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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시민 증세운동’ 비판

며칠 전 경향신문에서 오건호 박사의 글을 따로 뽑아놓았다가 조금 전에 읽었다. 여기서 그는 ‘시민’이 주체가 된 ‘복지국가 운동’을 제안하고 있는데, 꼭 이 글 때문만이 아니라 최근 이와 비슷한 움직임이 곳곳에서 감지되기 때문에 약간의 코멘트를 남겨둔다.

내가 이 글에서 특히 문제삼는 부분은 다음 대목이다. (하지만 글 전체로 보면, 부분부분 수긍 가는 것도 많다.)

복지 확충을 위한 시민 증세운동을 펴자. 시민들은 세금에 대해 두 가지 복합 감정을 지니고 있다. 세금 쓰임새에 대한 불신에 따른 조세 저항과 복지 확충을 위한 증세 불가피성이다. 지금까지 저항만이 강조돼 왔고, 증세는 다음 일로 간주돼 왔다. 당연히 재정지출, 과세형평성 개혁에 박차를 가해야겠지만 이제는 복지국가를 향한 증세도 본격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언뜻 보면 맞는 얘기 같다. 그런데 여기엔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

1. 그가 말하는 ‘시민’이 누구인지가 불분명하다. 예컨대 그가 말하는 시민에는 삶의 재생산이 불가능할 정도의 저임금에 시달리는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 노동자도 포함되는가? 그렇다면 그는, 이러한 노동자들에게도 “스스로 일어나 자발적으로 세금을 더 내라! 그리고 주인이 돼라!”라고 말하는 건가?

오건호 선생이 내가 잘 모르는 동안 정신이 어떻게 된 게 아닌 이상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시민이 아니라고 할 분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십분 양보해서 말하더라도, 다양한 비정규직 노동자들 중에서도 특히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에겐 세금으로 낼 돈이 없는 게 당연하다. 대체 무슨 수로 이들에게 “스스로 세금을 내서 복지를 누리자!”라고 설득할 것인가? 그들은 세금을 내야 하는 게 아니라, 아무 것도 내지 말고 그냥 더 받아야 한다.

이와 같이 ‘시민 증세운동’은 현실적으로 성립 자체가 안 되는 기획이거나, 설령 그것이 성공한다 하더라도 필연적으로 그것은 비정규직 노동자 등을 사회적으로 배제하는 기획일 뿐이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를 주체로 세울 수 없다면, ‘시민이 주체가 되자’라는 구호가 대체 무슨 소용인가??

2. 지금은 ‘시민이 세금을 내라’가 아니라 ‘재벌과 부자가 세금을 내라’가 답이다. 그런데 문제는 박근혜가 당선된 뒤 부자와 재벌 쪽에서 일정한 ‘협조 기류’도 감지된다는 것. 즉 부자와 재벌 쪽에서 일정한 ‘양보’를 하겠다고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오건호 선생은 위와 같은 기류를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만약 부자와 재벌이 정말로 약간의 ‘양보’를 해서 복지가 실현되었을 때, ‘복지’라는 의제에 대한 ‘이니셔티브’를 박근혜 쪽에 빼앗길 것을 걱정해, ‘시민 증세운동’으로 대응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1과 같은 이유로 설령 성공하더라도 재앙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길이 아니면 가지 않는 것이 옳다.

이렇게 ‘시민 증세운동’이란 어떻게 봐도 말이 안 된다. 파탄난 삶을 회복하기 위한 복지를 시행하고, 나아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모를 정도로 망가진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비용을 대야 할 것은 부자와 재벌이지, 결코 ‘시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