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유물론적 변증법

(134) 변증법적 유물론, 유물론적 변증법

다윈은 자연의 기술사, 즉 동식물의 기관들 – 동식물의 생활의 영위를 위한 생산도구들이다 – 의 형성(Bildung)에 관심을 기울였다. 사회 속 인간들(Gesellschaftsmenschen)의 생산적 기관들의 형성사, 모든 특수한 사회조직체(Gesellschaftsorganisation)의 물적토대의 형성사에도 동일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이것이 더 용이하게 수행될 수 있지 않을까? 비코(Vico)의 말대로 인간의 역사는 자연사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 인간의 역사는 우리가 만들어낸 것인 반면 후자는 그렇지 않다. 기술(Technologie)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능동적 행동(Verhalten), 즉 인간 생활의 직접적 생산과정을,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사회적 생활조건(Lebensverhältnisse)과 그로부터 생겨나는 정신적 표상들(Vorstellungen)을 밝혀준다. 심지어 어떤 종교사도 이러한 물적토대를 추상하는한 몰비판적이다. 사실 분석을 통해 종교적 환영들(Nebelbildungen)의 현세적 핵심을 찾아내는 것이 거꾸로 현실의 생활조건들로부터 그것들의 신성화된(verhimmelten) 형태를 전개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후자가 유일하게 유물론적인 따라서 학적인 방법이다. 역사적 과정을 배제하는 추상적인 자연과학의 유물론의 약점은 이들의 대변자들이 자신들의 전문분야를 벗어나자마자 사용하는 추상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개념들(Vorstellungen)로부터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 자본론 1권 15장; MEW 23, 392

참고: 기존의 번역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새롭게 번역했다 (아래 비봉판, 길판, 펭귄판, MIA판 번역 참조)

1. 기술을 – 그리고 기술의 구현체인 도구와 기계를 – 기관에 비유한 것이 인상적이다. 특수한 동식물의 종별성이 기관구조의 종별성에 있다면 어떤 사회조직체의 종별성을 기술과 도구의 종별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철학의 빈곤]에서 “손절구는 봉건영주가 있는 사회를 산출하고, 증기 제분기는 산업 자본가가 있는 사회를 산출할 것이다”(마르크스-엥겔스 저작선집 1권, 273)라고 썼다. 하지만 자립적으로 발전하는 생산기술 혹은 생산력이 생산관계, 생산양식을 변화시킨다는 식의 해석은 곤란하다. 생산력의 발전 역시 사회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2. “사회 속 인간들의 생산적 기관들의 형성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생산적 기관들의 형성사가 생산양식과 사회적 관계들의 형성사의 중요한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관계들은 생산력들과 밀접하게 연관 되어 있다. 새로운 생산력을 획득함으로써 인간들은 그들의 생산 양식을 변화시키며, 그들의 생산 양식, 생계를 유지하는 방식을 변화시킴으로써 인간들은 그들의 모든 사회적 관계들을 변화시킨다” (철학의 빈곤, 앞의 책, 273)

3. 비봉판에는 “기술학”, 길판에는 “공학”으로 번역되어 있는 Die Technologie는 그냥 기술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맞다.

4. (어떤 특정한) 기술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드러낸다:

  • [자연에 대한 인간의 능동적 행동(Verhalten) = 인간 생활의 직접적 생산과정] – 사용가치의 관점에서의 기술
  • [인간의 사회적 생활조건(Lebensverhältnisse)] – (자본주의의 관점에서 보자면) 가치의 관점에서의 기술
    • Lebensverhältnisse는 보통 생활수준으로 번역하지만 여기서는 생활조건으로 번역했다. 이 단어가 단순히 물질적/문화적 생활수준을 넘어 사회적 삶의 조건을 규정하는 사회적 관계를 내포하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비봉판과 길판에는 모두 “생활 … 관계들”로 되어 있는데 – 아마도 Verhältnisse를 보통 관계로 번역하기 때문일 것이다 –  생산력의 의미가 배제되어 있다는 아쉬움이 있다.
    • 생산기술은 협업의 방식을 규정하고, 역으로 (생산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지배적인 협업의 방식을 반영한다. 기계는 생산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노동자를 생산의 보조자로 전락시키는데, 이것은 노동자들의 비숙련화를 전제로 한다.
  • 인간의 사회적 생산조건으로부터 생겨나는 정신적 표상들(Vorstellungen) – 다시 한번 [철학의 빈곤]에서 인용
    • “자신들의 물질적 생산성에 조응하여 사회적 관계들을 확립하는 바로 그 인간들이 또한 그들의 사회적 관계들에 조응하여 원리들, 이념들, 범주들을 만들어 낸다.
      따라서 이 이념들, 이 범주들은 그것들이 표현하는 관계들과 마찬가지로 영원하지 않다. 그것들은 역사적이고 과도적인 산물들이다.
      생산력들 속에는 끊임없는 성장의 운동이, 생산 관계들 속에는 끊임없는 파괴의 운동이, 이념들 속에는 끊임없는 형성의 운동이 존재한다 ; 변하지 않는 것은 오직 운동의 추상뿐이다 – 불사의 사.” (철학의 빈곤, 앞의 책, 273, 강조는 원문)

5. 행동(Verhalten)이라는 표현은 비슷한 맥락에서 [독일 이데올로기]에서도 사용된다 – “인간들의 표상함, 사유함, 정신적 교류는 여기에서 또한 그들의 물질적 행위(Verhalten)의 직접적 유출로서 나타난다” (독일 이데올로기, 앞의 책, 201)

6. 환영들로 번역한 Nebelbildungen을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안개의 형성이다. 영어로는 보통 Phantom이라고 번역한다. 자본론 1권 1장 4절의 상품물신주의에 관한 절에서 마르크스는 비슷한 의미를 갖는 두 개의 단어를 사용한다. 하나는 phantasmagorische (환영과 같은, 환상과 같은)이고, 다른 하나는 Nebelregion (안개영역 – 비봉판에는 “몽롱한 … 세계”, 길판에는 “신비경”으로 번역되어 있다)이다.

노동생산물의 상품형태와 가치관계는 … 인간의 눈에는 물건들 사이의 관계라는 환상적인(phantasmagorische) 형태로 나타나지만 그것은 사실상 인간들 사이의 특정한 사회적 관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비슷한 예를 찾아보기 위해 우리는 몽롱한 종교세계(Nebelregion der religiösen Welt)로 들어가 보지 않으면 안된다 – 자본론 1권 1장, 93

마르크스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도 Nebelbildungen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인간들의 뇌 속의 환영들(Nebelbildungen) 또한 인간들의 물질적인, 경험적으로 확인 가능한, 그리고 물질적 전제들에 연결된 생활 과정의 필연적 승화물이다. – 독일 이데올로기, 마르크스-엥겔스 저작선집 1권, 202

[철학의 빈곤]과 [독일 이데올로기]의 이 부분들만 놓고보면 유물론에 대한 마르크스의 생각은 1846년 이래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다. 독일 이데올로기에는 “유일하게 유물론적인 … 방법”에 대한 다음과 같은 언급도 있다.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독일 철학과는 정반대로 여기에서 우리는 땅에서 하늘로 올라간다. – 독일 이데올로기, 같은책, 202-3

7. 과학적 방법 대신 학적 방법이라는 표현이 낫다. 학회의 주제를 정하고 제출된 논문을 심사하는 Scientific Committee를 과학적 위원회로 번역할 수 없는 것 아닌가.

8. 추상적인 자연과학의 유물론이라 함은 곧 기계적 유물론을 가리키는 것 같다. 이 유물론은 역사적 과정을 배제한다는 점에서 추상적이다. 마르크스의 유물론은 대상의 고정성을 부정하는 유물론이다. 그것은 현실이 끊임없는 변화 속에 놓여 있다고 간주한다는 점에서 변증법적이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의 유물론은 변증법적 유물론이다. 그리고 그의 변증법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출발해 하늘로 올라간다는 점에서 유물론적 변증법이다.

이 고찰 방식은 현실적 전제들에서 출발하여, 그 현실적 전제들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는다. 이 고찰 방식의 전제들이란 어떤 환상적 (phantastisch) 격리와 고정 속에 있는 인간들이 아니라, 특정한 조건들 아래의 현실적인, 경험적으로 일목요연한 발전 과정 속에 있는 인간이다. 이러한 활동적 생활 과정이 표현되자마자 역사는, 경험론자들 – 그들 자신 아직 추상적인 – 의 경우처럼 죽은 사실들의 집적이기를 멈추고, 혹은 관념론자들의 경우처럼 상상된 주체들의 상상된 행동이기를 멈춘다. – 독일 이데올로기, 같은책, 202

독일어 원문

Darwin hat das Interesse auf die Geschichte der natürlichen Technologie gelenkt, d.h. auf die Bildung der Pflanzen- und Tierorgane als Produktionsinstrumente für das Leben der Pflanzen und Tiere. Verdient die Bildungsgeschichte der produktiven Organe des Gesellschaftsmenschen, der materiellen Basis jeder besondren Gesellschaftsorganisation, nicht gleiche Aufmerksamkeit? Und wäre sie nicht leichter zu liefern, da, wie Vico sagt, die Menschengeschichte sich dadurch von der Naturgeschichte unterscheidet, daß wir die eine gemacht und die andre nicht gemacht haben? Die Technologie enthüllt das aktive Verhalten des Menschen zur Natur, den unmittelbaren Produktionsprozeß seines Lebens, damit auch seiner gesellschaftlichen Lebensverhältnisse und der ihnen entquellenden geistigen Vorstellungen. Selbst alle Religionsgeschichte, die von dieser materiellen Basis abstrahiert, ist – unkritisch. Es ist in der Tat viel leichter, durch Analyse den irdischen Kern der religiösen Nebelbildungen zu finden, als umgekehrt, aus den jedesmaligen wirklichen Lebensverhältnissen ihre verhimmelten Formen zu entwickeln. Die letztre ist die einzig materialistische und daher wissenschaftliche Methode. Die Mängel des abstrakt naturwissenschaftlichen Materialismus, der den geschichtlichen Prozeß ausschließt, ersieht man schon aus den abstrakten und ideologischen Vorstellungen seiner Wortführer, sobald sie sich über ihre Spezialität hinauswagen. – MEW 23, 392

비봉판

다윈(Darwin)은 자연의 기술사 [즉, 생명의 유지를 위해 생산도구의 역할을 하는 동식물의 기관들의 형성]에 관심을 돌리고 있었다. 인간사회의 생산적 기관의 형성사[즉, 모든 사회조직의 물질적 기초가 되고 있는 기관의 형성사]에도 그와 동일한 주의를 돌릴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것은 더 용이하게 저술할 수 있지 않겠는가? 왜냐하면, 비코(Vico)가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인간의 역사는 우리가 만들었지만 자연의 역사는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양자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기술학은 인간이 자연을 다루는 방식, 인간이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생산과정을 밝혀 주는 동시에, 인간생활의 사회적 관계들과 이로부터 발생하는 정신적 관념들의 형성과정을 밝혀 준다. 이 물질적 기초를 사상하고 있는 모든 종교사는 무비판적이다. 안개처럼 몽롱한 종교적 환상의 현세적 핵심을 분석에 의해 발견하는 것은, 현실의 생활관계들로부터 그것들의 천국형태를 전개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쉬운 일이다. 후자의 방법이 유일하게 유물론적인, 따라서 유일하게 과학적인 방법이다. 자연과학의 추상적 유물론(즉, 역사와 역사적 과정을 배제하는 유물론)의 결함은, 그 대변자들이 일단 자기의 전문영역 밖으로 나왔을 때에 발표하는 추상적이며 관념론적인 견해에서 곧 드러난다. – 501

길판

다윈은 자연의 기술사, 즉 동식물이 자신들의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생산용구로서 자신들의 갖가지 기관을 어떻게 형성해왔는가에 관심을 기울였다. 사회적 인간의 갖가지 생산기관의 형성사나 각 개별 사회조직의 물적 토대에 의한 형성사도 마찬가지로 관심을 기울일 만한 분야 아닐까? 그리고 사실 이 분야가 더 쉬운 분야가 아닐까? 왜냐하면 비코(Vico)의 말대로 인간의 역사와 구별되는 까닭은, 전자는 우리가 만든 것이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공학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능동적인 태도, 즉 인간생활 [따라서 인간생활의 온갖 사회적 관계와 거기에서 생겨나는 정신적 표상들]의 직접적인 생산과정을 밝혀주고 있다. 이 물적 토대를 무시한다면, 어떤 종교사도 몰비판적인 것이다. 분석을 통해 종교적 환상의 현세적인 본질을 찾아내는 것은, 거꾸로 그때그때 현실의 온갖 생활관계들에서 그것의 종교적인 형태를 설명해내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다. 후자가 곧 유물론적인[따라서 과학적인] 방법이다. 역사적 과정을 배제하는 추상적, 자연과학적 유물론의 결함은 그 대변인들이 자신들의 전문영역을 벗어나자마자 보여주는 추상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견해에 의해 분명히 드러난다. – 508

펭귄판

Darwin has directed attention to the history of natural tech­nology, i.e. the formation of the organs of plants and animals, which serves as the instruments of production for sustaining their life. Does not the history of the productive organs of man in society; of organs that are the material basis of every particular organization of society, deserve equal attention? And would not such a history be easier to compile, since, as Vico says; human history differs from natural history in that we have made the former, but not the latter? Technology reveals the active relation of man to nature, the direct process of the production of his life, and thereby it also lays bare the process of the production of the social relations of his life, and of the mental conceptions that flow from those relations. Even a history of religion that is written in abstraction from this material basis is uncritical. It is, in reality, much easier to discover by analysis the earthly kernel of the misty creations of religion than to do the opposite, i.e. to develop from the actual, given relations of life the forms in which these have been apotheosized. The latter method is the only materialist, and therefore the only scientific one. The weaknesses of the abstract materialism of natural science, a materialism which excludes the historical process, are immediately evident from the abstract and ideological conceptions expressed by its spokesmen whenever they venture beyond the bounds of their own speciality. – 493-4

MIA판

Darwin has interested us in the history of Nature’s Technology, i.e., in the formation of the organs of plants and animals, which organs serve as instruments of production for sustaining life. Does not the history of the productive organs of man, of organs that are the material basis of all social organisation, deserve equal attention? And would not such a history be easier to compile, since, as Vico says, human history differs from natural history in this, that we have made the former, but not the latter? Technology discloses man’s mode of dealing with Nature, the process of production by which he sustains his life, and thereby also lays bare the mode of formation of his social relations, and of the mental conceptions that flow from them. Every history of religion, even, that fails to take account of this material basis, is uncritical. It is, in reality, much easier to discover by analysis the earthly core of the misty creations of religion, than, conversely, it is, to develop from the actual relations of life the corresponding celestialised forms of those relations. The latter method is the only materialistic, and therefore the only scientific one. The weak points in the abstract materialism of natural science, a materialism that excludes history and its process, are at once evident from the abstract and ideological conceptions of its spokesmen, whenever they venture beyond the bounds of their own special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