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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 자본주의 vs 이해당사자 자본주의

‘A new idolatry’, The Economist, Apr 22nd, 2010. [링크]
다시 말해, 주주가치를 강조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기업주가의 단기적 증가를 주주가치의 척도로 쓰는 게 진짜 문제다. 역설적이게도, 주주들 자신이 이와 같은 혼란을 퍼뜨리는 데 일조했다. 헤지펀드는 말할 것도 없고 많은 기관투자자들이, 말안듣는 기업메니저들을 기업 거버넌스와 임원봉급에 대한 논의의 장으로 끌어들이기보다는 단기이윤과 주가상승을 숭배했던 것이다.

(특히 미국에서) 경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더 많은 권한을 주주에게 주고 또한 그들로 하여금 이런 권한을 행사하도록 북돋는다면, 그들은 물론 그들이 고용한 경영자들도 좀 더 장기적인 관점을 갖게 될 것이다. [. . .] “주주자본주의와 이해당사자 자본주의 사이의 전쟁이란 그저 말뿐인 전쟁에 지나지 않아요. 우린 실제로는 주주자본주의를 시도해보지도 않았기 때문이죠.” 미국 최대의 공공연금기금인 캘퍼스(CalPERS)의 기업 거버넌스 감시책임자 앤 심슨(Anne Simpson)은 말한다. “주주가치[라는 패러다임]을 포기하기보다는, 주주 자본주의를 제대로 한 번 해볼 기회를 줘보자는 거죠.”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재밌는 기사가 났다. 아마도 앞으로 한국경제를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이냐, 다시 말해 한국경제의 ‘모델’에 대한 논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주주 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니 ‘이해당사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니 하는 말들이 전혀 낯설지는 않을 터.

대통령까지 나서서 “권력은 시장에 넘어갔다”라고 토로할 정도로 거대기업의 영향력이 막강한 오늘날, 기업의 주인이 누구냐는 물음에 대한 가장 교과서적인 대답은 바로 ‘주주’일 것이다. 재밌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한 개인은 직간접적으로, 즉 직접적으로 주식을 구입하여 보유함으로써 또는 은행에 예치해둔 돈이 주식에 투자되는 등의 간접적인 방식을 통해 (때때로 자기도 모르게) ‘주주’가 되어있을 확률이 적지 않다. 주주 자본주의란 바로 이와 같은 현대사회의 변화를 반영해 나타난 개념으로, 주주가치를 극대화하는 게 곧 대중에 봉사하는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하지만 뭐, 말이 그렇다는 거고… 주주 자본주의의 현실은 우리가 이제껏 목격한 대로 그다지 명랑하지만은않았다. 명목상으로야 기업의 주인이라고 떠받들리던 개별주주들이 기업의 의사결정에 이렇다할 영향력을 미칠 수단은 실질적으로 전무했고, 주로 몇 년 단위의 계약으로 고용되는 이른바 전문경영자(CEO)들은 주주가치를 극대화한다는 명목으로 사실상은 단기적인 주가를 높이는 데만 혈안이 되어 결과적으로는 스스로 엄청난 액수의 스톡옵션을 챙기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기업의 재무구조는 엄청나게 손상을 받았고, 그 결과가 바로 오늘날 우리가 겪고있는 경제대란의 전조였던 엔론(Enron)의 파산 등이었다.

거품이 터지고 위기가 현실화되기 전까진, 어쩌면 주주들은 결과적으로 이익을 봤다고도 할 수 있을 거다. 그러나 그런 과정에서 기업을 둘러싼 다른 이해당사자들, 즉 기업에 고용된 직원, 부품 공급처, 도매상, 소비자,이 기업이 위치한 지역 커뮤니티, 나아가 해당 사회 자체… 이 모두가 ‘주주가치’를 위해 희생되어야 했다. 이를테면 ‘주주가치’—여기선 ‘단기적 주가 극대화’라고 읽혀야 한다—라는 이상을 위해, 기업은 노동유연화를 단행했고 따라서 직원들은 고용불안정에 시달려야 했다. ‘이해당사자 자본주의’란, 바로 이렇게, 기업이란 단순히 주주의 것만이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이해당사자들의 공동체임을 인식하고, 기업이 극대화해야 하는 것은 따라서 주주가치가 아니라 이해당사자들의 공동의 이익이라고 보는 시각을 일컫는다.

‘주주 자본주의’와 ‘이해당사자 자본주의’는 흔히 영미형 자본주의와 독일형 자본주의라고 각각 불리기도 한다. 돌이켜보면 이 둘의 대립은 레닌(V.I. Lenin)이나 심지어 그 이전의 리스트(F. List)에까지 소급시킬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이 대립이 특히 학자들과 정책가들 사이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97년 이후의 IMF의 주도로 이뤄진 경제재편과 관련해서가 아닌가 싶다.

아… 나름 엄청난 논쟁이 있었다. 그렇다면 결과는? 뭐 대충 평행선을 달리다 끝난 것 같다. (-_-) 따지고 보면 우리가 흔히 ‘진보적’이니 ‘좌파적’이니 하는 입장들은 ‘주주 자본주의 vs 이해당사자 자본주의’라는 구도로는 포착되지 않는 게 일반적이지만, 굳이 이런 구도를 고수하자면 ‘이해당사자’ 쪽이 더 그럴싸해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른바 ‘소액주주운동’도 ‘진보적’ 운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두고 보면, ‘주주 vs 이해당사자’ 논쟁은 말하자면 크게 봐서 ‘진보 내부의’ 논쟁이었다고 보는 게 맞는 평가가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결국 자기들끼리 치고받다가 끝났단 건데…… 물론 그러는 사이에, ‘주주 자본주의’를 통해 진정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 이를테면 재벌들이 실속은 다 챙겼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 쳇.

아… 그러니까 주주냐 이해당사자냐 하는 논쟁과는 별개로… 세상은 ‘주주 자본주의’쪽으로 의연하게 흘러갔고, 그러다가 롱텀 케피탈 메니지먼트(LTCM)와 엔론이 넘어졌고, 각종 기업회계비리가 터졌으며, 그리고…… 공포의 2007년 왔다. 그리고 그로부터 2년반 뒤, 지난 주 위와 같은 《이코노미스트》 기사가 났다!

내용? 뭐 보시는대로. 저 ‘주주 자본주의’ 옹호자들의 기만적인 ‘눈가리고 아웅’을 보라. “주주가치를 강조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기업주가의 단기적 증가를 주주가치의 척도로 쓰는 게 진짜 문제다“라고? 너네 반대하는 쪽에서 그런 얘길 여태 안 했냐? 그걸 이제 알았어?

한편 여기서 재밌는 것은 캘퍼스(CalPERS)라는 곳이 ‘주주 자본주의’를 옹호하고 있다는 것. 캘퍼스는 미국에서 가장 큰 공적연금기금으로, 일부 진보적인 사람들은 바로 이런 대규모 공적연금 즉 결국엔 대중들의 푼돈(?)이 모여 이뤄진 큰 기금에 대한 통제권을 손에 넣음으로써 그것으로 기업의 주식을 사 궁극적으로 기업들을 통제하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바로 이런 생각에 의한 자본주의 재편 비전을 ‘수탁자 자본주의(fiduciary capitalism)’라고 부른다.

이쯤 되면 대충 위 기사를 둘러싼 배경그림이 그려진 듯? 에고 그만쓰고 집에 가야지…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