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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꿰띠-의 ‘대안’과 한국사회: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앞서 피꿰띠-에 대한 잡글을 하나 썼는데(링크).. 워낙 갈겨쓰다보니 원래 쓰려던 내용을 꽤 빼먹고 말았다. 이래서 매사에 계획이 필요한 것이고 신중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_-) 그래서 좀 더 덧붙인다.

1. 먼저 현재 우리나라에선 피꿰띠-의 문제제기를 제대로 검증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해야겠다. 이러한 검증을 수행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 자산보유 현황에 대한 그럴싸한 통계가 필요한데, 내가 아는 한 현재 우리나라에 이런 통계는 없다. 그나마 가장 가까운 것이 통계청에서 매년 행하는 ‘가계금융.복지조사’인데, 이는 역사도 얼마 안돼 ‘추세’를 보여주긴 어려울 뿐 아니라(이제 3년쯤 했음) 샘플링 문제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자산배분의 현황을 올바르게 보여주진 못한다.

2. 다음으로, 피꿰띠-가 내놓고 있는 두 가지 ‘제안’에 대해 보자. 먼저 누진적 소득세, 특히 최고소득자에 대한 한계세율 인상 문제를 보면…

먼저 말해둘 점은 최근 우리나라에서 그러한 한계세율은 오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최고소득경계 또한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물론 이것이 충분하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income_tax_rate

위 표에서 보다시피, 2012년에 최고소득세율로 38%가 신설되었고, 이듬해엔 이 세율의 적용범위가 대폭 확대되었다. 물론 이러한 추세를 좀 더 몰아붙여서 38%를 50%, 60% 등으로 높이는 것도 말은 된다. 그러나 소득상위 10%가 전체 소득세수의 75% 이상을, 그리고 1%가 40% 이상을 책임지고 있는 지금, 최고소득세율만 만지작거려서는 답이 안 나온다. 오히려 최고소득세율 조정(=상향)은 전체적인 세수구조가 어느 정도 균형잡힌 상태에서나 온전한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러니까 궁극적으로는 이른바 ‘시민증세’가 필요한 셈인데, 이를 위해선 그러한 증세 여력을 배양하는 것이며, 이는 오로지 자본에 대한 총력공세를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고 이미 수차례 말했다. 즉 계급투쟁이다.)

3. 다음으로 ‘(글로벌) 자산세’에 대하여.

피꿰띠-의 논의 중에서 가장 비판을 받는 대목이 바로 여기다. 도대체 현실성이 없는 대안이라는 것이다. 나도 동의한다. 물론 현재 범지구적으로 역외탈세에 대한 문제의식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선진국들 위주로 이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적 논의도 이미 진행되고 있다(이를테면 OECD의 BEPS 논의를 들 수 있음. 링크). 이러한 논의가 실제로 어떤 결실을 맺을지는 두고봐야겠지만, 과연 그것이 ‘대한민국의 불평등’을 다소나마 경감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을지는 매우 불투명하다.

따라서 ‘글로벌’은 놔두고 ‘자산세’ 부분만 보자. 두 가지 중요한 사항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1) 크루그만이 자신의 서평에서 잘 간파했듯이, 피꿰띠-의 주장대로라면 향후 상속이나 증여 문제가 큰 이슈로 부각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과연 이 문제에 대한 한국사회의 인식은 어떠한가?

먼저, 최근들어 상속이나 증여가 점점 쉽게 되고 있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예컨대 작년에 나온 한 보도에 따르면, 증여의 경우 최근들어 건수로 보나 금액으로 보나 면세비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링크)(이것이, 상속은 그렇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올해부터 중소기업의 ‘가업승계’ 면세요건이 완화되는 등(링크1, 2), 이른바 ‘경제활성화’를 명목으로 상속/증여가 점차 쉬워지고 있는 추세다!

(2) 그렇다면 위와 같은 사항에 대해 정부는 어떤 입장인가? 흔히 ‘자산세’ 항목에 드는 세목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부동산과 관련된 것들이다. 이러한 세금들이 최근에 어떠한 운명을 맞고 있는지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거래활성화’라는 미명아래 대폭 감면되거나 (한시적) 폐지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경기변동 상에서 침체국면에서 정부가 어쩔 수 없이 쓰는 ‘고육지책’이 아니다. 그것은 꽤 체계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정책’인데, 실제로 작년 8월 8일에 정부가 내놓은 {중장기 조세정책 방향}에 따르면, ‘경제효율 제고’와 ‘제도 합리화’를 이유로 향후 자산 관련 세제를 완화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이를테면, “(한국의) 상속.증여세 최고세율은 50%로서 일본과 함께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기 때문에 앞으로 이를 낮추겠다는 것이다! 물론 정부가 이러한 주장을 내놓는 좀 더 객관적인(!) 이유도 있다. 바로 우리나라에서 재산세의 비중이 다른 주요국에 비해 높다는 것이다. (표 출처)

property_tax

보다시피 우리나라의 재산세 비중은 (GDP 대비로 보든, 총세수 중 비중으로 보든) OECD 평균에 비해 높은 편이다. 순위로 봐도 OECD 중 7위다. 그렇다면 이를 낮추는 것이 맞을까? 당연히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재산세 비중이 높은 것은 기본적으로 다른 세수가 적어서이기도 하고, 또한 영국이나 미국 같이 우리랑 제도가 유사한 나라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재산세 비중은 결코 높은 것이 아니다.

4. 이상에서 보듯이, 현재 우리나라는 피꿰띠-의 대안이 실현되기에 그다지 호의적인 상황에 있질 않다. 오히려 그런 대안과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까지 할 정도로 척박하다.

어쩌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피꿰띠- 식의 대안에 좀 더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말할 사람도 있겠다. 그러나 반대로, 그러니까 앞서 내가 기본소득에 대해 쓴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링크), 현재 고려되고 있는 대안이 뭔가 포인트를 잘못 맞추고 있기 때문에 문제라면? 다시 말해, 그러한 대안의 비현실성이, 그것이 충분히 급진적이지 않다는 데서 유래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바로 그러한 급진성에 과학성도 함께 있는 것이라면?

이러한 질문들은, 우리가 현재의 문제들과 그에 대한 해법을 생각할 때 진지하게 제기해보아야 할 것들이다. 그리고 지금 당장 여기에 만족스럽게 답할 자신이 없다면, 이를 솔직히 인정하고 그러한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 (끝)

 

피꿰띠(Piketty)와 한국경제: ‘불평등’의 본질은 ‘계급문제’

0. Thomas Piketty — 가히 ‘신드롬’이라 부를 만하다. 여기 동참해 그와 그의 저작에 대해 한마디씩 하지 않으면 왠지 시대와 유행에 뒤쳐지는 게 아니냐는 분위기가 생기고 있을 정도다. 에… 그래서 나도 한 마디! 낄낄낄~~

이 신드롬에 동참하는 첫 걸음은 그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는 것이다. 이미 우리나라 언론에서도 프랑스인인 그의 이름을 ‘토마’라고 표기하고 있다(링크). {Financial Times}는 여기서 한발짝 더 나갔다. 그의 성도 (우리말로 치면) ‘피케티’가 아니라 ‘피꿰띠-‘라고 발음해야 한다고 일러주고 있다:

Calling him “Pick-a-tee” denotes you as an arriviste outsider. So get it right – it’s “Piquettee”. And don’t call him Thomas, it’s “Thom-ah”. Correct pronunciation is crucial. “Piquettee” sounds exotic, the type of intellectual investment that boosts your career capital; “Pick-a-tee” sounds like a fence in small-town America. For continued growth the right pronunciation (r) must always exceed the garbled version (g) – or r>g to use the precise formula.  (출처)

위 구절은 내가 {FT}에서 본 최고의 개드립이다. 아… 저 정도는 쳐야 하는 것이다!

1. 피꿰띠 책에 대한 요약은 앞서 링크한 {시사인} 기사를 참조하면 될듯하다(다시 링크). 솔직히 요약이 썩 좋진 않다만… 내가 다시 하기엔 좀 귀찮기도 하고, 또 아직 내가 책을 읽은 것도 아니라..ㅎㅎ (물론 이 기사를 쓴 기자양반도 책을 읽지 않고 쓰셨겠지만ㅋ)

다른 부분은 그렇다 치고, 이 기사에서 각별히 주의할 대목이 하나 있다. 기자는 피꿰띠가 ‘진보적 세금제도’를 대안으로 내놓고 있다고 했는데, 그 영어표현인 ‘progressive tax’는 ‘진보적 세금(제도)’가 아니라 ‘누진세’다.

그래서 피케티가 제안하는 대안은 ‘자본(부)에 대한 진보적 세금제도(progressive tax on capital)’를 통해 자본수익률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심지어 소득 상위 1%에 대해서는 최고 80%의 한계세율(초과 수익에 대해 세금으로 지불해야 할 비율)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미국의 경우 1970년대까지 무려 90%의 한계세율을 적용한 적이 있다. 또한 전 세계의 자산(땅·주택·공장·주식·채권·지적재산권 등)에 연간 5~10%까지의 세금을 부과하자고 한다. 이는 국제협력을 통해 글로벌한 차원에서 시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부자들이 돈을 다른 나라나 조세피난처로 빼돌리는 경우를 차단할 수 있다. 피케티에게 진보적 세금제도는, 불평등과 투쟁해서 세계경제의 활력을 다시 살려낼 수 있는 무기다.

위 구절에서 보듯이, 기자는 피꿰띠의 대안을 ‘진보적 세금제도’로 이해하면서 여기엔 두 가지가 포함된다고 생각한 것 같다. 즉 (1) 초고소득자에 대한 한계세율 대폭 인상과 (2) 세계적인 자산세 부과가 그것. 다시 말해, 이 둘을 포괄하는 개념이 ‘진보적 세금제도’라는 것.

그러나 이는 잘못된 이해다. 내가 아는 한 피꿰띠는 두 가지 제안을 한다. (1) 누진적 소득세(progressive income tax), 특히 최고소득구간에 대해 초고세율 적용 및 (2) 글로벌 자산세(global wealth tax). 즉 위 기사에서 오해한 ‘진보적 세금제도’는 첫 번째에만 해당하고, ‘글로벌 자산세’는 전혀 별개 사안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위 오류는 단순한 오역이 아니다.

3. 피꿰띠의 문제제기가 결코 남 얘기는 아니다. 우리는 어떨까? 크루그만이 잘 간파했듯이, 다음은 피꿰띠의 문제의식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표다(출처).

위 표는 불평등의 상태를 크게 셋으로 구분해 놓고, 각각에 대하여 각 소득집단이 전체 소득의 얼마만큼을 가져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가령, 상대적으로 낮은 불평등도 상태에서 최상위 1%는 전체 소득의 7% 가량을 가져가고, 그 다음 9%의 소득자들이 18%를 가져간다는 식이다. 1970~80년대 스칸디나비아 나라들이 이런 상태였다.  이런 식으로 보면, 오늘날 미국은 높은 불평등도를 보이고 있는데, 이때 최상위 1% 집단이 전체 소득의 20%를 가져가는 것으로 나타난다. (참고로, 미국의 소득분배에 대해서는 나의 과거 포스팅 참조: 링크)

오늘 우리의 상황을 이 표에 적용시켜보면 어떨까? 마침 재작년에 국세청에서 나온 통합소득(=근로소득과 종합소득을 합산한 것) 100분위 자료가 있다. 이를 통해 보면,

소득분포

보다시피, 일단 우리나라의 상위 10%의 소득몫은 40%를 넘어, 피꿰띠가 말하는 ‘medium 수준의 불평등’과 ‘high한 불평등’ 사이에 해당한다. 즉 우리는 오늘날의 미국보단 좀 낫지만 오늘날의 유럽보단 매우 불평등하단 뜻이다. 이는 최상위 1%의 소득몫을 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또 하나 재밌는 게 있다. 바로 ‘바닥 50%’를 보라. 매우 불평등한 미국에서도 이들이 차지하는 소득몫이 20%인데 우리는? 무려 14.2%밖에 안 된다! 이 간단한 표만 봐도, 현재 우리 사회가 어떠한지가 단박에 드러난다.

(위 표에서, 상위 10%의 평균소득이 1억이 넘는다는 것에 놀라실 분이 계시리라. 너무 높지 않냐는 거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평균’임을 잊지 마시라. 10%에 들기위한 ‘문턱(threshold)’은 기껏(!) 5천7백만원쯤이다. 이로써 우리는 상위 1% 내부에서도 소득분포가 얼마나 불평등한지를 짐작할 수 있다.)

4.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피꿰띠가 내놓는 두 가지 제안이 유효할까? 이 대목에서 나는 좀 유보적이다. 무엇보다 피꿰띠의 두 대안의 현실성에 대해 우리는 잘 따져봐야 할 것이다. 예컨대, 과연 ‘최상위층에 대한 60% 세율 적용’이나 ‘글로벌 자산세’가 현재 우리나라에서 실현가능하겠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일전에 써둔 포스팅 참조(링크). 음.. 그보다 전에 써둔 것도 있다(링크).

또한 위 표는 개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가장 큰 문제는 개인소득의 불평등도 불평등이지만, 전체 국민소득 중에서 개인과 가계의 몫으로 오는 비중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민소득(GNI)에서 가계소득(PGDI)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9년 이전에는 57%를 웃돌았으나 2010년부터는 55%대로 내려앉았고 작년에도 56.1%에 그쳐 최근 5년 평균 치(56.4%)에 못 미쳤다.

이는 다른 OECD 회원국에 비해서도 크게 낮은 수준이다. 한은이 2012년 기준으로 OECD 회원국의 GNI 대비 PGDI 비중을 분석한 결과, 자료를 입수할 수 있는 21개국의 평균치는 62.6%로, 한국은 밑에서 6번째를 차지했다. (출처)

뭔 소리냐면, 기업을 조져야 한다는 거다. 바로, 계급투쟁이다. (끝)

세제개편안 논란에 대하여 (3/끝) 무엇을 할 것인가

4. 세금과 임금: 현실에서는 모든 세금을 자본이 부담하진 않는다

앞에서 모든 세금은 원칙상, 그리고 이론적으로 자본으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모든 세금이 자본으로부터 나온다는 명제의 근저엔 임금에 대한 더욱 근본적인 논의가 전제되어 있다. 바로, ‘임금=노동력의 재생산비용=노동자의 생존비용’ 등식이 그것이다.

일단, 자본으로부터 직접 징수되는 법인세가 자본에서 나온다는 것은 쉽다. 문제는 노동자 각자의 임금으로부터 공제되는 소득세인데, 정의상 임금은 노동자의 사회적 생존비용이므로, 여기에서 한푼이라도 세금으로 나간다면 노동자의 재생산에 차질이 생길 것이고, 이는 결국 자본이 (임금인상이라는 형태로) 보충해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바로 그 노동자의 재생산비용, 또는 ‘사회적 생존비용’이라는 것이 가변적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일정한 사회적 평균값일 수밖에 없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러한 평균은 변화하지 않을 수 없고, 나라마다, 그리고 한 나라 안에서도 지역이나 계층마다 다를 수 있다. 결국 ‘임금=재생산비용’이라는 명제는, 이런 모든 차이들을 사상한 매우 추상적인 규정인 셈이다. 마르크스는 임금을 결정하는 이런 모든 요소들을 ‘임금의 역사적, 도덕적 요소’라고 불렀다.

뿐만 아니라, 임금은 적어도 일시적으로 그러한 평균값을 상회하거나 하회할 수도 있다. 갑작스럽게 물가가 올랐을 때, 임금은 명목크기가 유지된다 해도 실질적으로는 하락한 것이며, 이는 곧 노동자들의 생활수준 저하로 나타난다. 즉 정상적인 재생산이 안 되는 것이다. 가장 추상적인 이론의 차원에서 봤을 때, 이러한 상황은 곧 임금인상을 통한 노동자의 투쟁을 통해 해소될 것이기에 그저 일시적인 교란상황에 그친다. 그러나 문제는, 실제 현실에선 노동-자본 간의 계급관계에 따라 그러한 임금인상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그리하여 만약 저하된 실질임금 수준이 장기화되면, 그것이 새로운 사회적 평균으로 자리잡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세금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원칙상으로는, 노동자로부터 걷어가는 소득세가 많아지면, 그 차액만큼을 노동자가 자본가로부터 임금인상을 통해 받아낼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경우엔 정상적인 노동력 재생산에 차질이 생기며, 나아가 그러한 비정상적인 상황이 새로운 ‘정상’으로 자리잡을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세금은 자본가가 낸 것이 아니고, 노동자의 생활수준 저하를 통해 지불된 게 된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나는 앞서 소개한 ‘경제위기와 복지국가’라는 글에서 현대적 조세제도“치열한 계급투쟁의 결과 얻어낸 임금인상이라는 ‘전리품’을 자본가계급이 은밀하게 회수해가는 교묘한 방식”이라고 부른 것이다.

5. 세금, 복지, 임금: 증세의 조건?

간단히 정리해보자. 한편으로 세금은 (자본이 직접 지불하지 않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자본으로부터 나온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세금은 (특히 자본이 직접 지불하지 않는 경우에) 노동자 서민대중의 삶의 질 저하를 대가로 하기도 한다.

이것은 하나의 모순인데, 이러한 모순이 집약되어 나타나는 것이 바로 ‘임금’이라는 범주다. 증세 자체는 중요한 게 아니고, 증세의 결과 줄어든 소득을 노동자들이 임금인상을 통해 보상받아낼 수 있는지 여부가 핵심이란 얘기다. 그리하여 현재의 논쟁이나 투쟁도 바로 여기로 집중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현재 정부의 세제개편안이 포함하고 있는 ‘보편증세’의 문제는, 현재 논쟁의 양 당사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저소득 노동자를 털 것이냐 고소득 노동자를 털 것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증세를 임금인상으로 성공적으로 연결시켜 내느냐 여부의 문제다. 좀 더 평이하게 말하면, 증세의 결과 노동자 서민대중의 삶의 질이 저하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세금을 걷어서 전투기 사자는 것도 아니고 복지를 하자는 것이니, 어차피 노동자가 세금을 내더라도 더욱 큰 복지로 돌려받을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러니 여기에서 임금인상은 별개의 문제 아닌가? 한편으론 맞는 말이다. 이를테면, 정부가 노동자/대중으로부터 세금으로 거둬들인 재원으로 복지정책을 시행하고, 그러한 복지정책이 노동자의 재생산비용을 낮춰 세금인상분을 정확히 상쇄하고도 남는다면, 이러한 증세를 통해 노동자들의 삶이 더 나아질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바로 이것이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류의 프로젝트들의 근간을 (명시적으로든 암묵적으로든) 이루는 아이디어가 아닌가 한다.

하지만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첫째, 현재로서는 노동자와 서민대중으로부터 거둬들인 추가세수가 그들을 위한 복지에 쓰일지, 아니면 자본이 내지 않은 세금을 보충하고 나아가 자본을 위해 쓰일지, 심지어 전투기 구입하는 데 쓰일지조차 확실치 않다. 올초부터 정부에서는 ‘세수부족’을 입버릇처럼 말하곤 하는데, 지금 논의되는 증세규모는 적극적인 복지는커녕 세수부족을 메우는 데도 모자란 수준이다.

둘째, 추가세수가 복지에 쓰이더라도 문제다. 왜냐하면 현재 우리나라의 노동자와 서민대중에게 필요한 것은 현재 삶의 수준의 유지가 아니라 그 대폭적인 상승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은 자본주의 하에서 모든 계급투쟁이 지향해야 할 바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모든 경제적 가치는 노동자와 서민대중이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많은 세금을 내고, 아무리 많은 복지를 해도, 일하지 않는 자본가가 단 한푼이라도 챙겨간다면 착취는 철폐된 것이 아니고, 따라서 노동자계급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6. 다시 복지로: ‘어떤’ 복지냐의 문제

여기서 잠시 현재 한국사회에서 복지가 이슈로 떠오르는 배경이 무엇인지를 떠올려보자. 왜 보수정권조차도 복지를 하려고 하는가? 바로 대중의 활력이 극도로 저하돼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신자유주의 때문인지, 경제위기 때문인지는 여기서 따지지 말자. 여하튼 그러한 대중의 활력 저하가 단순히 (일부) 노동자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을 넘어 경제의, 그리하여 자본의 원활한 재생산을 방해하고 있고, 이를 보기좋게(?) 해소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대안이 바로 현재 한국에서 제기되고 있는 복지인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복지란 자본(주의) 재생산의 위기를 타개해주는 수단으로 제시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비정규직 문제를 보라. 너무 심각하다. 사회의 응집력과 재생산을 크게 방해할 정도다. 어떻게 해결할까? 정규직화? 임금인상?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나. 이러한 명확한 해결책을 취하지 않고도 비정규직 문제의 폐해를 피하기 위해 그들은 ‘복지’를 선택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즉 그들은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관리를 위해 복지확대를 추구한다.

이 대목에서 ‘어떤 복지냐’가 중요한 질문으로 떠오른다. ‘체제의 유지와 관리’ 차원에서, 즉 대중의 삶의 수준을 현재의 상태에서 안정적으로 관리하고자 복지를 추구하는 저들과 달리, 노동자계급과 서민대중의 이익을 옹호하는 우리는 어떤 복지를 원하는가? 적어도 현재의 한국사회에서 진보진영의 복지에 대한 태도는, 그것을 바닥에 처박힌 대중의 삶의 질을 높이고 극단으로 치달은 경제적/사회적 불평등을 축소하는 계기로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러한 복지에 대한 인식, 그리고 그를 향한 투쟁은 복지(국가)와 세금이란 것이 그 자체로 계급투쟁의 표현임을 명확히 하는 데서 출발한다. 자본가에 대한 투쟁은 임금을 가지고 하는 것이 보통이다. 어쩌면 그러한 투쟁을 통해 충분한 임금을 확보해낸다면 복지도 필요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 한국의 현실에서 이는 불가능에 가깝다. 최근 최저임금 결정에서 극명히 드러났듯이, 현재 한국사회에서 자본과 노동 간의 힘관계는 현저한 임금인상을 낳을 수 있을 정도가 아니다. 노동은 더없이 취약할 뿐만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주체들로부터 점점 더 고립되고 있다.

바로 이런 현실에서 복지의 확대는 자본가에 대항한 노동자계급의 주요한 투쟁을 되살릴 수 있는 좋은 계기다. 임금 올려달라고 회사를 상대로 투쟁하는 것보다 더 많은 복지를 달라고 국가를 상대로 요구하는 것이 훨씬 더 많은 정당성을 갖는 게 요즘 한국의 현실이다. 이것이 바람직한 현상은 아닐지라도, 노동자와 서민대중의 이익을 옹호하는 좌파는 그러한 복지에의 열망을 대중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계기로, 나아가 계급투쟁의 정당성을 새롭게 정의하는 적극적인 계기로 끌어올릴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이제껏 논의되고 있던 복지가 후퇴되는 일은 막아야 하며, 나아가 더 많은 복지를 요구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만약 증세가 필요하다면, 이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노동자와 서민대중이 제 살을 깎아 복지비용을 대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종국에 그들의 삶을 ‘조금’ 낫게 해준다 해도 말이다. 따라서 증세의 최우선순위에는 자본가, 그리고 그간 제대로 세금을 내지도 않았던 대자산가에 대한 법인세나 재산세, 자본이득세가 올라야 할 것이다.

또한 전술적인 이유에서든, 아니면 위와 같은 증세로는 충분한 복지재원이 마련되지 않아서든, 만약 노동자와 서민대중에 대한 보편증세(소득세/소비세 인상, 그리고 사실상의 보편증세인 사회보험료 인상 등)가 필요하다면, 이것을 받아들일 수도 있어야 한다. 단, 이럴 경우, 엄청난 대중의 저항이 있을 것인데, 좌파들은 그러한 저항이 복지에 대한 저항이 되지 않으면서 자본가와 대자산가 집단을 향하도록,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임금인상에의 대중적 요구로 전환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어야 한다. 요컨대, 좌파들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복지’ 국면, ‘증세’ 국면을, 현재의 미약한 계급역관계를 뒤집는 기회로 사용해야 한다.

(※ 사족: 복지비용을 실질적으로 자본가가 부담케 하는 데 있어 핵심이 보편증세와 더불어 임금인상을 관철시키는 것이다. 많은 부동산을 소유한 대자산가들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그들에게 엄격하게 과세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러한 과세의 결과가 이를테면 세입자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전월세상한제 등이 보조적으로 필요하다.)

(끝)

세제개편안 논란에 대하여 (2) 세금의 본질과 계급투쟁

2. 복지재원? 모름지기 모든 세금은 자본으로부터 나온다

어쨌든 복지를 위한 재원이 쟁점으로 되고 있으니, 그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자. 결론부터 말하면, 모든 복지재원은, 나아가 모든 세금은 자본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당연히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게 뭔 소리냐, 하실 것. 아니, 내가 열심히 일해서 받은 피같은 임금에서 세금이 나가는데 그게 무슨 개소리냐고! (-_-) 근데 그렇지가 않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정치경제학의 대답}이라는 책에 실린 나의 글 ‘경제위기와 복지국가’를 보시면 된다(링크). 책을 구하기가 번거로우신 분은, 이 블로그에 있는 ‘공공요금의 정치경제학’ 씨리즈를 보셔도 되겠고(링크1, 2, 3), 원하시면 앞의 글을 파일로 보내드릴 수도 있다(저 EM의 이메일주소는 우측상단에 있슴다). 핵심을 요약하면 이렇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임금이란 본질적으로 노동력의 재생산비용이다(물론 이것은, ‘이론적으로’, ‘평균적으로’ 그렇다는 얘기. 현실에선 당연히 개인적인 차이와 다양한 교란요인이 있다). ▲임금이 그러한 재생산비용에 못 미치면 노동자의 정상적인 재생산은 위협받기 때문에, 원리상 노동자의 임금에서는 세금이든 뭐든 자신의 (사회적) 생존과 관계없는 비용이 지출될 수는 없다. ▲그런데도 현실에서 노동자들은 세금을 내는데, 이는 곧 자신의 생존비용 이상으로 사전적으로 임금상승이 있었음을 의미할 따름이다. ▲따라서 모든 세금은 궁극적으로는 자본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다시 말씀이지만, 이러한 사항을 지금 이 글에서 상술할 수는 없다. 더 자세한 논의가 궁금하신 분은 위에서 언급된 글들을 보세요^^)

모든 세금은, 따라서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추가적인 복지재원도 결국은 자본으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 바로 그것이 핵심이다. 이를테면 이번 세제개편안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소득세의 (사실상의) 증세도, 겉보기엔 노동자의 주머니를 터는 것이지만 본질적으로 그러한 재원은 자본가의 금고에서 나오는 것이란 얘기.

말할 것도 없이, 이 경우 증세가 궁극적으로 임금상승으로 이어진다는 가정이 있어야만 한다. 이론적으로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 왜냐하면 기존에 노동자의 세후 임금이 그의 재생산비용(즉 생존비용)이라면, 소득세 증세 이후의 임금은 그러한 재생산비용에 못미칠 것이므로 원활한 재생산을 위해서는 임금인상이 필수적인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 임금인상분과 소득세 인상분이 일치할 필요는 없다. 소득세 증세의 일부는 노동자에게 혜택으로 돌아올 것이므로, 임금인상은 소득세 인상분보다 작을 것이다.) 이 얘긴 잠시 뒤에 더 하자.

3. 자본으로부터 어떻게 재원을 빼낼 것인가?

이렇게 보면, (‘어떤 복지인가’의 문제는 차치하고) 복지를 위한 재원마련의 방법론은 결국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자본으로부터 복지재원을 빼낼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를테면 법인세를 더 걷는 것은 자본으로부터 직접 수금을 하는 것이겠고, 소득세를 올리는 것은 간접적인 방식이다. 부가세도 마찬가지. 흔히 사람들은 자본이 법인세 인상에는 반대하지만 소득세 인상에는 찬성할 것이라고 짐작할텐데, 전혀 그렇지 않다. 정도야 덜하겠지만 자본은 소득세나 부가세 인상에도 반대한다. 그것은 곧 임금인상으로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일반적으로 복지나 사회기반시설이 잘 갖춰지면 자본에도 이롭다. 먼저 자본 자신이 여러모로 이득을 보고, 노동력 재생산을 위한 직접적 비용도 줄어들 것. 따라서 자본은 국가지출의 증가에 대해, 이 모든 사항들을 고려해 입장결정을 할 것이다.)

대체로 자본으로부터의 직접적 세금징수인 법인세 인상은 자본이 가진 현실적인 힘을 고려하면 매우 어렵고, 소득세 인상은 자본의 저항은 상대적으로 덜 받지만 정치적 부담이 상당하다. 등등.

그렇다면 이번 세제개편안에 대해 자본이 격렬히 반응하지 않는 까닭은? 정답은,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대중이 알아서 반대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이것이, 모든 세금을 자본이 직접 내지 않고 노동자/대중을 통해 간접적으로도 냈을 때 거둘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효과다. 어떤 의미에서 국가의 지출을 늘리고 복지를 늘리는 것은 계급투쟁의 성과이고, 따라서 노동-자본 간의 투쟁의 표현인데, 노동자 대중을 통해 간접적으로 조세를 납부함으로써 자본은 그러한 계급투쟁을 노동자들 내부의 갈등, 또는 실체도 모호한 ‘국민적 갈등’으로 치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 세금의 문제를 둘러싼 논란에서 노동자 계급을 옹호하는 이들은 기본적으로 거기에 깃든 계급투쟁적인 측면을 복원하는 데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부연하자면, 바로 이 지점에, 일종의 사회변혁론으로서의 ‘시민증세론’의 가장 핵심적인 허점이 있다. 본질에 있는 계급투쟁을 보지 못하고, 지극히 피상적으로, 즉 복지를 ‘시민적 합의’의 문제로 제시한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