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라덴의 죽음과 미국, 파키스탄

빈 라덴의 죽음에 대해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봤다.

– 오사마 빈 라덴의 죽음. 그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가 사살되고 얼마 후, “미군에 사살된 것이 빈 라덴 최후의 승리”라는 제목의 기사를 봤다. 그때는 이 기사가 참 좋다고 생각했다(링크: 프레시안). 분명 좋은 포인트를 잡아내고 있는데, 어딘지 좀 부족했다.

– 아무래도 그를 죽인 주체, 즉 미국이라는 국가는 그를 죽임으로써 무엇을 노렸던 것인가를 먼저 물어야 할 것이다. 오사마 빈 라덴을 만약 누군가가 죽인다면, 그게 누구여야 할까? 음, 주관식은 너무 뜬금없나. 객관식으로… 오바마와 부시 중에서 누가 죽이는 게 더 ‘자연스러워’ 보일까? 아마도 열명에 아홉은 부시라고 대답할 것. 따라서 이번 ‘작전’을 두고, (우리로 치면 노무현이 집권하는 동안 노동자들에게 보인 태도와 비슷하게) 오바마의 (부시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진짜 정체’가 드러났다고 흥분하는 것도 지나친 게 아니다(링크: 레프트21).

– 뭐, 좋다. 오바마 행정부의 제국주의적 본질, 다 좋다. 근데, 왜 ‘굳이’ 죽였을까? 부시도 후세인을 죽이지 않았는데. 죽이지 않고 재판에 부쳤는데… 처음엔 이런 의문이 꽤 컸는데, 생각해보니까, 일단 빈 라덴의 은신처를 덮치는 작전을 수행하기로 한 이상 죽이는 것은 불가피했던 게 아닐까 싶다. 이렇게 보면, ‘생포할 수 있었는데, 왜 죽였느냐’는 일종의 ‘생트집’ 같아 보인다. (생각해보면, 빈 라덴이 생포당하는 것은, 미국으로서도 골치아픈 일이겠지만, 알카에다 입장에서도 그다지 좋을 게 없어 보인다. 만약 그를 미군이 생포하려 했다면, 다른 조직원이나 빈 라덴 자신이 이를테면 그 은신처를 폭파시켜 자폭하지 않았을까.)

– 따라서 문제는 다시: 왜 그럼 미국은 빈 라덴의 은신처를 덮치는 작전을 수행했는가. 아무래도 여기서 미국 내부 사정을 떼놓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돈’에 대한 고려가 단연 핵심. 예산 문제인데, 2007년 이후 국민경제 전체적으로는 물론이고 특히 국가재정이 심각한 위기에 처했음이 드러나고 있는 미국 국가로서는 국방비 감축 없이는 현재의 위기를 타개할 수 없겠다는 판단이 크게 작용했을 것. 마침 아프간/파키스탄에서 발을 어느정도 빼고 싶었는데, 이번 빈 라덴의 사살은 그것을 위한 좋은 구실이 되었을 게다. “자, 이제, 테러의 원흉이 죽었으니, 우리 이제 발을 (조금은) 빼자!” (링크: 레프트21)

– 그런데 재밌는 건,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오바마가 아주 그냥 ‘현자’로 보이기도 한다는 점(링크: 프레시안). 그리고 이 링크된 이 기사에서도 시사되듯이, 아프간/파키스탄/이라크 주둔군 감축에 대한 현재의 논란은 곧, 미국의 전반적인 군사전략의 변화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까지도 키우고 있는 실정임(링크: POLITICO).

– 다른 한편, 현재의 사태를 파키스탄의 입장에서 보는 것도 중요하다. 여기서 우리는 파키스탄 민중과 정권을 잡고 있는 세력을 구분해야 함. 기본적으로 파키스탄의 집권세력들에게 빈 라덴은 엄청난 ‘경제적’ 의미를 갖는다.

[출처: 여기 (근데 이렇게 pdf 파일의 일부를 내맘대로 복사해 붙여도 되나 몰라;;)]

보다시피, 파키스탄은 미국으로부터 현재 엄청난 원조를 받고 있는데, 9/11 이전에는 한동안 원조가 끊기다시피 한 상태였다는 것. 그 전에도 한동안 원조가 꽤 있었다는 것도 재밌다. 바로 구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관련이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 말하자면, 파키스탄의 권력자들 입장에서는, 자기들 지역을 소란스럽게 만드는 것이 그들 자신에게는 엄청난 이익을 챙길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 이쯤 되면, 9/11 직후 파키스탄 입장에선 빈 라덴한테 “와우~ 여기 은신처가 있습니다. 어서옵쇼!”라고 하는 게 합리적인 게 아니었을까? ㅎㅎ (링크: 프레시안) 결국 미국과 파키스탄 사이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줄다리기는 이런 관점에서 봐야 한다(링크: 프레시안).

– 여기서 다시, 그런 집권세력들의 이해관계가 해당 지역의 민중들의 이해관계와 얼마나 배치되는가가 여실히 드러난다. 오히려 이 집권세력들은, 어떤 면에서는 그와 반대편에 서있는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과 짝짝꿍이 맞아, 실체도 불분명한 종교적 ‘대의’와 관련된 거창한 레토릭이나 민족주의적 감정 등을 민중들 사이에 만발하도록 많은 역량을 쏟아붓고 있는 것.

– 이런 상황은 서방의 ‘제국주의’적일 뿐 아니라 ‘오리엔탈리즘’적인 언론의 먹잇감이 되기가 당연히 매우 쉽다. 이런 데서는, 평소 고상한 논조를 자랑하는 The Economist도 예외가 아니다(링크: The Economist). 하… 그러니까 니들 눈에는 파키스탄 사람들은 음모이론에나 휘둘리는 덜떨어지고 한심한 존재로 보인다는 거잖아!!!

– 여기까지 읽었다면, 대충 빈 라덴, 미국, 파키스탄과 관련해서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어느 정도는 이해되리라 봄. :) 어쨌거나… 이제 얼마 있으면 알라스카에서 빈 라덴 봤다는 사람도 생기겠구만. 즉 그도 이제, Elvis Presley나 Jimmy Hoffa 급의 ‘레전드’가 되는 것도 시간문제겠다 ㅋ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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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oughts on “빈 라덴의 죽음과 미국, 파키스탄

  1. 1. 부시와 오바마의 대외정책, 특히 군사력에 바탕을 두고 이를 활용하는(혹은 무책임하게 전쟁을 벌려놓고 이것에 질질 끌려다니는) 대외 정책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은 오바마가 자신의 행정부 출범 시작 때 부시의 국방장관을 유임시켰다는 데서도 잘 알 수 있지요.

    2. 최근 오바마는 파네타 CIA 국장을 국방장관으로, 페트리어스 아프가니스탄 주둔군 사령관을 CIA 국장에 지명했어요. 당연히, 이것은 앞으로 더욱더 두 기관을 서로 긴밀히 작동시켜 나가겠다는 얘기로 이해되는 거지요.

    3. 이 지명의 발표가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 이전에 이루어졌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라고 여겨져요. 그 사살 작전의 성패에 관계없이 그 전에 국방부 및 CIA 책임자들의 지명을 결정, 발표했다는 것은 그 만큼 사살 작전의 성공에 확신이 있었다는 얘기지요.

    4. 부시에 의해서 이라크 주둔군 사령관으로 임명된 바 있는 페트리어스는 미 육군 내에서도 최고 엘리트이고 나름대로 정치판도 잘 읽는 사람인 것 같은데, 우리 입장에서 보면 아주 흉악한 넘이지요. 페트리어스가 한 일 중에 주목해야 할 것은 베트남전 이래 미국의 군사 경험을 총괄적으로 연구해서 반란군 및 게릴라군 진압에 대한 미군 작전의 기본 틀을 짰다는 겁니다.

    5. 그는 미군 지휘참모대학(USAC&GSC)의 상급 부대인 미군 통합군센터(USACAC)의 사령관으로 있을 때 미군의 새 야전 교범 “Field Manual 3-24, Counterinsurgency”을 간행했어요. 이 야전 교범은 기본적으로 모택동과 호지민 등이 식민지해방전쟁에서 써먹은 원칙을 거꾸로 반란군 및 게릴라군 진압에 사용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거라고 하네요. 즉, 물리적인 군사력만 가지고 진압하려고 해서는 안되고, 현지 실정에 맞게, 그리고 현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는…페트리어스--이 녀석 아주 흉악한 넘이지요.

    6. 하지만, 주둔군 사령관으로서의 페트리어스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학살 사건의 군사적 책임을 져야 하는 거니까, 현지 실정에 맞게, 그리고 현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미군의 반란 진압 야전 교범이라는 게 얼마나 웃긴건가 하는 생각도 들게 되네요.

    1. 반갑습니다 ^^ 페트리어스(David Petraeus)… 한글로 쓰니까 ‘패트리어트’랑 비슷한 게, 참으로 애국적인 이름이네요 ㅎㅎㅎ 덕분에 이것저것 좀 뒤적거려봤는데… 인상은 참 깔끔하고 나쁘지 않은데 말씀하신 대로 흉악한 데다가 음흉한 넘인거 같아요 ㅎㅎ

      말씀하신 ‘새 야전 교범’은 그의 프린스톤대 박사논문에서 비롯된 것 같군요. 예전에 몇 번 글을 읽은 적이 있던 어떤 분은 그의 논문을 직접 읽어보고는 멍청하다고 했더군요(링크) ㅎㅎㅎ 그런데 찾아보니, 패트리어스는 자신의 생각의 뿌리를 베트남뿐 아니라 한국전에까지 소급시키는 것 같네요(링크).

      하여간 앞으로 지켜볼 인물인 것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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