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고용없는 성장

미국은 고용 없는 성장, 우리는 고용 있는 성장?

앞에서 heesang님께서 재미있는 글을 써주셨다. 거기에 좀 더 이어서 몇 가지 얘기를 늘어놓으려고 한다.

몇 년 전 미국에서 ‘고용 없는 성장(jobless growth)’이라는 표현이 등장했고, 우리나라도 특히 2009년 후반에서 2010년, 그러니까 2007/08년 위기로 급강하를 겪은 뒤 찾아온 상대적인 반등기에 그런 유형의 성장세를 경험한 바 있다.

그런데 요즘 지표를 보면, 결코 고용이 없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올들어서는 취업자수의 증가세가 가속화돼 상반기 중 취업자 수는 전년동기 대비 약45만 명 가량 늘어난 것으로 관찰된다. 이것은 그 자체로 매우 고무적인 현상임에 틀림없고, 정부 당국자로서도 자랑스러워할 만한 일이다. 미국의 ‘고용 없는 성장’과 비교한다면 더더욱 말이다.

하지만 heesang님이 지적하신 대로, 최근 미국의 고용시장도 조금씩 풀리고 있는 모양새다. 이번에 연준이 단행한 제3차 양적완화, 즉 이른바 ‘QE3’의 궁극적인 목적도 실업률을 6% 대까지 낮추는 것이라고 하니, 좀 더 지켜볼 일이다.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와보자. 취업자 수가 증가한 것 자체는 사실이지만, 우리는 그 내용을 좀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아마도 “올들어 취업자 수가 작년에 비해 45만 명 정도 늘었어”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은 의아해 할 것이다. 대체 이 많은 청년백수들, 한낮에 도심의 커피숍을 가득 채우고 있는 저 선남선녀들은 다 뭐냐고!

그렇다. 안타깝게도, 아니, 잔인하게도, 늘어났다는 45만 명의 취업자는 거의 대부분 50대 이상의 고령층에 속한다. 다음 그림을 보면 잘 드러나듯이, 50대 이상의 연령대에서 취업자가 늘어나 전체적으로 ‘고용 대박’의 신화를 창조하고 있는 동안, 20대에서는 취업자 수가 오히려 줄고 있다.

[이 그림에서 각 그래프 위의 점들은 전년 같은 시기에 비해 취업자 수가 얼마나 늘었는지를 보여준다는 데 유의해야 함. 그러니 곡선이 떨어진다고 취업자가 줄어드는 게 아님.]

취업자 수 증가가 극에 달한 올해 2/4분기의 경우, 50대와 60대 이상 연령층에서 늘어난 취업자 수는 모두 50만이 넘는다. 이는 곧 (전체 취업자 수 증가분이 50만보다 적으므로) 다른 연령대(20~40대)에서는 취업자 수가 줄었음을 의미한다.

사실 이상과 같은 현상은 어느정도까지는 자연스럽다. 인구구조 변화 때문이다. 즉 오늘날 한국의 인구피라미드에서 가장 두터운 층을 형성하고 있는 베이비붐 세대(1950년대 중반~60년대 중후반에 태어난 세대)가 점차 나이가 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인구효과(population effect)를 고려하더라도, 취업자수의 증가분의 대부분이 고령층에서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은 뒤집어지지 않는다(50대 이상에서 취업, 늘어도 너~~무 늘었어).

그렇다면, 50대 이상의 분들은 어떤 식으로 고용되고 있는 것일까? 설마 그들이 모두 취업원서를 들고 신규취업을 하진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그 이전부터 고용되어 있다가 나이가 들어 자연스럽게 ’50대 취업자’가 된 분들이 대다수일 것이며, 통계상으로 이들은 ’50대 취업자 증가분’의 일부를 구성한다. 실제로 통계를 들여다봐도 ‘상용근로자’가 가장 많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다. 바로…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자영업자’가 있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잘 다니던 회사에서 조기퇴직해서 동네에 쥐구멍만한 편의점을 내고, 거기에 자신의 여생을 걸고 있는 김사장님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그나마 나은 처지임을 덧붙여야겠다. 이것이 이른바 ‘고용의 질적 저하’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물론 위와 같은 사장님들이 동네에 편의점을 낸 것을 그들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른 것이라고 보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 그들은 왜 편의점을 낼 수밖에 없었을까? 말할 것도 없이, 회사에서 쫓겨났기 때문이다. 다시 위 그림을 보면… 2007년 하반기부터 취업자 증가가 50대에서조차 둔화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이것이 음으로 떨어지지 않는 이상 취업자 수는 늘고 있는 것임). 더 설명이 필요한가?

자.. 이제 이상의 ‘썰’로부터 이끌어낼 수 있는 몇 개의 교훈적인(!) 명제들을 간단히 정리해보자.

1. 가장 먼저, 최근 고용지표의 개선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고용은 계속해서 악화되고 있다. 그러니까 “최근의 고용상황 개선은 고용상황 악화가 드러나는 정반대의 표현형식이다”라고 누군가를 흉내내 멋들어지게 말할 수 있다. 또는, 최근의 고용상황 개선은 21세기 초의 경제위기로부터 우리가 회복되고 있다는 신호탄이 아니라 바로 그 경제위기의 모순된 표현이다.

2. 어떤 이들은 위 그래프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두고, “50대가 20대를 착취하고 있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이제는 거론하기도 짜증나는 {88만원 세대}의 저자들이 그 중 하나인데, 이때 이들이 ‘착취’라는 말을 매우 비과학적으로 쓰고 있다는 데 유의해야 한다. 즉 그들이 의미하는 것은, 50대 때문에 20대가 취업을 못하므로 결과적으로 전자가 후자를 착취한다는 것인데… 우리는 이럴 때 ‘착취’라는 말을 써서는 안 된다. ‘착취’는 공장 같은 데서 직접적으로 하는 거다.

3. 그러나 이상의 내용으로부터, 바로 그러한 착취가 실제로 50대와 20대 사이에 벌어지고 있다는 것도 어렵지 않게 우리는 떠올릴 수 있다.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세대 간 착취’와는 다른, 진정한 의미에서의 착취 말이다. 왜냐하면 앞에서 등장한 그 쥐구멍 만한 편의점을 가진 사장님은, 속알딱지마저도 쥐구멍만해져서 20대 알바녀석을 못 잡아먹어 늘 안달이기 때문이다. 좀 더 드라마틱하게 말한다면, 여기서 우리는, 50대 자영업자의 증가와 20대의 불안정 고용 사이의 구조적 연결고리를 확인할 수 있다.

4. 알바녀석의 피를 쭈~욱쭉 빨어먹음에도 불구하고, 위 사장님의 말년이 그리 편안하진 않으리라는 것 또한 우리는 잘 안다. 왜냐. 그는 곧 망할 것이기 때문이다. 구멍가게 다 날려먹고 거기 투자한 돈도 홀라당 까먹고… ㅠㅠ 물론 그러는 사이에 자본은, 각종 이자와 수수료는 우리의 사장님으로부터 꼬박꼬박 챙겨갈 것이다.

 

(100) 고용없는 성장과 노동강도

한 사회의 총자본이 매일 움직이는 노동은 하나의 단일노동일로 간주할 수 있다. 만약 예컨대 노동자의 수가 100만이고 한 노동자의 평균노동일이 10시간이라면, 사회적 노동일은 1,000만 시간으로 된다. 한 노동자의 평균노동일의 길이가 주어져 있는 경우 – 그 한계가 육체적 조건에 의해 설정되건 사회적 조건에 의해 설정되건 – 잉여가치량은 오직 노동자 수[즉, 노동인구]의 증가에 의해서만 증가할 수 있다. 이 경우 인구의 증가는 사회적 총자본에 의한 잉여가치생산의 수학적 한계로 된다. 반대로 인구의 크기가 주어져 있는 경우, 이 한계는 노동일 연장의 가능성에 의해 규정된다. 다음 장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법칙은 오직 지금까지 고찰한 형태의 잉여가치에만 해당되는 것이다. – 자본론 1권 11장, 413-414, 강조 추가

2012년 9월 미국의 실업율은 7.8%로 하락했는데 이것은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후 최저치이다. 취업자의 증가로 인해 고용율(employment-population ratio: 15세 이상 생산가능인구[경제활동인구+비경제활동인구] 중에서 취업자가 차지하는 비율) 역시 58.7%로 상승했다.

이것은 무엇보다 미국의 노동자 계급에 좋은 소식이고, 노동자 계급이 미국 인구의 대부분을 구성함을 감안하면 선거를 한달 앞둔 오바마에게 정치적 호재임에도 분명하다. 그런데 다른 누구보다도 기뻐할 이들은 미국의 자본가들이다. 마르크스가 말한 대로 “한 노동자의 평균노동일의 길이가 주어져 있는 경우 … 잉여가치량은 오직 노동자 수[즉, 노동인구]의 증가에 의해서만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고용이 계속해서 증가할지는 미지수이지만, 일단은 2011년 중반까지의 상황에 주목하도록 하자.

위의 차트를 보면:

  • (회색으로 표시된) 경기침체기를 제외하고 주당 평균노동시간은 거의 변동하지 않았다. 즉, “평균노동일의 길이”는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어 왔다.
  • 실질GDP는 2007년 말부터 1년 반 동안 5% 가량 폭락했으며, 2011년 중반에서야 원래의 수준을 회복했다.
  • 같은 기간 비농업부문 총취업자 수는 최대 7%까지 폭락했으며, 실질GDP가 경기침체 이전의 수준을 회복한 이후에도 2007년말 대비 95-96% 수준에 머물러있다.

요약하면 2011년 중반의 미국 경제의 총생산량은 2007년 말의 총생산과 같은 수준이었는데, 대신 여기에 투입된 노동량은 2007년 말의 95% 수준에 불과했다. 이 기간 미국경제는 고용 없이 회복하였으며 (jobless recovery), 고용 없이 성장하였다 (jobless growth).

똑같은 얘기지만, 이 기간 미국 노동자들의 노동생산성은 4년 동안 5% 정도 증가했다. 아래 차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미국의 노동생산성(정확하게는 제조업 부문의 총요소생산성)은 2004년 이후 완만하게 증가하다가 경제위기가 시작된 2007년 부터 2년 간 감소한 후 2009년 부터 급격하게 증가한다. 경제위기 동안의 비정상적인 생산성 하락을 감안하더라도 2009년 이후의 증가세는 트렌드를 확연히 벗어난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보통 생산효율성의 증가, 기술의 발전, 노동자들의 숙련도의 향상, 노동강도의 증가를 생산성 향상의 대표적 요인으로 꼽는데, 지난 5년 간의 상황은 어땠을까?

첫째, 아마도 2007년부터 시작된 대량 해고는 생산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효과를 가져왔을 것이다(예를 들어 감원 이전에는 잉여인력이 고용되어 있었을 수 있다). 감원으로 인해 총생산량은 감소했지만, 노동자 1인당 생산량은 증가했을 것이다. 둘째, 경제위기 시에는 기업들이 투자와 연구개발을 대폭 줄이기 때문에 기술발전 정도가 높지 않았을 것이다. 생산성의 개선에서 기술발전과 혁신이 차지하는 비중은 평상시에 비해 낮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다. 셋째, 교육과 훈련을 통해 노동자들의 숙련도와 기술이 눈에 띄게 향상되었을 가능성도 별로 없다. 고용이 불안정한 판에 누가 교육과 훈련에 신경을 쓰겠는가?

뒷받침할 자료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나는 네번째 요인, 그러니까 노동강도의 증가가 생산성의 개선에 크게 기여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 경험에 따르면 그렇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제조업체는 아니다) 경제위기 이후 거의 매년 10% 정도의 직원을 감원했다. 감원이 발표된 이후에는 이메일을 통해서 세가지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첫째, 이것은 고통스러운 결정이지만 가혹한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아마도 이메일을 쓴 사람이 솔선수범하여 자신을 희생했다면 납득할만 했을 것이다). 둘째, 더 적은 수의 직원으로 예전만큼의 아니 예전보다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 (영어로 짧게 표현하면, do more with less; work smart). 셋째, 그렇다고 더 오래 일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너무 일에 빠져 있는 것은 좋지 않다. 가족과 친구들과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중요하고, 회사를 위해서도 충분한 휴식이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된다 (실은 초과근무수당이 비싸고 대차대조표에 부채로 표시되기 때문이다).

경제주체 모두가 부채 줄이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요즘, 자본가들은 가변자본을 늘려 노동자를 더 고용하는 방식으로 잉여가치를 증가시키기가 어렵다. 표준노동일의 법적 강제 때문에 노동시간을 늘릴 수도 없다. 혁신과 기술개발에 기대기도 어려운 (그러니까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이 어려운) 지금 아마도 공포분위기를 조성해서 노동강도를 증가시키는 것이야말로 잉여가치를 조금이라도 더 빨아먹기 위해 자본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아닐까 (노동강도의 증가는 노동시간을 늘리지 않으면서 실질적으로 잉여노동시간을 증가시킨다는 점에서 절대적 잉여가치생산의 한 방식이다).

다행히 사정은 점점 나아지고 있다. 2012년 9월 11만 4천명의 신규 노동자들이 자본의 헌혈대 위에 올라가 누웠다. 예전보다 빠른 속도로 피를 뽑아내느라 기증자들이 조금은 힘들어하는 것 같고 자본 자신도 약간은 피로하지만, 익숙해진 이상 속도를 늦출 필요를 느끼지는 못한다. 자본은 그저 새로운 혈액기증자들이 고마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