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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성노동의 정치경제학적 의의, 또는 그에 대해 생각을 전개한다는 것의 의의

성매매와 관련된 질문이 또 하나 나왔다. 이를 계기로 뒤져보니, 지난 약3개월 사이에 그것과 조금이라도 관련된 글을 4개정도 쓴 것 같고, 그 중 직접적인 관련글은 다음 둘이다.

(a) 성매매 또는 성노동의 경제학적 이해?
(b) 임노동자와 자영업자—그리고 경제학

일단 앞서 내놓았던 나의 논지를 정리해보자. (1)에서는, 일반적으로 섹스산업은 영세하고 낙후되어 있어서 즉 자본주의화의 정도가 낮아서 이 산업 자체는 물론 거기 종사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성격을 규정하기가 까다롭다는 것이 내 요지였다. 그리고 (2)에서는 자본주의 하에서 행해지는 어떤 경제활동에 대한 형태상의 규정은 종종 그런 규정을 통해 기대되는 내용과 괴리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그리하여 오늘날 한국의 농촌에서 농사짓는 노부부를 형식상 “자영업자”라고, 심지어 “자본가”라고 분류하고 또 이런 분류가 그 나름의 타당성을 갖는다 하더라도, 그 노부부의 실제 삶의 내용에 대한 (일종의) 규범적 내지는 정치적 판단은 별도의 기준을 가지고 행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즉 “자영업자”니 “임노동자”니 하는 규정들을 아주 형식적인 차원에서만 본다면, 마르크스는 이를 “경제적 범주의 물신적 이해”라고 비꼬았을 것이다.

이상의 내용을 좀 더 일반적으로, 그러나 “성매매”와 관련해서 풀어보면 이렇다. (1) 성매매의 현실적인 존재 형태가 엄밀한 의미에서의 임노동이 아니라 해도, 그것이 임노동이라고 주장하는 쪽에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2) 따라서 성매매가 (형식적으로든 실질적으로든) 임노동이냐 아니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3) 그렇다면, 우리가 성매매를 임노동이라고 규정하는 것이 갖는 의의를 좀 더 진지하게 따질 필요가 있다.

이런 사항들을 염두에 두면서, 앞서 내놓았던 얘기들을 좀 더 발전시켜 보겠다. 일부분은 앞서 글들을 쓸 때 생략했던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일부분은 위 글들을 쓴 뒤에 생각을 좀 더 발전시킨 결과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래 내용 중에는 앞서 글들과 상반되어 보이는 대목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미리 밝히건대, 이 글에서 어떤 “명확한 결론”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문제” 자체를 좀 더 세공한다는 데 의의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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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얘기는 좀 민감하기도 하고, 어떤 면에선 지나치게 구체적이어서 직접 다루기가 어렵다. 먼저 후자에 대해 말하자면, 만약 “성매매”가 생산적이냐 아니냐, 또는 임노동이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것이 까다로운 문제라면, 그런 질문을 (예를 들어) “버스운전”이나 “자동차엔진제작”에 대해 제기하더라도 까다롭긴 마찬가지다. 까닭은 이런 문제들은 이론적으로 다루기엔 지나치게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을 인정해야 하며, 따지고 보면 이런 무능은 모든 이론에 공통적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흔히 현대자동차 노동자를 전형적인 임노동자라고 간주하기 쉽지만, 혹시 그가 행하는 노동은 우리가 흔히 상정하는 “자본주의 하에서의 임노동”이라고 하기엔 너무 복잡하고 지나치게 노동수행자 당사자의 재량이 개입할 여지가 큰 것은 아닌가?

“성매매”라는 규정이 지나치게 구체적이라면, 그것을 이론적으로 다루기 위해선 일정한 추상화 내지는 단순화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성매매”를 포괄할 수 있는 좀 더 추상적인 개념, 말하자면 상위개념이 무엇일까? 흔히 “서비스업”이라고 하고, 나 자신도 앞의 글에서 이런 논리를 차용했다. 뭐… 나쁘지 않다. 많은 측면에서 “성매매 여성”은 (같은 서비스업에 속해 있는) 예컨대 “미용사”나 “안마사”, “식당 웨이트리스” 등과 유사하다.

하지만 논의를 좀 더 깊게 진행시키려면, 위와 같은 일반화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음이 드러난다. 이를테면 앞서 글 (a)에서 나는 “무엇이 ‘섹스워커’를 그와 유사한 성격의 다른 [서비스업] 노동자들과 다르게 보이도록 만드느냐”라고 물었는데, 이 질문이 바로 위의 불만족을 반영하는 것이다. 같은 글에서 나는 “섹스산업은 다른 서비스산업에 비해 자본주의화의 정도가 현저히 낮다는 사실”을 중요한 차이로 들면서도, 정작 이 점을 충분히 발전시키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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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차이점을, “자본에의 고용 여부”라는 문제를 중심으로 풀어낼 수도 있겠다. 만약 성매매를 임노동이라 한다면 거기엔 자본가와 노동자가 있어야 할텐데, 하다못해 동네식당만 봐도 자본가와 노동자가 명확하고 누가 누구에게 고용되어 있는지가 분명한데, 성매매 여성의 경우엔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사실 성매매가 임노동이라고 주장하는 쪽에서조차도 “성매매자의 자본에의 고용 여부”에 대해선 대답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내가 보기엔, 성매매가 임노동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쪽에서 워낙 강력하게 “성매매자는 자영업자다”라고 주장을 해대니까 성매매가 임노동이라고 주장하는 쪽에선 “성매매자는 자영업자가 아니다”라고 반박하는 수준에서조차도 (매우 불충분하게) 성매매자의 “임노동자성”을 근거지을 수 있게 되는 것도 같다(꼭 그렇진 않겠지만). 즉 “자영업자가 아니니까 임노동자”라는 식으로. 요컨대, “성매매자의 자본에의 고용 여부” 문제엔 크게 두 가지 문제가 결부되어 있다는 얘기다: (1) 성매매자는 자영업자인가, 아니면 어딘가에 고용되어 있는가? (2) 만약 성매매자가 고용되어 있다면, 그를 고용한 주체는 자본인가? 여기서 우리는 (1)에 대해선 매우 자신있게 “어딘가에 고용되어 있다”라고 대답할 수도 있겠지만, (2)에 대해선 머뭇거리지 않을 수 없다. 즉 성매매 여성을 고용한 포주를 과연 자본가라고 할 수 있는가?!

이 대목에서, “생산수단을 독점해 노동자를 고용하는 게 자본”이라는 교과서적인 대답을 내놓는 것은 큰 도움이 안 된다. 이렇게만 보면, 포주는 자본가 맞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이것을 안다. 사실은, 이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의심을 떨칠 수 없는 것이다. 왜일까? 내가 보기에, 그 “의심”의 근원은 바로 성매매업이 (1) 실정법에 위반되고 (2) 도덕적으로도 구리며 (3) 이상의 이유로 “사회적 주권”을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성매매가 “서비스업”에 속한다고 했는데, 이제와 다시 보면 성매매는 “블랙마켓“에 속하는 것 같지 않은가(결국 둘 다일지라도)? 그래서 이를테면 성매매는 마약매매나 불법도박과 더 비슷해 보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포주나 마약밀매조직 보스를 “자본가”라고 부르는 게 타당한가? “블랙마켓”이라는 명칭이 가리키는대로, 오히려 이들은 그저 “경제 바깥에” 있는 것은 아닐까?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기만 하는 것 같다. 이렇게 정리해보면 어떨까? 성매매를 서비스업에 속한다고 보는 것은 성매매에 대한 “노동 형태/수행과 관련된 규정”이고, 성매매를 블랙마켓에 속한다고 보는 것은 성매매에 대한 “사회적 관계와 관련된 규정”이라고. {자본론} 1장을 읽어본 사람들(!)에게 좀 더 익숙한 방식으로 말하면, 전자는 “사용가치”와 관련된 규정, 후자는 “가치”와 관련된 규정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렇게 구분하면, 성매매를 임노동으로 보느냐 여부는 전자보다는 후자에 입각한 문제가 아닌가 한다. 즉 우리가 어떤 노동을 임노동으로 보느냐의 기준으로 전자만을 삼는다면, “가사도우미가 임노동자이므로 주부도 임노동자다”라고 말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보다시피 이건 전혀 엉뚱한 진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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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되면, 성매매 말고 블랙마켓에 대해 얘기해도 될 것이다. 즉 현재의 사회적 관계라는 맥락에서 보면, 성매매자가 임노동자냐는 질문은 미용사가 임노동자냐는 질문보다는 마약거래상이 임노동자냐는 질문과 훨씬 더 가깝다. 그리고 성매매는 우리에게 매우 민감한 사안이므로(대표적인 이유는 “몸” 내지는 “성”이라는 것이 개입되어 있어서), 성매매 대신 마약거래에 대해 말하는 편이 더 자유로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질문은: “먀악거래상은 (또는 불법도박장에 고용된(!) 딜러는) 임노동자인가?”가 되겠다(마찬가지로, “마약밀매조직 보스는 자본가인가?”라는 질문도 가능하겠다). 여기에 먼저 답변을 내린 다음 성매매에 대해 얘기해도 늦진 않을 것이다.

(성매매자와 마찬가지로) 마약거래상 중에는 자영업자처럼 보이는 이들도 없진 않지만 그들은 대체로 거대한 마약밀매조직에 고용된 끄나풀일 가능성이 크다(그냥 영화에 나오는 거 상상해도 상관없다—그게 실제 현실과 일정한 거리가 있다는 건 여기선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성매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마약밀거래는 우리사회에 매우 뿌리깊게 박혀있지만 실정법에 위배되고 도덕적으로 구리며 사회적 주권도 없다. 그리고 성매매와 마찬가지로 그것을 합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상당히 크게 존재한다.

바로 이와 같은 마약거래에 종사하는 이들, 좀 더 일반적으로 “블랙마켓”에 속하면서 누군가에 고용되어있는 이들은 “임노동자”인가? 그들을 임노동자라고 규정하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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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같은 논의들을 깔고서 보면, 성매매의 임노동성에 대한 질문, 즉 좀 더 일반적으로는 어떤 노동이 임노동이냐는 질문은 단순히 그 노동이 자본에 고용되어 있느냐는 형식적인 문제 이상의 것임이 명확해진다. 이 질문은, 자본주의 경제/사회에서 “임노동”이라는 것이 갖는 사회적 의미 전반을 염두에 두고서 접근될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소외(된 노동), 사회적 분업, 노동을 통한 개인들의 상호의존 등등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돌이켜보면, 이런 식의 문제제기가 그동안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가사노동을 둘러싼 논쟁을 들 수 있겠다. 가사노동이란 사회전체의 재생산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없어서는 안 될 필수불가결한 것이지만, 통상적인 의미의 경제에는 속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가사노동이 생산적이냐 비생산적이냐를 두고 실제로 벌어진 숱한 논쟁들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생산성 여부를 따지는 것—그러니까 이런 문제를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일 수도 있다(왜냐하면 이런 논의 자체가 실은 경제 내부에서나 가능한 것이므로. 예컨대 제조업은 생산적, 유통업은 비생산적 따위).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가사노동은 경제 바깥에 있는 것이라고 규정하는 순간, 우리에겐 통상적인 의미의 “경제”와 “경제 외부” 사이의 관계, 또는 “경제”의 재생산에 대해 “경제 외부”가 행하는 기여 또는 미치는 영향, 또는 “경제”의 재생산과 “사회”의 재생산 사이의 관계, 또는 (앞서의 구분을 원용하면) “가치”가 생산/유통/분배되는 “경제”에 대해 그저 “사용가치”만을 생산할뿐이면서도 가치의 일부분이 소비되는 “비경제”가 맺는 관계라는 새로운 문제들이 제기될 뿐이다. 그리고 이런 새로운 문제들은, 통상적인 경제의 영역만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경제학 이론에 대해 새로운 도전을 제기하고 새로운 발전의 계기를 제공하며, 궁극적으로는 “경제”라는 것 자체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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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애초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성매매는 (형식적으로든 실질적으로든) 임노동인가? 그렇다고도 할 수 있겠고, 아니라고도 할 수 있겠다. 또는 성매매에 대해 그런 질문을 제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대답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근거로 그런 대답을 내놓느냐이고, 더 중요한 것은—만약 우리가 이런 질문/대답에 일정한 이론적 의의를 부여하고자 한다면—그런 대답이 기존의 이론에 어떤 발전계기를 제공하는지를 밝히는 일이다. 한편, 앞서 질문해주셨던 whee님은 성매매가 서비스업에 속하느냐고 물으셨는데, 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덧붙여 말하면, 이 글에서 나는 일정한 정도까지는 서비스업에 속한다고 봐도 좋겠지만, 논의를 더 깊게 진전시키는 데에는 그런 시각이 한계를 갖는다고 말했다).

끝으로, 이 자리를 빌어 일종의 “세태 비평”을 좀 하고자 한다. 이 글에 앞서 H님께서 최근 세계경제의 동향과 그에 대한 해석에 대한 글을 연달아 두 편을 써주셨는데, 나는 모름지기 마르크스주의자라면 성매매보다는 그런 문제들을 먼저 볼 줄 알아야 한다고 진심으로 생각하는 바다. 물론 내가 “성매매”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 개개인을 나무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누군가에겐 그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자 또는 좌파라고 불릴만한 집단 안에서 “세계경제위기”보다 “성매매”에 전반적으로 더 관심이 많다는 것은 상당히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은, “성매매” 또는 “성노동”의 정치경제학적 이해를 위한 하나의 해설이기도 하지만, 그런 시도는 이쯤에서 그만두라는 (그러니까 “성매매” 또는 “성노동”에 관심을 갖지 말라는 게 아니라 그에 대한 “이론적” 이해 시도를 적당히들 해달라는) 정중한 부탁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