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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당선보다 더 큰 문제는 경기 침체

대부분의 전문가들의 예측을 깨고, 그리고 우리의 ‘문명수준’에 대한 많은 선량한 사람들의 믿음을 배반하고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다음 대통령으로 뽑혔다.

그의 당선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를 두고 다양한 해석과 분석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아마도 가장 솔직한 대답은 ‘도무지 모르겠다’라는 것일 듯하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힐러리 클린턴의 열성 지지자였던 폴 크루그먼은 트럼프 당선이 확실시된 뒤 공개된 뉴욕타임스의 칼럼에서 ‘우리는 우리의 나라를 정말 모르고 있었다’라고 한탄하기도 했다.

경선 과정에서 드러났듯 트럼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예측 불가능성’이다. 그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그의 언행이 기존의 ‘정치문법’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어떤 정치적 입장 또는 프로그램에도 입각해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선거결과를 ‘공화당의 승리’라고 할 수도 없다. 부시 전 대통령처럼 공화당의 입장을 대변하는 주요 인물들이 그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공공연히 선언할 정도였다.

특정한 정치적 의제나 가치를 중심으로 대중을 동원했다기보다 트럼프는 노련한 사업가답게 미국 사회에서 불고 있는 어떤 ‘바람’을 감각적으로 포착해내고 거기에 자신을 성공적으로 던져 넣었다. 그 바람이란 바로 ‘분노’다.

분노는 결코 이성적인 반응이 아니다. 대중이 이성적이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사람은, 분노의 원인이 제거되어 자신의 분노가 풀리기를 이성적으로 원하기도 하지만 뭐라도 한 대 쳐서 당장의 분을 삭일 수 있다면 기꺼이 그러려고 한다. 말할 것도 없이 미국인들의 분노는 현재 미국 경제가 커다란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사실 자체에서 유래한다.

지난 8년간 오바마 행정부는 다른 선진국들의 정부에 비해 경제위기를 잘 관리한 편이지만, 대중이 체감할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실질임금 상승은 정체되거나 뒤집혔고, 지표상의 실업률 하락과는 반대로 장기실업이 일반화되고 있다. 소수의 가진자들의 배만 불리는 현재의 자본주의 경제시스템 전체가 분노의 원인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그런 ‘원인’을 건드린 게 아니다. 그가 한 일은 화난 미국인들의 발 앞에 깡통을 던져준 것이었다. 미국인들은 그 깡통을 힘껏 발로 참으로써 트럼프에 화답했지만, 선거 뒤에도 트럼프가 대중의 분노에 봉사하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트럼프가 ‘침묵하는 다수’라고 불렀던 그들은 이제 다시 침묵을 강요받을 것이고, 미국 대통령 트럼프 앞에는 그들을 분노케 했던 거대한 ‘시스템’이 놓여 있다.

이 시스템의 ‘주인’이 월스트리트 안팎의 자본가들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대중의 분노에 편승하고 동원하기 위해 트럼프가 내놓았던 약속들이 저 ‘주인’의 의사에도 부합한다고 보긴 어렵다. 트럼프 말대로 당장 외국인들을 미국 경제에서 몰아내면 미국의 거대자본에게 좋겠는가.

그런데도 트럼프가 당선된 것은, 현재 체제의 실질적인 주인들도 장기화되고 있는 경제침체 앞에서 ‘속수무책’임을 방증한다. 적어도 그들로서는 대중의 분노가 자신들을 향하는 것보다는 트럼프 같은 이에 의해 엉뚱한 방향으로 해소되는 편이 낫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미국의 선거는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의 싸움이었다기보다는 시스템 자체를 바꿔야 함을 정확히 지적한 버니 샌더스가 민주당 경선에서 떨어졌을 때 이미 끝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또 클린턴의 중요한 패착은 대중의 분노를 진보적으로 받아 안았던 샌더스의 ‘유산’을 적절히 계승하지 못한 것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샌더스가 민주당 후보였더라면 이겼을 것이라는 뜻이 아니다. 하지만 분명 좀 더 핵심적인 문제들이 제기됐을 것이고 ‘싸움’은 좀 더 볼 만했을 것이다.

결국 앞으로 일정한 혼란은 있겠지만, 특히 경제 영역에서는 ‘트럼프 변수’보다는 기존의 ‘장기화되고 있는 경제침체 변수’가 더 중요한 역할을 계속해서 수행할 것이다. 이를테면, 최근 세계경제의 보호주의로의 회귀 움직임은 트럼프 같은 ‘대중추수적’ 정치인들의 선동 때문이 아니고 이른바 ‘자유무역의 이득’이라는 것이 실현될 수 있을 정도로 경제에 활력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제는 그러한 활력을 어떻게 만들어내느냐에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개별적인 자본보다는 각국 정부들과 그들의 세계적 연합체들(국제기구 등)이 전면에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트럼프의 미국 앞에 놓여 있는 가장 중요한 과제다.

(이 글은 뉴스1에 먼저 실린 것으로, 여기서도 볼 수 있습니다. 원문에 사소한 수정을 가하였습니다.)

미국의 ‘재정위기’: 정말 위기인가?

‘재정절벽’, ‘부채천장’, ‘1조달러 동전’… 미국경제에 대해 말이 많다. 보통 사람들은 신문을 봐도 대체 뭔 소리가 오가는지, 어떤 사항들이 문제가 되는 것인지 알기가 참으로 어렵다. 아마도 국내에 나오는 기사들이 대부분 깊고 일관된 분석 대신 단편적인 사실 전달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이 블로그를 거의 혼자서 채워놓고 계신 heesang님의 몇몇 포스팅들이 많은 도움을 드렸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어렵다. 나도 모르겠다. ㅠㅠ 그냥 ‘사실들’ 말고, 개략적인 ‘판단’을 도와줄 수 있는 뭔가가 없을까? 이런 ‘열정적인 어려움’을 가지고 계신 분들께 이 포스팅을 바칩니다.. (-_-)

*                      *                      *

요즘 영국의 경제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가 미국의 재정위기(fiscal crisis)에 대해 이례적으로 크게 다루고 있다(링크). 이번 포스팅에서는 지난 한주 내내 이어지고 있는 이 씨리즈에 대해 간단하게 리뷰하기로 한다.

시작하기 전에… 내용면에서도 얻을 게 많지만, 나는 그 ‘내용’보다도 그들이 그것을 다루는 ‘태도’가 더 재밌다. 무슨 얘기냐면, 그들의 태도란 게 ‘중립성’과는 아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태도는, 굳이 말하면 미국 민주당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렇다고 그것이 민주당의 (공식적이든 사실상이든) ‘기관지’는 아니라는 점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객관성’이 곧 논쟁의 양 당사자 사이를 점하는 ‘중립성’은 아님을 새삼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점은 과거 2007/08년 ‘금융공황’ 당시에 {파이낸셜 타임스}를 중심으로 ‘국유화’ 논의가 퍼져나갔다는 데서도 드러난 바 있다.)

[사족 1] 과거엔 좌파들이 이데올로기에 갇혀 합리성을 잃는다고 종종 여겨졌지만, 오늘날엔 우파들이야말로 이데올로기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가 되었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파이낸셜 타임스}의 이 기사 참조.

[사족 2] 나는 {파이낸셜 타임스}가 겁없이 ‘국유화’를 주장하고 ‘전국민의료보험체계’를 옹호하는 것이 다른 한편으론 노동자계급 운동의 약화의 한 결과이기도 하다고 본다. 경제가 파탄났을 때 노동자들이 중심이 된 성난 대중이 ‘국유화’과 그에 따른 ‘금융시스템에 대한 대중의 통제’를 주장했다고 해 보자. 그랬다면 과연 어떻게 {파이낸셜 타임스} 따위가 감히 ‘국유화’를 옹호할 수 있었겠는가. 여기서 확인되는 또 한가지 교훈은, ‘국유화’라는 것에도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웅.. 잡설은 그만 두고 본론으로…;;; 현재 문제가 ‘재정위기’이긴 하지만 그 주된 원인으로 엄청난 의료비 증가가 꼽히고 있는 만큼, ‘의료체계개혁’도 중요한 한 주제로 다뤄지고 있다.

 

  • 미국의 부채 딜레마, 본질은 무엇인가?

‘엄습하는 위기, 개혁의 기회'(링크)라는 글에서 Robin Harding은 장기적 안목에서 현재 미국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가 무엇인지를 탐구한다. 그는 최근 언론과 각종 SNS의 타임라인을 달구고 있는 ‘재정절벽’이니 ‘부채한도 조정’이니 하는 단기적인 문제들은 결코 중요한 이슈가 아니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미국 재정과 관련된 진정한 선택은 … 나이 든 인구를 위해 돈을 지불할 것인가,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다. 이에 대한 대답이 21세기 미국경제의 성격을 결정할 것이다. … 선택은 부자들에게 약간의 세금을 더 걷을 것인가, 아니면 째째하게 교육예산을 삭감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미국이 장차 어떤 나라가 될 것이냐에 대한 것이다.

카~ 멋지다. 이런 표현, 배워야 한다. 어쨌든 그는, 현재 말이 많은 재정적자는 그렇게 심각한 게 아니지만 현재 추세대로 2020년에 이르면 심각해질 거라고 본다. 2020년이라면 불과 7년 뒤인데, 그러면 왜 2020년이냐? 바로 그때에 이르면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가 70대가 되어 의료비가 급등할 것이기 때문이다. 무슨 얘기냐면, 글쓴이는 장차 미국의 재정에 가장 큰 위협요인으로 의료비, 그 중에서도 은퇴자를 위해 제공되는 ‘메디케어’를 꼽고 있다는 것인데…

이러한 잠재적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그는 (1) 재정지출 감축, (2) 증세, (3) 의료체계 개혁 노력 등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말한다. 뭐 논리는 간단하다. 첫째, 재정균형을 위해 재정지출을 줄이는 것이 고려되어야 하겠지만, 그것은 현재와 같이 고령화가 진행될 때에는 가능하지도 않고 (경제성장에 부정적이므로) 바람직하지도 않다. 여기서 특기할 것은, ‘선별적 복지’가 힘을 얻고 있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세계적으로는(즉 선진국에서는) 부자들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보건재정지출에 찬성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둘째, (메디케어나 사회보장을 주장하는 민주당 인사들이 암묵적으로 지지하는) 대규모 증세는 가능하긴 하지만 바람직하진 않다. 미국의 경우, 국제표준에 비해 낮은 소비세 등을 높이는 것, 그러니까 제한적 증세는 바람직하지만 자칫 무분별한 증세는 성장동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그보다 더 시급한 것은 잘못된 과세체계를 바로잡는 일이며, 이는 (세수증대에도 기여하면서 동시에) 성장동력도 될 수 있다.

끝으로, 향후 미국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의료비용을 잡아야 한다. 현재 미국은 국내총생산(GDP)의 17.4%를 의료비(공공+민간)에 지출하고 있는데, 이는 OECD평균(9.6%)를 훨씬 넘는 수치다.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여기서 핵심은 ‘환자들이 불필요한 처방을 요구하거나 의사들이 그것을 제공할 유인을 없애는 것’이다. 요컨대, 의사가 단지 환자를 진찰했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의료보험료를 지급하는 게 아니라 이를테면 환자의 상태를 개선시켰을 때, 예방적 조치를 취했을 때, 누군가를 일년 동안 꾸준히 돌봤을 때 지급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다듬을 수 있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의회가 메디케어 비용에 대해 공격적인 제한을 두고 이를 증세와 정부지출 감축으로써 뒷받침할 수 있겠다… 미국을 위협하는 재정적 도전은 엄청나다. 그러나 만약 워싱턴이 오늘날의 재정적자에 대한 집착만 거둔다면 그 도전은 해결될 수 있다.

 [사족] 이상과 같은 기사가 나오자, Paul Krugman이 환호성을 질렀다. ‘씨바, 그게 내가 오래전부터 했던 얘기잖아’라면서(링크). 하여간 재밌고 유쾌한 사람이다. :)

 

  • 미국의 재정적자, 진짜 문제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별 문제 아니라는 평가를 중심으로 기획이 짜여졌다. 먼저 앞서 소개한 Harding의 글과 같은 맥락에서, 씨티그룹의 Peter Orszag은 재정지출이 아니라 보건의료체계가 문제라고 주장한다(링크). 한편 오래 전부터 민주당 정권의 경제자문역으로 활약해온 Lawrence Summers는 재정적자가 문제라고는 해도 그에 대한 집착이 경제성장을 방해할 정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링크).

Summers에 따르면 현재 미국은 재정적자(fiscal deficit) 말고도 다양한 ‘deficit'(결핍)에 시달리고 있는데, 후자를 해결하기 위해 전자에 대한 문제제기는 일정 정도 보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그는 현재 미국은 ‘사회기반시설 결핍'(infrastructure deficit)이 심각한데, 만약 (단기적으로 재정적자 증가를 감수하고) 여기에 재정을 투입해서 일정한 경제성장을 이뤄내고 그 결과 세수를 늘릴 수 있다면 재정적자는 오히려 완화될 수도 있다는 논리다. 더구나 현재 세계적으로 저금리 상황이므로 대규모 투자를 하기에 좋은 시기이기도 하다.

[사족] 하버드대 교수이기도 한 Summers의 이러한 견해는 최근 국내 일간지에도 소개된 바 있다(링크). 이런 주장이 한편으론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좌파들에게 유의미할 수는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MB의 ‘사대강 악몽’을 연상시키는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현재 한국 상황에서는 그와 같은 정부의 경기부양책은 ‘부동산 시장의 억지 부양’과도 일정 정도 연결되어 있다고 하겠다. 따라서 그런 의견에 무조건 따라서는 안 되며, 왜 유독 {매경} 같은 보수경제지가 그런 주장을 선전하는지도 생각해볼 일이다.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Martin Wolf의 주장은 가장 강력하다. 벌써 제목부터가 ‘미국의 재정정책은 위기에 처하지 않았다’다(링크).

미국은 국내외에서 엄청난 도전들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미국의 재정상태는 그 중 하나가 아니다. 이는 매우 논쟁적인 진술이다. 워싱턴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란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미국 연방정부가 파산 직전에 있다고 결론짓는 것도 물는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그렇다. 미국이 장기적으로는 재정적 도전에 직면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는 대부분 미국이 가지고 있는 비효율적인 보건의료체계에서 치솟는 비용 때문이다. 그렇다. 미국이 재정정책을 둘러싼 날선 논쟁의 와중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은 국가의 역할을 둘러싼 철학적 견해차이 때문이다. 그렇다. 미국이 단기적으로는 대규모 적자재정을 운용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은 금융위기의 결과이다.

아.. 글이 완전 물이 올랐…;; 위에 요약된 대로, 결국 그는 현재 마련되어 있는 정부재정운영에 대한 법안들만 제대로 실행해 재정을 좀 더 건전하게 운영하고, 동시에 의료체계개혁을 단행하면 문제될 게 없다고 보는 것이다. 현재 이른바 ‘재정위기’라는 것이 근본적으로는 금융위기의 결과이므로, 문제는 금융위기에 의해 파탄난 경제를 회복시키는 것이고, 이때 정부의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우리의 Wolf 선생의 의견이다.

흠… 이상과 같이, 대체로 {Financial Times}는 현재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동, 즉 미국 의 재정적자가 심각해 연방정부가 거의 파산 직전에 있다는 문제제기에 대해, ‘근거없음’이라는 판정을 내리고 있다. 그러니 재정절벽(fiscal cliff)이나 부채상한조정(debt ceiling) 등의 문제는 경제적이라기보단 정치적인 이슈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재정적자 문제가 심각하게 불거질 수도 있는데, 현재와 같은 비효율적인 의료체계가 지속된다면 특히 그러하다. 따라서 이른바 ‘오바마케어’와 같은 의료개혁을 통해 공적 및 사적 의료체계를 효율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주석] 여기에서 우리는 이른바 ‘복지국가’의 핵심적인 요소인 ‘사회적 의료체계’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되새겨보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의료를 공공재로 보고 국민의 건강을 공적으로 관리함으로써 사회적 삶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또한 동시에 자본주의 체제의 효율성을 높여주는 기제이기도 하다. 현재와 같이 좌파가 지리멸렬할 때 미국과 한국에서 심지어 우파들까지 나서서 옹호하고 있는 ‘공공의료’란 그럼 어느쪽일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현재 미국의 재정, 즉 세입과 세출 구조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문제들은, 이번 {파이낸셜 타임스}의 씨리즈의 세째날과 넷째날에 다뤄지고 있다. 특히 우리에겐 {이번엔 다르다}라는 책으로 친숙한 하버드의 경제학 교수 Kenneth Rogoff는 현재 미국의 재정위기의 뿌리에 있는 다양한 문제들—미국의 세계경찰역할 전망(국방비), 정부역할에 대한 이견, 인프라 투자, 이민, 보건의료 등—을 들춰내면서, ‘정부의 과세와 지출과 관련해서는 얼마나뿐 아니라 어떻게도 매우 중요하다’라는 상식을 새삼 일깨우고 있다. 그는 앞서 소개한 다른 논자들보다는 훨씬 비관적인 전망을 가지고, 세상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이번만큼은 미국이 적절한 해결책을 찾아내기 어려울 것 같다는 조심스런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주석] Rogoff 교수에 대해서는 {조선일보}에 몇년 전에 난 기사에 잘 소개되어 있다(링크). 체스 특기생으로 대학에 갔다는 게 재밌다ㅋ 더불어 {이번엔 다르다}에 대한 저자 자신의 간략한 설명도 얻을 수 있다. 이 책에 대해서는 {프레시안}에 실린 조원희 교수의 서평도 볼만하다(링크).

으아… 일단 이 정도로 해 두자. 씨리즈가 언제까지 계속될 지는 모르겠지만, 필요하면 앞으로 한두번 더 포스팅해보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만으로도 대충 ‘음.. 이렇게 돌아가고 있군’이라는 감은 잡으셨을 줄로 안다.

그러니까 결론은 (버킹검!-_-) 재정절벽이니 뭐니 하는 것은 모두 ‘dog sound’라는 것. 물론 이상의 논의가 노동자계급에게 함의하는 바는? 이라는 매우 심오한 물음을 가지신 분들께는 별 도움을 드리진 못할 것. 그에 대해선 나를 포함한 모든 이들이 앞으로 머리를 맞대봐야 할 것이다. (끝)

Shiller의 매경 인터뷰: 미국경제에 대해

약 일년 전쯤에 미국 예일대의 로버트 실러 교수의 글을 소개한 적이 있다. 그때 그는 미국 정부가 적극적인, 그리고 “제대로 된” 제정정책을 써야만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최근 이와 비슷한 얘기를, 그러나 더욱 높은 수위로 국내의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했다.

그런데 여기에, 몇 가지 재밌는 점들이 있다. 꼽아보자.

 

1. 제목이 참으로 웃긴다.

이 인터뷰가 실린 {매일경제} 홈페이지를 보면 세 개의 기사가 검색되는데,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야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어느 것 하나 내용을 제대로 반영하질 못하고 있다. 이 세 기사를 입력된 시간순서로 보면 다음과 같다:

(1) “美 증시 여전히 고평가 상태…일본식 장기불황에 빠질수도” (기사입력 2011.09.14 17:18:34)
(2) 로버트 실러 교수 “美집값 5~10년 더 빠질수도” (기사입력 2011.09.14 17:52:01)
(3) 로버트 실러 교수, “美경제, 장기침체로 갈수도” (기사입력 2011.09.14 17:59:59)

첫 번째 것은 인터뷰를 그대로 번역한 것 같고, 두 번째 것은 인터뷰를 요약/정리한 것이며, 세 번째 것은 둘을 짬뽕한 거다. 결국 지면엔 (1)이 나간 것 같은데… 그래도 이건 좀 낫다. 하지만 어찌보면 신문사의 “의지”와 “논조”가 가장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될 (2)를 보라. 욕도 안 나온다. 그저 천박(친박?)하단 생각뿐…

 

2. 인터뷰 질문이 정말 웃긴다.

처음엔 괜찮았다. 하지만 중간 이후부터 완전 지멋대로다. 그래도 명색이 “대학 교수”다. 그런 사람한테 물어볼 게 따로 있는 거다. “어떤 자산배분을 권고하는가”냐니!! 그런데 난 대답이 더 웃기다. “… 농장이나 토지 투자도 검토할 만하다”!!! ㅋㅋㅋ 뭐 {매경} 즐겨보는 한국의 투자자들이 실러교수의 충고를 그다지 귀담아 듣지는 않을 것 같지만… 농장이라… ㅎㅎ

 

3. 그래도 이 인터뷰에서 건질만한 게 없는 건 아니다.

내가 보기에 이 인터뷰의 핵심은 다음 대목에 있다. 아마도 실러 교수도 여기에 가장 힘을 주었을 것 같다. 어차피 다른 부분은 누구나 하는 얘기이기도 하고.

-글로벌 침체를 막을 대책은.

▶미국은 여전히 정책수단을 갖고 있다. 바로 재정정책이다. 많은 사람들이 부채위기와 재정지출 증가는 양립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증세와 지출 증가를 병행하면 가능하다. 선거를 앞두고 증세가 어려울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미국인들은 재정지출을 통한 경기 부양을 원할 것이다. 특히 지금이 미국도 중국처럼 고속도로나 지하철 등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할 적기라는 데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통화정책은 한계에 달했다.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예상되는 ‘오퍼레이션 트위스트’의 실효성은 의문이다. 이미 단기금리는 초저금리이고, 10년 만기 장기 국채 금리도 3% 미만이다. 통화정책은 이미 `약발`이 다했다. 지금 재정정책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앞에서 기사 제목이 웃기다고 한 것도 이런 것을 두고 한 말이었다. 이 글 맨앞에서 링크한 예전 포스트에서도 내가 소개한 바 있듯이, 실러 교수는 꽤 일관되게 증세와 재정정책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는 대표적인 학자 중 하나다. 그런데 위 대목에선 좀 더 과감하게 “지른다”. 고속도로나 지하철이라니…! 오우, 멋지다(진심).

위 대목에서 드러나듯, 그는 재정정책을 옹호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현재 미국 정부에 의해 일관되고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금융통화정책에 강한 불신을 나타내고 있기도 하다. 특히 위에서 그는, 현재 전세계가 주시하고 있는 ‘operation twist’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회의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은 꽤 흥미롭다.

하여간에… 위 인터뷰에서 실러 교수는 이런 엄청나게 중요한 말을 했다는 거고(뭐 어차피 그래봐야 일개 학자의 ‘말’일 뿐이긴 하지만), 그걸 보도한 {매경}은 멍청한 건지 교활한 건지… 그런 부분을 전혀 부각하지 않았다는 거다. 물론!! 이것은 단지 기사의 제목을 잘못 지었다는 게 아니다. 앞서 링크된 셋 중에서 신문사가 자체제작한 (2)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이상과 같은 사항은 일언반구도 없는 것이다.

 

4. 끝으로 미국 빈곤율 상승에 대해

위 인터뷰에서 실러 교수도 이를 언급했고, (그나마 친절하게도) 링크된 (2)나 (3)을 보면 이에 대한 좀 더 상세한 설명이 나온다.

일단 재밌는 게 4인가족의 연소득이 2만2천달러 이하면 미국에선 빈곤층이 된다는 것. 단순비교하긴 좀 그렇지만, 우리의 두배쯤 되는 것 같다(정확히 확인은 안 해봤다).

어쨌거나 최근에 발표된 빈곤층이 늘었다는 센서스 자료가 미국에서 화제가 되는 모양이다. 이를 좀 더 이해하는 데 이런 글을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인종과 관련된 건 그렇다 치고… 의료보험 가입되지 않은 사람이 거의 5천만.. 남한의 인구에 달한다는 것은 좀 충격적이다…)

 

빈 라덴의 죽음과 미국, 파키스탄

빈 라덴의 죽음에 대해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봤다.

– 오사마 빈 라덴의 죽음. 그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가 사살되고 얼마 후, “미군에 사살된 것이 빈 라덴 최후의 승리”라는 제목의 기사를 봤다. 그때는 이 기사가 참 좋다고 생각했다(링크: 프레시안). 분명 좋은 포인트를 잡아내고 있는데, 어딘지 좀 부족했다.

– 아무래도 그를 죽인 주체, 즉 미국이라는 국가는 그를 죽임으로써 무엇을 노렸던 것인가를 먼저 물어야 할 것이다. 오사마 빈 라덴을 만약 누군가가 죽인다면, 그게 누구여야 할까? 음, 주관식은 너무 뜬금없나. 객관식으로… 오바마와 부시 중에서 누가 죽이는 게 더 ‘자연스러워’ 보일까? 아마도 열명에 아홉은 부시라고 대답할 것. 따라서 이번 ‘작전’을 두고, (우리로 치면 노무현이 집권하는 동안 노동자들에게 보인 태도와 비슷하게) 오바마의 (부시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진짜 정체’가 드러났다고 흥분하는 것도 지나친 게 아니다(링크: 레프트21).

– 뭐, 좋다. 오바마 행정부의 제국주의적 본질, 다 좋다. 근데, 왜 ‘굳이’ 죽였을까? 부시도 후세인을 죽이지 않았는데. 죽이지 않고 재판에 부쳤는데… 처음엔 이런 의문이 꽤 컸는데, 생각해보니까, 일단 빈 라덴의 은신처를 덮치는 작전을 수행하기로 한 이상 죽이는 것은 불가피했던 게 아닐까 싶다. 이렇게 보면, ‘생포할 수 있었는데, 왜 죽였느냐’는 일종의 ‘생트집’ 같아 보인다. (생각해보면, 빈 라덴이 생포당하는 것은, 미국으로서도 골치아픈 일이겠지만, 알카에다 입장에서도 그다지 좋을 게 없어 보인다. 만약 그를 미군이 생포하려 했다면, 다른 조직원이나 빈 라덴 자신이 이를테면 그 은신처를 폭파시켜 자폭하지 않았을까.)

– 따라서 문제는 다시: 왜 그럼 미국은 빈 라덴의 은신처를 덮치는 작전을 수행했는가. 아무래도 여기서 미국 내부 사정을 떼놓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돈’에 대한 고려가 단연 핵심. 예산 문제인데, 2007년 이후 국민경제 전체적으로는 물론이고 특히 국가재정이 심각한 위기에 처했음이 드러나고 있는 미국 국가로서는 국방비 감축 없이는 현재의 위기를 타개할 수 없겠다는 판단이 크게 작용했을 것. 마침 아프간/파키스탄에서 발을 어느정도 빼고 싶었는데, 이번 빈 라덴의 사살은 그것을 위한 좋은 구실이 되었을 게다. “자, 이제, 테러의 원흉이 죽었으니, 우리 이제 발을 (조금은) 빼자!” (링크: 레프트21)

– 그런데 재밌는 건,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오바마가 아주 그냥 ‘현자’로 보이기도 한다는 점(링크: 프레시안). 그리고 이 링크된 이 기사에서도 시사되듯이, 아프간/파키스탄/이라크 주둔군 감축에 대한 현재의 논란은 곧, 미국의 전반적인 군사전략의 변화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까지도 키우고 있는 실정임(링크: POLITICO).

– 다른 한편, 현재의 사태를 파키스탄의 입장에서 보는 것도 중요하다. 여기서 우리는 파키스탄 민중과 정권을 잡고 있는 세력을 구분해야 함. 기본적으로 파키스탄의 집권세력들에게 빈 라덴은 엄청난 ‘경제적’ 의미를 갖는다.

[출처: 여기 (근데 이렇게 pdf 파일의 일부를 내맘대로 복사해 붙여도 되나 몰라;;)]

보다시피, 파키스탄은 미국으로부터 현재 엄청난 원조를 받고 있는데, 9/11 이전에는 한동안 원조가 끊기다시피 한 상태였다는 것. 그 전에도 한동안 원조가 꽤 있었다는 것도 재밌다. 바로 구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관련이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 말하자면, 파키스탄의 권력자들 입장에서는, 자기들 지역을 소란스럽게 만드는 것이 그들 자신에게는 엄청난 이익을 챙길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 이쯤 되면, 9/11 직후 파키스탄 입장에선 빈 라덴한테 “와우~ 여기 은신처가 있습니다. 어서옵쇼!”라고 하는 게 합리적인 게 아니었을까? ㅎㅎ (링크: 프레시안) 결국 미국과 파키스탄 사이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줄다리기는 이런 관점에서 봐야 한다(링크: 프레시안).

– 여기서 다시, 그런 집권세력들의 이해관계가 해당 지역의 민중들의 이해관계와 얼마나 배치되는가가 여실히 드러난다. 오히려 이 집권세력들은, 어떤 면에서는 그와 반대편에 서있는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과 짝짝꿍이 맞아, 실체도 불분명한 종교적 ‘대의’와 관련된 거창한 레토릭이나 민족주의적 감정 등을 민중들 사이에 만발하도록 많은 역량을 쏟아붓고 있는 것.

– 이런 상황은 서방의 ‘제국주의’적일 뿐 아니라 ‘오리엔탈리즘’적인 언론의 먹잇감이 되기가 당연히 매우 쉽다. 이런 데서는, 평소 고상한 논조를 자랑하는 The Economist도 예외가 아니다(링크: The Economist). 하… 그러니까 니들 눈에는 파키스탄 사람들은 음모이론에나 휘둘리는 덜떨어지고 한심한 존재로 보인다는 거잖아!!!

– 여기까지 읽었다면, 대충 빈 라덴, 미국, 파키스탄과 관련해서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어느 정도는 이해되리라 봄. :) 어쨌거나… 이제 얼마 있으면 알라스카에서 빈 라덴 봤다는 사람도 생기겠구만. 즉 그도 이제, Elvis Presley나 Jimmy Hoffa 급의 ‘레전드’가 되는 것도 시간문제겠다 ㅋ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