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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실러, 강남좌파의 사상적 지주

오늘날 (정치)경제학을 비판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만약 그 비판의 대상을 찾는다면, 그것은 ‘누구’일까? 당연히 한 두 사람이 아니겠지만, 로버트 실러(Robert Shiller)는 분명 그 중 맨 앞줄에 세워야 할 하나일 것이다.

실러가 최근에 또 하나의 책을 냈다고 한다(참조). 제목은 {Finance and the Good Society}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2). 제목에서 암시되듯이 이 책의 핵심 내용은 “금융을 잘 길들이면 좋은 사회를 이루는 데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다”, 나아가 “그렇게 하는 데 금융은 필수적이다” 정도로 요약될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누구나 하는 말이긴 하지만, 그간 금융의 부작용에 대해 경고성의 글을 써온 그이기에 조금은 예외라고 여길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위에 링크한 {The Economist} 기사를 읽다가 내용이 궁금해 출판사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는 ‘Introduction’을 좀 봤다(여기). 그런데…. 이건 정말, 뜨아..!! 마르크스를 언급하는 부분, 나아가 마르크스가 말한 ‘코뮤니즘'(소련이나 중국의 현실 사회주의 말고)를 전유하는 방식, 그럼으로써 궁극적으로 금융의 이로움을 역설하는…. 말하자면, 이 ‘삼단논법’이 정말 가관이다.

우리에겐 익숙한 ‘시초축적’, 그러니까 생산수단을 박탈당한 무산자가 근대적 임노동자 계급으로, 그리고 반대로 생산수단을 독점한 이들이 근대적인 자본가 계급으로 분화되는 것을 다룬 마르크스의 한 대목을 인용하면서, 실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르크스는 왜 노동자들이 자본[=생산수단]에 접근할 수 없는지를 명확히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자본주의 하에서는 사회의 목표들이 모든 사람들이 아니라 윗대가리들—자본에 접근할 수 있는 자들—에 의해 설정된다고 암시할 뿐이다. 가난한 노동자가 은행으로부터 신용대출을 하거나 부유한 투자자들로부터 자본을 얻어 사업을 시작하는 게 절대 불가능하다는 암묵적인 가정이 있을 뿐이다. (p. 5)

물론 우리는 위에서 실러가 ‘명확하지 않다’고 하는 것을 꽤 ‘명확하게’ 알고 있으며, 그것은 ‘암묵적인 가정’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물적 현실임도 잘 알고 있다. 그걸 모르는 것은 그저 실러 자신일 뿐이다. 하여튼, 위와 같이 자기 멋대로 문제를 설정해 놓고 바로 이어서 그는 다음과 같이 ‘공자님 말씀’을 내놓는다.

그러나 이상적인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훌륭한 사업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은, 적어도 원칙적으로는, 그것[자본을 구해 사업을 시작하는 것]을 할 수 있다. 우리의 자본주의 제도들이 아직은 그 정도의 이상에 걸맞게 성숙하진 못했지만, 역사를 들여다보면 금융의 민주화, 즉 모두에 대한 금융 기회의 개방으로 향하는 장기추세가 관찰된다. (p. 5)

헛, 금융의 민주화라고? 카드대란도 모르냐?! 그게 니가 말하는 민주화냐!!!…라고 당신은 비웃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설마 우리의 실러 교수가 그걸 모를리가! 그러나 그는, 그런 문제는 그저 사춘기와도 같은, 성숙을 위해 겪어야 하는 불가피한 아픔이라고 보는 듯하다.

하지만 이것은 금융 자본주의(financial capitalism)의 근본적인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금융 자본주의를 민주화하고 인간화하며 그것의 범위를 확장하는 것이다. 이와 똑같은 기본적인 문제의식이 마르크스의 새로운 사회에도 깃들어 있다. (pp. 5-6. 강조는 원문.)

이쯤 되면, ‘막장’이란 말도 아깝지 싶다.

아, 조만간 이 책도 누군가가 번역해서 내겠지? 예상 독자는? 뻔하지. 한마디로, 강남좌파. 쩝… 그 자칭 ‘강남좌파’들이 위 책을 들고, 자신들의 한때 마음속 숭배대상이었던 ‘마르크스’와 자신들의 현실적인 숭배대상인 ‘금융’을 함께 품으며 젠체할 거 생각하니, 벌써부터 토나올라고 한다. 기분 드럽네.

마, 니들끼리 잘먹고 잘살어라!

(이쯤에서, 과거 글 자본주의 질서를 둘러싼 정당성 전쟁도 한번 더 되새겨본다. 이 글에서 스티븐 그린과 로버트 실러를 한패거리로 묘사했는데, 공교롭게도 실러의 이번 책은 벌써 그 제목부터가 그린의 ‘선한 가치’를 떠오르게 한다.)

‘강남좌파’의 업보

좌파들 사이에서 이렇다할만하게 미국에 대해 영양가 있는 발언을 해주는 사람을 찾기 어려웠는데, 그러다가 안병진 교수를 언젠가 보고 괜찮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 뒤로 이 양반 글을 어디서든 보면 잠깐이나마 눈길을 두곤 했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 버스 안에서 읽은 이 글은 정말 최악이었다. [링크]

지금 한국에서는 한국판 샌프란시스코나 뉴욕에서 의미심장한 변화가 시작됐다. 과거 낡은 운동권 스타일과 다른 매력적 자유주의가 부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제일 먼저 눈치챈 것은 보수 언론이다. [. . .] 그들의 예감은 정확하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분당과 서울은 자유주의 혁명의 진앙지가 될 것이다. [. . .] 보수가 항상 주창하는 선진화, 진보가 그토록 염원하는 정권교체는 바로 이 자유주의 혁명에서 출발할 것이다. 만약 두 진영이 각자의 꿈들을 단지 구호로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믿는다면 놀랍게도 서로 공통된 전략적 목표가 있는 셈이다. 자유주의 시대로의 이행 말이다. 다만 수많은 스펙트럼이 가능한 자유주의를 어떤 빛깔의 것으로 만드는가의 차이가 존재할 뿐이다. 흥미로운 2012년이 다가오고, 자유주의 혁명을 위한 세대는 미국과 한국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분당 좌파’의 한 명으로서 선거 결과가 참 궁금해진다.

세상에… ‘강남좌파’들이 앞으로 세상을 주도할 것이라고 저렇게 자신있게 장담할 뿐 아니라, 스스로 자신이 크게보면 ‘강남좌파’에 드는 ‘분당좌파’임에 저리도 의기양양할 수 있다니…

하지만 이 글이 진짜로 씁쓸한 것은, 단순히 이 글의 저자가 나의 믿음(?)을 저버려서는 아니다. 그것은, 위 칼럼에 나온 내용이 단순히 안병진 교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정말 골때리는 일인데… 위 글에서 안교수가 묘사하는 것과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날 확률이 결코 낮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도 어느정도 사실이다. 즉 안교수의 저와 같은 ‘사자후’에는 그 나름의 근거가 잇는 셈이다.

물론 나는, 그게 강남이든 분당이든, 아니면 전라도 광주든 경상도 대구든… 사람을 그 출신지역이나 사는 곳을 기준으로 성격짓는 것에 그다지 관심도 없다. 아니, 사실은 나뿐만 아니라 이 나라에 사는 대부분의 정상인들은 관심이 없으리라 믿는다.

바로 이것이 더 골때리는 일이다. 즉 ‘강남좌파’가 대통령이 되어도, 이 나라에 사는 대부분의 정상인들은 (매스컴의 호들갑 때문에 조장된 것이 아니라면) 거기 실질적인 관심도 없을 것이고 그들의 삶도 그다지 달라질 것도 없다는 것.

그러나 이 얘길, 정치에 대한 혐오주의의 발로라거나 근본주의 등으로 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안교수가 그렇게도 찬양하는 ‘강남좌파’의 세상이 와도 이 나라 민중의 삶은 그다지 달라질 것도 없을 것이기에, 바로 그렇기에 그들은 더더욱 민중의 삶의 개선에 힘을 쏟아야 한다. 어쩌면… 그것이 바로, 이 더럽고 희망없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체제’ 안으로 들어가 나름대로 ‘성공’도 거두고 ‘강남’이나 ‘분당’에 아파트도 사고 그저 애들 교육 걱정이나 하면서 또는 오늘은 무슨 커피 마실까 고민이나 하면서 주말이면 종종 양재천에 나가 자전거나 타면서 그저 ‘조선일보’나 ‘이명박’이 세상에서 제일 나쁜놈인줄 알고 지내는 이른바 ‘강남좌파’들이 짊어지고 살아야만 하는 업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