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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행과 메시: 내 나름의 깨달음

앞에서도 한번 말했듯이 난 아르헨티나 축구선수 메시를 좋아한다. 그렇다고 내가 축구에 대해 뭔가를 대단하게 알고서 그러는 건 아니다. 단지 그의 플레이가 멋져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건, 비틀즈가 리버풀 출신이라는 기본적인 사실도 모른 채 오로지 ‘Yesterday’ 하나 들어보고서는 “난 비틀즈 좋아해요”라고 유난떠는 거랑 별반 다를 바가 없는, 그런 시답잖은 팬심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지난번 한국-아르헨티나 경기 뒤에 나온 분석기사 몇을 보고서 좀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경기를 주의깊게 본 것은 아니었지만, 메시의 활약이 그다지 뛰어나보이진 않았는데, 이튿날 각종 매체에 나온 이른바 ‘전문가’들의 분석기사에서는 하나같이 입을 모아 ‘과연 메시’라며 칭송을 아끼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전문가’들을 비꼬려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그 반대다. 그 기사들을 대충 읽어보니 무슨 소린지 납득이 갔다. 그리고 내가 축구를 보는 시각이란 게 얄팍하기 그지없음을 다시 깨달았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축구를 그 전문가들만큼 깊이있게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건 아니다. 그러고 싶지도 않다. 그래도 내가 보았던 경기를, 나와는 달리 좀 더 깊이있게 분석해주고 핵심들을 짚어주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긴 하다. 그런 믿음직한 ‘해설자’의 존재는, 나같은 축구 문외한도 축구를 한층 더 이해하고 또 즐길 수 있게 해준다. 따라서 우리에겐, ‘메시’도 필요하지만 ‘신문선’, ‘박문성’, ‘차범근’도 필요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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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에 대해서야 신문선/박문성/차범근이 누구보다 더 제대로 이야기해줄 수 있겠지만, ‘김수행’에 대해선 나도 어느정도 이야기할 자격이 있다고 본다.

앞서 이 블로그에도 광고했던 김수행 교수의 강연엘 다녀왔다(정보 링크. 주의: 무료라고 해서 그냥 가면 되는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 홈페이지나 전화를 통해 미리 등록은 해야한다). 김교수의 강연, 정말 오랜만에 들어봤다. 그저그런 내용의 대중강좌라고 생각하고서 나는, 조금 앉아있으면서 대충 분위기나 파악하고 나오려고 했다. 그런데… 그의 강연은 정말이지… 소름돋을 정도로 훌륭했다. 자리를 뜰 수 없었다. 만하루가 지난 지금도, 그 느낌이 살아았다. 그는 정말 대단했다.


사실 김수행 교수가 말을 조리있게 잘 하는 편은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야 할 얘길 빼먹거나 삼천포로 빠져 핵심을 비껴가거나 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더구나 그는 강연하면서 곧잘 흥분하곤 한다. 감정이 격해진다기보단 목소리가 격앙된다. 이건, 대중연사에겐 약이자 독일 것이다. 호소력을 높이기도 하지만, 그 역효과도 낸다.

하여간, 이런 ‘어눌함'(좋게 말하면 ‘꾸밈없음’ㅎㅎ)과 흥분, 언뜻 들으면 어처구니없어 보이기까지 하는 농담(“제 얘길, 빨갱이가 하는 얘기라고 무시하지 마세요. 절 봐요, 사람이 얼마나 좋아보입니까!”)이, 저 무시무시한 ‘경제’에 대한, 그것도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동향이라는 엄청난 주제에 대한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쉽고 간결한 ‘이야기체’의 강연에 덧씌워졌을 때……

글쎄… 모르겠다. 이런 강연이 일반인들에게 어떻게 다가갈까? 쉽고 친절하게 다가갔을까? 흔히 그렇게들 말하긴 한다. 김수행 교수의 강연은 쉽다고. 하지만 내가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다른 데 있다. 그의 (적어도 이번) 강연은, 일반적으로는 자본주의 경제의, 특수하게는 20세기 세계경제 발전의 핵심적인 사항들을, 내가 다른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환상적인 방식으로 풀어냈다.

그런데 짐작컨대, 그의 강연이 환상적이었다고 생각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그러니까… 감히 말하건대, 이 강연은, 앞서 말했던 메시의 경기와 같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이번 경우에 나는 마치… 문외한인 내가 다소 싱거웠다고 생각했던 지난번 한국-아르헨티나 전에서의 메시를, 그러니까 바로 그 똑같은 메시를 보면서 문외한인 나는 짐작할 수 없는 흥분을 느꼈을 예의 그 ‘차범근’류의 사람들의 경우와 같달까. 여기서 그 ‘환상’의 내용들을 시시콜콜 풀어낼 수는 없다. 기본적으로, 내 흥분이 아직도 가시질 않았기 때문이다(이건 한편으로 ‘흥분’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나는 왜 저리 못할까 하는 ‘자괴감’이자 나도 저렇게 되어야 하는데 하는 ‘다짐’이기도 하다). 나중에 적절한 기회가 오길 바랄 뿐이지만, 일단은 ‘준전문가’의 ‘자격’과 ‘권위’로, ‘김수행은 정말 대단한 학자다’라고 분명히 적어둔다.

(그래도 두루뭉술하게 말하면… 김수행 교수의 이야기의 굵직굵직한 흐름에만 주목하면 핵심을 놓치지 쉽다고 말하고 싶다. 실은 그 ‘굵직굵직한 흐름’이란 건 별게 아니다. 이를테면
“전통적 생산적 산업은 좋은 거고, 금융은 나쁜 거다”라는 식의, 어떻게 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 그러나 진정한 핵심은 그런 주장을 그가 어떤 근거로써 해내고 있는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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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가 있어서 행복하다고들 말한다. 솔직히 난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말해주는 ‘전문가’들의 말을 대체로 신뢰하는(trust) 편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믿는(believe) 건 아니다. 그들의 그런 평가는, 내가 메시를 좀 더 주의깊게 보게 만드는, 그리고 그의 플레이를 볼 때 주목해야 할 핵심이 무엇인지를 가리켜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 나는, 그러니까 나같은 문외한도 한층 더 깊게 메시의 플레이를, 나아가 축구를 이해하고 감상하며 거기 개입할 수 있게 된다.

흔히 김수행 교수를 일컬어 대단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내용을 뜯어보면, 그런 ‘경외심’의 실체란 게 기껏해야 노익장(‘저 연세에…’)이나 우직함(‘어떻게 그 오랜 세월 일관되게…’), 친근함(‘참 쉽게 말해…’ = ‘수학이나 공식이 안 나와…’)에 대한 감탄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내가 이번 강연에서 목격했듯이, 그가 진정으로 평가받고 칭송받아야 할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그는 정말로 대단한 현대 경제의 해석가다. 우린, 김수행이 있는 것에 행복해 해야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내가, 일종의 ‘준전문가’로서 하는 얘기다. 이런 평가를 당신은 trust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