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꿰띠(Piketty)와 한국경제: ‘불평등’의 본질은 ‘계급문제’

0. Thomas Piketty — 가히 ‘신드롬’이라 부를 만하다. 여기 동참해 그와 그의 저작에 대해 한마디씩 하지 않으면 왠지 시대와 유행에 뒤쳐지는 게 아니냐는 분위기가 생기고 있을 정도다. 에… 그래서 나도 한 마디! 낄낄낄~~

이 신드롬에 동참하는 첫 걸음은 그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는 것이다. 이미 우리나라 언론에서도 프랑스인인 그의 이름을 ‘토마’라고 표기하고 있다(링크). {Financial Times}는 여기서 한발짝 더 나갔다. 그의 성도 (우리말로 치면) ‘피케티’가 아니라 ‘피꿰띠-‘라고 발음해야 한다고 일러주고 있다:

Calling him “Pick-a-tee” denotes you as an arriviste outsider. So get it right – it’s “Piquettee”. And don’t call him Thomas, it’s “Thom-ah”. Correct pronunciation is crucial. “Piquettee” sounds exotic, the type of intellectual investment that boosts your career capital; “Pick-a-tee” sounds like a fence in small-town America. For continued growth the right pronunciation (r) must always exceed the garbled version (g) – or r>g to use the precise formula.  (출처)

위 구절은 내가 {FT}에서 본 최고의 개드립이다. 아… 저 정도는 쳐야 하는 것이다!

1. 피꿰띠 책에 대한 요약은 앞서 링크한 {시사인} 기사를 참조하면 될듯하다(다시 링크). 솔직히 요약이 썩 좋진 않다만… 내가 다시 하기엔 좀 귀찮기도 하고, 또 아직 내가 책을 읽은 것도 아니라..ㅎㅎ (물론 이 기사를 쓴 기자양반도 책을 읽지 않고 쓰셨겠지만ㅋ)

다른 부분은 그렇다 치고, 이 기사에서 각별히 주의할 대목이 하나 있다. 기자는 피꿰띠가 ‘진보적 세금제도’를 대안으로 내놓고 있다고 했는데, 그 영어표현인 ‘progressive tax’는 ‘진보적 세금(제도)’가 아니라 ‘누진세’다.

그래서 피케티가 제안하는 대안은 ‘자본(부)에 대한 진보적 세금제도(progressive tax on capital)’를 통해 자본수익률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심지어 소득 상위 1%에 대해서는 최고 80%의 한계세율(초과 수익에 대해 세금으로 지불해야 할 비율)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미국의 경우 1970년대까지 무려 90%의 한계세율을 적용한 적이 있다. 또한 전 세계의 자산(땅·주택·공장·주식·채권·지적재산권 등)에 연간 5~10%까지의 세금을 부과하자고 한다. 이는 국제협력을 통해 글로벌한 차원에서 시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부자들이 돈을 다른 나라나 조세피난처로 빼돌리는 경우를 차단할 수 있다. 피케티에게 진보적 세금제도는, 불평등과 투쟁해서 세계경제의 활력을 다시 살려낼 수 있는 무기다.

위 구절에서 보듯이, 기자는 피꿰띠의 대안을 ‘진보적 세금제도’로 이해하면서 여기엔 두 가지가 포함된다고 생각한 것 같다. 즉 (1) 초고소득자에 대한 한계세율 대폭 인상과 (2) 세계적인 자산세 부과가 그것. 다시 말해, 이 둘을 포괄하는 개념이 ‘진보적 세금제도’라는 것.

그러나 이는 잘못된 이해다. 내가 아는 한 피꿰띠는 두 가지 제안을 한다. (1) 누진적 소득세(progressive income tax), 특히 최고소득구간에 대해 초고세율 적용 및 (2) 글로벌 자산세(global wealth tax). 즉 위 기사에서 오해한 ‘진보적 세금제도’는 첫 번째에만 해당하고, ‘글로벌 자산세’는 전혀 별개 사안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위 오류는 단순한 오역이 아니다.

3. 피꿰띠의 문제제기가 결코 남 얘기는 아니다. 우리는 어떨까? 크루그만이 잘 간파했듯이, 다음은 피꿰띠의 문제의식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표다(출처).

위 표는 불평등의 상태를 크게 셋으로 구분해 놓고, 각각에 대하여 각 소득집단이 전체 소득의 얼마만큼을 가져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가령, 상대적으로 낮은 불평등도 상태에서 최상위 1%는 전체 소득의 7% 가량을 가져가고, 그 다음 9%의 소득자들이 18%를 가져간다는 식이다. 1970~80년대 스칸디나비아 나라들이 이런 상태였다.  이런 식으로 보면, 오늘날 미국은 높은 불평등도를 보이고 있는데, 이때 최상위 1% 집단이 전체 소득의 20%를 가져가는 것으로 나타난다. (참고로, 미국의 소득분배에 대해서는 나의 과거 포스팅 참조: 링크)

오늘 우리의 상황을 이 표에 적용시켜보면 어떨까? 마침 재작년에 국세청에서 나온 통합소득(=근로소득과 종합소득을 합산한 것) 100분위 자료가 있다. 이를 통해 보면,

소득분포

보다시피, 일단 우리나라의 상위 10%의 소득몫은 40%를 넘어, 피꿰띠가 말하는 ‘medium 수준의 불평등’과 ‘high한 불평등’ 사이에 해당한다. 즉 우리는 오늘날의 미국보단 좀 낫지만 오늘날의 유럽보단 매우 불평등하단 뜻이다. 이는 최상위 1%의 소득몫을 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또 하나 재밌는 게 있다. 바로 ‘바닥 50%’를 보라. 매우 불평등한 미국에서도 이들이 차지하는 소득몫이 20%인데 우리는? 무려 14.2%밖에 안 된다! 이 간단한 표만 봐도, 현재 우리 사회가 어떠한지가 단박에 드러난다.

(위 표에서, 상위 10%의 평균소득이 1억이 넘는다는 것에 놀라실 분이 계시리라. 너무 높지 않냐는 거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평균’임을 잊지 마시라. 10%에 들기위한 ‘문턱(threshold)’은 기껏(!) 5천7백만원쯤이다. 이로써 우리는 상위 1% 내부에서도 소득분포가 얼마나 불평등한지를 짐작할 수 있다.)

4.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피꿰띠가 내놓는 두 가지 제안이 유효할까? 이 대목에서 나는 좀 유보적이다. 무엇보다 피꿰띠의 두 대안의 현실성에 대해 우리는 잘 따져봐야 할 것이다. 예컨대, 과연 ‘최상위층에 대한 60% 세율 적용’이나 ‘글로벌 자산세’가 현재 우리나라에서 실현가능하겠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일전에 써둔 포스팅 참조(링크). 음.. 그보다 전에 써둔 것도 있다(링크).

또한 위 표는 개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가장 큰 문제는 개인소득의 불평등도 불평등이지만, 전체 국민소득 중에서 개인과 가계의 몫으로 오는 비중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민소득(GNI)에서 가계소득(PGDI)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9년 이전에는 57%를 웃돌았으나 2010년부터는 55%대로 내려앉았고 작년에도 56.1%에 그쳐 최근 5년 평균 치(56.4%)에 못 미쳤다.

이는 다른 OECD 회원국에 비해서도 크게 낮은 수준이다. 한은이 2012년 기준으로 OECD 회원국의 GNI 대비 PGDI 비중을 분석한 결과, 자료를 입수할 수 있는 21개국의 평균치는 62.6%로, 한국은 밑에서 6번째를 차지했다. (출처)

뭔 소리냐면, 기업을 조져야 한다는 거다. 바로, 계급투쟁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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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thoughts on “피꿰띠(Piketty)와 한국경제: ‘불평등’의 본질은 ‘계급문제’

  1. 초치는 것 같아 죄송하지만, 발음이 피꿰띠가 아닙니다.. 불어로 제대로 발음하면 그나마 또마 피케(께)티 정도이겠군요.

    1. 초를 치시다뇨! 글을 올린 순간부터, 이런 덧글을 기다렸습니다!! 고마워요 ㅠㅠㅠㅠㅠ “또마- 피께티!” 됐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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