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환 선생의 ‘인지자본주의’ 출간에 부쳐

조정환 선생께서 『인지자본주의』라는 책을 내셨다고 한다. 네그리•하트의 『제국』이 나온 것이 2000년이니까, 그로부터만 쳐도 10년이 넘는 기간에 걸친 연구와 논쟁의 성과라고 할 수 있겠다.

책을 안 읽어봤지만 그간 알고 있던 그의 주장들로 미뤄 내충 무슨 얘길 하려는지는 짐작이 간다. 다른건 관두고, 나는 이 분이 자신의 주장을 마르크스와 관련짓는 것이 심히 못마땅스러울 뿐이다. 만약 그러지만 않았다면, 그는 전혀 나의 관심 바깥에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특이한 것은 그가 ‘인지자본주의’라는 테마를 마르크스와 관련시키기 때문이지, 만약 ‘인지자본주의’ 자체에 대해 말한다면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나 조정환 선생보다 훨씬 정치하고 앞선 논의들을 내놓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말해, 널리고 널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가 마르크스를 올바르게 제시하고 있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마르크스의 가치론을 그는 전면 부정하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의 표현을 빌면, 그는 “노동자를 더 고용해 그들이 창출하는 ‘잉여가치’에서 자본을 축적한다는 마르크스적 해석이 통하지 않는다”라고 보기 때문이다(링크). 이런 해석에 대해, 그간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수많은 반론들을 내놓았고, 그 대표적인 논자가 경상대의 정성진 교수다. 지금은 이미 오래전 일이지만, 그의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였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다. 어째서 조정환 선생은 마르크스의 핵심 명제를 부정하면서도 스스로 마르크스주의 진영에 이름을 올리는 것을 허용하는 것일까? 기본적으로 조정환 선생께서 위와 같은 ‘과감한’ 해석을 내놓는 것은, ‘세상이 바뀌었다’라는 판단 때문이다. 이를, 《한겨레》의 기사는 “상업자본주의, 산업자본주의에 이은 제3기 자본주의로서의 ‘인지자본주의’”라고 표현했다(링크). 무슨 얘기냐면, ‘어차피 이런 것에 대해 마르크스는 전혀 몰랐을 테니까’라는 ‘알리바이’를 조정환 선생은 자의적으로 마르크스에게 부여한 뒤, 그는 점잖게 ‘그래도 나는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선언하는 결연함을 보이는 것이다. 음, 멋지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그런 것을 몰랐다고 식의 발언은 매우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역사를 다룰 때 지극히 신중해야 하는 것이다. 당연히 마르크스는 iPhone에 대해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iPhone은 8년 전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도 몰랐다. 그러나 ‘iPhone을 몰랐다’라는 말과 이를테면 ‘잉여가치가 더 이상 노동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지식에서 나오는 세상에 대해 몰랐다’라는 말은 전혀 다른 것이다. 과연, 마르크스가, 지식이 가치의 생산에서 행하는 중요한 역할에 대해 몰랐을까? 이것은 마르크스만에 대한 얘기는 아니다. 즉 19세기 중반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선진적인 지식인들이 ‘지식’이라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었을까? 이에 대해 지금으로선 다음과 같은 당시 《The Economist》의 한 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족하다.

“물질세계에 대한 지식과, 그것을 노동에 의해 적용시키는 기술부의 원천이다” (The Economist, August 30, 1851). (강조는 나의 것. 여기서는 ‘노동’이 아니라 ‘지식knowledge’과 ‘기술skill’이라는 단어가 핵심이다.)

혹시 조정환 선생은, 위와 같은 구절에 대해 마르크스가 동의했다고 생각하시진 않겠지? 참고로, 《The Economist》는 마르크스가 그렇게도 혐오했던 당시의 경제학자들, 즉 이미 자본가들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과학자라기보다는 이데올로그에 지나지 않는 집단에 의해 ‘자유무역을 증진시키기 위해’ 창간된 잡지다.

(물론 내 얘긴, 마르크스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다는 게 절대 아니다. 세상이 바뀌었다면서 ‘가치론’이 유효성을 잃었다고 하는 것은 매우 성급한 태도라는 것이다. 이미 이 블로그에서도 ‘가치론’의 중요성에 대해선 몇 차례 말한 바 있다. 조정환 선생이 말하는 것과 같은 ‘세상의 바뀜’은 가치론에 대해 새로운 과제를 제기하는 것이지—물론 위에서 말한 대로 흔히 사람들이 ‘새로운 과제’라고 여기는 것들이 실제로는 그다지 새로운 게 아니다—결코 가치론을 부정하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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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thoughts on “조정환 선생의 ‘인지자본주의’ 출간에 부쳐

  1. “(잉여)가치의 원천이 노동이다”가 가치론의 핵심이긴 하지만 전부는 결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추상적인 핵심이 실제 자본주의 현실에서 어떻게 관철되고 드러나는가를 보이는 것이다. 요컨대, 이 핵심을 중심으로 해서 자본주의 경제의 동학을 구성하는 이론이 가치론이다.

    또한 마르크스는 “본질과 현상이 직접 일치한다면 모든 과학은 불필요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즉 조정환 선생의 주장과는 달리, 자본주의 현실 속에서 위와 같은 가치론의 핵심명제가 부정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가치론이 부정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가치론이 필요한 것이다. 즉 그는, 마르크스가 즐겨쓰던 표현을 차용하자면, “설명해야 할 것(본질과 현상의 괴리)을 전제해놓고 있는 셈이다”. 바로 그런 괴리를 대전제로 놓고, ‘본질’이 이젠 더이상 본질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꼴이다.

  2. 허걱. 인지자본주의 관련 글은 요새는 별로 발표되지 않는 것 같던데, 우리나라에서 연구서가 나왔군요. 얼마전에 Moulier Boutang의 책이 영어로 번역되긴 했죠 (http://http://www.amazon.com/Cognitive-Capitalism-Yann-Moulier-Boutang/dp/0745647332/ref=sr_1_1?ie=UTF8&qid=1303509967&sr=8-1) 그런데, 인지자본주의론에 대한 비판은 별도로 하더라도, 기사로만 판단하더라도 오류가 있어보입니다. 프랑스의 인지자본주의론자들은 ‘인지’라는 용어가 인지과학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언급했는데, 기사에는 “인지과학의 성과”를 아울렀다고 하네요. 그런데, 이 책은 웹에 공개가 안되나요? 인지자본주의에서는 이제 계급투쟁이 지적재산권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조정환 선생도 지대를 전유하고 계신 건 아닌지 흠. 개인적으로 지적재산권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인지자본주의론의 결론을 따르자면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1. 그렇군요. 인지과학의 성과에 대해서라면 요새 뜨고 있는 진화경제학이나 신경경제학 등등에서 관심을 가질 법하죠. 최근에 한국에 방문하기도 한 Sam Bowles나 그 제자들(이 중엔 한국인들도 꽤 있죠)이 그런 그룹들 중 하나이고요. Sam Bowles는 잠깐 얘기도 나눠봤는데… 사람이 참 좋고 말하기도 좋아하더군요 ^^

  3. (노동)가치론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조정환 선생만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컨대 이진경, 의 3장 노동가치론과 맑스주의에도 비슷한 주장이 있습니다. 뭐, 다른 사례가 많다는 얘기를 하고자 하는 건 아니고요. ^^ ‘맑스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사람들 중에 노동가치론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하겠다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요? 그런 사람들은 단순히 노동가치론만 재구성하겠다는 게 아니고 맑스주의를 재구성하려고 하겠죠. 그래서 그 사람들의 이론에 따르면 EM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간단하게 ‘마르크스의 핵심 명제를 부정’하기 때문에 ‘맑스주의자’라고 말하기 어렵다, 이렇게 될 것 같진 않네요. 그 사람들에게 맑스의 핵심 명제는 이미 다른 어떤 것일지도 모르니까요. 공부가 짧아 이런 댓글이 좀 민망하기는 하지만, 조정환 선생이 ‘단지 눈에 보이는 현상’ 때문에 가치론을 버리거나 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아서 말이죠. 오히려 가치론의 재구성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지… 그리고 전통적인 노동가치론자들의 경우에도 (강남훈, 류동민 등) 노동가치론에 여러 가지 난점이 있는 건 인정을 하면서도 (정세적인 이유로) 노동가치론이 잠정적으로는 사수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죄송… 전공자가 아니라 출처는 잘 기억나지 않네요.) 헌데 EM님께서는 (제 느낌이 맞다면) 너~무 확언을 하시는 듯하여… ^^ 열기를 좀 식힐까 합니다. 성공했을까요?

    1. 반갑습니다. 남십자성님. ^^

      이진경 선생의 마르크스 가치론 해석에 대해선, 별로 건질 게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실은 조정환 선생에 대해서도 비슷한 생각이고요. 그 근거에 대해서는 이 블로그 상단에 있는 ‘Marx(-ism)’을 눌러보시면 나오는 몇몇 글들에서 이미 밝힌 바 있습니다. 비록 제가 거기서 저 두 분들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요. 어쨌든 저는 그들의 입장을, ‘나름대로 그 존엄성을 갖는 해석’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그들의 그 ‘입장’ 내지 ‘해석’이란 그냥 뭘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봅니다.

      다른 말씀은 다 관두더라도… 네, 저도 남십자성님 말씀처럼, “조정환 선생이 ‘단지 눈에 보이는 현상’ 때문에 가치론을 버리거나 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제가 보기엔, 그분은 가치론이 뭔지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때문에… 저는 열받는다기보다는 좀 가련하단 생각이 들 뿐입니다. 그러니 딱히 식힐 열기도 없습니다. 뭐… 아무래도 블로그라는 곳이 부담이 덜 하기 때문에 조금은 덜 긴장하고 이죽거리는 것인데… 그게 좀 거슬리게 보이셨다면 사과드립니다. ^^a

  4. 인지과학을 공부해야 하는데(하기 싫지만-_-) 인지자본주의랑은 상관 없는 거군요. 다행이다..<라기보다 둘 다 공부하기 싫엄 -_-

  5. 최근엔 조 선생님 작업에 큰 관심을 갖고 있진 않았었는데 경향신문의 저 멘트는 좀 이상하군요.
    조정환은 일관되게 맑스주의를 노동가치설’로만’ 해석하는 거를 문제삼고 맑스의 텍스트, 주로 ‘일반지성’ 뭐 이런 거 나오는 텍스트들에서 에서 지금 주장하려는 인지노동이나 인지자본주의 논의의 한 근거를 도출해 내던 걸로 기억하는데….

    1. 안녕하세요. ^^ 흠… 저는 크게 문제될 것 없다고 보는데요? 간단히 말하면 그는, 예전부터 줄곧, 가치를 생산해 내는 게 이젠 노동이 아니라 지식이다.. 비슷한 얘길 해왔죠… 말하자면, 김강님께서 말씀하신 그 ‘근거’를 가지고 노동가치설을 비판/부정하는 것이죠.. (물론 저는 말도 안 된다고 봅니다만..)

  6. 요새, 인지자본주의와 관련한 모종의 주목이 있나봐요. 문화과학도 지난 번에 특집호롤 편집했고요. 그때도, 좀 뜬금없긴 했는데, 좀 철지난 이야기를 한다는 인상을 받었거든요. 조정환 선생 책은 읽지도 않았고, 그럴 생각도 없지만, 제목에 인지가 들어가서 좀 의아하긴 했어요. 정동이야기 할 때가 얼마되지 않았는데, 정동(혹은 감정)도 차분히 검토하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말이지요. 정동이나 인지가 자본주의, 나아가 맑스(아마 자율주의자는 그룬트리세에 기반을 두는 것으로 알지만, 그럼 ‘어떤’ 맑스)와 어떻게 연관되는지도 충분히 논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말이지요. 매번 느끼는 거지만, 정말 대단한(?) 이론적 능력을 지닌 분이란 생각밖에는-_-;; 게다가, 국내에서 프랑스의 인지자본주의 논의를 소개한 전병권 박사가 언급할 때는 세상이 잠잠하더니, 역시 출판업계의 스타시스템이 놀랍긴 하네요.

    1. 덧글이 중복되어 먼저 쓰신 것을 감췄습니다. 글쓴이가 지울 수 있게 하든가 해야지.. 그런 기능이 있다면요;;; 글에서도 밝혔지만, ‘정동’이든 ‘인지’든… 차라리 그런 주제들을 차분하게 다루는 연구들에서 얻을 게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예전에 런던에 있을때 한국대학생 과외를 해준 적이 있는데… 그때 보니까, 경영학 쪽에서 나오는 ‘정동’에 대한 논의들이 훨씬 더 가슴에 와닿더군요… 아마 이런 것들에 대해선 뽀삼님께서 잘 아시겠죠? ^^ 요새 여세(?)를 몰아, 관련 논의들을 함 정리해주신다면 제게도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 ㅎㅎ

  7. 생도에서 인지자본주의 책 출간 한겨레 기사 읽으면서 네오풀과 함께 “EM님이 이 책 되게 싫어하시겠다.”라고 말했는데 역시 맞은 것 같네요 ㅎㅎ 글 잘 읽고 갑니다 ㅎㅎ

    1. 흑… 어쩌다 제가 증오의 아이콘이 되었는지…;;;
      그래도 작은 웃음을 드렸다면 만족임다 ㅎㅎ

  8. 이걸 뭐… 영광스럽다고 해야할지…

    얼마전 서동진 선생께서 위 책의 서평을 냈는데, 조정환 선생께서 그에 대한 반론을 내놓았다(링크). 그런데 그 반론에서 나를 언급하셨더군. “책도 안 읽어본 놈이 책에 대해 욕을 하고 있다”라는 뉘앙스를 풍기면서.

    혹시 이에 대해 오해할 사람이 있을지 몰라 몇 자 적어두면…

    일개 블로거의 자격으로 몇 글자 끄적여 놓은 것을 구체적으로 거명하며 문제삼는 것은, 그 나름의 ‘성실함’이자 ‘배려’라고 치자. 그러나 나는, 책을 읽지도 않고 책에 대해 말한 게 무슨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 분명 나는 {인지 자본주의}를 읽지 않았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미 난 조정환 선생의 기존 논의에는 나름 익숙한 편이고 그의 기존 저작들은 상당권 가지고 있다. 그런 ‘선이해’에 근거해서 이번 책에 대해 몇 마디 내뱉은 게 무슨 잘못인가?

    따라서 독자들도, 위 포스트 내용을 그런 선에서 받아들여주시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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