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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렌 버펫 판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

via Farnam Street

지난 몇년 간 대규모의 자본투자(지출)을 통해 섬유부문에서 가변비용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모두 즉각적으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표준적인 ROI 검증을 통해 따져보자면, 사실 이런 기회들은 이윤율이 꽤 높은 캔디사업 혹은 신문사업에 대한 비슷한 투자에서 거둘 수 있는 것보다 보통 더 큰 경제적 이득을 가져올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섬유부문에 대한 이러한 투자가 가져올 것으로 보였던 이득은 환상에 불과했다. 국내외 경쟁자 상당수가 비슷한 지출을 계획하고 있었고, 충분한 숫자의 회사가 이런 투자를 한 이후에는 산업 전반에 걸쳐 가격이 하락했으며, 비용절감에 의한 새 생산비용이 새 기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개별적으로 보았을 때, 개별 회사의 자본투자결정은 비용 절감 효과가 있으며 합리적인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산업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이 결정들은 개별적인 자본투자결정을 상쇄하는 효과를 나았으며 비합리적인 것이었다 (퍼레이드를 보고 있던 사람들이 더 잘 보기 위해 모두 까치발을 딛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 차례 투자가 끝날 때마다 모든 플레이어들은 게임에 더 많은 돈을 박아 넣었으며 이익은 여전히 보잘 것 없었다.

워렌 버펫, 버크셔 해서웨이 이사회 의장의 편지, 1985년

Over the years, we had the option of making large capital expenditures in the textile operation that would have allowed us to somewhat reduce variable costs. Each proposal to do so looked like an immediate winner. Measured by standard return-on-investment tests, in fact, these proposals usually promised greater economic benefits than would have resulted from comparable expenditures in our highly-profitable candy and newspaper businesses.

But the promised benefits from these textile investments were illusory. Many of our competitors, both domestic and foreign, were stepping up to the same kind of expenditures and, once enough companies did so, their reduced costs became the baseline for reduced prices industrywide. Viewed individually, each company’s capital investment decision appeared cost-effective and rational; viewed collectively, the decisions neutralized each other and were irrational (just as happens when each person watching a parade decides he can see a little better if he stands on tiptoes). After each round of investment, all the players had more money in the game and returns remained anemic.

(115) IRIS 님께 2: 오키시오 정리 정리하기

IRIS님 덕에 그동안 별로 주목하지 않았던 오키시오 정리를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네요. 이 글에서는 오키시오 정리를 간단히 요약하고 비판하겠습니다. 부록으로 파인과 사드-필류의 {마르크스의 자본론} 5판의 오키시오 정리에 대한 부분을 번역했습니다.


1. 오키시오 정리란?

오키시오 정리는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경향 이론에 대한 비판이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기술혁신은 자본의 유기적 구성을 고도화시켜 이윤율 저하경향으로 귀결함에 반해, 오키시오는 기술혁신은 평균이윤율의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실질임금이 상승하지 않는 한 이윤율은 하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2. 대체 어떻게 이런 결론에 도달했나?

아래는 오키시오가 그의 정리를 도출한 과정을 7단계로 재구성해본 것이다.

  1. 경제 전체적으로 평균이윤율이 형성되어 있다 [최초 평균이윤율]
  2. 부문 내의 개별자본가들은 모두 동일한 자본구성을 갖는다
  3. 자본가가 새로운 생산기술을 도입하는 것은 이 생산기술을 도입했을 때 수익성이 높아지는 경우 [개별 혁신자본 이윤율], 즉 주어진 가격 하에서 상품 한 단위당 소요비용을 줄일 수 있는 경우에 한해서다.
  4. 혁신 기업이 새로운 생산기술을 도입하더라도 해당 부문에서 생산하는 상품의 가격은 일정하게 유지된다.
  5. 혁신 기업이 도입한 새로운 생산기술은 결국에는 부문 내에 퍼져나가 일반화된다. 이에 따라 부문 내의 모든 개별자본들은 혁신기업의 자본구성과 동일한 새로운 자본구성을 갖게 된다
  6. 부문 내의 모든 개별자본이 이제 더 적은 비용으로 동일한 양의 상품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상품 가격이 변하지 않는다면 이 부문의 모든 개별자본이 [최초 평균이윤율]을 초과하는 이윤을 획득하게 된다.
  7. 이제 이 부문의 이윤율은 [개별 혁신자본 이윤율]이다. [개별 혁신자본 이윤율]은 [최초 평균이윤율]과 다르기 때문에 (부문 간) 이윤율의 균등화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이 부문의 이윤율이 [최초 평균이윤율]에 비해 높기 때문에 경제 전체의 평균이윤율은 [최초 평균이윤율]보다는 높고 [개별 혁신자본 이윤율]보다는 낮은 수준에서 새롭게 형성되고 [새로운 평균이윤율], 이 부문에서 생산하는 상품의 생산가격은 하락한다.

오키시오의 정리를 [최초 평균이윤율] < [새로운 평균이윤율] < [개별 혁신자본 이윤율]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기술혁신의 결과로 (실질임금의 변화를 배제하면) 평균이윤율이 상승한다.

3. 이제 비판하자

  1. 별 문제 없음
  2. 별 문제 없음
  3. 별 문제 없음
  4. 별 문제 없음
  5. 별 문제 없음
  6.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신기술이 부문 내에 일반화되면, 부문 내의 평균적인 자본구성이 혁신기업의 자본구성과 동일해진다. 여기까지 마르크스와 오키시오의 입장은 거의 같다.차이점은 이렇다. 기술변화에도 불구하고 생산량이 고정되어 있다고 가정할 때,마르크스의 경우에는 이 부문의 자본구성, 정확하게는 유기적 구성이 고도화됨에 따라 잉여가치율(이윤율)과 잉여가치(이윤) 총량이 하락한다. 상품의 가치(와 가격) 역시 하락한다. 예를 들면 80c + 10v + 10s이던 자본구성이 80c + 5v + 5s로 변하면서, 이윤율은 11.1%에서 5.9%로, 상품가치는 110원에서 100원으로 하락한다.오키시오의 경우에는 동일한 양의 상품의 생산에 소요되는 비용이 부문 전체적으로 하락하므로, 상품가격에 변동이 없다고 가정하면 부문의 이윤율이 증가한다. 100원에 팔리던 물건을 생산하기 위해 과거에는 90원의 비용이 소요되었는데, 이제는 85원만 소요된다. 80c + 10v가 경제 전체의 평균 자본구성이라고 가정하면, 신기술의 혁신과 일반화에 따라 [최초 평균이윤율] 11.1%은 [개별 혁신자본 이윤율]과 같은 17.6%로 증가한다.

    따라서 마르크스에게 있어서는 (혁신과 혁신의 일반화가 야기하는)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와 이윤율의 하락이 이 부문으로 가치를 이전시키는 사회적 과정을 추동한다면, 오키시오에게 있어서는 (혁신과 혁신의 일반화가 야기하는) 이윤율의 상승은 이 부문으로부터 가치를 이전시키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는다.

  7. 앞의 과정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오키시오에게 있어서는 이 부문에서 가치가 외부로 이전되는 방식으로 새로운 평균 이윤율이 형성되며, 이 부문에서 생산하는 상품의 생산가격 역시 하락한다.

결국,

오키시오 정리는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의 오류를 증명한 이론이 아니다. 그냥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과 다른 이론일 뿐이다. 

4.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과의 또다른 차이점은?

마르크스에게 있어서는 혁신과 모방의 끊임없는 싸이클은 부문의 평균적 유기적 구성을 고도화하고 상품의 가치를 저하시키며 부문의 평균적 이윤율을 저하시키는 경향을 낳는다. 동시에 부문간 연관관계를 고려하는 상대적으로 낮은 추상수준에서, 동일한 요인은 불변자본 가치를 하락시키기 때문에 유기적 구성에 비해 가치구성의 고도화 속도를 낮추는 결과를 가져온다. 달리 표현하면, 혁신과 모방의 끊임없는 싸이클 – 이것은 상대적 잉여가치 생산이 표현되는 방식이다 – 은 한편으로는 이윤율의 하락을 다른 한편으로는 이윤율의 상승을 초래하는 모순적인 결과를 낳는다 (따라서 이윤율의 변동흐름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쨌든 둘다 무시무시하다. 한편에서는 높아지고 다른 한편에서는 낮아지니까 합치면 쌤쌤이네, 이런 것 없다. 한편으로는 이윤율이 하락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가치가 파괴된다! 비유를 하면 이렇다. 월세소득도 계속 낮아지고, 아파트 값도 계속 내려간다. 아파트 값 폭락한 다음에 아파트 값 대비 월세 비율 늘어나면 좋은건가? 물론 싼 값에 아파트 살 수 있는 사람에게는 좋은 기회다.

오키시오에게 있어서는 혁신은 단기적으로 개별자본의 이윤율을 증가시키지만, 모방에 따른 신기술의 일반화를 통해 이 개별자본의 이윤율은 장기적으로 새로운 부문 이윤율로 하락, 수렴한다. 이 새로운 이윤율은 실질임금에 변화가 없는 이상 최초의 이윤율에 비해서 언제나 높다. 노조관리만 제대로 해주면 자본주의는 이윤율 100%에 도달하고야 말 것이다!

5. 결론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오키시오 정리를 공부할 필요는 전혀 없다. 다만, 오키시오 정리에 대한 비판을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이윤율 저하경향의 법칙과 그 반경향에 대한 이해를 점검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부록: 오키시오에 답한다 (벤 파인, 알프레두 사드-필류) – Marx’s Capital, 5th Edition, pp. 104-107, Chapter 9.

  • 상당히 의역했습니다.
  • 8, 9, 10장을 한 묶음으로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 4판은 한국어 번역본이 있습니다. 4판과 5판을 대충 비교해 보았는데, 내용상 차이점은 거의 없습니다.
  • ( )는 원문에서 옮긴 것이고, [ ]는 제가 추가한 것입니다.
  • 볼드는 원문의 강조입니다.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경향 이론 [이하 LTRPF]에 대해 가장 잘 알려진 비판은 일본의 경제학자인 노부오 오키시오의 정리를 바탕으로 한다. 간단히 서술적으로 표현하면, 오키시오는 적용가능한 다수의 생산기술이 존재한다는 가정 하에, 실질임금이 상승하지 않는 한 이윤율이 하락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서 이윤율의 하락은 자본축적과정의 모순들의 결과 – 이것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마르크스의 입장에 해당한다 – 라기 보다는, 임금의 상승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오키시오의 분석에서는, 상품의 지배적인 가격이 주어져 있다고 가정할 때, 자본가는 오직 새로운 생산기술이 기존의 기술에 비해 더 나은 수익성을 가져다줄 때에만 새로운 생산기술을 도입한다. 이 새로운 생산기술이 관련 경제부문들에서 일반화되면, 새로운 (저가의) 가격체계가 결정되며, 새로운 이윤율이 형성된다 – 이 이윤율은 경제 전체적으로 균등화된 것이다.

[Heesang] 제가 쓴 글의 3.7을 참조.

물론 가격변동은 혁신을 동반한 부문들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부문들에서 (일어날 법한) 가격하락이 [이 부문에서 생산된] 상품들을 투입물이나 임금의 일부로 활용하는 [여타의] 부문들로 전파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오키시오가 제기하는 문제는 다음과 같다: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여 개별 이윤율을 높이고자 하는 자본가들의 맹목적인 행동이 역설적으로 [경제] 시스템에 있어 이윤율의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 당연하게도, 그는 실질임금이 상승하지 않는다면 이윤율의 하락이 가능하지 않다는 부정적인 대답을 내놓으며, 마르크스가 틀렸다는 결론을 내린다.

오키시오의 정리가 비교정학(comparative statics) – 한 [경제적] 균형상태와 또 다른 [경제적] 균형상태를 비교하는 것 – 에 해당한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윤율의 변동에 입각하여 위기의 원인을 해명하는 분석에서 비교정학을 사용하는 것은 분명히 부적절하다. 달리 표현하면, (정적) 균형에서 또 다른 균형으로의 이동이 문제가 되는 경우, 이윤율이 어떻게 변동하건 위기를 해명할 수는 없다.

[Heesang] 여기서는 이런 식으로 점잖게 표현했지만,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에서 절대로 균형 개념을 사용해서는 안된다. 따라서 균형조건을 행렬식으로 표시할 필요도 없다.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은 완전히 말로 풀어서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실제로 완전히 말로 풀어서 설명할 수 있다. 분수 연산과 일차연립방정식만 알면 된다 ^^;

하지만 오키시오는 첫째, 경제가 하나의 정적 균형에서 또 다른 정적 균형으로 이동하고, 둘째, 암묵적으로, 이윤율이 하락하면 위기가 발생하며, 이윤율이 하락하지 않으면 위기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제시한다. 그러나 그는 더 낮은 이윤율을 갖는 균형이 왜 갑자기 붕괴해서 위기를 발생시키는지를 해명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두 균형 사이의 이동과 관련된 훨씬 더 재미있는 문제를 제기한다. 이에 대한 고찰을 통해 오키시오의 접근법이 마르크스의 LTRPF에 대한 해석이라기 보다는 그 정반대의 것에 해당한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Heesang] 결론

오키시오의 접근에 있어서는 개별자본가는 금융이나 기술에 대한 우월적인 접근을 통해 더 유리한 생산기술을 채택하며, 주어진 가격 하에서 (at the initial prices) 평균이윤율 보다 더 높은 이윤율을 누릴 수 있다.

[Heesang] 중요한 표현이다. “주어진 가격 하에서”.

이러한 접근법은 유기적 구성의 상승에 대한 마르크스의 분석과는 분명히 다르다. 앞서 보인 바와 같이 마르크스에게 있어서는 이윤율의 하락 경향은 투입물과 산출물을 기존의 가치(old values)로 평가하는 것으로부터 도출된다 – 이 경향은 총체로서의 자본 (capital as a whole)에 해당한다.

[Heesang] 총체로서의 자본. 밑줄 쫙. 개인은 별 문제가 안된다는 것.

그렇다면 오키시오의 정리의 맥락에서 새로운 생산기술의 일반화가 부문 내의 모든 자본가에게 가져오는 결과, 그리고 새로운 균형가격과 이윤율의 형성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오키시오가 사용한 것과 비슷한 수학적 기법을 활용해서 혁신 자본가의 단기 이윤율이 새로운 (기술변화의 일반적 보급 후에 형성되는) 장기 ‘균형’ 이윤율보다 높으며, 장기이윤율이 (기술변화 전의) ‘기존의 균형’ 이윤율보다 높다는 것을 보일 수 있다. 이것은 기술적 혁신을 통해 경쟁우위를 확보한 자본가가, 종래 이 혁신의 결과가 다른 자본가들에게 확산됨에 따라 그 우위를 상실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생산기술의 도입[과 그 일반화가] 초래하는 가격하락으로 인해 혁신자본가의 이윤율 역시 저하한다. 따라서 오키시오에게 있어서는 기술변화가 야기하는 [새로운] 가격의 형성은 개별 혁신자본가의 이윤율을 (새로운) 평균이윤율로 하락하게 하는 압력으로서 작용한다. 대조적으로, 마르크스에게 있어서는 기술변화가 야기하는 [새로운] 가격 (그리고 가치구성)의 형성은 총체로서의 자본에 해당하는 이윤율의 하락에 대한 반경향으로서 작용한다. 기술변화가 불변자본과 가변자본의 가치의 저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Heesang] 현실적으로는 자본의 기술적, 유기적 구성이 하락함과 동시에 불변자본의 가치도 하락한다. 이윤율의 하락 경향과 반경향이 동시에 작용하는 것이다.

이제 새로운 가격을 형성시키는 두 과정에 해당하는 새로운 기술의 도입과 이 기술의 일반화를 한데 모아 살펴보도록 하자. 오키시오에게 있어서는 이 두 과정은 직접적으로 경험적인 균형 현상이다. 이들은 상호작용을 통해 좀더 복잡하고 구체적인 결과들로 이어지지 않는다. 대신, 이들을 단순히 더하면 그 효과의 총합은 경제전체의 이윤율의 상승으로 나타난다. 게다가 개별적으로는 균형을 깨뜨리는 결과를 낳는 이 두 과정은 서로를 상쇄하여 (경제)체계를 조화로운 균형상태에 머물도록 한다. 이런 연유로 오키시오의 접근법에서는 가치구성과 유기적 구성을 구분할 수 없다. 오키시오의 접근법은 대신 가치구성에 대한 균형[개념에 바탕을] 둔 해석(notion)에 완전히 의존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가치구성에는 유기적 구성이라는 이름이 부여된다.

[Heesang] 이로써 유기적 구성과 가치구성에 대한 혼동이 많은 사람을 혼돈 속으로 몰아넣게 된다.

대조적으로 마르크스에게 있어서는 [이윤율 저하경향의] 법칙과 반경향들은 추상적 경향들이며, 이들의 상호작용은 어떤 합계가 아니라 축적의 위기적(crisis-ridden) 경로로 귀결된다. 이 경로를 [사후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이것을 언제나 [사전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키시오의 결론은 매우 제한적인 의미에서만, 그러니까 임금이 충분히 (생산성 상승이 이윤율에 미치는 영향을 초과하는 정도로) 상승하는 경우 이윤율이 하락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만 의미있다. 그러나, 이윤율은 임금수준과는 무관한 다른 요인들 때문에 하락할 수도 있다.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외부충격 (예를 들어 수입물가 상승에 의한 무역규모의 위축), 금융위기 (지난 30년 혹은 그 이상의 기간 동안의 임금수준의 정체를 감안할 때 특히 주목할만하다) 혹은 사업 전망의 악화를 예로 들 수 있다. 특히, 높은 임금수준이 위기를 악화시킬 수는 있지만, 자본축적은 실질임금의 상승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 높은 임금수준이 높은 수준의 소비와 판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대조적으로, 만약 실질임금이 기술진보에도 불구하고 일정하게 유지된다면 노동력의 가치는 하락하고 잉여가치율은 증가한다 – 이들은 마르크스에게 있어서는 반경향에 해당한다. 축적의 결과인 이러한 반경향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위기의 부재를 보증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결과들[실질임금의 상승에도 불구하고 축적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는 것, 실질임금의 정체에 의한 잉여가치율의 증가 등등]이 마르크스의 LTRPF와 반경향의 분석에서는 언제나 가능한 반면 오키시오의 이윤-임금 비율에 대한 협소한 관심에서는 배제되어 있다.

요컨대, 현재의 금융 대폭락은 수익성(profitability)의 하락과 위기가 실질임금의 정체와 무관하게, 그리고 심지어 실질임금의 정체에도 불구하고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오키시오의 정리는 이러한 상황에는 적용될 수 없다는 점을 받아들인 연후에야 간신히 구제될 수 있을 뿐이다. 대조적으로, 마르크스의 LTRPF와 반경향은 [이러한 상황에] 적용될 수 있으며, 방법, 범위, 내용에 측면에서 [오키시오의 정리와] 다르고, 오키시오[의 정리에] 의해 논박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LTRPF와 반경향은] 모순들을, 따라서 위기의 가능성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Heesang] 오키시오는 위기가 발생하느냐 발생하지 않느냐, 혹은 이윤율이 하락하느냐 증가하느냐라는 양자택일의 문제를 다룬다면, 마르크스는 모순들을 위기의 가능성을 다룬다.

위기의 가능성은 총체로서의 자본의 축적과 유통에 내재적이며, 여기서 실질임금의 상승은 분석적으로 적절히 반영되어야 할 한 부분에 불과하다. 외생적이고 독립적인 요소로 다루어서는 안된다.

[Heesang] 오키시오는 외생적이고 독립적인 요소로 다룬다. 실질임금을 분석에서 배제하면 이윤율은 계속해서 상승한다. 실질임금이 얼마나 그리고 지속적으로 상승하느냐에 따라 이윤율의 흐름이 결정된다. 실질임금이 어떻게 결정되는지의 문제는 관심 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