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인이 모든 전쟁기술을 개인의 책략을 발휘한 것과 마찬가지로, 비록 작은 규모에서이기는 하나 독립적인 농민 또는 수공업자도 지식과 판단력과 의지를 발휘했다. – 자본론 1권 14장, 487; MEW 23; 382
지식, 판단력 (또는 이해력 혹은 통찰력), 의지라는 세 단어에 주목하자. 노동에는 이 세 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자신의 것이건, 혹은 타인의 것이건.
그러나 매뉴팩쳐에서는 그러한 능력은 다만 작업장 전체를 위해서만 요구될 뿐이다. 생산상의 정신적(geistig) 능력이 한 방면에서는 확대되면서 다른 여러 방면에서는 완전히 소멸된다. 부분노동자들이 잃어버리는 것은 [그들과 대립하고 있는] 자본에 집적된다. 부분노동자들이 물질적 생산과정의 정신적 능력을 타인의 소유물로 또 자기를 지배하는 힘으로 상대하게 되는 것은 매뉴팩쳐적 분업의 결과다 – 487-8; 382
1. 물질적 생산과정의 정신적 능력 (die geistigen Potenzen des materiellen Produktionsprozesses) – 물질적 생산과정에는 물리적 능력뿐만 아니라 정신적 능력도 필요하다.
2. 자본주의의 논리적, 역사적 발전과정은 지식, 판단력, 의지 – 물질적 생산과정의 정신적 능력 – 을 개별노동자들로부터 자본으로 이전시키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 분리과정은, 개개의 노동자에 대해 자본가가 집단적 노동유기체의 통일성과 의지를 대표하게 되는 단순협업에서 시작된다. – 488; 382
1. 단순협업의 경우에는 ‘의지’ 정도만 자본가의 몫이다. 매뉴팩쳐에서는 ‘의지’에 더해 ‘지식’과 ‘판단력’마저 자본에 이전된다. 물론 부분노동자의 작업을 위한 ‘의지’, ‘지식’, ‘판단력’은 노동자에게 남지만.
2. 집단적 노동유기체 대신 사회적 노동유기체라고 번역해야 한다. 물론 의미상 차이는 없다. 자세한 내용은 (111) 집단적 노동, 사회적 노동, 결합노동, 공동노동, 공동체적 노동 참조.
그리고 이 분리과정은 노동자를 부분노동자로 전락시켜 불구자로 만드는 매뉴팩쳐에서 더욱 발전한다. 끝으로, 이 분리과정은 [과학을 노동과는 별개인 생산잠재력으로 만들고, 과학을 자본에 봉사하게 만드는] 대공업에서 완성된다.
1. 단순협업에서 의지를, 매뉴팩쳐에서 지식과 판단력을 자본으로 이전시켰다면, 대공업에서는 자본에 이전된 지식이 과학적 지식으로 된다. 매뉴팩쳐에서는 과학이 그래도 자본의 통제 바깥에 있었다면, 대공업에서 과학은 자본에 복속된다.
2. ‘별개인’으로 번역된 selbständige는 ‘독자적인’ 혹은 ‘자립적인’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기계제 대공업에서의 과학의 독자성을 더 강조하는 것이 더 좋겠다.
그렇다면 오늘날에는? 단순협업 -> 매뉴팩쳐 -> 기계제 대공업 이후의 새로운 단계를 상정할 수 있을까? 인지자본주의론자들은 우리는 이미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징적으로 이 단계에서 노동자들은 (과학적) 지식, 판단력, 의지를 다시 자본으로 빼앗아오고 있다고 한다. 인지자본주의론자들은 기계제 대공업의 시기까지 자본이 이윤을 획득할 수 있었던 이유를 (생산수단을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지식, 판단력, 의지를 통제했었기 때문이라고 잘못 이해한다. 그래서 이들이 다시 노동의 손으로 되돌아오고 있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에서는 자본에게 돌아갈 이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주장을 한다. 이제 자본가에 남은 카드는 지적재산권뿐. 자본가는 이윤 대신 지대를 수취하는 지주로 변신하는 중이다. 더 할말 없다.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법. 논증은 올바른 대전제에서 출발해야 할뿐.
이유는 다르지만 나도 우리가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다고 생각한다. 이 새로운 단계의 특징은 (과학적) 지식의 자립화를 넘어선 지식의 상품화다. 지식은 상품이 아니므로 결코 상품이 될 수 없지만, 상품을 닮아갈 순 있다. 팔기 위해 지식을 생산하고, 표준화된 방식으로 지식을 생산하고, 자본의 통제 하에 지식을 생산할 때, 지식은 상품화된다. 지식은 본질적으로 상품과 다르므로 지식의 상품화는 지식의 저질화다. 사람이 개를 닮아가면 사람이 저질화되고, 개가 사람을 닮아가면 개가 저질화되는 것처럼.
관심있는 분은 주류경제학과 신자유주의 비판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필립 미로스키(Philip Mirowski)의 [과학마트 – 미국 과학 민영화하기(Science-Mart – Privatizing American Science)]를 참조. 미로스키에 따르면 지식경제니 창조경제니 하는 중립적인 척하는 용어들 모두 신자유주의의 소산이다. 이 책에 대한 괜찮은 리뷰 아티클은 여기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