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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 70% 복원’의 정치경제학 : 왜 그것은 박근혜정부의 국정과제에서 빠지게 되었는가

주지하다시피 ‘중산층을 70%로 만들겠다’라는 것은 대선 후보시절 박근혜 대통령의 대표적인 공약 중 하나였다. 그는 당선인 시절만 해도 이를 ‘새 정부의 핵심 국정지표’로 내세웠다(링크).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중산층 70% 복원’은 2월말에 인수위 보고서에도, 5월 말 발표된 {박근혜정부 국정과제}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는 ‘중산층 70% 복원’을 포기한 것인가? 이 문제의 해명은, 특히나 최근 사태진행추이에 비춰보면, 박근혜 정부의 향후 (경제)정책방향, 나아가 이 정권의 본질에 대하여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중산층 정의를 둘러싼 저간의 논란

사실 ‘중산층 70% 복원’ 공약은 그것이 처음 나온뒤부터 야권과 진보진영으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중산층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부터가 문제였다.

박근혜 쪽에서는 중산층을 ‘중위소득의 50~150%’로 정의했는데, 이에 따르면 4인가족이 월소득 180만원만 돼도 중산층으로 간주된다. 물론 이는 누가 봐도 터무니없이 낮은 기준이다. 박근혜와 그 무리들은 ‘국제기준’이라는 이유로 이 정의를 옹호했지만, 정작 그 어떠한 국제기구(IMF, World Bank, OECD 등)에서도 이를 중산층에 대한 정의로 쓰지 않으며, 이를 꾸준히 수집해 발표하는 국제기구도 내가 아는 한 없다. 다만 몇몇 연구들에서 중산층을 정의하는 가능한 ‘하나의’ 기준으로 매우 드물게 쓰일 따름이다.

더욱이 어떤 사람이 중산층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데는 그러한 ‘소득수준’뿐 아니라 자산이나 교육수준과 같은 다양한 사회적 지표들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예컨대 가난한 집 출신의 갑돌이가 대기업에 정규직으로 취직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중산층’이 되는 것은 아니란 얘기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보면, 중산층을 판가름하는 ‘객관적인 지표’가 과연 있을 수 있겠느냐는 회의까지도 가능하다. 누군가가 중산층에 속하는가 여부는 결국엔 그가 스스로, 즉 ‘주관적으로’ 자신이 중산층임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중산층을 늘리려면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늘어나도록 공정하고 풍요로운 사회를 이뤄야만 한다.

그렇다면 후보시절의 ‘중산층 70% 복원’ 공약이 정권출범 이후의 ‘국정과제’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위와 같은 비판에 정부가 굴복한 결과라고 볼 수 있을까? 아니, 전혀 그렇게 보이진 않는다. 왜냐하면 박근혜는 지난 8월 29일에 있었던 제2차 국민경제자문회의(링크)에서도 창조경제 구현과 중산층 복원을 현정부 경제정책의 핵심으로 꼽으면서, 고용률 제고가 이를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임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도식화하자면, “창조경제 구현 → 고용률 70% 달성 → 중산층 70% 복원”이다(링크).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도 최근 중산층 복원을 언급한 바 있다(링크).

이쯤 되니 머리가 더 복잡해진다. 중산층을 복원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과제라면, 왜 박근혜 정부는 이를 국정과제에 넣지 않았을까?

왜 ‘중산층 70% 복원’은 국정과제에서 빠졌는가

먼저 ‘중산층 70% 복원’을 국정과제에 넣지 않은 것이 일정한 ‘포기’를 내포하는 것은 맞다. 다만 여기선 포기의 대상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중산층’이 아니라 ‘70%’라는 숫자다. 다시 말해, 국정과제에 포함되지 않음으로써 ‘중산층 70% 복원’ 정책은 이제 ‘중산층을 두텁게 하겠다’라는 지극히 일반적인 당위명제로 추상화되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중산층을 두텁게 하겠다’라는 것은 모든 정부가 표방할만한 일반적인 정책목표이기 때문에, 그것을 굳이 ‘국정과제’에까지 올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70’이라는 숫자가 구속력을 잃을 때, 중산층의 정의를 둘러싼 논란도 무의미해진다. 이제 정부는 중산층에 대한 특정한 정의를 고수하는 대신에 그것이 다양하게 정의될 수 있음을 인정할 수 있고, 그러한 기반 위에서 “우리는 이렇게 다양하게 정의될 수 있는 중산층을 두텁게 하는 데 모든 정책역량을 쏟겠다”라고 말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저들은 ‘중산층 70%’라는 표현을 쓴다. 그러나 국정과제에 등재되지 않은 이상 그것은 그저 수사적인 의미 이상을 갖기 어렵다. 그러니까 달성하면 좋지만 못해도 크게 상관없는, 그런 것이 된다. 나중에 정권말이 되었을 때 누군가가 저들더러 “너희들이 약속한 중산층 70%는 어떻게 된 거냐!?”라고 따져 물어도, 저들은 “노력했지만 유감스럽게 됐다. 하지만 우린 그런 약속 한적없다”라고 답할 수 있게 되었다.

‘중산층 70%’라는 수치의 허상

그런데 이상의 논의가 ‘중산층 70% 복원’이 국정과제에서 배제된 하나의 근거는 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지는 않는 것 같다. 어떻게 봐도 ‘중산층 70% 복원’은 꽤 명확하고도 매력있는 구호이므로, 그것을 단순히 ‘중산층 정의’를 둘러싼 논란 때문에 포기한다는 것은 쉽게 납득되진 않는다. 혹시 거기엔 더 근본적인, 또는 더 치명적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 내가 보기엔 그런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중산층 70% 복원’이라는 구호가 ‘고용률 70% 달성’이라는 목표와 상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니, 적어도 현재 정부의 정책방향에서는 상충된다. 그리고 이러한 상충의 발생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정부의 중산층 정의 그 자체에서 기인한다. 이를 좀 더 들여다보자.

애초 박근혜 캠프에서는 대선공약에서 중산층을 ‘중위소득의 50~150%’로 정의했다. 앞서 이러한 정의에 대한 일반적인 비판들을 살펴봤는데, 그러한 비판들의 근간엔 공히 이러한 정의에 따르게 되면 중산층이 지나치게 많게 잡힌다는 ‘경험적인 직관’이 있었던 게 아닌가 한다. 즉 위 정의에 따르면, 2012년 현재 우리나라 중산층 규모는 세부적인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60.3%(전가구, 시장소득 기준)에서 69.1%(도시 2인이상 가구, 가처분소득 기준)로 집계된다. 멀리 보면 1997년 외환금융위기에서부터 이후 벤처거품붕괴, 카드대란, 2007/08년 금융위기 등을 거치면서 한국경제의 활력은 완전히 소진되었고, 그 과정에서 신자유주의는 한국의 경제/사회를 양극화의 극단으로 몰고갔음은 주지의 사실. 그랬는데도 2012년 말, 즉 신자유주의가 극단에 치달았다는 이명박 정권 마지막 해에 우리나라 인구의 60% 이상이 중산층이라니! 누구도 이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여기서 통계 자체가 잘못되었을 가능성은 배제하고 논의를 전개하자.) 그 까닭은, ‘중위소득 50~150%’는 ‘상대적인’ 정의이기 때문이다. 자, 이렇게 한번 질문을 던져보자. “신자유주의 양극화의 결과 중산층 비중은 늘었을까, 줄었을까?” 우리의 일반적인 감각은 이에 대해 ‘줄었다’라는 답변을 주저없이 내놓을 것이다. 신자유주의로 인해 덕을 본 사람도 없진 않지만 국민 대다수의 삶의 수준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극화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봐도, 이러한 답변에는 ‘중산층’에 대한 ‘절대적’ 기준, 즉 “이 정도는 돼야 중산층이지” 하는 기준이 전제되어 있음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즉 신자유주의 양극화 진행에 따라, 그 (절대적) 기준에 못 미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중산층을 박근혜 등이 그러듯 ‘중위소득의 50~150%’라는 식으로 정의하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즉 신자유주의 양극화로 인해 사람들의 소득이 하향평준화될 경우 중산층의 비중은 오히려 증가할 수도 있는 것이다. 바로 ‘중위’라는 개념 때문이다. 어떤 집단의 ‘중위소득(median income)’이란 그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을 소득의 크기 순으로 늘어놓았을 때 정가운데 위치한 사람의 소득을 말한다. 즉 100명이 있다면 50번째로 가난한(=부유한) 사람의 소득이 이 집단의 중위소득이 된다. 이때, 소득이 적은 사람 49명이 모두 빈털털이가 되고 그들의 소득을 가장 부유한 10명이 나눠갖는다고 해도 50번째 사람의 소득만 불변이라면 이 집단의 중위소득은 유지된다. 또한 90명의 사람들의 소득이 모두 상위 10명에게 몰리는 식으로 양극화가 이뤄진다면, (이때 중위소득은 0이고 90명의 소득이 모두 0이므로) ‘중위소득의 50~150%’라는 정의에 입각한 이 집단의 중산층 비중은 무려 90%가 된다!

‘중산층 70%’와 ‘고용률 70%’의 관계 — ‘중산층 70% 복원’이 국정과제에서 빠진 진짜(?) 이유

자 그렇다면, 이상과 같은 성격을 갖는 ‘중산층 = 중위소득의 50~150%’라는 정의(definition)가 고용률 제고정책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보통 고용률 상승은 취업인구의 증가를 의미하고, 취업인구 증가는 가계소득 증가를 의미하므로, 만약 우리가 ‘절대적인’ 중산층 기준을 가지고 있다면, 이러한 가계소득 증가는 곧장 중산층 증대로 이어질 것이다(사실 지금까지 그냥 ‘소득’이라고 했던 것은 모두 ‘가계소득’을 의미한다. ‘중산층’이란 보통 개인이 아닌 가계/가구 단위에 붙이는 규정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히 “연소득 5천만원은 돼야 중산층”이라고 생각한다면, 취업인구 증가에 따른 고용률 상승은 그러한 기준에 맞는 가구수를 늘릴 것이란 뜻이다.

‘중산층 = 중위소득의 50~150%’와 같은 (상대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을 땐 얘기가 달라진다. 즉 추가적인 취업(=추가적인 소득상승)이 어떤 가계에서 발생했느냐에 따라, 위 정의에 입각한 중산층 비중은 증가할 수도 있도 감소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1) 추가적인 취업이 중위소득 50%에 못 미치는 가구에서 발생한다면, 그리고 그 결과 해당 가구의 가구소득이 중위소득 50%를 넘어선다면, 이 집단의 중산층 비중은 증가한다. 그러나 (2) 추가적인 취업이 가구소득이 중위소득 150%에 미치지는 못하면서도 그에 근접한 가구에서 발생한다면, 그리하여 이 가구가 ‘중위소득의 50~150%’ 범위를 벗어난다면 중산층 비중은 감소할 것이다. 끝으로, (3) 추가적인 취업이 중위소득 언저리에 위치한 가구들에서 발생하는 경우에는, 결과적으로 중위소득 자체가 높아져 일부 가구가 저절로 중위소득 50% 미만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물론 이때는, 중위소득 150% 선도 상승하게 돼 원래는 고소득층에 속했던 이들이 새로 중산층으로 들어올 수도 있어, 최종적으로는 ‘중산층 = 중위소득의 50~150%’의 비중이 늘지 줄지 알 수는 없다. 이상을 그림으로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median

위 그림에서 보듯, 고용률 상승이 어느 소득분위에서 주로 발생하느냐에 따라서 ‘중산층 = 중위소득의 50~150%’은 늘어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줄어들 수도 있다. 일반화시켜서 말하면, 고용률 상승이 소득분배를 더 불평등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얘기다. (물론 고용이 모든 소득계층에서 골고루 증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의 논의에서는 이런 경우는 배제한다. 그 이유에 대해선 이하의 논의를 보라.)

저소득계층의 고용상태가 개선되고 그것이 그들 가계의 소득을 증대시켜야만 고용률 증가가 ‘중산층 복원’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만약 고용률 제고가 중간계층 언저리부터 그 이상에서 벌어진다면, 이를 통해 소득분배가 개선될 것인지는 장담할 수 없다. 혹여 이를 통해 ‘중산층 = 중위소득의 50~150%’의 비중이 증가한다 해도, 그것은 저소득층의 소득증가를 통한 것이 아니라 기존에 고소득층에 속하던 이들이 중위소득 150% 이하로 떨여진 결과일 뿐이므로,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따라서 만약 정부가 고용률 제고를 통해 중산층 복원을 꾀한다면, 정부의 고용정책은 반드시 저소득층에 초점이 맞춰져야만 하는 것이다.

바로 이렇게, 고용률 제고 정책이 중산층 비중을 오히려 줄어들게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이 둘을 함께 가져가기가 어렵다. 이러한 까닭에 결국 ‘중산층 70% 복원’이라는 매우 ‘섹시한’ 정책목표가 국정과제에서 누락된 것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정부의 ‘양질의 시간선택제 일자리’ 정책 — 현 정권의 본질(!)

이제 현 정부의 고용정책, 또는 고용률 제고정책이 어떠한가를 보자. 이와 관련된 정부시책의 핵심은 바로 ‘양질의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늘리는 데 있다. 지난 달 말에는 공공기관 채용정보박람회를 열면서 이러한 유형의 일자리를 만드는 데 공공기관을 앞장세울 것임을 천명했고(링크), 삼성 등 대기업들도 잇따라 ‘시간선택제’ 채용계획을 내놓음으로써 정부 정책에 화답하는 모양을 연출했다(링크).

이상의 논의에 비춰볼 때,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과연 어떤 이들이 바로 그 ‘양질의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채워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 정부가 시종일관 강조하는 것이 ‘고학력 경력단절 여성’이다. 즉 출산과 보육, 또는 나이든 부모봉양 등의 이유로 본인의사와 상관없이 회사를 그만둔, 최소한 대학교를 졸업한 고급여성인력을 일터로 다시 불러들인다는 얘기다. 정부가 출산과 보육, 노인생활과 관련된 복지체제를 대폭확대 내지는 정비하겠다고 나서는 것도, 결국은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다.

이는 그 자체로만 보면 당연히 권장할만한 일이다. 사실 그것은 기업도 원하는 일이다. 이제 대학을 막 졸업한 애송이보다야 자기 회사에서 10년쯤 잔뼈가 굵은 워킹맘이 능력만 놓고 본다면 백번 나을 것이기 때문이다. (말할 것도 없이, 시간선택제 일자리 자체에 대해서도 비판할 부분이 많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이렇게 고학력 경력단절 여성들이 ‘시간선택제’로 채용되면 고용률이 자연스럽게 높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중산층 = 중위소득의 50~150%’ 비중도 늘어날까? 이는 바로 그 ‘고학력 경력단절 여성들’이 어느 소득분위에 대체로 속해있을까를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당연히 예외야 상당정도 존재하겠지만, 이들의 대다수는 ‘고학력 남성’과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있을 것이고, 그들이 이루는 가계의 소득도 중위소득 이상일 확률이 높다. 그리하여, 현재와 같이 정부가 ‘고학력 경력단절 여성들’에 초점 맞춰진 ‘양질의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통해 고용률을 높이려고 하는 한, 향후 소득분배 상태는 개선되기보다는 악화되기가 쉬운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모든 고용률 제고책이 소득분배를 악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고용정책의 주파수가 저소득층에 맞춰진다면 고용률 제고가 소득분배 개선으로 자연스레 연결될 것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기존의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고(각종 사회보험 배제, 노동과정에서의 차별 등), 비인간적인 현재의 최저임금을 대폭적으로 인상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저소득/빈곤층의 근로의욕을 고취시키는 한편 기존에 고용되어 있던 이들의 처우를 개선한다면,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더 활기를 띨 것이고 경제의 건전한 선순환이 복원될 조건도 마련될 것이며, 중산층 규모도—그것을 어떻게 정의하든—늘어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정부가 이러한 사실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비정규직 처우개선이나 최저임금의 대폭적 상승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오로지 고용률 수치를 올리는 데만 급급해 야비하게 고학력 경력단절 여성에만 집착하는 것은, 오늘 대한민국 정부의 성격이 어떠한가를 소리없이 웅변해준다. 즉 ‘중산층 70% 복원’이라는 모토에서 언뜻 엿보였던 현 정부의 진보적인(!) 면모는, 그것이 국정과제에서 빠짐으로써, 그리고 사회적으로 상층에 속한다고 해야 할 이들을 중심으로 고용정책을 펴나감으로써, 완전히 탈색되었다. 다시 말해 이번 정부도, 선택된 소수만 키우고 그 외의 사람들은 그들로부터 떨어지는 떡고물을 주워먹게 하는, 이른바 ‘적하효과(trickle-down effect)’에 입각했던 이전의 신자유주의 정부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현재의 박근혜 정부는 중산층—그것을 뭐라 정의하든—을 두텁게 하는 데 실질적으로 아무런 관심이 없다. 혹여 그들이 ‘중산층 = 중위소득의 50~150%’을 증대시킨다면, 그것은 저소득층을 끌어올림으로써가 아니라 150% 이상에 위치하던 이들을 끌어내림으로써일 것이다. 다름아닌 ‘양질의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통해서 말이다. 그러니까 이때 ‘양질의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고학력 경력단절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정규직 노동자를 타겟으로 할 것이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그것은, 기존 비정규직의 질적 제고가 아니라 기존 정규직의 질적 하락을 야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은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양질의 시간선택제 일자리’에 환호할 수 없는 주된 이유다. (끝)

근대사회, 공황, 경제학: 마르크스가 리카도에 가한 하나의 비판

오늘날까지도 경제학자들은 공황을 부정한다. 그들은 심지어, ‘공황’이라는 말 자체를 일부러 안 쓰려고 안간힘을 쓰기까지 했다. 이에 대해선 이 블로그에서 한번 지적한 바 있다(링크).

하지만 눈을 가린다고 어지러운 광경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말’을 없앤다고 그 말이 가리키는 ‘현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경제학자들이 그러듯, 어떤 사태를 미봉적으로 부정하려 하면 할 수록 그 사태는 점점 더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는 법이다. 그러다가 어떤 국면에 이르면, 누구도 그 사태를 부정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위기도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 일전에 나는 다음과 같이 썼다.

실제로 세계경제는 적어도 최근 40여 년만 놓고 봐도 끊임없이 공황에 시달려왔지만, 그때마다 이 공황들은 때로는 중동 산유국들의 자원이기주의의 탓으로, 때로는 중남미 포퓰리즘적 정부들의 방만한 재정운영이나 동(남)아시아 나라들의 유교적 잔재의 탓으로 얼버무려지곤 했다. 그러나 세계자본주의의 핵심부에서, 그것도 현대 경제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금융분야에서 불거진 이번 공황은 마르크스 따위엔 관심도 없던 대중들에게조차 체제 자체의 문제로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출처)

그런데 돌이켜보면, 위와 같은 태도, 그러니까 자본주의 경제의 내재적 모순에서 유래하는 공황을, 즉 한편으로는 공황의 이와 같은 본질적 성격을, (그리하여) 다른 한편으로는 공황 자체를 부정하는 태도는,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에겐 꽤 오래된 습관이다. 다음 구절을 보라.

리카도는 공황에 대해, 즉 생산과정 그 자체로부터 발생하는 세계시장의 일반적 공황에 대해 실제로는 아는 바가 없었다. 그는 1800년에서 1815년 사이에 벌어진 공황들을, [나폴레옹의] 대륙봉쇄의 결과 시장이 경제적이 아닌 정치적인 이유로 억지로 축소되었기 때문에, 그것들이 흉작 때문에 일어났다고, 지폐의 감가, 식민지 작물의 감가 등에 의해 일어났다고 설명할 수 있었다. 또한 그는 1815년 이후의 공황들에 대해서는, 그것들이 일부는 흉작 때문에, 그리고 일부는 곡물가격 하락 때문에 벌어졌다고 설명할 수 있었다. 그 자신의 이론에 따르면 잉글랜드가 유럽대륙으로부터 격리되었던 전쟁 동안에 곡물가격에 상승압력을 가했던 앞서의 원인들은 작동을 멈추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시기의 공황들은 부분적으로는 전쟁으로부터 평화로의 이행이 ‘무역 채널의 갑작스런 변경’을 가져와서 빚어졌다고 설명되기도 했다. 이후에 벌어진 역사적 현상들, 특히 세계시장에서 거의 정기적인 주기를 가지고 일어나는 공황들은, 더이상 리카도의 후계자들로 하여금 사실을 부정하거나 이를 우연에 돌리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 . .] (강조는 EM의 것. 출처: Karl Marx Frederick Engels Collected Works, Vol. 32, pp. 128-29)

그렇다면, 이후 경제학자들이 공황의 주기성, 그것의 본성을 인정하게 되었는가? 마르크스에 따르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이를테면 ‘자본의 과다'(plethora of capital)와 ‘과잉생산'(overproduction)의 구별(이 사항들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생략)을 도입함으로써, 교묘히 본질적인 물음을 회피해갔다.

이상으로부터 우리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1. 과거 리카도주의 경제학자들이 그랬듯, 오늘날의 경제학자들도 공황의 본질, 자본주의 경제의 모순적 성격을 인정하는 척, 그럴싸한 제스처를 취하다가 끝내는 자신들의 기존 입장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말 것이라는 점. (이런 경제학의 성격을 가리켜 Ben Fine은 ‘낡은 경제학 제국주의에서 새로운 경제학 제국주의로의 이행’이라는 표현을 썼다.)

2. 마르크스가 리카도에 대해, 그가 불충분하게나마 19세기 초의 공황들은 설명할 수 있었음을 인정했다는 것이 매우 시사적이다. 이것은, 크게 보면 마르크스(와 그의 훌륭한 선배였던 아담 스미스나 헤겔)이 파악하고 있던 근대사회의 본질, 좀 더 직접적으로는 정치경제학의 본질적 성격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곧 근대사회란 그 물질적 차원의 운동이 정치나 자연과 같은 경제외적 요인들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 그 자체의 내재적인 법칙에 의해 규제되는 사회라는 것, 그리고 정치경제학이란 바로 그러한 경제법칙, 따라서 경제법칙에 의해 규제되는 근대사회의 물적 동향에 대한 학문이라는 것! 이런 생각에 따른다면, 정의상 경제학은 (경제외적 강제에 의해 물적 차원의 운동이 결정적으로 규정되는) 봉건제 사회에 있어서는 온전하게 성립할 수 없다.

정치경제학? or 경제학? – 다시 한 번 ‘꼼수’에 대하여

경향신문이 사정이 진짜 어렵긴 어려운가보다. 이런 글까지 다 실어주니까 말이다.

[경제와 세상] ‘경제학’ 용어에 숨겨진 꼼수 (강신준, 2012년 2월 15일)

1. 이 글은 단순한 ‘무개념’뿐 아니라 경제학 교수가 범했다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사실관계상의 오류’로 점철되어 있다. 몇 가지 간단히 지적하겠다.

우선 사실관계를 얘기하자면 후자의 용어[economics]는 알프레드 마셜이란 사람이 1890년에 임의로 만들어낸 것이다.

여기서 ‘사실관계’라는 표현은 지나치게 대담한 것이다. 이유는 두 가지. 첫째, 기본적으로, 위와 같은 종류의 용어변천은 누구 한 사람의 작품이라고 할 수 없는, 어떤 집단적인 과정의 결과라고 보아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이에 따르면, 우리는 예컨대 ‘economics라는 표현을 저서의 제목에 처음 쓴 사람은 xxx이다’라고는 할 수 있을지언정, 강교수와 같이 ‘xxx가 만들었다’라고 하긴 매우 어렵다. 일반적으로 그렇단 얘기다.

하지만 두 번째 이유가 더 심각하다. 왜냐하면 어떤 기준으로 보든 위 진술은 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샬의 1890년 저작이란 말할 것도 없이 그의 {Principles of Economics}일 것이다. 분명 이 책에 ‘economics’라는 표현이 나오고, 또 이 책이 ‘political economy’가 ‘economics’로 대체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을 것임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지만, 불행히도 그것을 ‘만들어낸’ 것은 마샬도 아니고, 또 그의 저 1890년 저작에서 그 용어가 처음 쓰인 것도 아니다. 일단 ‘economics’라는 용어는 다름아닌 마샬 자신이 그의 부인과 함께 쓴 이전 저작 {The Economics of Industry}(1879)에도 쓰인 적이 있다. 그러나 이것이 ‘economics’가 출현한 첫 사례는 아니다. 그 전에 이미 1877년, 1878년에 각각 J. M. Sturtevant 및 H. D. Macleod의 저작의 제목으로 쓰인 바 있다. 특히 Macleod는 이에 앞서 1875년에 발표된 한 논문에서 ‘political economy’를 ‘economics’라고 바꿔부를 것을 제안하면서, economics를 “교환가능한 양들 간의 관계를 지배하는 법칙들을 다루는 과학”이라고 규정하기까지 했다.

(사실 이에 대해선 이미 나 자신이 몇 번 밝혔다. 나는 심지어 강교수가 그에 대해 무려 ‘반론’을 내놓기까지 한 글에서도 이에 대해 언급하면서, 내가 아는 한 현재 우리나라에 나와있는 관련논문 중 가장 훌륭한 이헌창 교수의 글을 소개하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강교수께서 위와 같은 오류를 견지하고 계신다니..)

 

2. 다음으로, ‘정치경제학’과 ‘경제학’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자. 둘은 같은 것도 아니고, 둘의 차이는 단순히 앞에 ‘정치’가 붙었는가 아닌가의 문제로 환원될 수도 없다. 강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경제학과 정치경제학을 구별하는 것은 ‘꼼수’를 진실과 혼동하게 만드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두 경제학은 서로 독립적인 별개의 과학이 아니라 단지 ‘진실’과 ‘꼼수’의 차이일 뿐인데 이를 서로 달리 부르는 것은 곧 ‘꼼수’의 의도처럼 진실을 외면하게 만드는 일이 아닐까? [. . .] 두 경제학은 서로 다른 것인가?

기본적으로 나는 위 말이 무슨 뜻인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전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 “‘진실’과 ‘꼼수’를 달리 부르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 걸까? 전혀 설득력이 없지만, 그래도 최대한의 아량을 발휘해 그의 의도를 읽어보면, 대충… [‘political economy’와 ‘economics’가 서로 다른 것도 아니고, 나아가 ‘경제학'(=economics)이라는 용어는 마샬을 위시한 경제학자들의 ‘꼼수’의 산물이므로, ‘진실’을 수호하는 우리가 굳이 물러서서 ‘정치경제학’이라는 불편한 용어를 쓸 까닭이 없다]라는 것 같다.

그런데 강교수가 말하는 것과 달리, ‘political economy’와 ‘economics’는 단순히 앞에 형용사 하나가 더 붙었느냐의 차이로 환원될 수 없다. 전자가 후자로 바뀌면서, 이름만 바뀌었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바보일 것이다. ‘political economy’에서 ‘economics’로의 변화는, 단순히 이름에 대한 게 아니며, 이 과정에서 ‘economics’는 기존의 ‘political economy’에 대해 그 대상과 거기에 접근하는 방법론 자체를 차별화함으로써 자신을 부각시켰다. 물론 이 과정은 누구 한 사람에 의해 이뤄진 게 아니고, 꽤 오랜 기간에 걸쳐 그리고 개개인의 의지와는 어느 정도 별도로 이뤄졌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모든 얘기를 풀어낼 수는 없고, 관심 있으신 분들은 이 블로그에 있는 나의 글(‘IIPPE: 경제학을 넘어 사회과학의 재편으로‘, 특히 두 번째 글)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다행히도 강교수도 둘의 차이가 단순히 이름의 문제라고 보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그는 이 대목에서 ‘꼼수’ 드립을 치고 있다. 세상에! 그러니까 강교수에 따르면, 마샬은 뻔뻔스러운 ‘꼼수쟁이’가 된 것인데… 세상에… 왜곡도 이런 왜곡이 없다. 두 가지를 간단히 언급만 하겠다. 첫째, 마샬은 (마르크스 식으로 말하면) 그 부르주아적 한계 안에 갇혀있긴 해도 그 나름대로 노동이나 산업의 다양한 문제들을 두루 시야에 넣으려고 노력했던 인물이다. 둘째, 마샬 부부가 그들의 1879년 저작에서 말하듯(p. 2), 그들이 ‘political’을 뺀 데는 그 용어의 의미가 과거와 크게 변화했다는 사정도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정치경제학’이라고 했을 때, 이는 ‘정치적인 경제학’이라기보다는 ‘사회적인 경제학’ 또는 ‘사회경제학’이라고 해야 원래의 ‘political economy’와 의미상으로는 통하는 게 된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교수는 아마도 그 자신은 의식도 하지 못한 채 하나의 중요한 ‘진실’을 말하고 있다. 즉 그는 스미스와 마르크스를 비롯한 이들이 했던 연구, 즉 ‘political economy’를 ‘경제학’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실제로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에서 ‘경제학’은 원래 ‘political economy’의 역어였던 것이다.

이헌창 교수가 밝혀주는 바에 따르면, 19세기 중엽 서양의 ‘political economy’가 번역될 때 ‘경제학’이 선택되었고, 이에 대응해 이후의 ‘economics’에 대해서는 한때 ‘이재학’과 같은 역어가 부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여곡절끝에, 서양에서 ‘political economy’가 ‘economics’에 압도되는 것에 발맞춰, 점차 ‘economics’도 ‘경제학’으로 일괄 번역되게 된 것이고, 결과적으로 ‘political economy’는 ‘정치경제학’이라는 다소 괴상한(?) 이름으로 번역되게 된 것이다. 주객전도라는 말이 제격인 상황이다.

 

4.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몇몇 학자들이 굳이 ‘political economy’라는 용어를 살려쓰고, 또 (비록 좀 껄끄럽기는 해도) ‘정치경제학’이라는 단어를 고집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바로, 그러한 이름으로, 오늘날 그야말로 막나가고 있는 ‘경제학’을 견제하고 나아가 비판적 사회과학의 전통을 다시 세우기 위함이다.

어떤 의미에서 오늘날 경제학은 상당히 ‘political’해지고 있다. 원래 마샬 등이 ‘political economy’였던 것을 ‘economics’로 바꾸고자 했던 데는, ‘경제학’이라는 것을 매우 좁게 설정하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있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말하는 ‘순수경제학’인 것이다. 이로써 기존의 ‘political economy’는 순수이론과 각종 응용분야들로 나뉘게 되는데, 말하자면 과거에 ‘political economy’가 관심을 두고 있었던 다양한 사회적 이슈들(이를테면 J. S. Mill 같은 이가 열정적으로 다뤘던 분배의 문제)은 ‘순수이론’이 아닌 ‘응용’분야로 밀려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경제학이 최소한으로 정의되자마자(‘제약 하에서의 선택에 관한 과학’이라는 식으로),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일반화할 수 있는 계기를 얻게 되는 것이다(인간사에서 ‘제약 하에서의 선택’이 아닌 것이 무엇인가)! 이리하여 경제학은 그것이 마샬 등에 의해 제안된 ‘협소한 한계’를 넘어, 그리고 과거 ‘political economy’ 시절에 그것을 규정했던 한계도 훌~~쩍 넘어, 경제학이라는 틀로는 쉽게 다룰 수 없는 여타 사회과학들의 영역을 마구 짓밟고 있는 것이다. 이를 일컬어 ‘경제학 제국주의’라고 한다(관련글).

요컨대 오늘날, 영어로 치면 ‘political economy’, 우리말로는 ‘정치경제학’이라는 표제로 우리가 꾀하는 것은, 위와 같은 막나가는 경제학(economics)을 비판하기 위함이다. 그럼으로써, 경제학 내부로 치면 ‘economics’가 ‘political economy’였던 시절에 가졌던 사회적(the social)이고 물질적(the material)인 관심(바로 이 블로그의 이름이다!)을 복원하고, 나아가 그러한 ‘political economy’라는 관점을 다른 사회과학 분과들과 한편으론 공유함으로써 또 다른 한편으론 ‘정치경제학’을 그것이 미처 담아내지 못하는 현대사회에서 인간삶의 단면들에 관한 여타 사회과학 분과들의 성과들과 결합함으로써 ‘비판적 사회과학’의 전통을 새롭게 확립하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의 목표다.

 

5. 사태가 이러하기에, 사실 마르크스의 주저 {Das Kapital.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를 ‘자본’이라고 할 거냐 ‘자본론’이라고 할 거냐, ‘경제학비판’이라고 할 거냐 ‘정치경제학비판’이라고 할 거냐 등등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이상에서 지적한 사항을 생각하면, 위 문제, 적어도 ‘정치경제학’이냐 ‘경제학’이냐라는 문제는 중요하기도 한데, 지금까지 대충 밝혀졌듯이, 강교수는 이것이 ‘왜!!’ 중요한지조차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오히려 그는 사태를 ‘꼼수’라는 지극히 애매모호한 ‘말’로 뭉뚱그리고 있다. 이 대목에서, 괴테를 차용한 마르크스의 저 구절, ‘개념이 빠진 곳에는 말이 들어선다’라는 구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나꼼수에 대해서 내가 일전에 주장했듯이(‘나꼼수와 마르크스‘), 사태를 (가카의, 또는 경제학자들의) ‘꼼수’라는 식으로 파악하는 것만큼 단순하고도 그릇된 것도 없다.

마르크스는 그 이전 및 당대의 ‘정치경제학’을 ‘비판’할 목적으로 그의 주저를 썼다. 강교수는 바로 그 저작, 그것도 독일어 원저작의 한국 최초의 완역자다. 바로 그런 분께서 꼼수 운운하는 것이 딱하고, 그분이 번역한 것을 읽게될 선량한 독자들이 딱하다. 그가 보이는 것과 같은 인식으로 (마르크스가 겨냥했던) ‘경제학 비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성희롱 발언이나 일삼는 나꼼수 4인방이 비열한 착취를 철폐하고 새세상을 열 거라고 생각하는 거랑 뭐가 다른가 모르겠다. (끝)

 

[알림2] 정치경제학 강좌

아래 글에서도 언급된대로, 이번 겨울중에 정치경제학 강좌도 하나 더 하게 되었습니다. 진보신당 청년학생위원회에서 준비한 것입니다. 좋은 자리를 제게 허락해주셔서 거듭 고맙습니다. 웹자보가 여기 있습니다.

이 웹자보, 개인적으로 매우 맘에 듭니다. 만드신 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더구나 저로서는 제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이 블로그의 부제목을 저렇게 큼지막하게 넣어주셔서 더더욱 기쁩니다(어.. 그러고 보니, 현재 이 블로그 포맷에서는 부제목이 안 뜨네요;;).

이 강좌는 1월5일(목)부터 시작입니다.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군요. 매주 1회씩 6주간 이뤄지니까, 아래 글에서 먼저 소개한 “읽기” 강좌와 약간은 중첩되겠군요. 저 나름대로는 이 둘을 상호보완적으로 운영하려고 합니다. 즉 보시다시피… 아래 자캠 강좌는 말그대로 {자본론}을 현장에서 함께 읽는 것이고, 지금 청학위 강좌는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체계 전반을 개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자보다는 후자가 좀 더 완결성은 있다고 해야겠죠.

지금 소개하는 청학위 강좌는 원래 지난 여름에 자캠에서 했던 것(링크)과 많이 다르진 않을 것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좀 더 압축적이라는 점(지난 여름 자캠 강좌는 8회였죠), 그리고 다른 하나는 마르크스의 가치이론의 현대적 발전/적용의 문제를 좀 더 강조할 것이라는 점. 하지만 시간의 제약 때문에 특히 후자의 목표가 얼마나 실현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그런 의도로 진행할 것입니다.

하여튼..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

그냥 올렸다가… 저의 음악 포스팅을 싫어하시는 kosaja님을 위해 노래 한 곡 붙임.;;;

어저께부터 계속 흥얼거리고 있는 곡… 바로 The House of the Rising Sun!

물론, 여러분들이 알고 계시는 바로 그 매우 유명한 노래다. 미국 민요(?)라고 할 수 있을텐데, 정작 이게 가장 크게 히트한 것은 영국 밴드인 The Animals의 연주와 노래를 통해서였던 게 아닌가 싶다(링크–> 아.. 곡의 내용대로, 정말 인생을 잘못 살(았을)것 같은 Eric Burdon의 저 반항적인 눈빛을 보라). 그러나 오래된 곡인 만큼 많은 음악인들이 불러제꼈는데… 내가 지금 소개하는 것은 블루스/록 기타리스트인 Leslie West의 버전이다. 바로 그의 1975년도 앨범 The Great Fatsby에 들어있다.

이건 그러니까… The Animals의 것과 더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버전이다. 들으면 대번에 알겠지만, 이런 멋진 연주는 Dana Valery의 보컬이 곁들여지지 않았으면 현재와 같이 완성되지 못했을 것… 멋지다 정말.

For the students of Marx…

콧노래로 Judas Priest의 ‘Dreamer Deceiver’를 부르고 있으려니, 옆에서 선배가 뭐 좋은 일이 있느냐고 묻는다. 글쎄… 특별히 좋은 일은 없다. 솔직히 ‘Dreamer Deceiver’가 즐거운 노래는 아니지 않나! 말이 나왔으니, 노래를 들으며 글을 읽으시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

좋은 일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최근에 올해 ‘worst ten’에 꼽힐 만한 나쁜 일이 하나 있긴 했다. 바로 강신준 교수의 글을 읽은 것이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 블로그에 강신준 교수의 {자본} 번역본 출판에 즈음해서 포스팅을 몇 개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작년 말에 그것들을 정리하고 다듬어 새로 글을 하나 써서 {마르크스주의 연구}라는 학술저널에 발표를 했다(링크). 당연히(?) 강교수는 위 저널 다음호에 내 글에 대한 ‘답변’을 냈다. 그것이 나온 게 3월이고, 그런 글의 존재에 대해 들은 것은 그 전이었다. 나는 그 글을 (얼마간은 ‘일부러’) 읽지 않다가 어제 기어이 읽고 말았다.

애초부터 나는 그의 답변이 있어도 ‘재답변’을 쓰지 않기로 굳게(!) 마음먹고 있었다. 나로서는, 처음 글에서 내가 하고자 하는 얘길 다 했고 또 내가 거기서 제기한 문제들은 별다르게 논쟁의 여지조차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첫째, 만약 강교수가 이런 문제제기를 순순히 받아들인다면 내가 굳이 ‘재답변’을 해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둘째, 그가 내 글에 대해 ‘반론’ 성격의 답변을 내놓는다면, 그것은 분명 꼴사나운 자기변명이거나 나의 문제제기에 대한 부당한 폄훼일 수밖에 없을 것이며, 이 경우에도 나는 ‘재답변’을 하지 않는 것이 학계의 선배인 그를 조금 ‘덜 가련하게’ 만드는 길일 것이다. 따라서 어떤 반응이 나와도, 또는 반응이 나오지 않더라도, 나는 그냥 잠자코 있으려 했단 얘기다.

그런데 막상 그의 글을 읽어보니, 마음이 좀 복잡해졌다. 통상적인 ‘견해의 차이’라기보다는 내가 제기한 문제들을 둘러싼 배경에 대한 ‘무지’ 그리고 그에 바탕을 둔 내 문제에 대한 ‘오해’로 덕지덕지 얼룩진 그 글에 반응을 하자니 쓸데없이 정력을 낭비할 필요가 있겠나 하는 생각이 한편으론 들고, 다른 한편으론 종전과 마찬가지로 반응을 하지 않고 있자니 이미 그의 글을 읽은 이상 잠자코 있는 것조차 일종의 반응일 수밖에 없어, 결국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반응일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진퇴양난이란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ㅎㅎ

*                 *                 *

그러나 그의 글이 정작 내 ‘성질’을 긁은 것은 그 ‘내용’ 때문이라기보다는 거기에서 빤히 보이는 그의 ‘태도’다. 간단히 말하면, ‘교내 학술비’ 지원을 받아서 썼다고 그 스스로 밝혔을 뿐 아니라 ‘고급’ 마르크스주의 전문 학술지를 자처하는 저널에 출판된 그의 매우 ‘학술적인’ 논문에서 그는 나를 자신과 동등한 논쟁의 상대로 대하고 있다기보다는 자신이 한 수 가르쳐줘야 할 손아랫사람 쯤으로 취급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단순히 ‘기분나쁨’을 넘어서 ‘서글픔’을 나로 하여금 갖게 만든다. 생각을 거듭해 본 결과, 그 서글픔의 근원은 아마도 우리 학계의 척박함이 아닐까 한다. 얼마나 척박하면, 선배 학자가 후배 학자의 문제제기를 그런 식으로 깔아뭉갠단 말인가. (물론 이건 그가 그랬다는 것이고, 미안하게도 나는 전혀 깔아뭉개졌다고 느끼진 않는다.) 아니, 어쩌면, 그가 나를 동등한 상대로 인정해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가 나를 한번도 후배 또는 후학으로 대한 적이 없는데도 나를 자기 편의대로 그렇게 취급했다는 게 서글픈 것인지도 모르겠다.

에고… 뭐, 이런 얘기를 이 자리에서 길게 할 까닭은 없다. 필요하다면 공식적으로 강신준 교수에게 대응을 하면 되는 것이니. ㅎㅎ

*                 *                 *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위와 같은 이야기를 이 자리에 걸맞은 방식으로 못 풀어낼 것도 없다. 적어도, 위에서 ‘척박함’이라고 내가 불렀던 상황이 앞으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 정도는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거다.

그런 이야기를, 이를테면, 최근 슈리님의 논쟁적인 글로부터 비롯되었던 일련의 사태(?)와 관련지어 풀어낼 수도 있겠다. 많은 이들이 슈리님의 글 ‘좌파는 성매매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라는 글에 불만을 표해냈고(이 글은 지금은 슈리님의 블로그에선 공개되지 않고 있어서 링크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불만의 내용은 그것을 갖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실로 다양했다. 어떤 이는 그가 ‘성매매’를 바라보는 방식에 경악했을 수도 있고, 어떤 이는 그가 마르크스의 이론을 자신의 논의에 활용하는 방식이 싫었을 수도 있으며, 어떤 이는 그의 ‘윤리학’이 마음에 안 들었을 수도 있다. 나 자신도 일정한 한계 안에서 입장을 내놓았다(링크).

나로서는 애초 글을 쓸 때 상당히 복잡한 심경이었는데, 그러니까 거기엔 일종의 ‘의무감'(?)—물론 내가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을 공부하는 유일하거나 대표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슈리님도 내 글에 대한 덧글에서 언급한대로, 나같은 사람 중 누구라도 반응을 해줘야 한다는 의무감—도 작용했지만 사실은 걱정이 가장 앞섰다. 까닭은,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슈리님을, 어쩌면 그가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정도로 비난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번 경우에서와 같이 서로 안면도 없는 거의 익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무심코 내뱉는 비난은, 거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겐 불필요하게 커다란 ‘데미지’를 입힌다. (그렇다고 나는, 그런 비난들이 사려깊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런 비난에 슈리님이 충분히 건강하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거다. 아래를 더 보라.)

하여간 이런 상황에서 당사자는, 아무리 그가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그런 잘못에 대한 지적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 그럴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스스로 무너질 때, 당사자가 의지할 것은 오로지 ‘자신의 진심’뿐이다. 여기서 ‘진심’이란 말 그대로 어떤 마음가짐일 수도 있고 상황적인 맥락일 수도 있다. “니 말은 알겠는데, 사실 나에겐 이런 ‘진심’이 있고, 니가 그런 ‘진심’을 알아주지 못하는 한 너의 비판은 틀려먹은 거다”라는 거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치닫는 한, 이제 더 이상 원래 글의 잘잘못을 따지는 일은 부질없는 것이 된다. 둘 다 틀렸고, 둘 다 옳다!

*                 *                 *

그러니까 처음에 내가 진보넷의 한 불로그로부터 슈리님의 글과 그에 대한 반응들을 접했을 때 가질 수밖에 없었던 복잡한 심경이란 바로 위와 같은 사정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제와서는 좀 더 분명해졌듯이, 나의 걱정은 결코 ‘기우’가 아니었다.

나는 (한편으로는 내 ‘능력’을 의심하면서도) 내가 가진 한계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기본적으로 나는 슈리님이 어느 정도는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 비판적 코멘트를 하고 싶었고, 그것을 통해 가급적이면 논쟁을 논쟁답게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었다. 더구나 나는—일종의 선배(아주 literal한 의미에서)로서—그들의 마르크스, 나아가 정치경제학적인 관심을 좀 더 북돋아주고 싶었고, 또 그런 관심이 비극적인 방식으로 사그러지도록 두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도 했다.

아주 단기적으로 보면 내 의도는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어쨌든 슈리님은 이곳까지 오셔서 의미있는 덧글을 달아주셨으니까(링크). 그리고 고맙게도 몇몇 블로거들이 나와는 저마다 다른 측면에서 좋은 코멘트들을 해줬던 것 같다(아, 물론 내가 상황을 이렇게 이끌었단 얘긴 절대 아니다). 그러나 (예상치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와 동시에 기존의 날 선 비난들도 더욱 크게 증식되었고, 결국 사태는 슈리님이 ‘문제의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서 내리는 데까지 이르렀다.

*                 *                 *

이제는 위의 ‘사태’가 어느 정도 소강상태로 접어든 것 같다. 기말고사 기간이라 그런지 관련 논의들이 적어도 내 시야엔 거의 들어오진 않는다. 그러나 이번 일은 나에게 이렇게 그저 스쳐지나갈 ‘해프닝’이라기보단 나름대로 ‘해석’하고 그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할 그 무엇으로 다가온다. 특히 앞서 말했던 ‘척박함’과 관련해서 말이다.

이 대목에서 (준-)익명성에 기댄 네티즌들의 무분별한 이지메 같은 것은 별 문제가 안 된다. 유명 포탈사이트 등에서 연예인 등을 대상으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떠올리면, 이번 것은 ‘이지메’ 축에도 못 낀다. 그리고 이번 논쟁/논란의 와중에 나왔던 수많은 코멘트들이 그런 포탈사이트에 올라오는 수백, 수천 개의 덧글과 ‘동급’으로 취급될 정도로 형편없는 것은 아니었다고 나는 진심으로 생각한다.

내가 보기엔 진짜 중요한 두 가지 문제가 있는데, 하나는, 애초 슈리님은 그렇게도 헛점 많은 글을 어찌 그리도 의기양양하게 공개할 수 있었느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의기양양함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도 슈리님은 저리도 약하게 무너져내렸느냐는 것이다. 이런 질문들을 깊이 음미하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슈리님을 포함하는 이른바 ‘잉여’들, 즉 자신들을 둘러싼 ‘세태’를 거스르며 ‘잉문학’ 또는 ‘사회과악’이라는 ‘금단의 열매’를 탐하는 이들을 둘러싼 가능성과 한계를 가늠할 때 매우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일단 첫 번째 질문은 쉽다. 슈리님을 포함한 ‘그들’은 자신들을 가르쳐줄 ‘선배’ 또는 ‘선생’이 곁에 없다는 거다. 좀 주제넘게 말하면 이렇다. 만약 슈리님이 그 문제의 글을 공개하기 전에 나한테라도 보여줬더라면 나는 대번에 ‘이봐, 너, 그거 절대 공개하지 마. 우리 좀 더 이야기해보자!’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 글이 적어도 현재와 같은 형태로 공개되도록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나는 슈리님을 모르고, 슈리님은 나만 모르는 게 아니라 ‘나같은’ 사람을 하나도 개인적으로는 알지 못하는 것 같다. 그는 그저 동년배보다는 좀 더 똑똑해 보이는—그 스스로도 그렇겠지만—자기 동료들이랑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 뿐이었을 거다(이런 과정조차 없었을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위에서 말한 첫 번째 질문에 대한 가장 간단한 답변이다.

두 번째 질문은 좀 더 복잡하다. 기본적으로 친밀한 선배의 지도가 없다는 것이 그들을 약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슈리님 등에겐 자신들을 지도해줄 선배가 ‘곁에’ 없다 뿐이지, 적어도 그들은 이제껏 한국사회의 그 어떤 세대보다도 이를테면 가장 많은 책을 가지고 있다. 멀리 갈 것 없이 마르크스만 해도, 그들은 이전 다른 어떤 세대와도 다르게 {Das Kapital}의 꽤 괜찮은 한글 번역본을 두 종이나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그들은 그 수많은 책들을 선생으로 삼아 자신을 벼려나갈 수도 있을 것이며, 만약 그런 ‘훈련’을 충분히 거쳤다면 이번 슈리님의 경우처럼 저리도 쉽게 무너져내리진 않았을 것이란 소리다.

그러니 적어도 그들은 이런 책들, 비록 말은 없지만 예의 그 ‘선배’들이 줄 수 있었을 모든 지식과 사려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말없는 스승’을 차분하게 연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들은—아니, 그들 중 ‘뛰어난’ 몇몇은—좀 더 쉬운 길을 택한 것이 아닌가 싶다. 바로, 약간의 책을 섭렵한 뒤 스스로 ‘선생’이 되는 길이다. 다시 말해 ‘선생’이 없다는 객관적인 한계를, 그들은 선생을 부정함으로써, 나아가 스스로 선생이 됨으로써 극복하고 있다는 거다. 이는 그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최근들어 특히 ‘젊은 논객’이 급증하는 것도 부분적으로는 이런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물론 ‘젊은 논객’이 많아지는 것이 그 자체로 나쁠 건 없고 그들만이 해줄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을 것이다. 더구나 대한민국 같이 권위주의적인 사회에서는 그런 현상이 ‘건전한’ 바람(breeze)이기도 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잉문학’이나 ‘사회과악’에서만 한정지어 본다면, (이건 좀 조심스런 얘긴데) 그들이 내놓는 논의들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이 얘길 길게 하고 싶진 않은데, 불필요한 오해를 막기 위해, 난 심지어 마르크스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생각한다고 밝혀둔다. 나는 그가 20대 초중반에 써갈겨놓은 노트들이—거기에서 드러나는 마르크스가 놀랍도록 명민한 것은 의심하지 않지만—크게 의미는 없다고 보는 편이다. 이건, 당시의 좀 더 성숙한 논자들—하다 못해 맨날 마르크스가 욕하는 Bruno Bauer 같은—이랑 마르크스를 비교해 보면 꽤 분명해진다. (내가 비록 여기서 마르크스 얘길 했지만, 5살도 안 되는 애가 성인이 하는 거랑 별 차이 없는 일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19세기의 20대와 엄마 치맛자락에서 갖 나온 오늘날 한국의 20대를 비교하는 것은 좀 웃기기도 하다.)

이렇게 얘기를 풀어갈 수 있겠다. ‘젊은 논객’ 또는 그에 준하는 오늘날의 똑똑한 20대들은, 그들의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그리고 그들이 인식하든 말든 그들 주변에 형성되어 있는 지적 성과들을 놓고 보면, 결국 남이 한 얘길 원래보다 훨씬 저열한 방식으로 되풀이하는 것이거나 한 십년쯤 시간이 흐른 뒤에 스스로 후회하고 부정할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자신들에게 어쩌면 ‘과분하게’ 허용된 발언권—책, 신문, 잡지, 블로그 등—을 이용해 행하는 발언들은, 결국에 가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말장난이거나 기껏해야 그들 자신이 성장해 나가는 과도적 계기들—그리하여 끝내는 부정/지양될—을 이룰 뿐임이 드러날 것이다. 물론 이건 ‘매우’ 일반적인 얘기다.

어쨌든 ‘선생’을 부정한다고 해서 실제로 (비록 ‘곁에’는 없지만) 존재하는 선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선생을 부정하고 선생에게 검증받지 못한 ‘막글’을 내놓았을 때, 선생은 어디에 숨어있다가든 끝내 나타나고 만다. 이번 경우엔 다양한 덧글들과 블로그 포스트들과 같은, 말하자면 ‘집단 지성’의 형태로 나타났다.

그래서 내가 결론적으로 하고픈 얘기는—그러나 이건 슈리님을 특정해서 하는 말은 절대로 아니다—현재 자신들을 둘러싼 조건 때문에 좀 힘들더라도 적절한 선생/선배를 찾아 그로부터 배우기를 두려워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거다. 내가 슈리님의 글에서 충격(?)을 받은 것은 단순히 그가 생산적 노동/비생산적 노동을 제대로 이해 못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마르크스는 이런 얘길 한 적이 거의 없다’, ‘이런 논의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모두가 이 문제를 오해하고 있다’ 등등과 같은 표현을 너무도 쉽게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입밖에 낼 수 있는가! 그런 진술들이 만약 뭔가를 증명해 준다면, 그것은 오직 글쓴이의 무지와 옹졸함일 뿐이다.

*                 *                 *

이제 기말고사 기간이 끝나면 기나긴 방학이다. 혼자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적당한 선생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게 책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으며, 다른 무엇일 수도 있다. (적어도 ‘학문’의 영역에서는) 누가 뭐래도 오늘날 한국과 같은 조건에서 20대는 배우는 기간이지, 남을 가르치거나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주장하기엔 이른 시기다. 수명도 연장되고 있으니 더더욱 그렇다. ㅎㅎ

마침 슈리님이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에 대해 흥미를 보이셨고 또 나 자신이 거기에 종사하고 있으므로 간단히 덧붙이자면(그러니까 이건, 슈리님을 포함한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에 관심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한 얘기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정치경제학에 대해 얘길 하려면 마르크스의 {자본론} 또는 {자본}만 읽고서는 부족하다. 나름의 한계가 있지만, 이를테면 {현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나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 정도는 볼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윤소영 교수의 책은 그다지 좋은 입문서는 아니라 생각한다. 하여간 이런 것도 모르고 {자본론} 제1권 제1장만으로 자본주의 사회를 모두 이해하겠다고 설치는 것은 누가 봐도 민망한 꼴이다.

책도 좋지만, 그런 공부를 하는 사람들을 만나보는 것도 좋다. 내 경우엔 얼마전부터 몇몇 친구들과 ‘젊은 연구자 모임’을 하고 있는데, 월례발표회도 열고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은 내게 연락하면 일단은 옵서버 자격으로 참여할 수도 있다. 많은 한계가 있긴 하지만, 기성 ‘학회’는 또 어떤가? 이를테면, 요새는 마르크스 공부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한때) 난다긴다 하는(했던) 정치경제학 논객들이 모두 모여있는 곳이 ‘한국사회경제학회’다. 이번 여름학회가 진주에서 열리는데, 거기에 참석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경험이 될 것이다(물론 논의되는 주제들에 기본적인 관심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아,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세상엔 ‘연구자’만 있는 것도 아니다!

다시 맨앞의 얘기로 돌아가면… 그러니까 나는, 앞에서 말한 현실의 ‘척박함’을, 그리고 나의 ‘서글픔’을 어떤 식으로든 재생산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른바 철학적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다 쓰고 나서 보니, 이 글은 그만 포스톤에 대한 글이라기보단 “철학적 마르크스주의” 일반에 대한 작고 엉성한 비판이 되고 말았다. (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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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삼님의 덧글(링크):

다른게 아니라, 제가 아시는 편집자가 Moishe Postone의 Time, Labor and Social Domination: A Reinterpretation of Marx’s Critical Theory,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3 번역에 관해서 물어왔는데요. 본인도 잘 모르는 저자와 책이라 혹시 아니고 말이죠. 전에 EM님이 한 번 언급한 것 같아서요. 어떤 저자고 어떤 맥락에 관한 책–자본론과 그룬트리세르 재해석했다는 제법 유명한 책이라는 정도만 아는지라–인지 코멘트 부탁드려도 될까요?

EM의 대답:

근데 그 책 번역되어 나온다는 얘길 어딘가에서 들은 거 같은데… 아닌가요? 예, 제가 예전에 한번 언급한 일이 있습니다. 근데 지금 찾아서 다시 읽어보니 (역시 예상대로) 아주 피상적인 언급이었네요(하… 그게 벌써 2년도 더 전 일입니다. 세월 참…). 그런데도 다시, 그다지 깊이가 더하다고 볼 수 없을 코멘트를 하나 더 하자니 좀 민망스럽기도 하고 그러네요 (-_-;)

일단 포스톤의 프로필을 제가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기본적인 사항은 그의 홈페이지(http://history.uchicago.edu/faculty/postone.shtml)를 보시면 좋을 것 같고요, 거기 잘 나와있다시피 포스톤은 프랑크푸르트 비판이론적 전통에서 마르크스를 해석하고 발전시키려 하는 것 같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자신의 논의를 전개시킬 때, 그가 “전통적 해석”이라고 부르는 것을 강하게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전통적 해석”이란 노동의 관점에서 행해진, 노동에 대한 일의적 해석에 의거한 마르크스 이해, 다시말해 대충 자본-노동-(잉여)가치-착취-계급지배 등의 개념연쇄로 이뤄진 해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포스톤은, 이런 해석이 이제껏 많은 성과를 거둬내는 데 도움이 되었는지는 몰라도 한계가 크며 마르크스가 이뤄낸 진정한 성과와도 거리가 멀다고 합니다. 반대로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동”이란 마르크스가 입각해있던 관점이라기보단 오히려 그가 비판하려고 했던 대상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노동”이라는 것을 그는 역사적 지평 위에 놓으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이 취하는 독특한 성격들을 조명함으로써 노동 자체의 개념을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내려 할뿐만 아니라 나아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제로” 관철되는 “계급관계”의 양상과 “지배”의 성격도 함께 다룹니다. 이는 곧, 위와 같은 노동에 대한 그 나름의 독특한 이해와 더불어, 그런 이해를 가능케 했고 또 그 이해를 심화시킬 마르크스의 “비판” 개념을 발견해냄으로써, 결국엔 (그 모든 것들로부터 일종의 내적 필연성에 의해 도출되는) 하나의 “총체성”으로 자본주의 사회(관계)를 전체적으로 엮어내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그는 위에서 말씀드린 “전통적 해석”이 마르크스주의에서 주류를 차지할 수 있었던 까닭을, <자본>이 매우 어렵고 또 그래서 다양한 오해에 쉽게 노출되어 있(었)다는 데서 찾습니다. 결국 그가 <요강>에 주목하는 것도, 그것을 통해 바로 그런 <자본>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또 거기 잘 드러나 있지 않은 의미들을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그는 네그리(Antonio Negri)처럼 <요강>에 주목하면서도, 동시에 (<자본>을 개무시하는) 네그리와 달리, 그리하여 그보다 훨씬 더 명석하게도 <자본>의 의의를 인정함과 동시에 <자본>과 <요강>의 관계를 한층 더 복합적으로 파악합니다(뿐만 아니라, 앞서 행했던 “노동의 관점”과 “노동의 비판”이라는 대립쌍을 떠올리면, 네그리나 레보위츠(Michael Lebowitz) 같은 사람들이 전자에 입각해 있는 반면 포스톤은 후자에 서 있다는 차이점도 있겠군요). 하지만 저는 이것이 <요강>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라고 보진 않습니다. 왜냐하면 “새로운”이라는 표현이 전제하는 “전통적” 해석이 <요강>에 대해선 이렇다하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는 (만약 그런 것이 있다 해도) 포스톤이 그것을 딱히 염두에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포스톤의 그것은 <요강>에 대한 여럿 (여기엔 네그리의 그것도 포함되겠죠) 중 하나의 해석–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이라 해야할 것입니다.

글쎄요… 포스톤이 내놓는 구체적인 논의내용을 “제가”, “이곳에” 요약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고요… 다만 몇 가지 주변적인 이슈들에 대한 제 견해를 몇 가지 말씀드린다면… (1) 한 가지 아쉬움이 있습니다. 포스톤 같은 사람들의 마르크스 해석이 의미있게 다가오려면, 그것이 염두에 두는 “전통적” 해석이 이미 광범위하게 퍼져있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포스톤의 논의는 우리나라에서 그다지 많은 의미를 갖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 퍼져있는 마르크스의 이론, 좀 더 구체적으론 정치경제학에 대한 “기존” 해석이라면 구소련/동독, 알튀세르, 국제사회주의, 기타 포스트모더니즘 등등이 있을텐데, 이들이 별다른 질서없이 중구난방식으로 섞여 있다가 거의 한꺼번에 해소된 게 우리나라의 사정이기 때문입니다.

(2) 그럼에도 저는, 포스톤과 같은 논자들이 매우 치명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고 봅니다. 충분히 예상 가능하시겠지만, 그 까닭은 그런 이들이 대체로 마르크스의 비판이 “정치경제학”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점을 거의 무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매우 상식적이게도, 마르크스의 비판은 “정치경제학에 대한” 비판입니다. 물론 그것이 “그와 동시에”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일 수도 있지만, 그 본령은 전자에 있습니다. 따라서 포스톤이 칭하는 바 마르크스의 “비판이론”의 진정한 의미를 캐내려면, 그가 실제로 개입하려고 했던 바로 그 정치경제학이라는 맥락을 살피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입니다.

(3) 하지만 포스톤 같은 철학적 해석에도 저는 그 나름의 의의가 있다고 봅니다. 이를, 제가 즐겨사용하는 도식(?)을 빌려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기본적으로 마르크스의 비판이론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자본주의 사회는 “역사적 체제”로 고려되며, 실은 바로 그런 고려 자체가 기존 논의 비판의 매우 중요한 하나의 포인트입니다. 역사적 체제로서의 자본주의 사회는 크게 “생성-발전-소멸”의 과정을 겪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본주의 사회에 대해 기존의 이론들은 자본주의의 생성, 발전, 소멸에 대해 저마다 일정한 왜곡을 행하고 있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비판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겠죠. 첫째로, “생성”에 대해 말하자면, 기존 이론들은 자본주의 사회가 일정한 “역사적 생성과정”을 겪었다고 하는 게 아니라 마치 역사의 시작에서부터 있었던 것이라는 듯이 말합니다. 즉 그런 시각을 그것들은 “이론적으로” 왜곡하며(이를테면 근대 사회계약이론), 나아가 실제 역사까지 왜곡합니다. 이에 대한 비판은 따라서 크게 두가지 측면에서의 접근을 필요로 하겠죠. 곧 근대사회이론에 대한 이론적 개입과 실제 역사에 대한 실증적 연구가 그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마르크스 이론에 대한 철학적 해석은, 마르크스 이론 중에서도 전자의 성격(근대사회이론에 대한 이론적 비판)을 조명하는 데 유용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발전”에 대해 말할 수 있겠는데, 마르크스가 “정치경제학 비판”이라는 이름으로 집중하는 게 바로 이 부분입니다. 곧, 자본주의 경제를 내적으로 통합된 “재생산 매커니즘”을 갖는 하나의 총체로 보고, 그 매커니즘과 그로부터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모순들을 바로 그 총체적 관점에서, 달리 말하면 “변증법적” 관점에서 파악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 얘길 더 길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끝으로, “소멸”에 대해 말하자면, 이는 달리 “지양”이라고도 할 수 있겠고요, “(새로운 사회–공산주의–로의) 이행”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마르크스의 “새로운 사회”론의 핵심 중 하나가, 그것은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지는 게 아니라 기존의 사회(자본주의)의 태내에서 자라난 모순들의 일정한 귀결이라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소멸”의 논의는 “발전”의 논의와 필연적인 연관을 갖겠지만, 마르크스 자신은 그것을 충분히 발전시키진 않습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제 견해로는, 철학적 해석이 가장 생산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부분입니다. 저는 이를 마르크스 비판의 “유토피아적 계기”라고 부르는데요, 그런 비전에 대한 논의는 포스톤이 속하기도 한 프랑크푸르트 학파에 의해 가장 훌륭하게 발전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이에 대한 가장 중요한 힌트는 뽀삼님 바로 위에 덧글을 달아주신 무연님의 소개로 알게 된 벤하비브(Sheila Benhabib)의 논의를 검토하는 중에 얻었습니다. 사실은 포스톤도 벤하비브를 인용하고 있기도 한데, 제 개인적인 견해로는, 포스톤보다는 벤하비브가 한 수 위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문제는, 포스톤이 자신의 논의를 그런 “유토피아적 계기”에 위치짓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오히려 그는 그것을 자본주의 경제의 내적 본질 및 그 작용이라는 차원, 즉 위의 제 도식에 따르면 “발전”의 차원에 위치짓습니다. 그러나 저는, 포스톤의 논의는 (어느 정도는 그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의 논의가 철학적이라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소멸”의 차원, 또는 “유토피아적 계기”를 발달시키는 데 궁극적으로 헌신하고 있다고 (또는, 그럴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어쩌면 이것은, 마르크스의 “비판”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의 차이에서 오는 엇갈림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앞서 다른 포스트에서(링크) 내놓은 바 있는 마르크스의 비판 개념을 매우 강하게 고수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비판에 대한 다른 이해들에 비해 우월하다고 믿습니다. 결국엔 포스톤도, 제 범주에 따른다면, 비판에 대한 “단순한” 개념에 입각해 있습니다. 음… 이렇게 말씀드리면 의미가 좀 애매모호할텐데요, 간단히 하면 이런 겁니다. (포스톤을 포함해) 흔히 비판을 “부정”(negation)의 의미로 쓰는 반면, 저는 그것을 “긍정”(affirmation)과 “부정”의 의미를 모두 담고 있다고 보는 것이죠–“긍정을 통한 부정”, 또는 “분석을 통한 비판”이라고 하면 뜻이 더 살아날지도 모르겠네요. 이런 구분에 따른다면, 주어진 대상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나아가 부정하는 것”이 포스톤 등에겐 마르크스 정치경제학 비판의 핵심이 되겠지만, 제겐 (말하자면) 대상을 “진정으로 변증법적인 방식으로 분석하는 것”이 핵심으로 다가옵니다. 물론 그런 절차에 뒤이어 “대상에 대한 부정”이라는 과정(예의 그 “비판의 유토피아적 계기”)이 자연스럽게 나오겠지만, 제가 이해하는 바로는, 적어도 <자본>에서 마르크스는 이를 크게 다루지 않았습니다. 결국 제 관점에서는 포스톤은, 마르크스의 비판 개념과 관련, 상대적으로 사소한 대목에 집중하는 것이 됩니다.

우리 시대에 마르크스주의가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비판(단순한 의미–부정–에서의), 해방, 저항… 이런 것도 좋지만, 어떤 면에선 그보다 더 시급한 것이,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범지구적 자본주의를 올바르게 파악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본주의는 현재의 범지구적 위기를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이 위기는 자본주의를 어떻게 변모시킬 것인가, 현대 자본주의에서 상품의 생산/유통/소비, 그리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수입의 배분이 띠는 특수한 형태는 무엇인가, 파생금융상품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왜 지구의 절반은 굶주리고 있는가, 중국은 과연 헤게모니 국가가 될 것인가, 한국은 왜 맨날 요모양 요꼴인가, 대체 MB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등등. 과연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포스톤 같은 이들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저는,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은, 바로 이런 문제에 답하는 이론, 아니 좀 더 정확히는, 이런 문제들에 거짓 답변을 내놓는 부르주아 이론들에 대항해 그에 대한 진정한 답변을 내려주는 이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얘기가 이쯤 되면, 포스톤이 비판하는 “전통적 이론”이라는 것도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겠습니다. 요컨대, 그런 이론도 사실은, 그 당대에 제기되었던 위에서 예로 든 것과 같은 현실의 문제들에 복무하는 과정에서 특수한 방식으로 형성되고 발전된 것이라는 겁니다. 포스톤은 이런 사정에는 정당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 마치 거기에 “진정한 해석”이라는 것이 있다는 듯이 말합니다. 그가 “역사성”을 강조하고 있음을 떠올리면, 이는 사뭇 놀라운 것입니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도, 그가 비판을 기본적으로 “이론비판”이라기보단 “현실비판”으로 보고 있다는 데서 기인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포스톤의 논의가 오늘날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요? 사실은 위에서 제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현실적 문제들을 나열한 것은 그것들이 “가장 중요한” 문제들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어떤 면에선 그것들은 “거의 모든” 문제들입니다. 특히나, 포스톤이 겨냥하는 바로 그 “전통적 이론”이라는 것이 아무런 힘이 없는 오늘날엔 더더욱, 나아가 그런 것이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던 한국에서는 더더더더더욱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위 마지막 대목의 논의는, 포스톤과 같은 철학적 성격을 갖는 마르크스주의 이론들이 향할 하나의 지향점 같은 것을 제시해주는 것도 같습니다. 그런 방향으로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는 결국 그들아 짊어질 과제이지만, 제가 보기엔 기존의 자신들의 논의들을 심각하게 반성하지 않고는 의미있는 걸음들을 내딛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상입니다. (아… 아마도 뽀삼님의 요청에 정확하게 부응하는 글은 아닐 것 같습니다. 다만 이상의 이야기로써 뽀삼님께 조금이나마 영감을 드렸다면 만족합니다^^;;)

P.S. 한 가지 빼먹은 게 있어 추가합니다. 포스톤과 같은 논의의 “전망”에 대해 추가요. 기본적으로 포스톤의 논의는 “해석”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나 뽀삼님께서도 아시겠지만, 요새 마르크스 연구는 특히 MEGA의 발간을 계기로, 기존에 다양하게 제시되었던 “해석”들이 마르크스 자신의 언급들에 의해 명시적/비명시적으로 옹호 내지는 기각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곧 기존의 분분했던 “해석”들의 진위를 가려줄 (그러나 예전엔 존재하지 않았던) 근거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죠. 포스톤의 논의도 그런 “심판”으로부터 자유롭진 않을 것입니다. 제가 그 심판관이 될 수는 없지만요;;

이 얘길, “철학적” 마르크스주의 일반과 관련시켜 확장시킬 수도 있습니다. 이때 제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헤겔에 대한 연구가 성숙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르크스에 대한 진지한 “학문적” 연구가 상대적으로 늦게 시작된 것과 마찬가지로, 헤겔에 대한 그것도 그렇다고 합니다. 아직은 헤겔에 대한 구태의연한 해석이 아닌 진지한 연구에 입각한 논자들이 마르크스에도 비슷한 기여를 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또는 아직은 그런 기여들이 널리 알려질 기회가 없었지만, 그것이 마르크스(주의) 연구에도 결국에는 심각한 충격을 줄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랬을 때, 포스톤을 포함한 기존의 “철학적” 마르크스주의 이론들은, 그 이론적 기반의 밑바닥이 심각하게 드러나지 않을까 합니다.

IIPPE: 경제학을 넘어 사회과학의 재편으로 (3)

2. 정치경제학을 통한 ‘사회적인 것’의 복원

결국 IIPPE의 경제학에 대한 문제제기는 크게 두 가지 측면을 갖는다고 요약될 수 있다. 첫째, 내적으로 봤을 때 경제학은 점점 더 편협해지고 있다. 둘째, 외적으로 봤을 때 경제학은 그 편협하고 파괴적인 성격으로 다른 사회과학들을 물들이고 있다. 특히 이 두 번째 사항을 통해 경제학에 대한 문제제기는 곧 사회과학 전체를 시야에 두고 그것을 재편하는 데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게 되는데, 따라서 경제학의 개혁은 경제학 안팎의 다양한 비판들이 건설적으로 소통하는 것을 요구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비록 불가피하게도 벤 파인을 비롯한 몇몇 소수에 의해 체계화되었지만, 그것은 IIPPE 안팎에서의 토론은 물론이고 IIPPE가 생기기도 훨씬 이전부터 경제학 내부와 기타 사회과학들에 지속적으로 존재했던 다양한 비판과 불만을 반영하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하버드 대학교에 사회학과가 신설되어 그 첫 강사로 부임했을 무렵 탈코트 파슨스(Talcott Parsons)는 경제학 제국주의를 두고, “이웃한 ‘나라들’을 부유하게 할 수도 있지만 …… 그들을 그들이 가진 조건들에는 맞지 않는 ‘경제적’ 범주들이라는 구속복(strait jacket)을 입히는 결과를 빚을 수도 있다”며 경계하기도 했다(Parsons, 1934, p. 512). 이는 경제학 제국주의의 파괴적 결과를 비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 구절엔 당시 막 형성되고 있던 사회학의 정체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숨어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비판과 불만은, 경제학의 내부와 외부에서 공히 ‘정치경제학’이라고 불리면서 제기되고 발달해왔다. 바로 이것이 IIPPE가 ‘정치경제학 진흥’이라는 명목으로 그런 비판과 불만들을 북돋고 체계적으로 결집시키려는 까닭이다.

먼저 경제학 내부에서 보면, 앞서 소개한 밀로나키스와 파인의 책 제목에서도 내비쳐지듯이, 정치경제학이란 경제학이 필연적으로 사회적•역사적 성격을 갖기 마련인 그 대상에, 이 대상의 그런 성격을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방법론을 가지고 개입하려던 시절에 불리던 이름이다. 따라서 위에서 묘사한 경제학의―특히 19세기 말부터 현재에 이르는―역사적 발전양상을 참조하면, 이러한 ‘정치경제학’의 정신과 접근법을 복원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그 자체로 의의가 있는 일이다.

그렇다고 이 복원을 꽉막힌 원칙론, 또는 과거로의 회귀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여기서는 정치경제학이란 근대사회 고유의 문제에 관계되는 특수한 학문임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왜 그런가? 고대 그리스에서 ‘경제’란 말이 처음 생겨났을 때 그것이 ‘가계의 관리’를 일컬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물론 여기서 가계란 오늘날의 핵가족이 아니라 가족과 더불어 거기 부속된 노예 등까지 포함하는, 말하자면 하나의 생산 공동체이자 단위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와 같은 ‘가계의 관리’란 곧 ‘공공문제의 관리’와 유사성을 띤다. [크세노폰(Xenophon)이 《소크라테스 회상》에서 전하는 바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친구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개인 업무의 경영과 공공 임무의 처리는 다만 양에 있어서 다를 뿐 그 외의 점에서는 비슷한 것이라네”(크세노폰, 2002[1923], 122쪽). Roncaglia(2005), p. 25n에서 재인용.] 그러나 이런 유비관계는 서유럽으로 치면 대체로 절대왕정과 거의 나란히 근대사회가 떠오름에 따라 더 이상 충분치 않은 것으로 판명난다. 하나의 단위로 묶일 수 있는 공동체의 규모 자체가 커졌을 뿐만 아니라 그 운영도 이제는 가계의 운영만 참조해가지고는 제대로 수행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복잡한, 즉 그 정도와 범위에 있어 엄청나게 심화되고 확장된 분업관계에서 비롯되는 문제들을 동반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기존의 ‘경제’라는 용어로는 더이상 공동체가 직면한 ‘경제적’ 이슈들을 만족스럽게 포착하고 개념화하며 그로부터 떠오르는 질문들에 답변을 구하기가 어렵게 된 상황을 반영해서, ‘공동체의 경제’를 일컫기 위해 ‘정치경제’(political economy)라는 새로운 용어와 그와 결부된 일련의 개념들이 필요하게 되었단 얘기다. 바로 이런 변화를 포착하여, 스미스(Adam Smith)의 《국부론》이 나오기 약 10년 앞서 스튜어트(Sir James Steuart)는 다음과 같은 구절들로 자신의 《정치경제학 원리 탐구》(An Inquiry into the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를 연다. “일반적으로 경제란 한 가계의 모든 결핍을 분별있고 검소하게 채워주는 기술이다. …… 경제가 가족에 대한 것이라면 정치경제는 국가에 대한 것이다”(Steuart, 1805[1767], pp. 1, 2). [물론 ‘정치경제’라는 용어의 기원은 이보다 훨씬 앞선다. 대체로 17세기 초부터 여러 사람에 의해 약간의 시차를 두고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King(1948) 참조.]

결국, 고전파에 의해 발전된 정치경제학이란 ‘(근대) 사회’ 자체에 대한 학문, 좀 더 정확히는 사회 전체를 총체적으로 시야에 넣고서 그 사회를 구성하는 주요한 계급들 사이에서 물적 부가 어떻게 생산되고 교환되는지, 어떻게 분배되고 소비되는지를 체계적으로 좇으며 근대시민사회의 운동방식을 탐구하는 학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을 “시민사회의 해부학”(마르크스, 1988[1859], 6쪽)이라고, 즉 근대사회에 고유한 과학이면서도 동시에 그 물적 근간을 다루는 본원적인 과학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앞서 밀로나키스와 파인의 공동저작을 언급하면서 밝혔듯이, 바로 이와 같은 정치경제학은 만약 그것이 제대로 행해질 경우, 자신이 그 대상―즉 사회―에 접근하는 ‘방법’이라는 문제에 필연적으로 민감할 수밖에 없으며, 또 그 자체가 근대시민사회라는 하나의 역사적으로 특수한 체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대상의 역사성이나 사회성에 대해 사려깊을 것이다.

‘경제학’의 성립, 곧 정치경제학에서 경제학으로의 전환은, 바로 정치경제학이 근대사회라는 특수한 역사적 체제 안에서 할당받은 위와 같은 역할로부터의 이탈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는 사이에 (정치)경제학의 본질적인 과제들은 일부는 경제학 내부의 변두리에서, 또 일부는 경제학 바깥에서 이러저러한 ‘정치경제학’이라는 이름으로 수행되곤 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경제학 내부에서는 그런 ‘비주류’(heterodox) 접근들이 주변화되고 거의 말살되다시피 하고있는 실정이지만, 경제학 외부의 다른 사회과학들에서는 그런 접근들이 꽤 강하게 유지되었고 특히 최근 들어서는 그 어느 때보다 활기를 띠고 있다는 점이다. 실은 바로 이것이, ‘정치경제학’을 장려함으로써 경제학을 개혁할 때 우리가 경제학 외의 학문분야들에도 주목해야 하는 또 다른 까닭이다.

이 자리에서 경제학 내부의 참담한 상황을 새삼 상론할 필요는 없겠고, [한동안 비주류 경제학의 산실이었던 영국 캐임브리지 대학에서 비주류 경제학이 사라지고 있는 데 대한 안타까움을, 그런 전통의 한 주역이었던 저프 하코트(Geoffrey C. Harcourt)는 한 인터뷰에서 내비치고 있다(Mongiovi, 2001). 크게 영국과 미국에서 비주류 경제학의 발달에 대한 좀 더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서술로는 Lee(2009)를 들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사회과학분야들에서 정치경제학이 현재 호황이라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파인(2006[2004]; Fine, 2010)은 이를 신자유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의 극단적인 과잉상태로부터의 ‘후퇴’(retreat)라는 관점에서 이해한다. 즉 1970년대 말 이후 사회과학 전반에 팽배했던 이와 같은 두 극단적 형태의 지적 지향이 1990년대 초반 들어 약해졌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포스트모더니즘과 관련해 말하자면, “사회과학 전반이 해체와 기호학에 사로잡혀 있다가, 이제 오늘날 자본주의의 본질을 권력과 갈등, 가난과 불평등, 환경파괴 등등의 체계로서 이해하는 쪽으로”(파인, 2006[2004], 392쪽) 점차 지적 관심이 이동함을 우리는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는? 위와 같은 지적 지향의 변화는 앞서 신자유주의의 제1국면에서 제2국면으로의 이동과 대체로 겹친다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이 비록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변화를 나타내는 것은 아닐지라도 지적 차원에서는 분명 비판적 사회과학에 좀 더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은 했다. [이런 이중의 후퇴가 지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는, ‘범지구화’(globalisation)와 ‘사회자본’(social capital)이라는 개념이 다뤄지는 방식이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파인(2006[2004]), 404-13쪽 참조.]

이와 같이 지적으로 이완된 상황을 배경으로, 그러나 동시에 경제학 내부에서는 비판적 목소리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위축되어있는 상황 속에서, 비판적 사회과학들은 오늘날의 범지구적 자본주의가 처한 물적 현실의 다양한 면모들을 풍부하게 밝혀낼 수 있었다. 이번 범지구적 차원의 경제위기는 크게 봐서 바로 이와 같은 지적 배경 위에서 터진 것이다. 경제학의 각별한 분발이 요구되는 게 그런 까닭이다. 하지만 그것이 경제학의 ‘자체정화’ 노력이기보다는 ‘정치경제학’이라는 기치 아래 다양한 분야들에서 나오는 비판들을 증진시키고 체계화하는 것이어야 하는 것도 같은 까닭에서다. (계속)

IIPPE: 경제학을 넘어 사회과학의 재편으로 (1)

IIPPE: 경제학을 넘어 사회과학의 재편으로 (2)

IIPPE: 경제학을 넘어 사회과학의 재편으로 (3)

IIPPE: 경제학을 넘어 사회과학의 재편으로 (4)

IIPPE: 경제학을 넘어 사회과학의 재편으로 (5)

[2008] 마르크스 연구의 새로운 장, 그리고 비판적 사회과학의 재구성

〈마르크스 연구의 새로운 장, 그리고 비판적 사회과학의 재구성: 2007년 《역사유물론》 연례 학술대회 보고〉, 《마르크스주의 연구》 제5권 제3호, 2008년 8월, 228-52쪽.


이 글은 2007년 11월 런던에서 열린 제4회 ≪역사유물론≫ 연례 학술대회를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예년과 같이 매우 다양한 주제의 토론이 이뤄졌지만, 이 글은 그중에서도 특히 마르크스주의는 물론 비판적 사회과학 자체의 발달을 위해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두 가지 흐름에 주목한다. 그중 하나는 마르크스 또는 마르크스주의 연구에 가히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여겨지는 것으로, 주로 독일어권 학자들에 의해 마르크스·엥겔스의 새로 출판된 전집(MEGA)에 대한 면밀한 연구를 바탕으로 이뤄진 성과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정치경제학 진흥을 위한 국제발의(IIPPE)’라는 새로운 국제적 연구프로젝트가 SOAS대학 경제학 교수로 있는 벤 파인(B. Fine) 등의 주도로 이번 학술대회에서 출범함으로써 구체화된 비판적 사회과학 전반의 새로운 연구의제를 가리킨다. 끝으로 이번 학술대회에서 제시된 이런 과업들을 제대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국내 연구자들의 적극적 참여가 필수적임이 강조될 것이다. [링크]

경철수고, 또는 마르크스의 지적발달에서 정치경제학의 의의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진보불로그의 순이님과 비교적 최근부터 글을 쓰고 계시는 냉커피님의 글을 보고서 자극을 받아 조금 써보려고 한다. 미리 밝혀두건대, 이 글은 그분들의 글을 비판하거나 평가하기보다는—물론 군데군데 그런 뉘앙스가 없을 수야 없겠지만—그냥 내 평소 생각을 밝히기 위해 쓰는 것이다.

[관련글]

3월9일 경철수고 수업 정리 (냉커피, 2010년 3월 11일)

나도 3월 16일 경철초고 수업 정리 + 짬뽕 (순이, 2010년 3월 17일)


1. 두 분은 마르크스의 《1844년 경제학 철학 수고》(이하 《경철수고》)를 대상으로 일련의 포스트를 올려주셨다. 아마도 이 책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하고 계신 것 같다. 앞으로 관련된 글을 더 쓰실 것 같기도 하지만, 이제껏 나온 것만 보면, 두 분은 주로 《경철수고》에 나오는 노동이나 욕구 등의 개념, 그리고 《경철수고》의 (비판)대상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계신 것 같다.

세부적인 내용들에 대해 토를 달 수는 없을 것 같고… 전체적으로는, 대체로 두 분 모두 몇몇 핵심개념들의 의미를 밝히는 일에 치중하시는 것처럼 보인다(“xx 개념의 이해”, “재구성” 따위). 물론 이건, 어떤 면에서 보면 당연한 것이다. 까닭은, 한편으로 이분들은 《경철수고》를 텍스트로 해서 세미나를 하고 계시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 이분들에겐 (그리고 21세기를 사는 한국인들—나를 포함한—대부분에겐) 《경철수고》에 나오는 “말의 의미” 자체가 쉽게 와닿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욕구”니 “노동”이니 하는 것들은 그야말로 알송달송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말의 의미에 지나치게 치중하면 전체 맥락을 놓친다“라는 진술이 그저 하나마나한 상투적인 코멘트 이상인 것은, 다뤄지는 대상이 마르크스의 저작, 특히 이른바 “초기” 저작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에게서 “전체 맥락”이 중요한 까닭은 매우 간단하다. 그것은 바로, 그가 자신의 일생에 걸친 지적발달 속에서, 흔히 “인식론적 단절”이라 불리는 매우 근본적인 변화를 겪기 때문이다. 이 변화를 무엇이라고 부르느냐에 대해 나는 별로 관심이 없다. 다만 내겐 그 내용이 중요할 뿐인데, 다시 이 내용이라는 것도 실은 우리가 잘 알듯이 마르크스의 최초의 본격 경제학 저작인 1859년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에 매우 간결한 언어로 나와있다. 이에 따르면 위의 그 “근본적인 변화”란 “법학/정치학/철학으로부터 (정치)경제학으로의 이행“이라는 식으로 표현할 수도 있으며, 이에 따른 “일반적 결론”을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위와 같은 비경제학에서 경제학으로의 이행에 더해, (정치)경제학 내부에서의 “방법론적 정교화”도 함께 강조하는 입장이다. 후자에 대해서는 마르크스 자신도—스스로 행하고 있으면서도—명확하게 인식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나에게 분명해지고, 일단 획득되자 내 연구의 길잡이로 쓰였던 일반적 결론은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표현될 수 있다. 즉 인간은 그들 생활의 사회적 생산에서 그들의 물적 생산 제력의 일정한 발전 수준에 조응하는 일정한, 필연적인, 그들의 의사와는 무관한 제관계, 생산관계를 맺는다. 이 생산 제관계 전체가 사회의 경제적 구조, 현실적 토대를 이루며, 이 위에 법적이고 정치적인 상부구조가 세워지고 일정한 사회적 의식형태들이 그 토대에 조응한다. 물적 생활의 생산양식이 사회적, 정치적, 정신적 생활과정 일체를 조건지운다. 인간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하는 것이다.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김호균 옮김, 중원문화, 7쪽)

주지하다시피 이런 식의 명제는 “(경제) 환원주의”니 “경제결정론”이니 하는 등의 비난을 늘 동반해왔는데, 우리는 마르크스의 위와 같이 단순하고 명료하기 그지없는 언어에 온갖 잡다한 단서들을 갖다붙이는 방식으로—“최종심급에서의 결정”, “과잉결정”과 같은 낯선 말을 동원해가면서—이런 비난을 피해가려 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우리는, 마르크스의 저 얄짤없이 환원주의적으로 보이는, 비록 비유법을 쓰고는 있지만 결코 애매모호함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저 명제를, 그만큼 명확하게, 그래서 거기에 대해 환원주의니 뭐니 하는 의문을 제기할 여지도 없을 정도로 비환원주의적인 방식으로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


2. 올바른 이해에 도달하는 길이 여럿이 있을런지 몰라도, 나는 “경제” 또는 “경제학”이란 무엇이냐는 질문을 근본적으로 제기하고 그에 답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적절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경제학이 현실에서 막강한 힘을 휘두르고 있기 때문에 특히 중요하다. 위에서 환원주의/경제결정론을 언급했는데, 그런 것에 대해 개개인들이 어떤 입장을 취하든 상관없이 사회과학의 여러 분과들은 경제학을 닮아가려고 애쓰고 있다. 이와 같은 “경제학 제국주의”라는 현상을 눈앞에 두고서도, 경제학 이외의 다른 분야들의 고유성을 주장함으로써 예의 그 환원주의/경제결정론에 맞서는 것은 그야말로 시대착오적인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순이님이나 냉커피님의 충분히 반성되어 있지 않아 보이는 “반(anti)-경제학 환원주의”적 태도가 우려스러운 것도 대체로 그런 이유에서다. 이런 상황에서는, “경제학 대 비경제학” 또는 “경제학 대 사회학 대 정치학 대 …”와 같은 대립구도를 타파하는, 즉 근대분과학문 체계를 전제한 물신화된 사고로부터 벗어남과 동시에, “사회적인 것(the social)”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이 요구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실은 바로 그런 과정에서, 경제(학)의 본질에 대한 위 질문은 핵심적인 것으로서 제기될 것이다.

다른 한편, 마르크스주의 내에서 보자면, 위 질문은 위와는 다른 의의도 갖는다. 실제로 마르크스 자신의 지적 발달이 바로 현대사회에서 경제(학)의 의의에 대한 지속적인 깨달음을 계기로 해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앞서 인용한 부분에서 엿보이는 경제(학) 이해는 대체로 1840년대 중반의 《독일 이데올로기》에서부터 본격적으로 관찰되는데, 그 뒤 마르크스의 지적 행보, 즉 《자유무역에 대한 연설》, 《공산당 선언》,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잉여가치학설사》, 《자본》 등의 연쇄를 쫓다 보면, 경제(학)에 대한 이해가 점점 더 깊이가 있어짐을—즉 단순히 “지식”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어렵지 않게 관찰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의 서문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가볍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헤겔이 18세기의 영국인들과 프랑스인들의 선례에 따라 ‘시민사회’라는 이름 아래 그 전체를 요약한 바 있는 물질적 생활관계 … 시민사회의 해부학은 정치경제학에서 찾아야 한다. (위의 책, 6쪽)

여기서 마르크스는 마치 자신이 위와 같은 결론에 이미 1844년에, 즉 《경철수고》를 쓰기도 전에 획득했다는 듯이 말하고 있지만, 실은 《경철수고》에서조차도 위와 같은 인식은 그저 희미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해야 공정할 것이다. 오히려 여기서 마르크스는 경제나 경제학에 대해 (나름 날카롭지만) 상대적으로 초보적인 이해수준만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헤겔의 그것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위 구절에 나타나는 헤겔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경철수고》에서의 가차없는 비판을 비교해 보라! 요컨대 후자와 같은 비판이란 따라서 (그 자체만 가지고 보면 타당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동시에) 크게 제한적이거나 핵심에서 벗어나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테면, 《경철수고》에서 마르크스의 헤겔 비판의 핵심명제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헤겔은 노동을 행위로 파악하지 않고 정신의 작용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식의 비판은, 마르크스의 일생에 걸친 지적작업의 견지에서 보면 그다지 대단하달 만한 의미가 없으며, 또 그런 까닭에 이런 비판은 매우 제한적이고/거나 핵심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이런 시각에서, 위 인용문의 마지막 구절을 이해할 수 있다. 헤겔에 대한 평가가 좀 더 냉정해지고 그것이 위치한 지적맥락 안에서 좀 더 객관적으로 수행됨에 따라, 정치경제학에 대한 견해도 “소외된 과학”에서 “시민사회의 해부학”으로 변환된다. 물론 이런 변환이—헤겔에 대한 태도의 변화에서도 그렇듯—정치경제학이 이제는 더 이상 “소외된 과학”이 아님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그것은, 마르크스가 정치경제학에 부여하는 의의와 정치경제학에의 개입지점이 바뀜을 의미할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바뀐 의의를 그는 계속해서 밀어붙임으로써 《자본》을 우리에게 남겨주는 데 성공하게 된다.

그렇다면 정치경제학을 “소외된 과학”으로 보는 것과 “시민사회의 해부학”으로 보는 것이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좀 더 이야기를 진행시켜 보자.


3. 《경철수고》를 포함한 “초기저작”에서 마르크스의 관심은 대체로 어떻게 하면 암담한 현실을 극복하고 제대로 인간적인 세상을 만들어나갈 것이냐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언뜻 보면 별로 이상할 것도 특이할 것도 없지만, 그리하여 마르크스가 훗날 《자본》 시절에 갖게 될 문제의식과도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이지만, 진정한 핵심은 그가 위 문제에 어떤 식으로 접근했느냐에 있다.

여러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겠다만, 여기선 “개인”과 “사회”를 대비시키면서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다. 일단 둘을 대비시키고 나면, 《경철수고》를 포함한 초기저작들에서 마르크스는 “사회”보다는 “개인”을 중심으로 해서 위에 제시한 문제에 접근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개인”이라는 것이 당시에든 오늘날에든 (정치)경제학에서 말하는 “합리적 경제인” 또는 “로빈슨 크루소”는 아님은 말할 필요도 없다. 즉 여기서 “개인”에 대한 강조가, 흔히 우리가 비판하는 “방법론적 개인주의”와는 다른 맥락에 속한다는 얘기다. 그보다 그것은, 앞에서 말한 “암담한 현실”을 인식하고 또 그의 극복을 꾀함에 있어 “개인이 처한 삶의 조건”에 주목한다는 뜻이다. 물론 이런 과정에서 핵심적으로 떠오르는 개념이 바로 “소외”다. 소외란 정의상 “어떤 이상적인 상태로부터의 이탈”을 의미한다. 이상적인 상태란 무엇인가? 마르크스가 “개인”에 주목하는 한, 이상적인 상태란 곧 바로 그 개인의 이상적 상태, 즉 “인간 본성(이 이상적으로 발현되는 상태)”에 다름 아니다. 요컨대 소외라는 개념은 곧 “인간 본성”이라는 인간의 본래적 상태를 전제하게 되고, 또 바로 이 소외가 현실인식의 핵심개념으로 떠오르는 한 여기서 도출되는 필연적인 현실개입전략은 “바로 그 인간 본성의 회복”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보면 마르크스는, 적어도 논의를 전개해 나가는 “형식”의 측면에서는, 그가 종종 비판하곤 하는 근대사상가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게 된다. 근대사상가들도 인간의 본성을—그것을 “합리적 경제인”이라 부르든 “로빈슨 크루소”라고 부르든—상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엔 본질적인 차이도 존재한다. 즉 나중에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의 〈서설〉(1857년)에서 명확히 밝히듯이 근대사상가들이 말하는 인간본성이란 실은 당대현실을 구성하는 현실적 인간을 추상화해 과거로 투영한 것에 지나지 않는 반면, 마르크스의 그것은 (헤겔의 강한 영향 아래) 전자보다는 더 “반성된” 개념이라는 거다. 이때 “인간 본성”을 정의하기 위해 그가 발달시키는 개념이 바로 “노동”이니 “욕구”니 하는 것들이다. (한편, 근대 부르주아 사상가들이 말하는 인간 본성이라는 것이 실은 현실의 인간의 추상화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역사란 바로 그렇게 설정된 인간 본성의 실현과정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에게 현실이란 늘 “순리에 맞는 상태”, 당시까지 존재했던 중에서 최선의 상태일 수밖에 없고, 미래를 위한 현실개입전략이라고 해봐야 그런 이상적 상태의 좀 더 완전한 실현을 위한 것에 그칠 뿐이다. “조금 더 많은—자본을 위한(!)—자유”라는 식으로.)

현실을 참조해서 거꾸로 과거를 이해하고 나아가 왜곡하는, 위에서 묘사된 근대 부르주아 사상가들의 태도는 이미 헤겔도 비판한 바 있다. 그런 면에서 마르크스는 헤겔과 정확히 같은 입장에 있는데, 하지만 《경철수고》에서 그는 헤겔에게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노동이나 욕구라는 개념들을 (포이어바하 등의 영향을 받아) 좀 더 “유물론적으로” 전화시킴으로써 오히려 헤겔을—헤겔이 부르주아 사상가들을 비판했던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비판하는 데 써먹는다(같은 방식의, 그러나 좀 더 역사적인 견지에서의 비판은 〈헤겔 국법론 비판〉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좀 더 (마르크스 사상의 발달과 관련해서) 장기적인 관점에 입각해서 보면, 이 과정에서 그가 동시에 정치경제학(또는 국민경제학)도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순이님의 다음과 같은 언급이 유용해 보인다.

맑스는 국민경제학자의 저술을 발췌하면서 이들의 주장이 현실과 괴리되어 있다고 주장. 이들에 따르면 소득의 원천은 임금, 자본의 이윤, 지대이지만 궁극적으로, 소득은 ‘노동’에서 온다. 근데 현실적으로 노동자는 극심한 경쟁 상태에 있고, 상품으로 전락해버린 상태.즉 국민경제학은 노동을 가치의 원천으로 보면서도 노동의 모든 열매를, 소유적 시장사회의 근본 원리인 사유재산제에 넘기고 노동자가 처한 현실이 왜 그러한지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 원래부터 가진 자는 그저 가진 자일 뿐이고, 가진 자의 가짐과 그 사회 전체의 사적소유는 자연법칙인양 관철된다. 맑스에 따르면 국민경제학은 사유재산 형성의 기원을 밝히지 않고 그것을 전제로 두어 ‘학’의 임무를 망각했다. 이것이 국민경제학에 대한 실증적 비판의 결론. [출처 링크]

위와 같은 《경철수고》에서의 정치경제학 비판이 이후 《자본》에서의 그것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가 커다란 흥밋거리일 것이다. 이 또한 여러가지 방식으로 말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것이 후자와는 달리 “개인”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행해진다는 데 주목한다. 즉 마르크스는 행위 중심적으로 번역된 노동과 욕구 등의 개념을 기반으로 인간의 본래적인 상태와 그로부터의 소외를 논한 뒤, 정치경제학이 이 소외 문제를 정직하게 드러내지를 않는다고 비판한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근대사회에서 소외란 곧 사유재산제도에 뿌리를 박고 있는데, 정치경제학은 도리어 그 사유재산제도를 “자연법칙”인 것처럼 간주하기 때문에 “소득의 원천은 임금, 자본의 이윤, 지대이지만 궁극적으로, 소득은 ‘노동’에서 온다”라는 모순적인 명제를 보고도 그것을 모순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바라본다는 얘기다. 이렇게 소외를 고발하기보다는 전제해버리는 정치경제학을 마르크스는 “소외된 과학”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와 같은 정치경제학 비판, 즉 정치경제학의 세부적인 논의들에 세심하게 개입하기보다는 그에 대해 지나치게 근원적인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그것을 거의 “일언지하”에 거부하는 이런 비판은, (역시 이후 《자본》까지를 염두에 뒀을 때) 지나치게 단순하고 이 당시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이해의 얄팍함을 반영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대사회에 대한 문제를 “소외”를 중심으로 파악하는 한, 이런 한계는 필연적인 것이기도 하다. 왜인가? 그것은 단순하게도, “소외”라는 문제틀이 대체로 “개인”을 중심으로 한 문제제기인 반면, 정치경제학이란 기본적으로 “사회”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이기 때문이다. 약간 무리해서 말한다면, 정치경제학이란 마르크스가 말하는 소외의 문제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동시에 그런 문제에 별로 관심 자체가 없다. 그렇다면 《경철수고》에서 행해지고 있는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은—정치경제학의 핵심문제에 개입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에서—포커스가 잘못 맞춰진 것이라고까지 할 수도 있다.

이상과 같은 논의는 곧 우리를 “정치경제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이끈다. 나는 이 문제를 이 블로그의 다른 글(“사회” 관점의 지성사적 의의)에서 다룬 바 있다. 거기서 나는, 정치경제학이란 근대적 의미에서의 “사회”의 출현에 대응해서 발달한 것이라면서, 이런 발달의 가장 완성된 모습을 제시한 것이 마르크스라고 말했다.

이렇게 “사회”라는 것의 특수한 지위가 인식된 것이 엄청난 의의를 가짐을 염두에 두면, 그리고 그것이 “(정치)경제학”의 발달에 미친 결정적인 영향을 고려하면, 마르크스(Karl Marx)가 사상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것은 마르크스 개인의 문제는 아니다.) 결국 그는, 지성사적 의미에서 “(근대)사회”의 출현이 갖는 의의를 끝까지 밀어붙임으로써, 문제의 중심을 “개인”에서 “사회”로 옮겨놓았던 것이다. [……] 마르크스를 통해 이제 정치경제학은 “사회”를 적극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길을 발견한다. 이제 그것은 인간본성이라는 흐리멍텅한 선험적 가정 대신, 사회라는, 즉 인간을 둘러싼 관계들의 구조라는 엄연한 물적 현실(material reality)로부터 출발한다. [출처 링크]

위와 같은 결론적 언급에 비춰보면, 우리는 마르크스 사상의 발달이란 곧 “인간본성이라는 흐리멍텅한 선험적 가정”으로부터 “인간을 둘러싼 관계들의 구조라는 엄연한 물적 현실”로의 이행이라고 할 수 있으며, 실은 그것이 바로 이른바 “인식론적 단절”의 내용이다. 뿐만 아니라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이해해야 하는 것은, 이런 이행과정이 필연적으로 정치경제학 비판의 본질적 성격/내용의 변화를 동반한다는 점이다. 요컨대 이제 정치경제학은 “소외를 전제하는 소외된 과학”이 아니라 “물적 현실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무력한 과학”이라고 비판받는다. (주지하다시피 《자본》에서는, 후자와 같은 정치경제학의 무력함 자체가, 실은 자본주의적 사회과정의 특수한 성격으로부터 체계적으로 산출된다는 것이 논증되기에까지 이른다.) 말하자면… 근대 정치경제학이란 “시민사회의 해부학”으로서 의도되었지만 “서툰 해부학”인 셈이며, 이에 마르크스는 “제대로 된 해부학”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4. 위와 같은 구분 안에서 《경철수고》란, “인간본성이라는 흐리멍텅한 선험적 가정”에 입각한 논변전개가 가장 훌륭하게 드러난 저작이라고 평가될 수 있다. 앞서 밝혔듯, 이런 가정 자체는 물론 그에 입각한 논의를 전개함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게 바로 독특하게—즉 “행위 중심적으로”—개념화된 노동, 욕구 등이다.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면, 여기선 노동이니 욕구니 하는 것들을 “어떻게 개념화하느냐” 자체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좀 더 숙성된 틀, 즉 “인간을 둘러싼 관계들의 구조라는 엄연한 물적 현실”에 주목하는 틀 안에서 노동이나 욕구는, 시민사회를 구성하는 기본원리로서의 지위를 회복한다. 여기서 “회복한다”라는 표현을 쓴 것은, 노동이나 욕구가 원래 헤겔에서, 나아가 아담 스미스 등과 같은 근대 정치경제학자들에서 이미 그런 의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곧 《경철수고》에서 마르크스가 그런 의의를 충분히 음미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아가 노동이나 욕구에 대한 독특한 개념화에 근거를 둔 채 전개되었던 소외라는 것도 이제는 하나의 “경제적 사실”(economic fact)로 이해될 뿐이다—“소외”가 사라진 게 아닌 거다! 이제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경제적 사실을 체계적으로 산출하는 물적 현실의 “구조”(이 단어에 더이상 알러지 반응을 일으킬 필요는 없다)이며, 바로 그 구조의 해부학이 바로 “정치경제학”이다. “해부학”이므로, 정의상, 그 비판자는 이제는 “일언지하” 성의 “단칼 거부”에 의존해서는 안 되고, 그 스스로 “진정한” 해부학을 구성할 수밖에 없다. 그게 바로 《자본》이다.

“사회” 관점의 지성사적 의의

0. 적어도 서유럽에서 “사회”라는 것이 핵심적인 문제로 떠오른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닌 것 같다. “사회”를 논하게 되었다는 것은 곧 하나의 학문으로서 “경제학” 즉 당시 표현에 따르면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이 나타났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사회의 (의미있는) 출현과 정치경제학의 (의미있는) 출현은 대체로 일치한다고 볼 수 있겠다. 그것은 대체로 17세기 초중반 정도로 봐도 문제는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17세기 초중반 이전엔 사회가 없었단 게 아니다. “정치경제학”이라는 용어도 사실은 16세기 중반쯤부터 나타났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현실의 발달이 인간의 의식에 반영되는 방식이다.

1. 인간이 올바른 삶을 사는 것 — 그것을 다루는 것이 전통적으로 학문의 중요한 하나의 과제였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선한가, 악한가? 인간이 선하다면 그런 본성이 잘 발휘될 수 있어야 할 것이고, 악하다면 그런 본성은 적절하게 억제되어야 할 것이다. 개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것은 인격수양의 문제겠지만, 개인이 몸담고 있는 사회(여기서 사회란 그냥 앞의 개인이 속한 “집단”이라고 해도 족하다)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것은 제도의 문제일 것이다. 동양사상에서도 성악설이니 성선설이니 하는 게 있지만, 서유럽 지성사에도 비슷한 대립이 존재한다.
 
인간이 선하냐 악하냐를 다루는 까닭은 간단하다. 인간사라는 게 복잡하기가 짝이없기 때문이다. 주위에 맘씨 좋은 이웃도 많지만, 여전히 세상은 전쟁과 각종 범죄로 들끓고 있다. 말하자면 전통적으로 서구사상에서는—이는 동양사상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게 아니라 동양사상은 논외에 있다는 뜻이다—오늘날 의미로 “사회문제”에 해당하는 것들까지도 인간본성에 대한 탐구 속에서, 그리하여 개인의 선악의 문제라는 관점에서 다루곤 했던 것이다.

2. 현대적 의미에서의 “사회”의 출현, 또는 인식은, 인간본성을 둘러싼 위와 같은 대립에 새로운 차원을 부여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여기서 사회란, 매우 복잡한 그 무엇이다. 작고 단순한 단위, 즉 가족이나 작은 영지/지역 등으로 환원되지 않는, 그러니까 그것을 이루는 개체들의 단순한 총합 이상의 그 무엇. 이리하여 우리는, “사회”에 대한 별도의 과학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래서 고작해야 개별 가계의 운영과 관련된 기술이었던 “경제(학)”과는 구별되는 “정치경제(학)”을 필요로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차원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개인의 선악이 곧 전체의 선악과 일치하는 것만은 아니다“라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런 관점은 맨더빌(Bernard de Mandeville: 1670-1733)의 유명한 《꿀벌의 우화》(1714)의 제목에 명확히 나타난다. 이 책의 원제목은 다음과 같다: “꿀벌의 우화, 또는 사적 악과 공적 이익“(Fable of the Bees: or, Private Vices, Publick Benefits).
 
어떻게 보면 인간본성을 선하다고 하는 것보다 악하다고 하는 게 여러모로 편하다. 앞서 말했던 범죄나 전쟁 등을 쉽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선의 강조는 악의 만연을 거꾸로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게다가 이젠, 개체의 총합 이상의 그 무엇으로서의 사회를 개인과 대립시킴으로써, <악+악=선>이 될 수도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물론 여기서 “악하다”라는 것은, 언젠가부터는 “자기이익(self-interest)을 추구한다“로 뭉뚱그려지고 굳어졌다.

3. 다시, (정치)경제학의 출현은 위와 같은 의미에서의 사회의 출현과 궤를 같이 한다고 했다. 당연하다. 아마도 이 대목에서 우리는, 오늘날 경제학이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개인을 출발점으로 한다는 사실만 떠올려도 충분할 것이다. 앞서 언급한 맨더빌 같은 사람이 이런 생각의 시조 중 하나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이기심”이 처음부터 (정치)경제학의 첫번째이자 유일한 원리는 아니었다. “경제학의 아담”이라 불리는 아담 스미스(Adam Smith: 1723-1790)조차도 그렇게 보지 않았다. 흔히 스미스가 “이기심”을 중심으로 한 경제학의 원조라고 불리지만 그것은 후대의 사람들이, 즉 스미스를 제대로 읽지도 않고 스미스에 대해 지껄이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지어낸 신화에 불과하다. 스미스는 “이기심”보다는 “자기애”(self-love)라는 표현을 선호했는데, 그의 사상 전체적으로 보면 “자기애”는 그와 대립되는 성향인 “동감”(sympathy)와 함께 인간본성을 구성한다고 스미스는 봤다.

4. 이렇게 “사회”라는 것의 특수한 지위가 인식된 것이 엄청난 의의를 가짐을 염두에 두면, 그리고 그것이 “(정치)경제학”의 발달에 미친 결정적인 영향을 고려하면, 마르크스(Karl Marx)가 사상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것은 마르크스 개인의 문제는 아니다.) 결국 그는, 지성사적 의미에서 “(근대)사회”의 출현이 갖는 의의를 끝까지 밀어붙임으로써, 문제의 중심을 “개인”에서 “사회”로 옮겨놓았던 것이다. 알튀세르(Louis Althusser)가 말한 “인식론적 전환”이란 바로 이것을 의미한다. 비록 알튀세르 자신은 이런 의의를 충분히 음미하지는 못한 것 같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그의 표현을 빌자면, “그는 스스로 그런 의의를 발견해놓고도, 보지는 못했다.”)

마르크스를 통해 이제 정치경제학은 “사회”를 적극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길을 발견한다. 이제 그것은 인간본성이라는 흐리멍텅한 선험적 가정 대신, 사회라는, 즉 인간을 둘러싼 관계들의 구조라는 엄연한 물적 현실(material reality)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서 구성되며, 또 바로 거기까지로 자신을 제한시킨다. 어떻게 이런 경제학을 부정할 수 있겠는가. 이것을 부정하는 것이야말로 근대의 가장 중요한 지적 성취로부터의 “퇴보”가 아니겠는가.

이 “퇴보”에는,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어렵사리 구성된 “사회” 관점—그리고 구체적인 물적현실에 주목한다는 의미에서 “유물론적” 관점(그래, 이젠 자신있고 분명하게 그것을 “유물론”이라고 부르자)—을, 구태의연한 “개인”의 차원으로, 또는 추상적인 “인간”의 차원으로 해소시키는 다양한 시도들이 포함된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오늘날의 경제학들이 그렇지만, 그것에 대한 우파적 비판(특히 최근 범지구적 공황의 국면을 맞아 경제학을 반성한다는 명목으로 제출되는 각종 논의들. 이런 논의들의 특징은 그동안 경제학이 미처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던 개인들의 “심리”나 구체적인 “행동동기”에 주목한다. 예컨대 작년 초에 출간되어 국내에도 번역된 《야성적 충동》 같은 시도)은 물론 몇몇 좌파적 비판들(예컨대 요즘 유행하는 “호혜성” 운운)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