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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과학 편집위원회의 ‘입장’에 대한 입장

나는 지난 6월 20일 {문화/과학} 측의 요청을 받고 한 토론회에 패널로 참석했던 적이 있고, 이미 이에 대해서는 이 블로그에도 다음과 같이 일종의 ‘후기’를 남기기도 했다.

[후기/토론회] 인지자본주의에서 ‘가치’와 ‘주체’의 문제
(참조) ‘날파리’ 친구들에게

위 ‘후기’에서 예고했듯이, 나는 토론회에 대해 {문화/과학} 측에 이메일을 통해 ‘공식적인’ 문제제기를 했고, 얼마 전에 그에 대한 답변을 받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토론회가 부실했다는 것을 제외한 나의 문제제기는 거의 수용되지 않았고, 나는 내가 판단하기에 온당하지 않을 뿐 아니라 {문화/과학}과 같은 잡지의 편집위원회의 ‘공식적인’ 의견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반응을 받았다. 이에 나는, ‘사건’의 경위를 이 블로그를 통해 간단히 공유하고자 한다.

1. 토론회

토론회가 어땠는지는 앞서 ‘후기’에서 대충 밝혀놓았다. 다음은 ‘후기’의 일부다.

하여튼 이번 이벤트는 결코 ‘논쟁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게 조정환 선생의 잘못이라 생각하진 않는다(그는 그냥 ‘그’였을 따름이다). 다름아닌 행사를 주최한 {문화/과학}쪽의 문제였다. 그들은 그 자리를 ‘토론회’로 만드는 데 완전히 실패했고, 특히 내겐 엉뚱한 질문을 내놓기도 했다(도대체 조정환이 말하는 ‘명령(가치)’가 뭐냐는 설명을 왜 나한테 요구하냐고! 저도 사실은 그게 뭔지 잘 모르겠어요.. 엉엉). 그들은 조정환 선생의 지루하기 그지없는 하나마나한 발언을 전혀 제지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5시에 마치기로 예정되었던 토론회는 토론자 중 한 명이 빠진 데다가 ‘토론자들 간의 토론’이 거의 없었는데도 무려 6시 반이 되어서야 끝이났다.

사실 토론회 전에, 정확히 말하면 하루인가 이틀 전에 토론회 대본이 내게 전해졌다. 그러나 토론회는 전혀 그 대본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물론 이것이 그 자체로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대본에서 벗어난 것이, 참가자들 사이의 열띤 토론 때문이 아니라, 특정 참가자의 부적절한 발언 등에 의한 것이라면 얘기가 다르지 않을까? 그런 경우라면, 당연히 사회자나 주최측에서 통제력을 발휘해 토론을 제 궤도에 올려놓아야 하는데, 내가 보기엔 전혀 그런 노력이 나타나질 않았다. 사회자나 {문화/과학} 편집진들은 조정환 선생의 길고 지루할 뿐 아니라 핀트에 어긋난 발언들을 전혀 제지하거나 일말의 통제 의지도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나는 판단한다.

2. 문제제기

위와 같은 토론회 자체의 운영과 별도로, 이메일을 통해 나는 또 다른 문제제기를 내놓은 바 있다. 바로 다음과 같은 한 청중의 발언 때문이다.

물질, 비물질이 맑스가 포괄적으로 보고 있다라고 가정을 한다면, 잉여가치론을 폐기할 이유는 전혀 없[고,] 그것이 새로운 국면으로 가고 있다고 봐야 하는 것 [아니냐] … 조정환 선생님은 … 소위 맑스주의 정치경제학, 영국에서 유학을 하신 분들하고 논쟁을 하시면 안된다 라는 생각이 들어요. 오히려 부르주아 경영학을 하는 사람들과 … 경험론적인 방식[으로] … (음성파일로부터 녹취)

위 발언자의 전체적인 취지는 조정환 선생께, 자신이 생각하는 올바른 연구/토론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사실은 나 자신도 상당히 공감하는 내용일 뿐 아니라, 위 발언이 있기 직전에 나 자신도 그런 취지의 언급을 이미 했다.

내가 문제삼는 것은 그와 같은 발언의 전체 취지가 아니다. 바로 밑줄 부분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그것이 왜 문제가 되느냐고 내게 되물을지 모른다. 맞다. 말 자체만 놓고 보면, 사실 토론자로서 나는 위와 같은 청중의 의견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 발언이, 이번 행사를 준비한 주체, 즉 {문화/과학}의 편집위원 중 한 명의 것이라면 얘기가 좀 다르다.

첫째, ‘소위’, ‘영국에서 유학을 하신 분들’과 같은 인신공격성 발언은 어떻게 보더라도 불필요하다.

둘째, 그런 부분을 빼놓고 보더라도, 위 발언은 문제가 된다. 싫다는 사람을 굳이 불러들여놓고서 고작 ‘저런 애들이랑 토론하지 마세요’라고 한 것이 아닌가? 그럴려면 애초에 뭣하러 나를, 즉 ‘영국에서 유학’하면서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을 공부하는 나를 불렀는가? 혹시 {문화/과학}의 편집진은 내가 ‘영국에서 유학’한 ‘맑스주의 정치경제학’ 공부하는 사람인지 몰랐는가?

3. {문화/과학}의 ‘입장’

이상의 사항에 대해, 나는 {문화/과학} 측에 공식적인 해명 내지는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1번에서 묘사한 것에 대해서는 사과 요구 없이 일종의 ‘항의’를 한 셈이고, 2번의 문제에 대해서는 해당 발언자의 사과와 {문화/과학} 편집위원회 명의의 해명을 요구했다.

그렇다면 결과는? 일단 나는 다음과 같은 {문화/과학} 측의 ‘입장’을 이메일로 전달받았다. (읽기 귀찮으신 분들은 그냥 건너뛰어도 되심. 내 이름을 제외한 모든 실명은 땡땡이 처리 함.)

『문화/과학』제1회 북클럽 행사 김공회 선생의 문제제기에 대한 편집위원회의 입장

안녕하십니까? 계간『문화/과학』편집위원회는 6월 20일에 있었던 『문화/과학』제1회 북클럽 행사에 패널 로 참가했던 김공회 선생의 문제제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입장을 알려드립니다.

1. 먼저『문화/과학』제1회 북클럽 행사에 참석해 주신 김공회 선생님에게 감사드립니다. 당일 행사와 관련해 당초 패널 참가자였던 ○○○ 선생이 갑작스런 개인적인 사정으로 부득이하게 참석하지 못하게 된 점을 포함해 전체 진행이 매끄럽지 못한 점에 대해 유감을 표명합니다. 아무래도 첫 번째 행사를 치르다보니, 준비가 충분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지적하신 사항 잘 감안해서 다음 북클럽 행사부터는 잘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김공회 선생님이 문제제기한 대로, 토론회 준비에 있어서 패널들이 논의를 전개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토론회 준비에 대한 패널들의 문제제기는 충분히 가능하지만, 편집위원회는 지면 게재 철회를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로 진행 상 문제가 정말 심각한 지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진행 상황에 대해 서로 다른 시각차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이것은 문제제기 수준으로 마무리 할 수 있는 문제라고 판단됩니다.

2. 패널 토론 후에 플로어에서 질의한 ××× 편집위원에 대한 문제제기에 관해서는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김공회 선생에게 공식 사과를 할 수 없습니다. ××× 편집위원은 분명『문화/과학』편집위원이지만, 개인적 차원에서 질문을 한 것이고, 김공회 선생이 생각한 것과는 다르게 개인을 인식 공격하려 한 것이 아니라, 토론 진행 과정을 지켜보면서 제기한 문제제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 편집위원의 질의가 분명 김공회 선생 본인에게는 불편하게 느낄 수 있겠지만, 맑스주의 경제학자로서 김공회 선생의 학문적 정체성에 대한 비판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 선생의 질의 안에는 당일 날 토론회에 임한 김공회 선생의 냉소적인 토론 태도에 대한 개인적인 문제제기가 포함된 것은 분명합니다. ××× 선생의 질의는 다른 한편으로는 김공회 선생의 이론적 입장과는 무관한 인지자본주의의 이론적 경향에 대한 문제제기였습니다. 물론 본인이 지적했듯이 토론회의 매끄럽지 못한 진행에 대해 불만을 제기할 수 있겠지만, 아무리 토론회의 진행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해서, 토론회에 소극적으로 참여하거나 상대방의 발언을 경청하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신 것은『문화/과학』편집위원으로서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마이크 배치에 대해서도 문제제기 할 수도 있지만, 당일 토론회 중간에 의사 진행 발언을 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가 있었고, 비록 후반부이긴 하지만 실제로 사회자였던 △△△ 선생은 김공회 선생에게 마이크를 전해주면서 발언할 기회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토론회 현장에서 본인의 발언을 통해서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었으면 좀 더 원활한 진행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생각해봅니다. ××× 선생의 문제제기는 평상 토론회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현장에서 적극적인 반론을 통해 충분히 논쟁이 가능했던 사안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 선생의 발언은 개인적인 인식공격이 아니고, 맑스주의 경제학자로서 김공회 선생의 학문적 정체성을 공격한 것도 아님을 다시 한 번 밝히는 바입니다.

3. 『문화/과학』편집위원회는 제 1회 북클럽 행사의 원고를 『문화/과학』에 게재하는 과정에서 패널 참가자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여 자신의 의견을 추가로 수정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다면, 패널 모두 토론 내용을 보완하고 자신의 의견을 추가로 반영할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알려드리며,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지면을 통해서 전달해주셨으면 합니다. 다만 김공회 선생님께서 요구한 사항을 전제로 게재를 원하시는 점에 대해서는『문화/과학』편집위원회에서는 수용할 수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4. 『문화/과학』편집위원회는 가급적 이번 제1회 북클럽 행사 토론 결과를 『문화/과학』 지면에 싣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패널 토론자 선생님들이 종합적으로 판단해 게재를 원하지 않는다면, 토론회 원고를 싣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이번 논란이 생산적으로 논의되고 좋은 결론을 맺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결론은, 토론회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나의 좀 더 적극적인 ‘요구’에는 응하지 않은 거다.

4. ‘입장’에 대한 나의 입장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위 ‘입장’에 대한 나 자신의 소회 내지는 반응. 어쩌면 이게 이 포스팅의 핵심인지도 모르겠다.

(1) 플로어에서 발언을 했던 편집위원에 대한 문제제기가 단편적으로만 받아들여졌다는 게 납득할 수 없다. 앞서의 ‘입장’에서 {문화/과학} 편집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공식 사과를 할 수 없습니다. … 개인을 인식 공격하려 한 것이 아니라 … ××× 편집위원의 질의가 분명 김공회 선생 본인에게는 불편하게 느낄 수 있겠지만, 맑스주의 경제학자로서 김공회 선생의 학문적 정체성에 대한 비판은 아니었습니다. … ××× 선생의 질의는 다른 한편으로는 김공회 선생의 이론적 입장과는 무관한 인지자본주의의 이론적 경향에 대한 문제제기였습니다.

참으로 답답하다. 왜 나에게 ×××의 ‘진심’을 설명해주려 하는가? 그것은 내 관심사가 아니다. 나는 그의 ‘표현’을 문제삼는 것이다. 대체 왜 ‘영국에서 유학을 하신 분’이라는 표현이 필요하냐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조정환 선생이 ‘영국에서 유학을 하지 않은’ 마르크스경제학자랑은 토론해도 괜찮다는 것 아닌가? 흔히 ‘인신공격성 발언’이란 이런 것을 가리키는 거 아닌가??

(2) ‘인신공격’ 문제에 대해선 이쯤 해두자.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사과/해명을 요구하는 이메일에서 나는 분명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신공격성 표현을 포함, 위 발언에 대해 ××× 선생님께서 제게 개인적으로 사과하시기를 원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제기한 문제는 ‘인신공격’만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왜 저런 애를 저기 앉혀놓고 토론을 하고 있느냐’라는 발언을 다름 아닌 나를 초대한 {문화/과학} 편집위원회의 일원이 했다는 사실이다. 아무래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그리고 아무리 토론회에서 내가 개떡같이 굴었다손 쳐도, 나를 초대하기로 했다면 이런 말을 하면 안 되지 않나? 다른 사람도 아닌, ‘편집위원’께서 말이다. 사람 가지고 노나???

(3) {문화/과학} 편집위원회는 ‘해명’에서 나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도리어 나를 비난하고 훈계까지 하고 있다. 이건 좀 웃긴데, 다음을 보라.

… 다만 ××× 선생의 질의 안에는 당일 날 토론회에 임한 김공회 선생의 냉소적인 토론 태도에 대한 개인적인 문제제기가 포함된 것은 분명합니다. … 본인이 지적했듯이 토론회의 매끄럽지 못한 진행에 대해 불만을 제기할 수 있겠지만, 아무리 토론회의 진행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해서, 토론회에 소극적으로 참여하거나 상대방의 발언을 경청하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신 것은『문화/과학』편집위원으로서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마이크 배치에 대해서도 문제제기 할 수도 있지만, 당일 토론회 중간에 의사 진행 발언을 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가 있었고, 비록 후반부이긴 하지만 실제로 사회자였던 △△△ 선생은 김공회 선생에게 마이크를 전해주면서 발언할 기회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토론회 현장에서 본인의 발언을 통해서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었으면 좀 더 원활한 진행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생각해봅니다.

‘냉소적인 토론 태도’, ‘상대방의 발언을 경청하지 않는 듯한 모습’. 내가 그날 정말 그랬는가와는 별도로, 나는 다른 데도 아니고 자그마치 {문화/과학} 편집위원회에서 이런 사항들을 근거로 사람을 비난한다는 게 놀랍고 놀랍다.

길게 갈 것 없이, 두 가지만 말하고 끝맺겠다. 첫째, 위에서 지적되고 있는 ‘태도’와는 별개로, 나는 시종일관 나름대로 ‘겸손한 마음가짐’으로 토론회에 임했다. 이것은 내 양심에 대한 문제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란 소리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후기’의 한 구절을 보라.

… 사실 이번 토론회에 나선 유일한 이유는 바로 청중 때문이었다. 즉 그 자리에 직접 와주신 좁은 의미의 청중은 물론이고, 나중에 다른 어떤 형태로 그 토론회를 간접경험할 넓은 의미의 청중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그러나 플로어에서 나오는 질문들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 그들이 ‘가치’에 대해, 좀 더 일반적으로는 ‘경제’나 ‘경제학’에 대해 매우 단순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그에 대해 전혀 거리낌이 없어 보였다 … 결국 마무리 발언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제학을 공부하는 저로서는, 몇 안 되는 여러분들 앞에서조차 철학이니 정치니 하는, 제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발언하는 게 정말 부담스러운데, 여러분들은 경제에 대해 너무도 쉽게 이야기하시는군요.”

여기서 큰따옴표로 묶인 것은 내가 나중에 재구성한 내 발언인데, 녹취록을 보니 현장에서 했던 것과 대충 비슷했다. 암튼, 만약 이 말조차 싸가지없어 보인다면 나는 더 할 말이 없다.

(4)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때때로 ‘냉소적인 토론 태도’와 ‘상대방의 발언을 경청하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은, 그러니까 나 나름의 ‘계산’에 따른 철저하게 ‘정치적인 행위’였다. 내가 거짓말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혹시 있다면, 그날 촬영된 영상을 보여드릴 수도 있겠다. {문화/과학} 편집위원회가 말하는 그 싸가지없는 모습을 내가 처음부터 보였던 건 아니다. 토론회가 진행되면서, 어느 순간부터 내 앞에는 다음과 같은 상황이 펼쳐졌다: 애초부터 나에게 호의적일 것 전혀 없는 분위기, 청중석엔 날파리들 난입, 이제 막 입문한 초짜가 ‘업계’의 고수와 겨뤄야 하는 난감한 상황, 그러나 그 ‘고수’는 주어진 토론 주제에 적절치 않아 보이는 헛소리를 일삼고 있고, 사회자는 고개 푹 숙이고 전혀 진행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고, 나를 초대하는 과정에서 이메일과 전화로 직접 나를 응대했던 편집위원은 앞줄에 앉아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고, 하지만 마이크는 하나뿐이어서 내가 끊고 들어갈 수도 없고, 그래도 그냥 끊고 들어가자니 토론회의 규칙을 어기는 것 같아 안 되겠고… 이런 나름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선택할 수 있는 ‘행위’가 바로 그 ‘냉소적인 토론 태도’와 ‘상대방의 발언을 경청하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그것은 ‘정치적’인 것이었던 거다.

앞서 ‘입장’에서 {문화/과학} 편집위원회는 내게 토론회에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던데, 나의 위와 같은 ‘태도’가 내 ‘개입의 방식’이었다. 그걸 이해 못한 것은 내 책임이 아니다.

5. 끝

바로 이 마지막 문제와 관련, 나는 ‘아, {문화/과학}도 이제 끝이구나’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행위의 이면에 있는 정치적 맥락을 읽어내는 것은 좌파적인 지향의 문화이론이 갖는 기본적인 입장 중 하나라고 나는 알고 있다. 또한, 그러한 행위들의 의미를 판단함에 있어 낡은 관습이나 도덕률과 같은 통념에 의존하는 태도에 비판적인 것도 그러한 기본입장에 포함된다고 나는 믿는다. 그런데도 {문화/과학} 편집위원회의 위 ‘입장’은, 적어도 내가 보기엔, 바로 그 구태의연한 ‘통념’에 입각해서, ‘맥락’을 완전히 제거한 채, 내 ‘행위’의 겉면만을 두고 판단하고 있지 않은가? 과연 이 꼰대님들, ‘쥐벽서’의 제작자들을 준엄한 ‘법’의 이름으로 심판했던 검사들과 무엇이 다른가?

해서 나는 ‘아, {문화/과학}도 이제 끝이구나’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나도 이쯤에서 관두려 한다. 이미 끝인 잡지와 싸워 무엇 하겠는가. 즐겁게 이별을 고하면 그만이다. (끝)

[후기/토론회] 인지자본주의에서 ‘가치’와 ‘주체’의 문제

계간지 {문화/과학}에서 주최하는, “제1회 문화과학 ‘북 클럽’ 논쟁: 인지자본주의에서 ‘가치’와 ‘주체’의 문제”라는 제목의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여했다. 토론자는 나와 조정환 선생, 심광현 선생, 이렇게 셋이었다. (웹자보)

그러니까 애초 기획은, 조정환의 책 {인지자본주의}에 대해 나와 심광현이 ‘가치’와 ‘주체’라는 두 측면에 각각 주목해서 토론을 펼치는 것이었고, 내가 이해하기로는 그 책을 대상으로 두 명의 토론자가 주로 ‘공격’을 하고 저자인 조정환이 ‘방어’를 하는 형식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결과는? 일단, 심광현 선생께서 개인적인 사정으로 토론회에 못 나오시는 ‘사고’가 났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나와 조정환, 이렇게 양자구도로 갈 수밖에 없었는데, 전체적인 느낌은 그곳이 ‘토론회장’이었다기보다는 조정환의 ‘정견발표장’ 같다는 거였다. 물론 그렇게 된 데는, 토론자인 내 책임도 일정하게 있었음을 부인하진 않겠다.

다음은 나의 간단한 후기다. (물론, 매우 주관적일 수 있는 후기이며, 다른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할 수 있겠다.)

*                      *                      *

예전에 무슨 토론회 자리(아마도 ‘맑스 꼬뮤날레’였던 것 같다)에서 한번인가 본 것 빼고는 조정환 선생이 말하는 것을 직접 본 적이 없다. 그만큼 그에겐 관심도 별로 없었고, 내가 그에 대해 가진거라곤 몇몇 이미지뿐이었다. 그 이미지, 그러니까 조정환 하면 평소에 떠오르던 이미지는 이런 거였다. 뻔뻔스러움, 무지, 무시, 열등감, 그리고—이게 백미인데—이상의 모든 악덕들을 커버해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그 어떤 ‘영성적’ 아우라. (특히 이 마지막 것은 토론회에 왔던 누군가도 얘기했던 것이기도.)

이번 토론회를 거치면서 나는 위 이미지들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내겐, 이번 이벤트가 (지루하긴 했지만) 무엇보다 ‘lots of fun’이었다. 하지만 그는 실질적으로 나의 문제제기에 단 하나의 제대로 된 답변도 내놓질 않고, 이리저리 피해다니길 일삼았을 뿐이다. 아니, 그는 자신의 답변을, 지금 자신이 집필중이라는 책에서 길게 내놓을 것이라는, 상당히 ‘민망한’ 책광고로 대신했을 뿐이다. 물론 나는 이 답변을 그다지 읽어볼 필요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이번 토론 덕분에 더더욱.

하여튼 이번 이벤트는 결코 ‘논쟁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게 조정환 선생의 잘못이라 생각하진 않는다(그는 그냥 ‘그’였을 따름이다). 다름아닌 행사를 주최한 {문화/과학}쪽의 문제였다. 그들은 그 자리를 ‘토론회’로 만드는 데 완전히 실패했고, 특히 내겐 엉뚱한 질문을 내놓기도 했다(도대체 조정환이 말하는 ‘명령(가치)’가 뭐냐는 설명을 왜 나한테 요구하냐고! 저도 사실은 그게 뭔지 잘 모르겠어요.. 엉엉). 그들은 조정환 선생의 지루하기 그지없는 하나마나한 발언을 전혀 제지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5시에 마치기로 예정되었던 토론회는 토론자 중 한 명이 빠진 데다가 ‘토론자들 간의 토론’이 거의 없었는데도 무려 6시 반이 되어서야 끝이났다. 덕분에 난 오줌보 터지는 줄 알았고. ㅎㅎ 그밖에 개인적으로 상당히 기분나쁜 일이 있었는데, 당시엔 바쁜일이 있어 그냥 나왔지만 이에 대해선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할 예정이다.

청중은 어땠는가? 사실 이번 토론회에 나선 유일한 이유는 바로 청중 때문이었다. 즉 그 자리에 직접 와주신 좁은 의미의 청중은 물론이고, 나중에 다른 어떤 형태로 그 토론회를 간접경험할 넓은 의미의 청중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그러나 플로어에서 나오는 질문들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 질문들을 내놓은 이들이 ‘가치’보다는 ‘주체’에 더 관심이 많았다는 것은 전혀 문젯거리가 아니었다. 문제는, 그들이 ‘가치’에 대해, 좀 더 일반적으로는 ‘경제’나 ‘경제학’에 대해 매우 단순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그에 대해 전혀 거리낌이 없어 보였다는 것이다(예컨대, 조정환은 현재의 부동산거품을 ‘인지적 요소’에 따른 고평가라고 불렀다ㅋ). 이건 그러니까, ‘나는 경제(학)에 대해 관심이 없다’라는 정도가 아니라(이건 괜찮다), ‘경제(학)이란 게 결국 이렇지 않냐’라는, 경제학에 대한, 그리고 현재 전개되고 있는 세계경제/한국경제의 상태에 대한 매우 ‘강력한 판단’이었던 거다. 결국 마무리 발언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제학을 공부하는 저로서는, 몇 안 되는 여러분들 앞에서조차 철학이니 정치니 하는, 제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발언하는 게 정말 부담스러운데, 여러분들은 경제에 대해 너무도 쉽게 이야기하시는군요.” 물론 모든 청중이 다 이랬다는 건 결코(!) 아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분위기는 그랬다.

끝으로, 조정환이 내 질문에 답변을 아주 안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은 밝혀야겠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그는 두 가지 답변을 했다. 답변의 적절성에 대해선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서 판단해주시리라 믿는다.

(1) 인지자본주의론자들은 마르크스의 가치이론이 갖는 복합적인 성격, 복잡한 구조를 오해하고, ‘가치’의 문제를 모조리 {자본론} 제1권 제1장의 수준에서 이해하고 부당하게 기각한다는 내 질문에 대해: “나 {자본론} 열심히 읽었다. 옛날에 도망다니면서 얼마나 열심히 읽었나 모른다. 아마 내가 웬만한 경제학자들보다 {자본론}에 대해 잘 알껄?” (그렇게 잘 아는 사람이 왜 그러냐고요 ㅠㅠ 물론 이 얘길 그는 어려웠던 지난날의 감상에 젖어 매우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2) 인지자본주의론이 내놓는 인지/삶정치/비물질/정동 등의 노동들은, 처음엔 그저 고도로 복잡한 과학기술노동 정도를, 그러니까 ‘지식노동’을 의미했을 뿐이지만 점차 간병인, 가사도우미, 전화교환원 등도 포괄할 수 있도록 의미확장을 했다. 이와 같은 확장 자체가 상당히 심각한 이론적 무리수이기도 했지만, 그것을 통해 예컨대 ‘대졸/남성/20대 컴퓨터 프로그래머’와 ‘중졸/여성/50대 간병인’을 하나의 범주로 두는 것이 경제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는가? 또한 정치적/주체적 차원에서 보더라도, 중요한 것은 이런 식으로 ‘간병인’을 (무슨 꼭두각시 내세우듯이) ‘이론적 주체’로 만드는 게 아니라 ‘현실적 주체’로 만드는 일이지 않은가? 라는 내 질문에 대해: “무슨 소리냐! 나는 결코 간병인이 프로그래머보다 못난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선 그렇게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에 있는 분들이 더 훌륭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전형적인 논점흐리기! 졸지에 난, 근20년간 청소부, 가사도우미였던 내 어머니, 현재 간병인 일을 하시며 간밤에 환자들 똥오줌 치우는 내 가장 친한 친구의 어머니의 잠재력을 깔본 패악무도한 놈이 되었다ㅎㅎ)

이 정도면 코미디감도 못 된다. 요새 ‘개콘’, ‘코미디 빅리그’가 얼마나 재밌는데! (끝)

p.s. 내가 올초에 인지자본주의론에 대한 비판 논문을 {마르크스주의 연구}에 냈기 때문에, 내가 이번 토론회에 불려나간 것이다. 이번 토론회 때문에 그 글을 간단히 정리해봤는데, 조만간 그걸 여기 올릴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