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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되어버린 ‘공유경제’: 공유경제와 플랫폼

‘오픈넷’에서 연 세미나(링크),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공유경제는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가?’에 토론자로 참여하였다(2019.12.16). 다음은 나의 토론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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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문: ‘경제’가 되어버린 ‘공유경제’: 공유경제와 플랫폼
토론자: 김공회(경상대 경제학과)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경제’가 더 좋은가? 불평등을 덜 야기하는가? 사실 이 질문은 인터넷 자체의 성격과도 관련이 있겠지만, 그동안 어떻게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가상공간(virtual space)이 기존의 경제적,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현실공간(real space)에 식민화되어 왔는지를 고찰함으로써 더욱 잘 다뤄질 수 있다. 다음 토론문은 이를 염두에 두고서 작성되었다. 또한, 공유경제의 여러 영역 중에서도 노동이 중요한 매개 역할을 하는 부문을 주로 염두에 두었다(하지만 이하의 논의는 쉽게 다른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다).

공유경제의 (아름다운) 세계

공유경제란 개인이 가지고 있는 유휴 자원—물적 및 인적 자원 모두를 일컬음—을 그것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한시적으로 내어주는 활동을 일컫는다. 공유경제가 원활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유휴 자원을 보유한 개인과 이를 사용하고자 하는 개인이 만날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 그런 장이 바로 플랫폼이다. 가장 전통적인 형태의 플랫폼은 실제 사람들이 모이는 시장이나 광장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주목받는 형태의 플랫폼은 주로 인터넷 가상공간에 위치하며, 개인용 휴대기기(스마트폰 등)에 설치된 앱을 통해 접근된다.

가장 전통적인 형태의 플랫폼이 시장이라고 했다. 오늘날 시장에서는 처음부터 시장에 내놓을 것을 목표로 생산된 상품들이 거래되는 게 보통이지만,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시장에서는 우연히 발생한 잉여물, 즉 직접적 필요를 넘어서는 ‘유휴 자원’이 거래되곤 했다. 이러한 원초적 시장에서의 거래야말로 공유경제였던 셈이다. 시장의 이러한 성격은 중고품 시장 같은 사례에서 오늘날에도 볼 수 있다.

‘유휴’ 자원이 거래되므로, 공유경제는 자원의 활용도를 높인다고 볼 수 있다. 노는 자원이 거래된다고 해도 거기엔—그것이 ‘경제’라고 불리는 한—일정한 금전적 보상이 수반된다. 즉 공유경제는 판매자에게 일정한 경제적 수익을 안겨준다. 자원의 활용도를 높임으로써 경제의 전반적인 효율성을 제고하는 것, 그리고 이 효과의 일부가 화폐화되어 자원의 판매자에게 지급된다는 것이 옹호자들이 말하는 공유경제의 핵심적인 의의다.

한편, 공유경제는 통상적인 ‘경제’에 부차적이라는 느낌이 있다. 뭔가를 하고 남는 ‘유휴’ 자원이 거래되니 그렇다. 공유경제에서 판매자는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하고도 남는 방, 차량, 각종의 능력(운전, 번역, 안내) 등을 내놓는다. 이를 모르지 않기에 구매자도 통상적인 시장거래에서와는 다른 ‘기대’를 가지고 공유경제에 참여할 것이다. 말하자면 공유경제에서 판매자와 구매자는 (통상적인 시장에서보다 더) 불완전하고 비대칭적인 정보 아래서 서로 만나는 것이다. 공유경제의 장점을 상찬하는 이들은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하는 뜻하지 않은 이로운 효과들을 강조하곤 한다. 첫 번째 발제자인 아이작 레데가드가 강조한 것이 그 한 예다.

플랫폼—공유경제의 ‘게임 체인저’

지금까지 얘기하지 않은 게 플랫폼이다. 플랫폼은 위와 같은 공유경제의 아름답고 조화로운 세계에 균열을 일으킨다. 아니, 없던 균열을 일으킨다기보다는 애초부터 내재된 균열의 가능성을 현실화한다고 하는 게 적절할지 모르겠다.

일반적으로 플랫폼은 하나의 비인격적인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공간에서 유휴자원의 판매자와 구매자가 만난다. 그러나 현실의 플랫폼, 특히 오늘날의 인터넷 기반의, 또 개인용 휴대기기 기반의 플랫폼은 단순히 거래 당사자들의 만남을 주선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보통 플랫폼은 거래 당사자들로부터 거래 성립의 대가로 일정한 수수료를 받는데(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라 해도), 더 많은 수수료를 얻기 위해선 더 많은 거래가 성사되어야 한다. 어떻게 더 많은 거래가 성사될 수 있을까? 무엇보다 플랫폼에 참여하는 주체가 많아야 한다. 참여자가 많으면 성사되는 거래도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참여자 숫자의 중요성은 그 이상이다. 플랫폼 회사들이 그 참여자들을 기반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비즈니스가 바로 광고다. 참여자가 많을수록 광고의 효과가 클 것이므로 플랫폼은 더 많은 광고수익을 거둘 수 있다. 또한 참여자가 많을수록 이들의 교류 과정에서 더 많은 정보가 생성될 것이다. 이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광고를 맞춤형으로 할 여지가 생긴다. 당연히 플랫폼 기업은 더 높은 광고수수료를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논의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 두 번째 사항이다. 플랫폼에서 더 많은 거래가 성사되려면, 거기서 제공되는 재화나 서비스의 질과 가격이 적절히 어울려야 한다. 달리 말하면, 플랫폼에서 제공되는 상품의 가격이 그 상품의 상이한 질에 대하여 근사적인 ‘신호’ 기능을 수행하여야 한다는 얘기다. 플랫폼이 거기서 거래되는 재화와 서비스의 질을 통제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필요 때문이다. 에어비앤비는 호스트의 세부적인 인적사항을 요구할 것이고 임대되는 방의 상태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기 위한 기준들을 마련할 것이다. 우버나 리프트 같은 차량공유 플랫폼도 마찬가지다. 이 과정에서 공유경제에서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는 이들이 갖는 ‘기대’도 바뀌게 된다. 궁극적으로 그들은 통상적인 시장의 재화와 서비스에 대해 기대하는 표준화되고 일관된 질을 공유경제에서도 기대하게 될 것이다. 이쯤 되면 ‘공유경제’는 ‘경제’에 부차적이고 대안적인 선택지가 더이상 아니다. 양자는 서로 경합하는 관계가 되고, 나아가 아무런 차이도 갖지 않게 된다. ‘공유경제’는 ‘경제’가 된다.

공유는 간데없고 플랫폼만 나부껴

위와 같은 사태가 가장 극단적으로 진행된 사례가 최근 국내에서도 문제되고 있는 차량공유서비스와 음식배달서비스다.

차량공유서비스를 먼저 생각해 보자. 공유경제로서 이런 서비스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운송 서비스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차량을 소유한 여러 개인들이 어차피 놀고 있는 차량과 노동력(운전)을 제공하는 식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플랫폼 참여자가 아무리 많아도 (구매자와 판매자의) ‘욕망의 이중 일치’라는 관문을 뚫고 거래가 성사되기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상이한 차량에 대해 상이한 이용료가 책정되어야 할 것이다. 차량의 종류나 연식 같은 거야 객관적으로 파악된다고 해도 차량의 관리상태는 쉽게 파악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에 대해선 플랫폼 측의 통제와 규율이 필수적이다. 가장 문제는 운전자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이다. 결국 서비스 질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선 운전자를 교육하고 일정 수준의 규율을 강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차량별로 상이한 이용료를 책정하고 일정 수준의 차량관리, 대고객 서비스의 내용과 형식 등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하는 플랫폼의 예가 우버다. 여기서 더 나아가 플랫폼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시장 수요에 맞게 운전자들을 적절히 공급하고자 할 것이다. 즉 운전자의 서비스 제공 시간까지도 플랫폼은 통제하여야 할 것이다. 더 극단적으로는 차량의 종류와 상태까지도 통제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이를 위해 플랫폼은 아예 차량을 소유할 수도 있다. 한국의 ‘타다’ 같은 서비스가 여기에 해당된다. 플랫폼이 차량을 소유하고 운전자의 시간과 서비스 내용을 통제한다—이쯤 되면 플랫폼은 통상적인 의미의 운송회사라고, 운전자는 그 회사에 고용된 통상적인 의미의 임금노동자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음식배달서비스도 마찬가지다. 공급의 안정화, 서비스 질의 표준화, 비용의 최소화 등을 위해, 결과적으로 플랫폼은 운송수단(오토바이 등)을 소유하고 배달노동자를 고용한 통상적인 배달업체가 되는 것이다.

‘공유경제’가 공유하는 것은?

공유경제는 자유를 증진하는가? 공유경제에의 참여가 개인의 자발적 의사에 따른 ‘선택’이라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참가자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미덕은 공유경제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통상적인 임노동을 하는 이들 중에도 스스로 억압받고 통제받는다는 느낌 없이 일하는 사람도 존재하니 말이다. 누구도 이런 이들을 ‘표준’이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시각에서 공유경제를 바라볼 수 있다.

오늘날 한국에서 플랫폼을 통해 이른바 ‘공유경제’에 참여 중인 노동자는 전체 취업자의 2~3%에 이르고, 이 수치는 빠르게 커지고 있다. 또한 이들 가운데 93.4%가 하루에 5시간 이상을 플랫폼 일자리에 머물며, 자신의 총소득 가운데 절반 이상을 플랫폼 일자리에서 얻는 이가 74%, 업무와 관련된 지시와 통제를 받는다고 여기는 플랫폼 노동자가 53.5%에 달한다고 최근 보고된 바 있다(장지연, ‘한국의 플랫폼노동과 사회보장’, 제10회 아시아미래포럼 발표문, 2019). 요컨대 플랫폼을 매개로 한 공유경제는 ‘경제’가 되었고, 거기서 행해지는 노동은 점점 더 자본주의적인, 통제되고 소외된 노동의 성격을 빠르게 띠어 가고 있다. 플랫폼 또한 단순히 유휴 자원의 공급자와 수요자 간의 매개자에 그치지 않고, 생산수단을 보유하고 노동자를 고용하는 통상적인 자본주의적 기업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공유경제가 무언가를 공유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공유경제에 참여하는 이들이 내놓는 ‘유휴자원’은 무엇인가? 처음에 그들은 자기가 소유한 차량 등을 가지고 공유경제에 들어왔으나 앞에서 설명한 이유로 점차 그럴 필요가 없어지고 있다. 그들은 맨몸으로 들어오면 된다. 이때 그들이 공유하는 것은 그들의 남는 시간과 노동력이다(실제로 ‘당신의 시간을 공유하세요’는 플랫폼 기업이 애용하는 마케팅 문구다). 그런데 이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결코 낯설지 않다. 우리는 이미 자본주의 성립 초기의 ‘시초축적’(primitive accumulation) 기에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된 빈털털이 대중에게서 그들을 본 적이 있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자본주의 초기의 ‘자유로운’ 노동자는 자신이 보유하던 생산수단(농기구, 토지 등)으로 분리된 것이지만 오늘날 ‘자유로운’ 플랫폼 노동자는 기존의 일자리로부터 분리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인터넷의 가상세계를 일종의 ‘공유지’라고 하면서 이 세계에 국가의 권력이나 자본주의적 소유권, 자본의 논리가 스며드는 것을 시초축적기의 ‘인클로저’, ‘공유지 수탈’, ‘uncommoning’ 등으로 부른다.)

맺음말: 우리 앞의 도전

요컨대 오늘날 ‘공유경제’의 활성화는 경제위기와 저성장에 따른 경제의 불안 가중, 대규모 실업 또는 불완전 고용의 만연, 그리고 (이 모든 것의 결과로서의) 소득 감소를 배경으로 하는 것이다. 그런 한에서, 공유경제가 심화하는 불평등에 대한 부분적인 해법이 된다고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노인들이 폐지를 줍는 것이 노인빈곤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것과 비슷한 의미에서의 ‘긍정성’일 뿐이다.

다른 한편, 현재 플랫폼 기반의 공유경제가 엄청난 금력과 권력을 확보하고 있는 기존의 유사 산업들과 갈등을 겪고, 또한 이 과정에서 어느 정도 ‘탄압’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일부 플랫폼 기업들에 대해 법과 제도의 허점을 교묘하게 이용한다고 비난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이 또한 기존의 이해관계가 세워놓은 현실의 벽에 부딪힌 결과인 게 보통이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공유경제가 갖는 자본주의적 속성—플랫폼 기업의 이윤추구 속성, 참가자들이 행하는 노동의 소외된 성격, 노동과정에 대한 자본주의적 통제 등—이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공유경제는 인터넷 및 모바일 기술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특수성과 자본주의 경제로서의 보편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특히 현재 공유경제는 후자의 성격을 빠르게 강화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공유경제에 대해서도 일반적인 기업 활동에 대한 규제와 노동자의 권리 보호와 관련된 기본 법/제도가 속히 적용되어야 한다. 시초축적기의 맨몸의 노동자가 오늘날 통상적인 노동자가 누리는 권리와 노동조건을 갖게 되기까지의 험난한 과정을 오늘날의 ‘공유경제’의 플랫폼 노동자에게도 강요하여야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