발전된 정치경제학이란 ‘(근대) 사회’ 자체에 대한 학문, 좀 더 정확히는 사회 전체를 총체적으로 시야에 넣고서 그 사회를 구성하는 주요한 계급들 사이에서 물적 부가 어떻게 생산되고 교환되는지, 어떻게 분배되고 소비되는지를 체계적으로 좇으며 근대시민사회의 운동방식을 탐구하는 학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을 “시민사회의 해부학”(마르크스, 1988[1859], 6쪽)이라고, 즉 근대사회에 고유한 과학이면서도 동시에 그 물적 근간을 다루는 본원적인 과학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앞서 밀로나키스와 파인의 공동저작을 언급하면서 밝혔듯이, 바로 이와 같은 정치경제학은 만약 그것이 제대로 행해질 경우, 자신이 그 대상―즉 사회―에 접근하는 ‘방법’이라는 문제에 필연적으로 민감할 수밖에 없으며, 또 그 자체가 근대시민사회라는 하나의 역사적으로 특수한 체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대상의 역사성이나 사회성에 대해 사려깊을 것이다.

    ‘경제학’의 성립, 곧 정치경제학에서 경제학으로의 전환은, 바로 정치경제학이 근대사회라는 특수한 역사적 체제 안에서 할당받은 위와 같은 역할로부터의 이탈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는 사이에 (정치)경제학의 본질적인 과제들은 일부는 경제학 내부의 변두리에서, 또 일부는 경제학 바깥에서 이러저러한 ‘정치경제학’이라는 이름으로 수행되곤 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경제학 내부에서는 그런 ‘비주류’(heterodox) 접근들이 주변화되고 거의 말살되다시피 하고있는 실정이지만, 경제학 외부의 다른 사회과학들에서는 그런 접근들이 꽤 강하게 유지되었고 특히 최근 들어서는 그 어느 때보다 활기를 띠고 있다는 점이다. 실은 바로 이것이, ‘정치경제학’을 장려함으로써 경제학을 개혁할 때 우리가 경제학 외의 학문분야들에도 주목해야 하는 또 다른 까닭이다.”

    오늘은 야근을 했습니다. 늦은 밤에 들어와 씻고 책을 좀 보다가, 낮에 EM님의 IIPPE 소개 글이 완결된 것을 확인한 것이 기억나서 읽기 시작했는데, 무척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저처럼 (정치-)경제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피곤함과 관계없이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도록 EM님께서 글을 쓰셨다는 말을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정치-)경제학에 큰 관심이 있고 EM님의 제안에 흥미를 가질 만한 많은 분들이 이 글을 읽으면 좋겠어요.

    1. 고맙습니다. ^^

      평소에 생각만 해오던 것을 막상 길게 정리하려다 보니 걸리는 부분이 적지 않더군요. 그래서 쓰는 데 좀 애를 먹었습니다. ^^;;

      네… 무연님 말씀대로, 많은 이들이 봤으면 좋겠어요. Ben Fine 교수는 (겸손하다기보다는) 수줍음이 많은 양반인데… 그래서 이제껏 자기 자신의 업적을 내세우거나 자신의 뛰어남을 과시해본 일이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도, 이번엔 정말 정력적으로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제게 그러더군요, 예의 그 수줍음을 드러내면서요. “난 이제껏 이런 일을 한 번도 해본 일이 없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안다. 당신이 당신의 명성을 위해 그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대의를 위해 그런다는 것을.” 부디 더 많은 힘이 모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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