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좌파’의 업보

좌파들 사이에서 이렇다할만하게 미국에 대해 영양가 있는 발언을 해주는 사람을 찾기 어려웠는데, 그러다가 안병진 교수를 언젠가 보고 괜찮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 뒤로 이 양반 글을 어디서든 보면 잠깐이나마 눈길을 두곤 했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 버스 안에서 읽은 이 글은 정말 최악이었다. [링크]

지금 한국에서는 한국판 샌프란시스코나 뉴욕에서 의미심장한 변화가 시작됐다. 과거 낡은 운동권 스타일과 다른 매력적 자유주의가 부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제일 먼저 눈치챈 것은 보수 언론이다. [. . .] 그들의 예감은 정확하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분당과 서울은 자유주의 혁명의 진앙지가 될 것이다. [. . .] 보수가 항상 주창하는 선진화, 진보가 그토록 염원하는 정권교체는 바로 이 자유주의 혁명에서 출발할 것이다. 만약 두 진영이 각자의 꿈들을 단지 구호로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믿는다면 놀랍게도 서로 공통된 전략적 목표가 있는 셈이다. 자유주의 시대로의 이행 말이다. 다만 수많은 스펙트럼이 가능한 자유주의를 어떤 빛깔의 것으로 만드는가의 차이가 존재할 뿐이다. 흥미로운 2012년이 다가오고, 자유주의 혁명을 위한 세대는 미국과 한국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분당 좌파’의 한 명으로서 선거 결과가 참 궁금해진다.

세상에… ‘강남좌파’들이 앞으로 세상을 주도할 것이라고 저렇게 자신있게 장담할 뿐 아니라, 스스로 자신이 크게보면 ‘강남좌파’에 드는 ‘분당좌파’임에 저리도 의기양양할 수 있다니…

하지만 이 글이 진짜로 씁쓸한 것은, 단순히 이 글의 저자가 나의 믿음(?)을 저버려서는 아니다. 그것은, 위 칼럼에 나온 내용이 단순히 안병진 교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정말 골때리는 일인데… 위 글에서 안교수가 묘사하는 것과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날 확률이 결코 낮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도 어느정도 사실이다. 즉 안교수의 저와 같은 ‘사자후’에는 그 나름의 근거가 잇는 셈이다.

물론 나는, 그게 강남이든 분당이든, 아니면 전라도 광주든 경상도 대구든… 사람을 그 출신지역이나 사는 곳을 기준으로 성격짓는 것에 그다지 관심도 없다. 아니, 사실은 나뿐만 아니라 이 나라에 사는 대부분의 정상인들은 관심이 없으리라 믿는다.

바로 이것이 더 골때리는 일이다. 즉 ‘강남좌파’가 대통령이 되어도, 이 나라에 사는 대부분의 정상인들은 (매스컴의 호들갑 때문에 조장된 것이 아니라면) 거기 실질적인 관심도 없을 것이고 그들의 삶도 그다지 달라질 것도 없다는 것.

그러나 이 얘길, 정치에 대한 혐오주의의 발로라거나 근본주의 등으로 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안교수가 그렇게도 찬양하는 ‘강남좌파’의 세상이 와도 이 나라 민중의 삶은 그다지 달라질 것도 없을 것이기에, 바로 그렇기에 그들은 더더욱 민중의 삶의 개선에 힘을 쏟아야 한다. 어쩌면… 그것이 바로, 이 더럽고 희망없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체제’ 안으로 들어가 나름대로 ‘성공’도 거두고 ‘강남’이나 ‘분당’에 아파트도 사고 그저 애들 교육 걱정이나 하면서 또는 오늘은 무슨 커피 마실까 고민이나 하면서 주말이면 종종 양재천에 나가 자전거나 타면서 그저 ‘조선일보’나 ‘이명박’이 세상에서 제일 나쁜놈인줄 알고 지내는 이른바 ‘강남좌파’들이 짊어지고 살아야만 하는 업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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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thoughts on “‘강남좌파’의 업보

  1. 마지막 문단은 정말 의미심장하네요. 모 월간지에 알흠다운 글 기재하며, 나름 편집위원이라 고상 떠시는 분이, 강남 애들이랑 지방 애들이 어떻게 성적이 같을 수 있냐며
    ‘사자후’를 토하던 모습이 생각나네요. 아~ 그런 인간들이 지식인닙네~하는 거 완전 짱나요!

    아..저는 얼마 전 “정치경제학강의” 들었던, 선생님 휀!!
    휀심 가득한 맘으로 블로그 방문했어요. ㅎㅎ

    1. ㅎ자기가 겪어보니 그렇더라는 얘길 했던 게 아닐까요? ㅎㅎ

      앞으로 자주 방문해 주세요….. 라고 쓰다 보니, ‘콘텐츠’도 없는데 방문은 무슨… 이란 자괴감이 드네요;;; (그래도..ㅎ)

  2. “물론 나는, 그게 강남이든 분당이든, 아니면 전라도 광주든 경상도 대구든… 사람을 그 출신지역이나 사는 곳을 기준으로 성격짓는 것에 그다지 관심도 없다.” (하지만 인천은…)

    그건 그렇고 링크하신 저 글은 진심 답이 없네요;

    1. 가만보면 풀님, 날카로우신 데가 있다니까요.. (-_-)+
      (에… 근데, 인천은 좀 달라요..;;;) ㅋㅋ

    2. 옘님의 향토사랑이 부럽기도 하네요ㅎㅎ 전 고향이라 부를만한 것이 없어서리ㅠ 그나저나 오늘 이따가 전화 연락을 한번 드리겠습니다!

  3. 내친김에 경향신문 기사 몇 개…
    (1) 떠오르는 ‘부유한 좌파’… 진보 외연 확대되나
    (2) 서구의 ‘부자 좌파’…리무진 리버럴·고슈 캐비어·살롱 좌파

    아주 그냥… “정권교체”를 위해 몸도 마음도 다 바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저들의 사회경제적 지위/여건을 봤을 때, “정권교체”는 저들에겐 정말로 사활이 걸린 문제일 것이다. 그들은 얼마나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충실한 것인가! 일반 대중 입장에서야, 그로부터 떨어지는 콩고물을 좀 주워먹을 수 있을지 몰라도 크게 달라질 건 없을 것이다.

    너무 비관적인 거 아니냐, 니가 말하는 ‘크게 달라진다는 것’이 대체 뭐냐?! 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겠다. 실제로 정권교체가 되어, 조국 교수 같은 양반이 대통령이 되면, 분명, “강남좌파”들은 정말로 맨날 웃고 다닐 것이다. 돈이야 지금도 많이들 벌겠지만 그렇게 되면 더 많이 벌 것이고, 평소 그렇게도 싫어하던 조선일보 엿먹이기도 쉬워질 것이고, 혹시라도 MB를 감옥에 보내는 데 성공이라도 하면 자면서도 웃을 것이다. 그러니까,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크게 달라진다”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일반 대중에겐 그다지 와닿지 않는 것일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고 넓게 보면, 이것이 그들에게도 간접적으로 이익이 된다고도 할 수 있다. 이를 일컬어 흔히들 “역사의 진보”라고 하는 것이고… 그러나 그런 “진보”는, 조금 멋부려 말하면 “역사”라는 것이, 또는 “이성”이라는 것이 그 무엇도 거스를 수 없는 방식으로 가져다주는 것이지, “강남좌파”가 가져다주는 게 결코 아니다. 이런 사항을 깨닫고 있다면, 안 교수 같은 이가 저렇게 경거망동하진 못할 것이다.

    끝으로, 링크된 두 개의 기사 중에서 두 번째 것의 마지막 문단: “강남좌파 역시 처음에는 이들과 비슷한 의미의 용어로 출발했다. 다만 서구의 용어가 보수진영의 비아냥거리는 용도 이상을 넘지 못했다면, 근래 한국의 강남좌파는 수동적으로 붙여진 부정적 이미지를 넘어선다는 데에서 차이가 있다”라는 구절은 참으로 낯뜨겁다..

  4. 분당좌파란 말이 너무 웃겨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치겠다;;;; ㅋㅋㅋㅋㅋㅋ 난 인천좌파할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ㅇ<-<

    1.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럼 전 마포에 새로 살게 되었으니까 마포신좌파 o<-<

  5. 요즘 강남좌파라고 불리는 이들에게 좌파라고 불리는 것은 올바른 표현이 아니라고 본다. 좀 자유적이고, 산뜻함과, 따뜻함 정도는 있을 것이다.

    1. 안녕하세요:)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저 위에 기사들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강남좌파’라는 표현이 조선일보 등에서 조국 등을 비아냥대기 위해 만든 말이고 또 저들은 자기들보다 왼쪽에 있으면 다 ‘좌파’라고 한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그게 나름 일리는 있는 것도 같습니다 ㅋ

      그러나 결국엔, ‘내용’이 중요하겠죠. 내용으로 보면, 이제껏 ‘강남좌파’는 이명박이랑 조선일보 싫어한다는 것 빼고는 별다르게 자기 자신을 증시한 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전통적인’ 좌파와 자신들을 구별한다는 명목으로, 그리고 더욱 중요하게는 그 알량한 선거에서의 ‘표’ 때문에, 이땅의 노동대중을 적극 옹호한다는, 즉 ‘좌파’의 가장 중요한 대의에 대한 알러지 반응만 보일 뿐이었지요..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좌파’라고 불릴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냥 ‘리버럴’이라고 불리는 게 적당하다고 봐야겠죠..

      1. 안녕하세요 EM님ㅋ 공교롭게도 저는 저 교수님이 주관해서 명사 초청을 하는 필수 교양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_-; 요즘 주위에서 조국 교수나 기타 등등이 쓴 책들이 많이 읽히고 있는 광경을 목격하고 있는데 확실히 EM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리버럴이라 하지 않고 왜 굳이 ‘강남 좌파’라고 하는지… 그만큼 한국에서 ‘좌파’라는 하나의 기호가 어느 정도 표를 모을 수 있는 파워가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1. 반갑슴다. 잘 지내세요? 날도 좋아졌으니, 한번 오프라인에서 ‘어제의 용사들’이 한번 뭉쳐보는 것도 좋겠단 생각을 문득문득 하고 있습니다. ^^

          ‘좌파라는 기호’, 별로 파워 없다고 저는 봅니다. 별다르게 마땅한 말이 없으니까 쓰이고 있다고 보는데요, 진중권 같은 사람부터 해서 위의 안병진 교수나 조국 교수 같은 이들에 이르기까지, 제가 보기엔, ‘좌파’보다는 ‘자유주의자’ 또는 ‘리버럴’이라는 ‘기호’로 자신들을 드러내는 걸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다만 적당한 기회를 못 찾고 있는 것뿐이죠. 실은 그런 시도는 오래 전에 진중권이 했다가 실패한 적도 있지 않나요? 그런 맥락에서 보면, 안병진 교수의 글도, ‘좌파’를 버리고 ‘리버럴’을 택하고자 하는… 소극적인 시도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그 글에 등장하는, 안교수가 시샘하고 있는 미국의 ‘강남 좌파’들을, 실제로는 누구도 ‘좌파’라고 부르지 않잖아요.

        2. 그렇군요ㅎㅎ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앞으로 어떠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표현할 지 주의 깊게 지켜바야 겠습니다. (수업 중 조만간 여러 시민 단체와 활동을 함께 할 계획이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3. 네… 안교수뿐 아니라 여러 곳에서 비슷한 움직임이 목격됩니다. 주의깊게 지켜보시면서, 좋은 아이디어 많이 얻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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