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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자연력과 과학 그리고 외부성

우리는 협업과 분업으로부터 생기는 생산력은 자본가에게 아무런 비용도 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사회적 노동이 만들어내는 자연력이다. 생산과정에 적용되는 증기, 물 등과 같은 자연력도 역시 아무런 비용이 들지 않는다. – 자본론 1권 15장, 518; MEW 23, 508

경쟁균형의 존재를 가정하는 주류경제학에서 일반적인 생산요소는 그 한계생산만큼의 보상을 받는다. 예를 들어 임금 = 노동의 한계생산; 이자율 = 자본의 한계생산; 그래서 경제적 이윤=0. 생산에 기여하지만 아무런 비용이 들지 않는, 그러니까 아무런 보상을 받지 않는 생산요소의 경우, 이것을 생산요소라고 칭하지 않고 생산과정에 “양의 외부성”이 존재한다고 얘기한다.  보통 양봉장 옆의 정원 – 벌이 공짜로 식물의 교배에 기여한다 – 이나 과학기술 – 자동차 생산에 대한 뉴턴의 기여는 보상받지 않는다 – 이 양의 외부성의 대표적인 사례로 제시된다.

이렇게 아무런 비용이 들지 않지만 생산에 기여하는 것들을 – 여기에는 “협업과 분업으로부터 생기는 생산력”이 포함된다 – 마르크스는 “자연력”이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마르크스의 “자연력”은 주류경제학의 양의 외부성과 동의어라고 볼 수 있다.

전류의 작용범위 안에서는 자침이 편향한다든가, 주위에 전류가 돌고 있으면 철에서 자기가 발생한다는 법칙 등은 일단 발견한 뒤에는 한푼의 비용도 들지 않는다.

과학이 주류경제학에서 “양의 외부성”으로 간주되는 것처럼 마르크스는 과학을 “자연력”이라고 보았다.

그렇다면 마르크스와 주류경제학의 차이는? 주류경제학이 사용가치의 경제학이라면 가치론은 가치의 경제학이다. 사용가치의 생산에는 토지, 노동, 기계, 도구, 자연력 등이 필요하지만, 가치의 생산의 경우에는 (토지, 기계, 도구, 자연력 등을 이용하는) 노동만이 가치를 생산한다 (물론 가치생산에서 기계, 도구는 과거노동의 결정체로 전환된다). 증기, 물, 협업과 분업으로부터 생기는 자연력, 과학 등등은 사용가치의 생산에 기여하지만, 그리고 때때로 공짜로 더 많은 사용가치의 생산을 가능하게 하지만, 그리고 가치생산의 전제로 기능하기도 하지만, 결정적으로 직접 가치를 생산하지는 못한다. 가치가 사회적 관계,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표현하는 범주이기 때문이다. 증기와 물과 협업과 과학이 인간 사이의 관계에 끼어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외부성의 가치론 같은 것은 없다. 잊지말자. 가치론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 사회적 관계에 대한 이론이다.

기계는 노동과정에는 언제나 전체로 참가하지만 가치형성과정에는 언제나 일부씩만 참가한다

사용가치의 생산의 관점에서 보면 (동력기, 전동장치, 작업기로 구성된) 전체로서의 기계가 생산에 참여한다. 가치생산의 관점에서는 기계는 과거노동의 결정체에 불과하며 (그것이 동력기, 전동장치, 작업기로 이루어져 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상품생산과정에서 마멸되는만큼의 가치를 최종생산물에 이전할 뿐이다.

과학도 마찬가지다. 과학은 노동과정에는 언제나 전체로 참가하지만, 가치형성과정에는 (그것이 공짜로 사용되기 때문에) 참가하지 않는다.

재밌는 것은 신고전파 경제학의 내생적 경제성장이론이 경제성장의 원동력으로 지식, 과학, 기술의 양의 외부성 – 정확하게는 지식생산의 생산성을 높이는 외부성 – 을 제시한다는 사실에 있다. 앞에서 외부성의 가치론 같은 것은 없다고 했다. 그러므로 경제성장의 가치론 같은 것도 없다. 가치론의 관심은 자본축적에 – 이것은 성장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 그리고 자본축적과정과 더불어 함께 축적되는 모순과 그 결과들에 있다.

안현효의 “기본소득의 가치론적 기초 – 정보재 가치 논쟁 재론”에 대한 답변

정보재 가치논쟁은 2002년에 시작됐는데, 나도 {마르크스주의 연구}에 두 편의 논문을 기고했고 앞으로도 적극 참여할 생각이다. 지금까지 내 논문에 대한 별다른 코멘트를 받지는 못했는데 – 심사과정에서 심사위원들과 꽤 치열한 논쟁을 하기는 했다 – 안현효 선생이 {마르크스주의 연구} 2012년 겨울호에 기고한 논문 “기본소득의 가치론적 기초 – 정보재 가치 논쟁 재론”에서 내 입장을 상세히 소개하고 비판적으로 평가했다.

그래서 나도 다음호에 기고할 예정으로 – 물론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 아래의 글을 작성해 보았다 (언제나처럼 생각보다 오래걸렸다 –;). 안현효 선생과 입장은 다르지만, 관심을 갖고 평가해 주신데 감사드린다. 혹시 관심있으신 분들은 읽어보시고 의견을 주시면 감사!

({마르크스주의 연구}에 기고한 논문은 여기여기. Research in Political Economy에 기고한 논문은 메일 주시면 보내드린다)


v2 작성: 2013년 3월 31일

1. 서론

가치론에 입각해 기본소득에 이론적 기초를 부여하고자 한 최근의 연구(안현효, 2012)에서 안현효는 정보재 가치논쟁의 성과를 적극적으로 원용한다. 특히 안현효는 그가 ‘절충적 접근’이라고 부르는 강남훈(2004)의 입장을 채택한다.

안현효는 인지지대가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인지자본주의론자들의 주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인지지대의 가치론적 기초가 부실하다는 점을 올바르게 비판한다. 인지자본주의론자들은 현대자본주의에서 마르크스의 노동가치론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대체할 새로운 (인지)가치론을 제시하지 못했고, 같은 이유로 노동가치론에 근거한 마르크스의 지대론을 대체할 인지지대론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지적재산권에 바탕한 지식독점에 의해 허위의 사회적 (노동)가치가 생산되고, 네트워크 효과와 소비자의 생산자화를 통해 직접적 생산과정 외부에서도 (노동)가치가 생산되기 때문에 인지지대의 원천은 (노동)가치라고 주장한다. 또한 네트워크와 지식의 경제적 효과의 원천을 명확히 특정할 수 없다는 점에 주목하여, 기본소득의 지급을 통해 이러한 사회 공동의 기여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지적재산권 등으로 인해 인지지대의 형태로 전유되는 가치가 사회 공동의 기여분이므로 이를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인지지대를 노동가치론에 입각하여 해명함에 있어 안현효는 차액지대류의 정보지대를 정보재 가치의 주요한 부분으로 인정하는 절충적 접근을 유용한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안현효는 그의 논문의 상당 부분을 할애하여 정보재 가치논쟁을 다룬다. 그는 정보재 가치논쟁을 세 가지 접근 – 절충적 접근, 독점가격접근, 노동의 배수화 접근 – 으로 나누어 고찰하고, 독점가격접근과 노동의 배수화 접근을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안현효는 우선 이 두 접근이 정보재에 대한 특수이론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을 비판한다. 지적재산권에 의한 경쟁의 제한에 주목하는 독점가격접근은 “특수한 재화의 문제가 아니라 [일반적 – 필자] 독점의 문제”(안현효, 2012: 54)를 다루고 있으며, 노동의 배수화 접근 역시 정보재 가치논쟁을 지식과 가치생산의 연관에 대한 문제로 일반화하는 반면, 직접노동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 정보재 생산의 특수성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노동의 배수화 접근에서 지식과 상품, 그리고 지식노동과 상품생산노동 사이의 본질적 차이를 강조하거나 지식이 가치를 갖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 글은 노동의 배수화 접근에 대한 안현효의 비판에 대한 반비판을 제시한다. 우선 2절에서는 노동의 배수화 접근의 내용을 요약하여 제시한다. 3절과 4절에서는 노동의 배수화 접근에 대한 안현효의 두 가지 비판 – 정보재의 특수성의 문제와 지식과 상품 사이의 구분의 문제 – 을 각각 상세히 검토하고 이에 대한 반론을 제시한다. 5절에서는 기본소득에 가치론적 기초를 부여하고자한 안현효의 시도를 간략히 평가한다.

2. 노동의 배수화 접근

다음은 앞으로의 논의를 위해 ‘노동의 배수화’ 접근의 주요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1 노동의 배수화 접근에 대한 안현효의 비판은 정보재의 특수성을 부정하는 두번째 항목과 지식생산이 상품생산과 별도로 이루어진다는 세번째 항목, 마지막으로 지식은 가치를 갖지 않는다는 다섯번째 항목에 대한 것이다.

  1. 첫번째 상품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이 이후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을 현격히 초과하는 까닭은 첫번째 상품의 생산이 지식의 생산을 포함하기 때문이며, 이것은 상품생산에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2. 정보재의 가치와 가격에 대한 특수이론은 필요하지 않다. 첫번째 상품의 생산에 많은 노동이 필요하다는 일반적인 사실이 정보재에서는 극단적이고 단순한 모습 – 첫번째 카피의 생산에는 상당한 노동이 필요하지만 두번째와 그 이후의 카피의 생산에는 노동이 거의 필요하지 않다 – 으로 나타나는 것일 뿐이다.
  3. 상품생산은 지식 – 무엇을 어떻게 생산할 것인지를 규정한다 – 을 필요로 하며, 지식은 상품생산 이전에 존재해야 한다. 마르크스가 자본론 1권에서 분석하는 노동과정 (그리고 가치증식과정)에는 지식생산이 포함되지 않는다.
  4. 지식은 상품생산에 무한정 활용가능하며, 상품생산과정 전후에 지식에는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5. 지식은 가치를 갖지 않는다. 설령 지식이 가치를 갖는다고 가정하더라도 생산 전후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이상 상품에 가치를 이전할 수 없다. 지식생산에 투입된 노동은 상품의 가치를 직접적으로도 간접적으로도 생산하지 않는다.
  6. 부문 내 평균에 비해 높은 수준의 지식을 활용하는 자본은 사회적 가치에 비해 낮은 개별가치를 갖는 상품을 생산하며 특별잉여가치를 획득한다. 이 자본이 고용한 노동자의 노동은 부문 내 평균에 비해 높은 생산성을 갖는다.
  7. 경제 전체의 평균에 비해 높은 수준의 지식을 요구하는 부문에서 노동자의 단순노동은 마치 복잡노동인 것처럼 작용한다. 단순한 노동력의 가치를 지불하고 복잡한 노동력을 확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므로, 이 부문의 자본가는 일반적인 잉여가치에 더해 초과이윤을 획득할 수 있다.
  8. 달리 표현하여 평균 수준을 뛰어넘는 지식은 상품생산노동을 고도화(potenziert) 혹은 배수화(multipliziert)된 노동으로 작용하게 한다.2
  9. 이상의 논의는 자본론 1권의 상대적으로 추상적인 이론을 바탕으로 한 것이며, 경쟁의 제한이 가져오는 독점이윤이나, 지적재산권 등의 구체적인 문제는 다루지 않는다.
  10. 정보재 카피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은 거의 0에 가깝지만, (부문내, 부문간) 노동의 배수화로 인해 그 가치는 0보다 훨씬 큰 값일 수 있다.

노동의 배수화 접근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전희상(2009, 2010)과 Jeon (2011, 2012)을 참조하라.

‘고도화된(potenziert)’과 ‘배수화된(multipliziert)’은 김수행역 자본론에는 각각 ‘강화된’과 ‘몇 배로 된’으로 강신준역 자본에는 ‘제곱된’과 ‘배가된’ 것으로 번역되어 있다. 필자는 전희상(2010)에서 지식의 가치생산에서의 역할을 노동의 ‘결과적 강화’ (virtual intensification)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설명하고자 했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영어판 자본론에서 potenziert를 intensified (강화된)으로 잘못 번역함으로써 빚어진 혼선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노동의 고도화 혹은 배수화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3. 직접노동이 투입되지 않는 생산과정

안현효는 정보재의 생산에 상품생산노동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 경우 배수화될 노동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 노동의 배수화라는 사회적 과정이 작동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인스톨러의 생산에 아무런 가치가 투입되지 않는다면, 즉 0.00001시간도 투하되지 않는다면, 배수화할 노동이 없어진다는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오피스세트를 개발하여 자사의 서버에 올려두고 소비자로 하여금 신용카드로 지불한 후 웹에서 다운받아 설치하게 하였다고 하자. 이 경우는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인스톨러를 생산하는 데 아무런 비용(노동)을 지불하지 않는 셈이고 이 경우 배수화할 노동이 투입되지 않아 노동가치론을 적용할 수 없다 (안현효 2012, 54)

0.00001시간의 노동이라도 투입된다면 이것이 배수화되어 0을 현격히 초과하는 가치를 생산할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배수화될 노동이 없다면 가치를 전혀 생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안현효의 주장이 맞다면, 우리는 가치 – 배수화 과정이 작동하지 않으므로 0에 가까운 값일 것이다 – 를 현격히 초과하는 정보재의 가격을 채만수의 독점가격접근에서처럼 순수한 독점가격으로 간주하거나 혹은 정보재에는 노동가치론이 적용되지 않으므로 정보재에 대한 특수이론을 개발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려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에는 가치생산에서의 지식의 역할을 직접노동의 배수화에 국한시킨다는 문제가 있다.

자본이 사회적 평균수준에 비해 높은 지식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은 이를 통해 초과이윤을 실현하기 위한 것인데, 이것은 생산에 투입되는 직접노동의 배수화라는 매개를 통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생산에 직접노동이 전혀 투입되지 않는 대표적 생산방식으로 아웃소싱을 들 수 있다. 많은 전자업체들은 임금수준이 낮고 부품 공급체인의 접근성이 좋은 지역에서 완제품을 아웃소싱을 통해 생산한다. 아웃소싱의 정의상 완제품생산에 필요한 조립과 검사 등의 과정에 투입되는 직접노동은 모두 하청업체 노동자에 의해 수행되며 하청업체는 원청업체에 완제품 생산서비스라는 상품을 공급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완제품 생산서비스는 조립과 검사 등의 작업에 투입되는 일정량의 단순노동에 해당하며, 원청업체가 소비자에게 최종판매하는 상품과는 엄격히 구분된다. 예를 들면 애플의 하청업체인 폭스콘의 노동자는 아이폰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폭스콘이 애플에 공급하는 아이폰 완제품 생산서비스라는 상품을 생산한다. 이 완제품 생산서비스를 통해 폭스콘은 애플에 단순노동을 제공하는데, 여기서 이 단순노동이 애플이 제공한 지식 – 설계와 디자인 등의 규격 – 을 바탕으로 수행된다는 사실은 별다른 의미를 갖지 않는다.

폭스콘의 아이폰 완제품 생산서비스는 애플의 아이폰 생산과정의 한 부분을 구성한다. 소프트웨어나 디지털 음악의 생산이 온라인 구매와 다운로드의 형태로 자동화되어 있는 것처럼 원청업체인 애플 아이폰의 생산과정은 부품공급과 완제품 생산, 배송을 연계하는 잘 짜여진 자동화된 프로세스의 형태로 존재한다. 부품의 생산과 완제품의 조립 공정이 모두 부품공급업체나 하청업체에 의해 수행되므로 생산의 전 과정에 애플이 고용한 노동자의 직접노동은 조금도 투입되지 않는다.

하지만 직접노동이 전혀 투입되지 않는다고 하여 아이폰의 가치가 부품 가치와 완제품 생산서비스 가치 그리고 배송서비스 가치의 단순 총합에 불과한 것은 아니다. 애플은 경쟁업체들이 쉽게 따라잡을 수 없는 우수한 지식을 보유하고 있다. 만약 애플의 노동자가 아이폰의 생산에 직접 투입되었다면 이 우수한 지식으로 인해 애플 노동자의 직접노동은 배수화된 노동으로 작용했을 것이고 따라서 아이폰의 사회적 가치는 상당한 규모의 초과이윤을 포함할 것이다. 애플이 직접노동 대신 폭스콘의 완제품 생산서비스를 구매한다고 하여 아이폰의 사회적 가치에 큰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애플이 폭스콘에 지불하는 생산서비스의 대금은 단순노동력의 임금에 약간의 마크업을 더한 수준에 해당할 것이므로 애플은 직접노동을 투입하지 않고도 상당한 규모의 초과이윤을 실현할 수 있다.

이를 일반화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자본은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거나 상품생산 전체를 아웃소싱할 수 있다. 전자의 경우 자본은 일반적인 잉여가치에 더해 우수한 지식에 기인하는 초과이윤을 실현할 수 있다. 후자의 경우 일반적인 잉여가치는 하청업체에 귀속되며, 자본은 초과이윤만을 실현한다. 자본이 후자를 선택하는 것은 보통 핵심역량에 집중하여 초과이윤의 확대에 주력하기 위해서이다.

결국 직접노동의 투입을 전제하는 노동의 배수화는3 자본이 우수한 지식을 통해 초과이윤을 생산하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또한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직접노동의 투입이 없는 상품생산이 정보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고려하면, 안현효의 주장과는 달리 직접노동의 투입이 전혀 없는 정보재의 생산이 정보재에 대한 특수이론의 필요성을 정당화하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3 직접노동이 투입되지 않는다고 하여 노동의 배수화가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배수화 계수가 무한대(∞)라면, 0의 직접노동시간은 정의 불가능한 상수값으로 배수화될 수 있다. 0 × ∞ = c (c는 상수이며 정의불가) 이기 때문이다.

4. 지식과 상품

앞서 살펴본 것처럼 필자가 제시한 노동의 배수화 접근에서는 지식과 상품, 지식노동과 상품생산노동, 지식생산과정과 상품생산과정 (노동과정) 사이의 본질적 차이를 강조하며, 지식은 상품이 아니므로 가치를 갖지 않는다고 간주한다. 대조적으로 안현효는 류동민(2005)을 따라 상품(=카피)뿐만 아니라 지식(=버전)도 가치를 가지며 지식과 상품 사이의 구분은 불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버전과 카피의 구분이 불필요하다는 류동민의 비판을 수용한다면 결국 지식생산물은 상품이며 지식생산과정은 가치생산과정이라는 인식만 남는다(안현효, 2012: 54-55, 강조는 인용자).

그런데 이러한 [지식생산과정과 노동과정 사이의 – 인용자] 구분이 과연 필요할까? 즉 지식노동이 생산과정 전체의 한 부분으로 통합되어 있다고 간주한다면 문제가 있는가?(안현효, 2012: 55, 강조는 인용자).

지식노동이 자본-임노동 관계에 있는 한 직접적 생산과정의 한 부분으로 간주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안현효, 2012: 53, 강조는 인용자).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지식은 생산과정에 일종의 불변자본으로서 투입되지만 최종생산물에 가치를 이전하지는 않고, 직접노동을 배수화하는 역할만을 수행한다.

만약 지식이 구매 가능하고, 기계와 같이 도덕적 감가를 낳는다고 판단한다면 지식은 기계와 같이 불변자본으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안현효, 2012: 55).

지식을 상품으로 간주하는 이러한 관점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있다.

첫째, 지식이 상품이라면 지식은 가치를 가질 것이고 가치의 크기는 지식의 생산에 필요한 사회적 노동시간에 의해서 결정될 것이다. 그런데 상품의 생산과정과 지식의 생산과정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전자에서는 주어진 생산 규격에 따라 노동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최종생산물이 생산되지만 후자에서는 최종생산물 그 자체가 명확히 주어져 있지 않으며, 많은 경우 최종생산물의 구체적 내용에 대한 착상이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멀티터치 방식의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경우 이를 기술적으로 구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멀티터치라는 아이디어 그 자체를 고안해 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이 과정은 키패드와 같은 기존의 인터페이스 방식이 갖는 문제점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하며, 점진적인 개선 대신 완전히 새로운 인터페이스를 설계하겠다는 의사결정, 그리고 손가락을 인터페이스의 도구로 사용하고 사용되는 손가락의 수와 다양한 패턴을 활용하겠다는 구체적인 기획으로 이어진다. 이와 같은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제시된 이후에야 이의 기술적 구현이 시작될 수 있다. 여기서 결정적인 것은 정해진 규격에 따른 노동의 지속시간이 아니라 인간의 창의적, 학적, 예술적 역량이다. 지식이 내재적인 가치를 갖는다고 가정하더라도 이 가치를 노동의 지속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

둘째, 안현효의 주장과 같이 “지식생산이 상품생산의 한 과정으로 통합”되어 있다면 상품생산과정에서 상품(의 가치)뿐만 아니라 지식(의 가치) 또한 생산될 것이며, 자본가는 상품은 상품대로 지식은 지식대로 시장에서 판매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상품생산과정에서 산업 평균보다 우수한 지식이 생산되었다면 자본가는 이 지식을 바탕으로 상품을 생산하고 이를 통해 초과이윤을 실현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더해 자본가가 지식상품가치의 실현을 위해 경쟁업체에 지식을 판매하기 시작하면, 산업 내의 평균적 지식수준이 높아지기 때문에 상품의 가치가 하락하고 상품 한 단위당 초과이윤의 규모 역시 축소된다. 지식이 상품생산노동을 배수화 할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가치를 갖는다고 가정하는 경우 한 상품(=지식)의 가치실현이 다른 상품의 가치의 파괴로 이어진다는 모순적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안현효의 주장에 따르면 지식은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질 뿐만 아니라 노동을 배수화하는 추가적인 경제적 효과를 갖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 두 가지 효과는 배타적인 관계에 있다.

셋째, 지식의 가격, 좀더 정확히는 지식사용료(license fee)는 지식을 활용하여 획득할 수 있는 경제적 효과 – 예를 들어 생산량 * 단위생산비용 절감분 – 에 의해 결정된다4 이는 동일한 지식의 사용권리(license)가 구매자의 상품생산규모에 따라 상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고에너지효율 반도체 설계기술을 보유한 ARM사는 자사의 기술을 활용하여 생산된 반도체의 수량에 의거해 지식사용료를 부과한다.5 스마트폰 시장의 1, 2위를 다투는 삼성전자와 애플이 다른 경쟁업체에 비해 ARM사에 훨씬 높은 금액의 지식이용료를 지불했음은 명약관화하다. 반면 일반상품의 경우 가치가 가격을 규정하며, 판매전략의 일환으로 고객군별 가격차별정책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일물일가의 법칙이 적용된다. 지식의 경우에는 이는 단지 우연의 산물일 뿐이다.

대조적으로 노동의 배수화 접근에서 지식은 상품생산의 한 요소이며 생산과정에서 토지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비옥도나 자본집약도가 높은 토지에서 생산된 농산물의 사회적 가치는 개별가치를 상회하며 초과이윤을 포함한다. 다시 말해 이러한 토지에서 수행되는 노동은 고도화 혹은 배수화된 노동으로 작용한다. 이 초과이윤은 토지소유자에게 (차액)지대로 귀속되며, 토지소유자는 지대를 취득하는 대신 지대를 자본화한 가격에 토지를 매각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지식 역시 노동의 배수화를 통해 초과이윤을 낳으며, 이 초과이윤은 지식의 소유자 – 지식의 소유가 반드시 지적재산권을 전제하는 것은 아니다 – 에게 귀속된다. 또한, 지식의 소유자는 초과이윤에 대한 청구권을 자본화한 가격에 지식의 독점적 이용권을 양도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지식을 국채나 주식 등의 유가증권과 같은 가공자본(fictitious capital)으로 간주할 수도 있다. 지식이 토지와는 달리 노동생산물이고, 유가증권과는 달리 생산에 필수적인 요소임을 고려할 때 지식을 토지나 유가증권과 동일시 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지식이 (가치를 갖는) 상품보다는 (가치를 갖지는 않지만 가격을 갖는) 토지나 유가증권과 유사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안현효는 지식이 그 자체로 상품인 것은 아니며 지식의 거래를 위해서는 지적재산권 등을 통한 상품화, 가치화 과정이 필요하다고 언급한다. 이러한 과정이 없다면 자본가 사이의 경쟁을 통해 지식의 경제적 효과는 결국 소멸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식과 과학이 사용가치 생산에 아무리 기여하더라도 이를 가치화해내지 못한다면 여기서는 가치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공짜로 얻은 지식으로 새로운 생산과정의 혁신을 이루었다면 특별잉여가치의 발생과 소멸과정을 거쳐서, 즉 상품사회의 가치화 과정에서 소멸된다. 지식과 과학을 가치화 과정으로 만들어낸다고 하는 것은 바로 지식과 과학을 상품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상품화의 가장 큰 혁신은 바로 배제 가능하게 만드느냐에 있다. 배제성을 부여하기 위한 장치로서 지적 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 Rights: IPR)은 잘 알려져 있다. 따라서 상품화된 지식이 결정적으로 문제가 될 뿐이다. 배제화하기 위해서는 인지자본주의론에서 주장하는 대로 인지의 구획화가 필요하다. 구획화된 지식, 과학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안현효, 2012: 56, 강조는 인용자)

이러한 해석에는 지적재산권의 역할이 과대평가되어 있다는 문제가 있다. “공짜로 얻은 지식[은] … 상품사회의 가치화 과정에서 소멸”되며, 따라서 “상품화된 지식이 결정적으로 문제가 될 뿐”이라면 인지자본주의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지적재산권에 근거한 “인지의 구획화”를 통해서만 지식은 상품화될 수 있고 가치를 가질 수 있다. 지식과 상품 사이의 구분이 불필요하다는 안현효의 주장은 결국 지적재산권을 통한 지식의 상품화를 전제로 하고 있는 셈이다. 즉, 안현효에게 있어 지적재산권은 분석의 출발점이자 전제조건이다.

반면 노동의 배수화 접근에 따르면 평균보다 높은 수준의 지식은 노동의 배수화를 통해 초과이윤을 낳고, 지식의 가격은 지식사용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청구권에 해당하는 지식사용료가 자본화된 것이다. 또한 지식이 시장에서 거래되기 위해서는 지적재산권이라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식의 경제적 효과가 지적재산권과 시장에서의 지식의 거래에 의존적인 것은 아니다. 지적재산권의 보호 없이도 지식은 일정기간 초과이윤을 생산하는 경제적 효과를 가질 수 있다. 자본간 경쟁으로 인해 초과이윤이 일정 기간 후에는 소멸하겠지만, 지식의 활용을 통해 기대되는 초과이윤의 총액이 그 생산비용을 상회하는 한 자본은 지식을 생산하여 상품생산에 활용할 것이다. 지적재산권은 초과이윤의 존속기간을 인위적으로 늘리는 방식으로 지식생산의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지식사용권 거래시장을 형성하는 역할을 수행할 뿐 초과이윤 그 자체의 원천은 아니다. 따라서 지적재산권은 분석의 출발점이 될 수 없으며, 지식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분석이 점차 구체화됨에 따라 사후적으로 분석에 도입되어야 한다.6

4 지식사용권의 거래에 그치지 않고 지식 그 자체를 양도하는 경우  – 일반적으로 인수합병의 과정을 통해 지식 그 자체가 구매자에게 양도된다 – 지식의 가격은 지식사용료 수입을 자본화하는 방식으로 결정된다. 따라서 지식의 가격 역시 지식을 활용하여 획득할 수 있는 초과이윤의 크기에 의해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5 이 기술은 대부분의 스마트폰용 CPU 제작에 활용되고 있다.

6 추가적으로 지적재산권이 지식생산을 중심으로 한 자본간 경쟁에 미치는 영향과 중요성은 산업별로 상이하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지식은 그 종류에 따라 모방에 드는 비용과 시간이 천차만별이어서 신기술이 일반화되는 양상이 산업 별로 크게 다르다. 일반적으로 제약산업은 지적재산권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산업으로 항공산업은 의존도가 낮은 산업으로 알려져 있다.

5. “기본소득의 가치론적 기초”에 대한 평가

절충적 접근과 안현효에 대한 지금까지의 비판은 정보재 가치논쟁의 맥락에 국한되었으며, 기본소득의 가치론적 기초에 대한 안현효의 논의를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았다. 이 절에서는 정보재 가치논쟁과는 무관하게 후자에 대한 간략한 논평을 제시한다.

기본소득과 관련한 안현효의 주장을 요약하면 “생산된 가치에 기초”(안현효, 2012: 63)하는 인지지대의 원천이 “집단성”(안현효, 2012: 64)임을 감안할 때 현재 지적재산권자에게 귀속되는 인지지대를 기본소득의 형태로 사회구성원들에게 배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첫째, 지적재산권이 초과이윤의 영속화를 통해 상품가치의 하락을 방지한다는 점에서, (초과이윤의 원천이 개인인지 집단인지의 여부와 무관하게) 초과이윤을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으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런데 자본주의 경제에서 지식생산은 기본적으로 초과이윤의 획득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초과이윤의 인위적 환수는 지식생산의 방식과 규모에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인지지대의 기본소득으로의 전환은 분배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가치생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본소득의 지급이 가치생산의 규모의 축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둘째, 초과이윤의 원천은 불특정 다수이지만 그것이 인지지대의 형태로 소수에게 귀속되는 구체적인 사례가 있다면 지적재산권 제도를 개선하고 보완하면 된다. 하지만 그러한 구체적인 사례로 제시된 것들의 실상은 집단적 생산과 개별적 점유와는 무관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구글의 광고수입의 상당부분은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가 공동으로 생산한 가치를 토대로 한 것이고,7 이것이 불완전한 지적재산권 제도로 인해 구글에게 (부당하게) 귀속되고 있다는 식의 설명은 옳지 않다. 구글은 엄청난 비용이 소요되는 검색서비스를 소비자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이렇게 확보한 다수의 소비자층을 활용하여 광고수입을 올린다. 소비자는 검색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하는 대신, 검색결과 페이지에 광고가 표시되는 일종의 품질 하락을 용인한다. 구글과 소비자 사이에 일종의 주고받기 식의 타협이 존재하는 셈이다.8 구글은 검색서비스라는 상품을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여 검색서비스의 가치를 실현하는 대신, 광고수입을 통해 검색서비스 무료제공에 따른 가치손실을 보전하는 전략을 취한다.

셋째, 안현효는 지식과 네트워크의 외부성에 주목하며 외부성이 가져오는 경제적 효과가 인지지대로 전유된다는 논지를 전개한다. 물론 외부성의 경제적 효과는 분명히 존재한다. 안현효는 외부성의 예로 “협업의 생산성 향상 효과”를 제시하는데, 협업의 외부성은 마르크스가 언급한대로 “노동자들이 일정한 조건 하에 놓일 때는 언제나 무상으로 발휘”(마르크스, 2002: 450)되며 그 과실은 자본이 독차지한다. 하지만 협업의 외부성은 사용가치의 측면에서의 경제적 효과일 뿐 가치의 측면에서의 경제적 효과는 아니다. 가령 10명의 노동자가 제각기 노동할 때는 총 100개의 상품을 생산하는 반면, 협업을 통해서는 총 200개의 상품을 생산한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협업을 통해 노동생산성은 두 배로 높아지지만, 이것이 두 배의 가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든 동일한 수의 노동자가 동일한 시간 동안 노동하므로 생산된 사용가치의 양이 다르더라도 생산된 가치의 양은 동일하다.

좀더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자. 대부분의 국가에서 플러그(plug)와 콘센트(socket) 규격은 표준화되어 있어서 전자제품은 단일한 종류의 플러그만 지원한다. 만약 표준규격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시장에 존재하는 모든 사설 콘센트 규격을 지원해야 할 것이고, 그만큼 전자제품의 단위생산비용도 높아질 것이다. 결국 표준규격이라는 사회적 약속은 표준규격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 비해 동일한 비용으로 동일한 시간 동안 더 많은 수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하는 방식으로 전자업체의 생산성을 향상시킨다. 하지만 표준규격은 누구나 공짜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전자업체는 생산성 향상분을 초과이윤으로 실현하지 못한다. 표준규격의 사용에 따른 단위생산비용의 하락이 가치와 가격의 하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외부성은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지만, 외부성의 적용범위를 통제하지 못하는 이상 초과이윤의 원천이 되지는 못한다. 결국 외부성이 초과이윤의 생산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지적재산권을 통해 인지지대로 부당하게 전유되고 있기 때문에 이를 기본소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외부성은 사용가치의 경제학에 해당하는 신고전파 경제학에서와는 달리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에서는 별다른 이론적 중요성을 가질 수 없다.

7 구글의 검색엔진은 다수의 웹페이지/컨텐트의 자동 인덱싱을 필요로 하는데, 인덱싱 대상이 되는 웹페이지/컨텐트의 대부분은 불특정 다수의 인터넷 사용자가 제작한 것이다.

8 구글은 검색결과 페이지에 표시되는 광고의 양을 제한하고 그 질을 높이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광고가 소비자의 만족도를 일정 수준 이상 침해하면 소비자의 이탈이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v1 작성: 2013년 2월 6일

1. 서론

가치론에 입각해 기본소득에 이론적 기초를 부여하고자 한 최근의 연구(안현효, 2012)에서 안현효는 정보재 가치논쟁의 성과를 적극적으로 원용한다. 특히 안현효는 그가 ‘절충적 접근’이라고 부르는 강남훈(2004)의 입장을 채택한다.

안현효는 인지지대가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인지자본주의론자들의 주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인지지대의 가치론적 기초가 부실하다는 점을 올바르게 비판한다. 인지자본주의론자들은 현대자본주의에서 마르크스의 노동가치론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주장하면서도 이를 대체할 새로운 가치론을 제시하지 못했고, 같은 이유로 노동가치론에 근거한 마르크스의 지대론을 대체할 인지지대론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지적재산권에 바탕한 지식독점에 의해 허위의 사회적 (노동)가치가 생산되고, 네트워크 효과와 소비자의 생산자화를 통해 직접적 생산과정 외부에서도 (노동)가치가 생산되기 때문에 인지지대의 원천은 (노동)가치라고 주장한다. 또한 네트워크와 지식의 경제적 효과의 원천을 명확히 특정할 수 없다는 점에 주목하여, 기본소득의 지급을 통해 사회 공동의 기여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지적재산권 등으로 인해 인지지대의 형태로 전유되는 가치가 사회 공동의 기여분이므로 이를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인지지대를 노동가치론에 입각하여 해명함에 있어 안현효는 차액지대류의 정보지대를 정보재 가치의 주요한 부분으로 인정하는 절충적 접근을 유용한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안현효는 그의 논문의 상당 부분을 할애하여 정보재 가치논쟁을 다룬다. 그는 정보재 가치논쟁을 세 가지 접근 – 절충적 접근, 독점가격접근, 노동의 배수화 접근 – 으로 나누어 고찰하고, 독점가격접근과 노동의 배수화 접근을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안현효는 우선 이 두 접근이 정보재에 대한 특수이론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을 비판한다. 지적재산권에 의한 경쟁의 제한에 주목하는 독점가격접근은 “특수한 재화의 문제가 아니라 독점의 [일반적 – 필자] 문제”(안현효, 2012: 54)를 다루고 있으며, 노동의 배수화 접근 역시 정보재 가치논쟁을 지식과 가치생산의 연관에 대한 문제로 일반화하는 반면, 직접노동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 정보재 생산의 특수성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노동의 배수화 접근에서 지식과 상품, 그리고 지식노동과 상품생산노동 사이의 본질적 차이를 강조하거나 지식이 가치를 갖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 글은 노동의 배수화 접근에 대한 안현효의 비판에 대한 반비판을 제시한다. 우선 2절에서는 노동의 배수화 접근의 내용을 요약하여 제시한다. 3절과 4절에서는 노동의 배수화 접근에 대한 안현효의 두 가지 비판 – 정보재의 특수성의 문제와 지식과 상품 사이의 구분의 문제 – 을 각각 상세히 검토하고 이에 대한 반론을 제시한다. 5절에서는 기본소득에 가치론적 기초를 부여하고자한 안현효의 시도를 간략히 평가한다.

2. 노동의 배수화 접근

다음은 앞으로의 논의를 위해 ‘노동의 배수화’ 접근의 주요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1 노동의 배수화 접근에 대한 안현효의 비판은 정보재의 특수성을 부정하는 두번째 항목과 지식생산이 상품생산과 별도로 이루어진다는 세번째 항목, 마지막으로 지식은 가치를 갖지 않는다는 다섯번째 항목에 대한 것이다.

  1. 첫번째 상품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이 이후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을 현격히 초과하는 까닭은 첫번째 상품의 생산이 지식의 생산을 포함하기 때문이며, 이것은 상품생산에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2. 정보재의 가치와 가격에 대한 특수이론은 필요하지 않다. 첫번째 상품의 생산에 많은 노동이 필요하다는 일반적인 사실이 정보재에서는 극단적이고 단순한 모습 – 첫번째 카피의 생산에는 상당한 노동이 필요하지만 두번째와 그 이후의 카피의 생산에는 노동이 거의 필요하지 않다 – 으로 나타나는 것일 뿐이다.
  3. 상품생산은 지식 – 무엇을 어떻게 생산할 것인지를 규정한다 – 을 필요로 하며, 지식은 상품생산 이전에 존재해야 한다. 마르크스가 자본론 1권에서 분석하는 노동과정 (그리고 가치증식과정)에는 지식생산이 포함되지 않는다.
  4. 지식은 상품생산에 무한정 활용가능하며, 상품생산과정 전후에 지식에는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5. 지식은 가치를 갖지 않는다. 설령 지식이 가치를 갖는다고 가정하더라도 생산 전후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이상 상품에 가치를 이전할 수 없다. 지식생산에 투입된 노동은 상품의 가치를 직접적으로도 간접적으로도 생산하지 않는다.
  6. 부문 내 평균에 비해 높은 수준의 지식을 활용하는 자본은 사회적 가치에 비해 낮은 개별가치를 갖는 상품을 생산하며 특별잉여가치를 획득한다. 이 자본이 고용한 노동자의 노동은 부문 내 평균에 비해 높은 생산성을 갖는다.
  7. 경제 전체의 평균에 비해 높은 수준의 지식을 요구하는 부문에서 노동자의 단순노동은 마치 복잡노동인 것처럼 작용한다. 단순한 노동력의 가치를 지불하고 복잡한 노동력을 확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므로, 이 부문의 자본가는 일반적인 잉여가치에 더해 초과이윤을 획득할 수 있다.
  8. 달리 표현하여 평균 수준을 뛰어넘는 지식은 상품생산노동을 고도화(potenziert) 혹은 배수화(multipliziert)된 노동으로 작용하게 한다.2
  9. 이상의 논의는 자본론 1권의 상대적으로 추상적인 이론을 바탕으로 한 것이며, 경쟁의 제한이 가져오는 독점이윤이나, 지적재산권 등의 구체적인 문제는 다루지 않는다.
  10. 정보재 카피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은 거의 0에 가깝지만, (부문내, 부문간) 노동의 배수화로 인해 그 가치는 0보다 훨씬 큰 값일 수 있다.

1 노동의 배수화 접근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전희상(2009, 2010)과 Jeon (2011, 2012)을 참조하라.

2 ‘고도화된(potenziert)’과 ‘배수화된(multipliziert)’은 김수행역 자본론에는 각각 ‘강화된’과 ‘몇 배로 된’으로 강신준역 자본에는 ‘제곱된’과 ‘배가된’ 것으로 번역되어 있다. 필자는 전희상(2010)에서 지식의 가치생산에서의 역할을 노동의 ‘결과적 강화’ (virtual intensification)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설명하고자 했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영어판 자본론에서 potenziert를 intensified (강화된)으로 잘못 번역함으로써 빚어진 혼선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노동의 고도화 혹은 배수화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3. 정보재의 특수성

안현효는 정보재의 생산에 상품생산노동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 경우 배수화될 노동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 노동의 배수화라는 사회적 과정이 작동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인스톨러의 생산에 아무런 가치가 투입되지 않는다면, 즉 0.00001시간도 투하되지 않는다면, 배수화할 노동이 없어진다는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오피스세트를 개발하여 자사의 서버에 올려두고 소비자로 하여금 신용카드로 지불한 후 웹에서 다운받아 설치하게 하였다고 하자. 이 경우는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인스톨러를 생산하는 데 아무런 비용(노동)을 지불하지 않는 셈이고 이 경우 배수화할 노동이 투입되지 않아 노동가치론을 적용할 수 없다 (안현효 2012, 54)

0.00001시간의 노동이라도 투입된다면 이것이 배수화되어 0을 현격히 초과하는 가치를 생산할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배수화될 노동이 없다면 가치를 전혀 생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안현효의 주장이 맞다면, 우리는 그 가치를 현격히 초과하는 정보재의 가격을 채만수의 독점가격접근에서처럼 순수한 독점가격으로 간주하거나 혹은 정보재에는 노동가치론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려야 할지 모른다. 또한 정보재의 가치와 가격 사이의 이와 같은 체계적인 괴리를 설명하기 위한 특수 이론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노동의 고도화 혹은 배수화를 결과가 아니라 원인으로 간주하는 오류를 범한다. 상품의 사회적 가치가 개별가치보다 높아 상품의 생산자가 초과이윤을 실현하는 경우 마르크스는 이 상품의 생산에 투입된 직접노동이 고도화 혹은 배수화되었다고 표현한다 (결과). 하지만 상품의 생산에 투입된 직접노동의 배수화를 통해서만 (원인) – 이를 위해서는 직접노동이 반드시 양의 값을 가져야 한다 – 상품의 개별가치를 낮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전자업체들은 임금수준이 낮고 부품 공급체인의 접근성이 좋은 지역에서 완제품 생산을 수행하며, 완제품 생산 자체를 아웃소싱 하기도 한다. 완제품생산에 필요한 조립과 검사 등의 과정에 노동이 투입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 노동은 최종생산자본에 해당하는 원청업체가 아니라 하청업체가 고용한 노동자가 수행한다. 예를 들면 애플의 하청업체인 폭스콘이 고용한 노동자는 폭스콘이 애플에 제공하는 완제품 생산서비스라는 상품을 생산한다. 애플은 공급업체로부터 부품을 구매하는 것처럼 폭스콘으로부터 완제품 생산서비스를 구매한다. 중요한 것은 폭스콘이 고용한 노동자의 최종생산물이 애플의 제품 – 예를 들어 아이폰 – 이 아니라 완제품 생산서비스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폭스콘의 완제품 생산서비스 생산에 투입되는 노동은 단순노동에 해당한다. 이 단순노동은 애플이 제공한 지식 – 설계와 디자인 등의 규격 – 에 따라 수행되지만 생산과정에서 고도화 혹은 배수화되지는 않는다. 제품의 생산에 활용된 지식이 폭스콘이 아니라 애플의 것이며, 폭스콘의 완제품 생산서비스는 단순노동의 지출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조적으로 애플 아이폰의 생산과정 – 이것은 폭스콘의 완제품 생산서비스를 하나의 생산수단으로 활용한다 – 에는 직접노동이 조금도 투입되지 않는다. 소프트웨어나 디지털 음악의 생산이 온라인 구매와 다운로드의 형태로 자동화되어 있는 것처럼, 애플 아이폰의 생산과정은 부품공급과 완제품 생산, 소비자에 대한 배송을 연계하는 잘 짜여진 자동화된 프로세스 그 자체로서 존재한다.

아이폰의 생산과정에 애플이 고용한 노동자의 직접노동이 조금도 필요하지 않다고 해서 아이폰의 가치가 부품 가치와 완제품 생산서비스 그리고 배송서비스 가치의 단순 총합에 불과한 것은 아니다. 물론 애플의 경쟁업체는 동일한 부품과 동일한 완제품 생산서비스 등을 동일한 공급업체로부터 동일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아이폰에 상응하는 제품을 양산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제품을 디자인하고 생산에 필요한 기술을 개발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막대한 투자와 개발기간이 소요될 뿐더러 막대한 투자가 기대했던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결국 경쟁업체들이 쉽게 따라잡을 수 없는 뛰어난 지식 수준으로 인해 애플이 생산한 제품의 가치는 생산수단 – 부품, 완제품 생산서비스, 배송서비스 등 – 가치의 총합을 상회하며, 애플은 직접노동을 전혀 투입하지 않고도 이 초과분만큼의 초과이윤을 실현한다.

좀더 일반화해서 표현하면, 자본은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거나 상품생산 전체를 아웃소싱할 수 있다. 전자의 경우 자본은 일반적인 잉여가치와 우수한 지식에서 기인하는 초과이윤을 획득할 수 있다. 후자의 경우 일반적인 잉여가치는 하청업체에 귀속되며, 자본은 초과이윤 만을 획득한다. 자본이 후자를 선택하는 것은 보통 핵심역량에 집중하여 초과이윤의 확대에 주력하기 위해서이다.

결국 노동의 배수화는 자본이 우수한 지식을 통해서 초과이윤을 생산하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직접노동이 투입되지 않아 노동의 배수화 과정이 작동하지 않더라도 자본은 초과이윤을 획득할 수 있다.⁠1 또한 직접노동을 전혀 투입하지 않고도 상품생산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정보재에 국한된 것이 아님을 고려하면, 안현효의 주장과는 달리 직접노동의 투입이 전혀 없는 정보재의 생산이 정보재에 대한 특수이론의 필요성을 정당화하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1 상품의 생산에 투입되는 직접노동시간이 0이라고 해서 노동의 배수화가 반드시 작동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배수화 계수가 무한대(∞)라면, 0의 직접노동시간은 여전히 배수화될 수 있다. 0 × ∞ = c (c는 상수) 이기 때문이다.

4. 지식과 상품

앞서 살펴본 것처럼 필자가 제시한 노동의 배수화 접근에서는 지식과 상품, 지식노동과 상품생산노동, 지식생산과정과 상품생산과정 (노동과정) 사이의 본질적 차이를 강조한다. 또한 지식은 상품이 아니므로 가치를 갖지 않는다고 간주된다.

대조적으로 안현효는 류동민(2005)을 따라 상품(=카피)뿐만 아니라 지식(=버전)도 가치를 가지며 지식과 상품 사이의 구분은 불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버전과 카피의 구분이 불필요하다는 류동민의 비판을 수용한다면 결국 지식생산물은 상품이며 지식생산과정은 가치생산과정이라는 인식만 남는다(안현효, 2012: 54-55, 강조는 인용자)

그런데 이러한 [지식생산과정과 노동과정 사이의 – 인용자] 구분이 과연 필요할까? 즉 지식노동이 생산과정 전체의 한 부분으로 통합되어 있다고 간주한다면 문제가 있는가?(안현효, 2012: 55, 강조는 인용자)

지식노동이 자본-임노동 관계에 있는 한 직접적 생산과정의 한 부분으로 간주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안현효, 2012: 53, 강조는 인용자)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지식은 생산과정에 일종의 불변자본으로서 투입되지만 생산과정에서 최종생산물에 가치를 이전하지는 않고, 직접노동을 배수화하는 역할만을 수행한다.

만약 지식이 구매 가능하고, 기계와 같이 도덕적 감가를 낳는다고 판단한다면 지식은 기계와 같이 불변자본으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안현효, 2012: 55)

여기에 더해 안현효는 지식이 그 자체로 상품인 것은 아니며 지식의 거래를 위해서는 지적재산권 등을 통한 상품화, 가치화 과정이 필요하다고 언급한다. 이러한 과정이 없다면 자본가 사이의 경쟁을 통해 지식의 경제적 효과는 결국 소멸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식과 과학이 사용가치 생산에 아무리 기여하더라도 이를 가치화해내지 못한다면 여기서는 가치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공짜로 얻은 지식으로 새로운 생산과정의 혁신을 이루었다면 특별잉여가치의 발생과 소멸과정을 거쳐서, 즉 상품사회의 가치화 과정에서 소멸된다. 지식과 과학을 가치화 과정으로 만들어낸다고 하는 것은 바로 지식과 과학을 상품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상품화의 가장 큰 혁신은 바로 배제 가능하게 만드느냐에 있다. 배제성을 부여하기 위한 장치로서 지적 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 Rights: IPR)은 잘 알려져 있다. 따라서 상품화된 지식이 결정적으로 문제가 될 뿐이다. 배제화하기 위해서는 인지자본주의론에서 주장하는 대로 인지의 구획화가 필요하다. 구획화된 지식, 과학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안현효, 2012: 56, 강조는 인용자)

우선 지식이 상품이며 가치를 갖는다는 안현효의 주장을 검토하도록 하자. 만약 (상품으로서의) 지식이 가치를 갖는다면 이 (지식)상품의 가치는 생산에 필요한 사회적 노동시간에 의해서 결정될 것이고, 그 가격은 가치에 의해 규율될 것이다.

그런데 지식의 가격은 어떤 내재적인 가치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사용함으로써 얻는 경제적 효과에 의해 결정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라면생산부문의 평균적인 기술수준을 보유한 자본A가 단위생산비용이 500원인 라면을 매년 1억개 생산한다고 가정하자. 추가적으로 발명가B가 라면생산공정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키는 기술을 개발해 특허를 획득했고, 이 기술을 활용하면 라면의 단위생산비용을 20% 줄일 수 있다고 가정하자. 자본A가 발명가B의 기술을 독점적으로 이용한다면, 자본A는 매년 총비용절감액에 해당하는 100억원(=500원 * 20% * 1억개)의 초과이윤을 획득할 수 있으며, 발명가B는 지식의 이용대가로 자본A에게 매년 최대 100억원을 청구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자본A가 해외진출 등을 통해 라면생산량을 연간 5억개로 늘린다면, 초과이윤은 매년 500억원으로 늘어날 것이고, 발명가B가 청구할 수 있는 금액도 그만큼 높아질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기술의 도입이 가져다주는 초과이윤의 크기는 (지식의 내재적 효과라고 할 수 있는) 단위비용 절감효과 이외에도 이 기술을 이용하여 생산되는 상품의 생산량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것은 지식의 경제적 효과가 지식에 내재적인 요소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으며 사전적으로 확정될 수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더해 비용절감효과 역시 지식을 사용하는 주체에 따라 현저하게 달라질 수 있다. 동일한 지식이 지식을 활용하는 방식이나 기존의 기술수준에 따라 좀더 효율적으로 혹은 비효율적으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식의 경제적 효과가 지식 그 자체와는 무관한 여러 외부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식의 (노동)가치가 가격을 규율하지 못하며 심지어 지식의 가격은 가치와 완전히 무관하게 결정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결과적으로 지식의 (노동)가치가 과연 존재하는지의 여부, 즉 지식의 생산에 필요한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을 형성시키는 사회적 과정이 존재하느냐의 여부와는 무관하게, 지식의 가치는 기껏해야 별다른 현실적, 이론적 의의를 갖지 않는 관념적 가치에 불과하다.

대조적으로 노동의 배수화 접근에서 지식은 상품생산의 한 요소이며 (가치)생산에서 토지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비옥도나 자본집약도가 높은 토지에서 생산된 농산물의 사회적 가치는 개별가치를 상회하기 때문에 초과이윤을 포함한다. 다시 말해 이러한 토지에서 수행되는 노동은 고도화 혹은 배수화된다. 이 초과이윤은 토지소유자에게 (차액)지대로 귀속되며, 토지소유자는 지대를 자본화한 가격에 토지를 매각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지식 역시 노동의 배수화를 통해 초과이윤을 낳으며, 이 초과이윤은 지식의 소유자 – 지식의 소유가 반드시 지적재산권을 전제하는 것은 아니다 – 에게 귀속된다. 또한, 지식의 소유자는 초과이윤에 대한 청구권을 자본화한 가격에 지식의 독점적 이용권을 양도할 수 있으며, 이러한 측면에서 지식을 국채나 주식 등의 유가증권과 같은 가공자본(fictitious capital)으로 간주하는 것이 타당하다.⁠1 물론 지식이 유가증권과는 달리 생산에 필수적인 요소이고, 토지와는 달리 노동생산물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지식을 유가증권이나 토지와 동일시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지식이 (가치를 갖는) 상품보다는 (가치를 갖지는 않지만 가격을 갖는) 유가증권이나 토지와 유사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러한 해석에 안현효도 일정 부분 동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앞서 인용한대로 “공짜로 얻은 지식으로 새로운 생산과정의 혁신을 이루었다면 특별잉여가치의 발생과 소멸과정을 거쳐서, 즉 상품사회의 가치화 과정에서 소멸된다”고 언급한다. 지적재산권의 보호를 받지 않아 쉽게 모방이 가능한 지식의 가치는 특별잉여가치 (혹은 초과이윤)의 소멸과 더불어 완전히 파괴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식의 가치가 지식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의 경제적 효과(= 초과이윤)에 의해 결정된다는 필자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필자가 초과이윤의 자본화에 의해 지식의 가격이 결정된다고 주장하는 반면 안현효는 초과이윤의 상품화 (혹은 가치화)를 통해 지식의 가치가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노동의 배수화 접근에서는 평균보다 높은 수준의 지식은 노동의 배수화를 통해 초과이윤을 낳고, 이 초과이윤이 자본화되어 지식의 가격이 결정된다. 지식이 시장에서 거래되기 위해서는 지적재산권이라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식의 경제적 효과가 지적재산권에 완전히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지적재산권이 존재하지 않아 초과이윤이 일정 기간 후에는 소멸하더라도, 기대되는 초과이윤의 총액이 지식의 생산비용을 상회하는 한 자본은 이 지식을 생산하여 상품생산에 활용할 것이다. 지식은 일정기간 초과이윤의 생산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분명히 경제적 효과를 갖고 있다. 지적재산권의 역할은 초과이윤의 존속기간을 인위적으로 늘리고 이를 통해 지식의 안정적인 자본화를 가능하게 할 뿐 초과이윤 그 자체의 원천은 아니다. 여기에 더해 지식은 그 종류에 따라 지식의 복제에 드는 비용과 시간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신기술이 일반화되는 기간은 산업 별로 크게 다르며, 같은 이유로 지적재산권의 중요성 역시 산업 별로 크게 다르다.⁠2 요컨대 지식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분석에서 지적재산권의 역할을 절대시하거나 지나치게 과대평가해서는 안된다.

대조적으로 안현효와 절충적 관점에 따르면, “상품화된 지식이 결정적으로 문제가 될 뿐”이다. 지적재산권의 보호 없이는 이 “상품화된 지식”의 가치는 0으로 수렴하여 상품으로서의 지위를 잃기 때문에 인지자본주의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지적재산권에 근거한 “인지의 구획화”를 통해서만 지식은 상품화될 수 있고 가치를 가질 수 있다. 그렇다면 지식과 상품 사이의 구분이 불필요하다는 안현효의 주장은 결국 지적재산권을 통한 지식의 상품화를 전제로 하는 셈이다. 여기에는 지식과 상품 사이의 관계에 대한 추상적인 논의와 지적재산권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뒤섞는다는 문제가 있다. 노동의 배수화 접근에서는 분석이 구체화됨에 따라 지적재산권이 분석에 사후적으로 도입된다면, 안현효에게 있어서는 지적재산권은 분석의 출발점에 해당한다.

1 가령 시장이자율이 연리 5%이고 발명가B가 개발한 지식의 독점적 사용이 매년 100억원의 일정한 초과이윤으로 이어진다면, 이 지식의 시장가격은 최대 2,000억원(=100억원 / 5%)에 달할 것이다.

2 일반적으로 제약산업은 지적재산권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산업으로 항공산업은 의존도가 낮은 산업으로 알려져 있다.

5. “기본소득의 가치론적 기초”에 대한 평가

절충적 접근과 안현효에 대한 지금까지의 비판은 정보재 가치논쟁의 맥락에 국한된 것이며, 기본소득에 가치론적 기초에 대한 안현효의 논의를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이 절에서는 후자에 대한 간략한 논평을 제시한다.

기본소득과 관련한 안현효의 주장을 요약하면 “생산된 가치에 기초”(안현효, 2012: 63)하는 인지지대의 원천이 “집단성”(안현효, 2012: 64)임을 감안할 때 현재 지적재산권자에게 귀속되는 인지지대를 기본소득의 형태로 사회구성원들에게 배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 대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첫째, 지적재산권이 초과이윤의 영속화를 통해 상품가치의 하락을 방지한다는 점에서, (초과이윤의 원천이 개인인지 집단인지의 여부와 무관하게) 초과이윤을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으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런데 자본주의 경제에서 지식생산은 기본적으로 초과이윤의 획득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초과이윤의 인위적 환수는 지식생산의 방식과 규모에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인지지대의 기본소득으로의 전환은 단순히 분배문제가 아니다.

둘째, 초과이윤의 원천은 불특정 다수이지만 그것이 인지지대의 형태로 소수에게 귀속되는 구체적인 사례가 있다면 지적재산권 제도를 개선하고 보완하면 된다. 하지만 그러한 구체적인 사례로 제시된 것들의 실상은 집단적 생산과 개별적 점유와는 무관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구글의 광고수입의 상당부분은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가 공동으로 생산한 가치이고, 이것이 불완전한 지적재산권 제도로 인해 구글에게 (부당하게) 귀속되고 있다는 식의 설명은 옳지 않다. 구글은 엄청난 비용이 소요되는 검색서비스를 소비자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이렇게 확보한 다수의 소비자층을 활용하여 광고수입을 올린다. 소비자는 검색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하는 대신, 검색결과 페이지에 광고가 표시되는 일종의 품질 하락을 용인한다. 구글과 소비자 사이에 일종의 주고받기 식의 타협이 존재하는 셈이다 (구글은 검색결과 페이지에 표시되는 광고의 양을 제한하고 그 질을 높이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광고가 소비자의 만족도를 일정 수준 이상 침해하면 소비자의 이탈이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구글은 검색서비스라는 상품을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여 그 가치를 실현하는 대신, 광고수입을 통해 검색서비스의 무료제공에 의한 가치손실분을 보전하는 전략을 취한다.

셋째, 안현효는 지식과 네트워크의 외부성에 주목하며 외부성이 가져오는 경제적 효과가 인지지대로 전유된다는 논지를 전개한다. 물론 외부성의 경제적 효과는 분명히 존재한다. 안현효는 외부성의 예로 “협업의 생산성 향상 효과”를 제시하는데, 협업의 외부성은 마르크스가 언급한대로 “노동자들이 일정한 조건 하에 놓일 때는 언제나 무상으로 발휘”(마르크스, 2002: 450)되며 그 과실은 모두 자본이 독차지한다. 하지만 협업의 외부성은 사용가치의 측면에서의 경제적 효과일 뿐 가치의 측면에서의 경제적 효과는 아니다. 가령 10명의 노동자가 제각기 노동할 때는 총 100개의 상품을 생산하는 반면, 협업을 통해서는 총 200개의 상품을 생산한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협업을 통해 노동생산성은 두 배로 높아지지만, 이것이 두 배의 가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든 동일한 수의 노동자가 동일한 시간 동안 노동하므로 생산된 사용가치의 양이 다르더라도 생산된 가치의 양은 동일하다. 다만 협업을 통한 노동생산성의 상승으로 자본가의 몫인 잉여가치는 상대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좀더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자. 대부분의 국가에서 플러그(plug)와 콘센트(socket) 규격은 표준화되어 있어서 전자제품은 단일한 종류의 플러그만 지원하면 된다. 만약 표준규격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전자업체는 시장에 존재하는 사설 콘센트 규격 수 만큼의 플러그를 지원해야 할 것이고, 그만큼 전자제품의 단위생산비용도 높아질 것이다. 결국 표준규격이라는 사회적 약속은 표준규격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 비해 동일한 시간 동안 같은 비용으로 더 많은 수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하는 방식으로 전자업체의 생산성을 향상시킨다. 게다가 표준규격은 누구나 공짜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그 효과는 “언제나 무상으로 발휘”되며 그 과실은 모두 자본이 독차지한다. 이 경우에도 역시 그 과실은 추가적인 사용가치에 해당할 뿐이다. 동일한 수의 노동자는 표준규격이 존재하건 그렇지 않건 동일한 시간 동안 동일한 가치를 생산한다.

결국 외부성이 더 많은 가치의 생산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지적재산권을 통해 인지지대로 전유되며, 인지지대를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외부성은 노동생산성을 높여 동일한 시간과 비용으로 더 많은 사용가치를 생산하게 하지만, 안현효의 주장과는 달리 더 많은 가치의 생산으로는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외부성은 사용가치의 경제학에 해당하는 신고전파 경제학에서와는 달리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에서는 별다른 이론적 중요성을 가질 수 없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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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K. 2002, 자본론 1권, 김수행 옮김. 제2개역판, 비봉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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