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정치경제학 진흥을 위한 국제 발의

[IIPPE 국제 컨퍼런스] 2011년 5월 터키에 함께 갑시다!!

[!!이 포스트는 가급적 널리 좀 퍼뜨려 주시기 바랍니다!!]

에… 터키에 가서 놀자는 얘긴 아니고요, 제가 그동안 ‘홍보’하는 데 열을 올리기도 했던 ‘정치경제학 진흥을 위한 국제 발의'(IIPPE)가 내년 5월, 터키 이스탄불에서 두 번째 국제 컨퍼런스를 여는데, 거기에 함께 참여하자는 겁니다. 물론 가면 놀수도 있습니다! ㅎㅎ

모집 대상은 딱히 정해놓진 않았고요,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국내 또는 해외에서 대학원 과정(석사/박사)에 재학중이거나 졸업하신 분들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반드시 대학이나 대학원에 다닐 필요도 없고 학교에 적을 두고 있어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돈문제 등 때문에 학교에 적이 있으시다면 조금은 더 유리하시겠죠. (학생, 졸업생, 강사, 교수 모두 좋습니다!!)

– 이번 학술대회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다음 링크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링크]

– 그리고 IIPPE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소개는, 요 위에 메뉴 중 ‘IIPPE’를 누르시면 찾으실 수 있습니다. 또는 다음 링크를 누르십시오. [링크]

– IIPPE에 대한 우리말 소개는 다음 링크를 참조하셔도 됩니다. [링크]

이번 학술대회의 주제는 ‘신자유주의, 그리고 경제학의 위기‘입니다. ‘경제학’이라는 말이 들어갔다고 해서 경제학 전공자만 참여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사회과학 전 분야, 그리고 굳이 ‘사회과학’이라고 불리진 않아도 사회과학적 요소가 있는 분야의 모든 분들에게 이번 컨퍼런스는 열려 있습니다. ‘경제학’보다 중요한 건 ‘위기’입니다. 즉 작금의 ‘경제학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선 경제학 자체의 개혁뿐 아니라 사회과학 전반으로부터 다양한 자극들이 필요합니다. 물론 이런 자극들은 단순히 경제학 자체만을 개혁하기 위해 필요한 게 아니라, 자폐적인 사회과학 전체를 갈아엎고 진정으로 ‘사회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되묻는 데 반드시 필요한 요소입니다. [링크]

제가 많은 국제학술대회 자리를 다녀본 것은 아니지만, IIPPE는 그 어떤 곳보다도 한국의 연구자들에게 호의적이고 관용적인 곳이라 자부합니다. 우리 같은 주변부 꼬꼬마 연구자들이 가서 뭔가를 풀어놓기에 아~~주 ‘만만한’ 곳이라 할 수 있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IIPPE나 거기 오는 사람들이 별볼 일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IIPPE의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듯이, 올해 9월에 그리스 크레타에서 열렸던 첫 번째 국제 컨퍼런스는 사회과학 각 분야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 매우 수준높은 자리였습니다.

– 제1회 컨퍼런스에 대해서는 다음 링크를 참조해 주세요. [링크]

IIPPE는 한국의 신진 사회과학 연구자들에게 자신의 연구를 전 세계적으로 자리매김하고 연구의 시야를 넓히며, 각 분야의 유명 학자들은 물론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가는 신진 학자들과 다양하게 교류할 수 있는 아주 이상적인 자리입니다. 현재 IIPPE는 세계적으로 가장 유력한 학술전문 출판사 중 하나인 Pluto Press와 함께 그 자체적인 Book Series도 내고 있을 뿐 아니라, 자체 저널도 곧 출간될 예정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굳이 하는 것은, 단순히 IIPPE가 여러분들의 커리어를 쌓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정도로 믿을만한 기반을 가지고 있음을 알리고 싶어서입니다.

IIPPE는 열린 모임입니다. 이번 컨퍼런스에 참석하시는 분들은, 단순히 한 번의 참여로 끝나는 게 아니라 각종 working group에 참여하는 등의 방법으로 향후 IIPPE라는 틀 안에서 계속적으로 관계를 맺어나갈 수 있습니다.

*                             *                             *

자… 이상으로부터 IIPPE 및 다음 컨퍼런스에 대해 어느 정도는 설명이 되었으리라 믿습니다. 혹시 참여를 원하시나요? 참여를 원하시는 분은 제게 메일을 주십시오. 메일 주소는 [ghgimm골뱅이gmail점com]입니다. 참여와 관련된 어떤 문의도 환영입니다!!

참여는 개인이 하셔도 좋고, 몇몇이 팀을 이뤄서 해도 좋습니다. 물론 개인 참여자들을 묶어서 하나의 팀을 짤 수도 있겠습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제가 현재 IIPPE의 organisation에 일정 정도 관여하고 있는데요, 일정한 시간적 여유만 주어진다면 우리 참석자들 중 몇몇을 묶어서 하나 또는 다수의 독립된 세션을 구성할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앞서 링크된 ‘Call for Papers’에 따르면 희망자들은 2011년 2월 15일까지 발표문 초록을 내기로 되어있습니다. 따라서 참석 희망자들이 그 전에 모집이 되어야 몇 가지 조율들을 할 수 있겠죠. 따라서 이 ‘모집’은 일단은 2011년 1월 15일까지 유효한 것으로 하겠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이스탄불, 아주 환상적인 곳입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ㅎㅎ

(사족: 노파심에 말씀 드리자면… 이번 건은 저 개인의 성향과는 무관한 것입니다. 혹시 제 블로그를 통해 보신 평소의 제가 맘에 안 드셨던 분이라도, 관심 있으시면 얼마든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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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PPE: 경제학을 넘어 사회과학의 재편으로 (5/끝)

2. 연구경향: 워킹그룹들과 그간의 활동을 중심으로

당연하게도 현재 존재하는 워킹그룹의 목록을 보면 IIPPE 회원들의 관심사가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여기엔 ‘금융화’와 같은 오늘날 세계적으로 매우 인기 있는 주제도 있지만, ‘광물・에너지 복합체’와 같은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것도 포함된다. 다음은 워킹그룹들의 목록이다. 2010년 5월 현재 IIPPE에는 모두 18개의 워킹그룹이 있으며, 증가하는 회원수와 다양해지는 연구관심을 반영해 워킹그룹의 수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1) 농업 변화(Agrarian Change)
(2) 발전국가를 넘어서(Beyond Developmental State)
(3) 상품연구(Commodity Studies)
(4) 금융화(Financialisation)
(5) 국제금융제도(International Financial Institutions)
(6)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Marxist Political Economy)
(7)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8) 광물・에너지 복합체/비교산업화(Minerals-Energy Complex/Comparative Industrialisation)
(9) 제도의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 of Institutions)
(10) 일의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 of Work)
(11) 민영화(Privatisation)
(12) 사회자본(Social Capital)
(13) 사회주의(Socialism)
(14) 발전으로서의 이행(Transition as Development)
(15) 환경(Environment)
(16) 기타: 이단적 경제학(Heterodoxy), 국제정치경제학(International Political Economy), 갈등과 폭력의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 of Conflict and Violence)

각 워킹그룹과 그 활동에 대한 정보는 IIPPE 홈페이지에 있는 워킹그룹별 페이지를 참조하면 될 것이다. 여기서는 그런 정보를 통해 추출할 수 있는 주요한 연구경향들을 범지구성, 제3세계와 발전, 현대 자본주의의 물적 동학, 대안체제 등의 테마를 중심으로 간략히 짚어보겠다.

앞서 명시했듯이 원래부터 정치경제학은 자본주의 사회의 전체적인 물적 동학을 파악하고 나아가 그로부터 발생하는 각종 문제들에 처방을 내놓는 이론으로 출발했고,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을 비롯한 현대의 다양한 정치경제학들은 비록 때때로 세부적인 사항에 매달리기도 하지만 대체로 그런 역할에 충실해왔다. 따라서 오늘날 자본주의가 보이는 특이성을 전체 체계의 차원에서 구명하는 것은 정치경제학의 매우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사실상 현재 존재하는 모든 워킹그룹들이 현대 자본주의의 물적 동학을 밝히는 데 복무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 ‘신자유주의’, ‘금융화’ 등의 워킹그룹은 특히 체계 전체의 차원에서만 포착될 수 있는 자본주의의 변화양상을 추적하는 데 각별한 관심을 두고 있다.

둘째로, 위와 같은 맥락에서, 현대 자본주의의 범지구성(globality)을 고려하는 것도 IIPPE가 대표하는 거의 모든 연구들의 공통된 특성이다. 흔히 범지구성은 ‘범지구화’(globalisation)로 개념화된다. 흥미롭게도 이는 원래 “신자유주의를 그 논리적 극단으로 확장했을 때 닿는 결론”, 즉 “국민국가나 국제기구의 개입이 없는 단일한 세계시장”이라는 이상에 그 유래를 두고 있는데(파인, 2006[2004], 404쪽), 많은 경우에 그것은 가상(주의), 해체 등과 같은 포스트모더니즘적인 개념들과 연결되곤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다소 소모적여 보이기까지 하는 범지구화 시대 국가의 운명에 관한, 즉 ‘소멸이냐 존속이냐 (또는 강화냐)’ 하는 논쟁이 적어도 1990년대 중후반까지도 범지구화를 둘러싼 학술담론의 주류를 이뤘던 것도 이런 사정과 관련이 있다. 이렇듯 범지구화란 그 자체로 하나의 실체 없는 이데올로기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현실의 일정한 물적 발달을 반영하기도 한다. 따라서 IIPPE에 모인 오늘날의 다양한 비판적 정치경제학들이 현대 자본주의의 범지구성을 다룬다는 것은, 곧 범지구화가 (개념으로서) 반영하기도 하고 (이데올로기로서) 만들어내기도 하는 발전・빈곤・불평등・계급・성・노동・자본축적・권력 등 ‘정치경제학’의 전통적인 문제들과 관련된 지구상 곳곳의 현실들을 다룬다는 것이다. [이런 관심사들의 일부가 《네오리버럴리즘: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는가?》(사드-필류・존스턴, 2009[2005])에 소개되어 있다. 이 책에 참여한 저자들 중 상당수가 IIPPE에 다양한 정도로 개입하고 있기 때문에, 이는 IIPPE의 연구동향을 엿볼 수 있는 매우 좋은 통로다.]

이미 강조했듯이 이상의 두 가지 성격을 두루 담아낼 수 있는 이론적 틀로서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IIPPE에서는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의 이와 같은 성격을 보완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의 특수한 지위를 위협하기까지 하는 일종의 ‘대안적’ 접근도 배양되고 있다. 이를테면 ‘상품연구’가 그것이다. 여기엔 ‘범지구적 상품사슬’, ‘범지구적 가치사슬’, ‘범지구적 생산망’, ‘공급체계’(systems of provision: SOP) 등으로 불리는 다양한 접근이 포함된다. 대체로 이들은, 자본주의 경제의 물적 동향을 파악한다는 고전정치경제학 및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의 전통적인 문제의식을 따르면서도, 경제의 여러 분야들 사이의 상호관련성을 명확히 규명하는 데 실패하거나(고전파) 생산에만 지나친 관심을 기울이는 경향이 있던(마르크스주의) 그 선행자들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다.

세 번째로 강조될 수 있는 IIPPE의 연구테마는 제3세계와 발전이다. IIPPE에서 제3세계가 강조되고 있다는 것은, 그것이 제3세계 연구에 특화하고 있는 영국 런던의 아시아아프리카대학(SOAS)을 중심으로 출범했기 때문이라고 단순하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의 범지구성, 그리고 그것이 재생산되는 특수한 방식에서 이른바 ‘제3세계’가 갖는 핵심적인 의의를 고려하면, 오히려 IIPPE와 같은 기획이 SOAS에서 비롯된 것은 매우 적절했을 뿐만 아니라―특히 제3세계에 대한 비판적인 연구가 다른 곳에서는 계속해서 말살되고 있음을 떠올리면―불가피한 것이기까지 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실로 거의 모든 IIPPE의 워킹그룹들이 저마다 다른 주제 아래 제3세계의 문제에 특히 집중하고 있다. ‘농업 변화’나 ‘발전국가를 넘어서’, ‘광물・에너지 복합체/비교산업화’, ‘발전으로서의 이행’ 등은 거의 전적으로 제3세계만을 다루도록 짜인 워킹그룹들이며, ‘민영화’나 ‘사회자본’ 등도 대체로 제3세계의 문제에 치중한다. [사회자본 개념은 경제학이 무조건적인 시장숭배에 대한 안팎의 비판에 굴복해 ‘사회적인 것’을 받아 안는 과정―곧 신자유주의 제1기에서 제2기로의 전환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결정적으로는 이는, 세계은행에서 중요한 정책 키워드로 채택돼 세계은행의 국제개발업무에 적용됨으로써, 제3세계 발전을 다룰 때 가장 많이 마주치는 개념이 되었다. 이에 대한 가장 최근의 포괄적인 비판으로는 파인(2010) 참조. 국내에서도 김종엽(2008) 같은 연구자는 이상과 같은 파인 등의 논의를 거의 참조하지 않으면서도 사회자본 개념의 ‘신자유주의화’를 비판한 바 있다.] 재밌는 것은 IIPPE가 보통 제3세계의 입장에서 주체적인 발전전략으로 고려되는 ‘발전국가’에 상당히 비판적이라는 점이다. 그 자세한 내용은 ‘발전국가를 넘어서’ 워킹그룹의 설명을 참조할 수 있겠다. 한편 주로 아프리카와 같은 자원이 풍부한 지역을 대상으로 ‘광물・에너지 복합체’라는 새로운 접근이 발전국가론의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끝으로 대안체제의 문제를 들 수 있다. 사태에 대한 실제적인 접근을 선호하는 IIPPE의 성향을 반영해서인지 현재로서는 대안체제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워킹그룹은 ‘사회주의’뿐이다. 그러나 거시적인 차원의 큰 그림을 그리는 것만이 아니라 현실의 세부적인 문제들로부터 대안적인 요소들을 북돋는 것도 대안체제를 다루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본다면, 대안체제라는 문제는 IIPPE 전반에 스며있는 핵심적인 고민거리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이는 “진보적 정책을 고안하고 진보적 운동을 지원함으로써 실천 활동과 연계를 꾀한다”라는 IIPPE의 다섯 번째 목표를 떠올리면, 결코 작은 부분이 아니다.

이상과 같은 성격들이 일상적으로는 개별 워킹그룹들의 독립적인 활동을 통해 드러났지만, 좀 더 공식적으로는 지금까지 세 차례의 국제워크숍(2007년엔 그리스의 크레타, 2008년엔 이탈리아의 나폴리, 2009년엔 터키의 앙카라)과 무수한 중・소규모의 학술대회와 세미나, 또는 마르크스주의 학술저널 《역사유물론》이 주최하는 연례 학술대회에서의 발표 등을 통해 좀 더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몇몇 워킹그룹들을 중심으로 교육용 자료들이 개발되고 있기도 하며, 전세계의 대학원생들에게 그들이 현재 작업중인 논문을 IIPPE에 보내 거기 속한 고참 학자들의 조언을 받을 수 있는 기회도 주고 있다. 이는 현재 정치경제학이 처한 비참한 상황을 고려할 때 정치경제학에 투신하고자 하는 젊은 세대를 범지구적인 차원에서 재생산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고무적인 기획이다. 또한 이런 과정에서 일부 논문들은 선택되어 장차 활성화될 ‘IIPPE 워킹페이퍼시리즈’에 포함될 것이며, 현재 몇몇 출판사들과 진행중인 IIPPE의 자체적인 저널발간 협상이 마무리되면 저널에 실릴 수도 있게 된다. 다른 한편, 국제적인 학술전문 출판사인 플루토(Pluto Press)에서는 IIPPE 총서를 내기로 해, 올해 초 이미 그 첫 번째 권(파인, 2010)이 나왔으며 현재 다수의 후속편들이 준비중이다.

그간 IIPPE의 활동과 노력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열매를 맺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엔 주로 대학원에 재학중인 박사과정생들 위주로 행해졌던 국제워크숍이, 올해엔 대규모 정식 국제학술대회로 격상되어 9월 크레타에서 열리기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이는 동시에 첫 번째로 열리는 IIPPE의 공식총회를 겸하게 된다. 바로 이 자리에서, 현재까지 ‘가안’으로 남아있던 여러 이슈들―정관 문제를 포함한―이 토론되고 결정될 것이며, 그와 동시에 위에서 열거했던 다양한 기획들은 급물살을 탈 것이다. 하지만 몸집을 키우고 영향력을 넓히는 것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다. IIPPE의 목표는 오로지 정치경제학을 장려함으로써 경제학을 비판하고 나아가 사회과학 전체를 ‘사회과학답게’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V. 전망과 맺음말

앞서 IIPPE의 출현을 필연적으로 만들었다고 한 지적・역사적 배경들은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해당된다. 우리나라에서 ‘주류’ 경제학이라 하면 통상 서양에서 이해되는 그것보다 범위가 더 좁은데, 바로 이런 ‘주류’의 범주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논의들은 대학을 비롯한 경제학의 장(場)에서 가차 없이 배제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동시에, 무엇보다 이번 범지구적 경제위기를 맞아, 그것을 적절히 해석하고 대응방향을 제시해주지 못한 경제학에 대한 불만이 우리나라에서도 적지 않게 쌓여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특히 사회경제학회에서 올해 봄 정기학술대회를 ‘글로벌 금융위기와 현대경제학’으로 정하고 주류경제학에 대한 다양한 ‘이단적’ 대안들을 검토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그러므로 이상과 같은 IIPPE의 발전이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밀로나키스와 파인의 ‘경제학의 역사’에 대한 저작들(Milonakis and Fine, 2008; 2009)이 충격적으로 보여주듯, 현재 경제학의 위기는 경제학이 발생해서 지금까지 발전해오는 동안 서서히 형성된 매우 뿌리 깊은 것임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본질적으로 서유럽에서 형성되었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그것이 도입되고 발달한 역사가 짧은 만큼, 우리는 특히 이런 사항에 주의해야 한다. 문제 자체를 올바르게 파악해야만 그에 대한 올바른 해결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IIPPE가 경제학에 대한 올바른 비판과 개혁을 위해서는 다른 사회과학들과 활발하게 교류해야 한다고 힘줘 말하는 것을 특히 눈여겨 봐둬야 한다. 이는 경제학과 사회과학이 지금까지 발전해왔던 과정(이 글의 제3절)을 떠올리면 하나의 ‘당위’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이는 오늘날과 같이 경제학 내부에서 이단적 목소리들이 위축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경제학 내부의 세력결집만으로는 경제학의 진정한 개혁이 어려울 것이라는 ‘현실적인 한계’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적어도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사회경제학회를 중심으로 여타 사회과학들의 비판적 전통들과 교류하려는 흐름이 꽤 강하게 존재했음을 떠올리면, 우리에게 이는 그런 전통을 새삼 되새기고 복원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IIPPE는 이렇게 ‘학문분야 간의 국제주의’만 강조하는 게 아니라 ‘연구와 교류의 국제주의’도 강조한다. 이 또한 한편으로는 비판이 일국 내에만 머물렀을 때 나타날 수밖에 없는 무기력함을 극복하려는 방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의 범지구적 자본주의 자체가 국제주의적인 시각을 견지하지 않고서는 적절하게 다뤄질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것은 거기 속한 한 지역이나 심지어 지방을 다룰 때도 마찬가지다. 바로 이와 같은 국제주의에의 요구는, 우리나라 연구자들이 IIPPE에 효과적으로 결합하여 생산적인 기여들을 행할 수 있는 가능성은 물론 그래야만 하는 당위성까지도 가리킨다.

지금까지 IIPPE가 처한 여러 맥락들과 그로부터 IIPPE가 갖게 된 문제의식, 그리고 그동안 IIPPE가 이 문제의식을 어떻게 다뤄왔는지를 살펴봤다. 통상 이와 같은 글은 대체로 ‘선진국’의 학술동향을 단순히 소개하는 데 그치곤 하는데, 지금 필자에겐 IIPPE를 한국의 연구자들을 포함한 기타 관심 있는 이들에게 소개함으로써 거기에 동참하기를 독려하고픈 욕심도 크다. IIPPE는, 한국과 같이 오늘날 범지구적 자본주의 체제의 재생산에서 매우 중요한 고리이면서도 그동안 정당한 학문적 주목을 받지 못한 지역 출신의 연구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물론 이는 과거 제국주의 시대의 선진국들에서 유행하던 ‘지역학’적 관심과는 다르다. IIPPE가 설정하고 있는 진정한 경제학, 진정한 사회과학의 과업은 “지금까지와 같이 서구의 주도적 연구자 몇몇의 능력만으로는 이뤄낼 수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현대사회의 다양한―결국은 필연적인 연결고리로 서로 연결된―문제의식을 가진 전 세계 각지의 연구자들의 참여, 우리의 참여가 필수적이다”(김공회, 2008, 251쪽). 더구나 IIPPE는 올해 가을(!)에 ‘정식으로’ 출범하는 신생집단으로 우리가 참여해서 주체적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는 여지도 크다.

참여를 원하는 이들은 공식적인 절차에 따라 IIPPE의 대표 이메일주소 iippe@soas.ac.uk로 인적사항과 가입희망 메시지를 보내면 된다. 필자에게 메일을 보내도 좋은데, 이 경우엔 다양한 한국어 문의도 가능하다. 관심 있는 많은 독자들의 참여를 바란다. (끝)

IIPPE: 경제학을 넘어 사회과학의 재편으로 (1)

IIPPE: 경제학을 넘어 사회과학의 재편으로 (2)

IIPPE: 경제학을 넘어 사회과학의 재편으로 (3)

IIPPE: 경제학을 넘어 사회과학의 재편으로 (4)

IIPPE: 경제학을 넘어 사회과학의 재편으로 (5)

IIPPE: 경제학을 넘어 사회과학의 재편으로 (4)

IV. IIPPE: 정치경제학 진흥을 위한 국제 연대

이상과 같은 지적・현실적 배경이 IIPPE와 같은 기획을 필연적으로 낳았다면, IIPPE는 거꾸로 그런 필연성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이에 대답하기 위해 지금부터는 IIPPE의 구체적인 구성과 연혁, 주요활동들을 훑어볼 것이다. 이제 태어난 지 햇수로 5년에 지나지 않으므로 몇 가지 핵심사항들을 빼고는 현재 IIPPE의 적지 않은 부분이 여전히 형성중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하의 내용은 앞으로 해당 주체들이 어떻게 만들어나가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다.

1. IIPPE의 목표・기능・구성

(1) 목표 및 기능: IIPPE는 다섯 가지 기본 목표를 전면에 내세운다. 첫째,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Marxist Political Economy)을 장려한다. 둘째, 주류경제학을 억누르고 비판한다. 셋째, 주류경제학에 대한 이단적 대안들과 비판적이고 건설적으로 연계한다. 넷째, 경제학 이외의 다른 사회과학들을 가로질러 정치경제학을 퍼뜨린다. 다섯째, 진보적 정책을 고안하고 진보적 운동을 지원함으로써 실천 활동과 연계를 꾀한다.

여기서 2-5번째 목표의 당위성과 의의는―상당부분 앞 절의 논의로부터―자명해 보일 것이나, 첫 번째 것에 대해 의문을 갖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왜 굳이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인가? 간단히 답하면, 여러 정치경제학‘들’ 중에서도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이야말로 마르크스와 엥겔스(Friedrich Engels)에 의해 기본 아이디어들이 제공되고 그들 사후 약 한 세기 동안 변모하는 자본주의와 함께 발달하는 동안 가장 체계적이고도 지속적으로 자본주의의 변화하는 물적 현실의 본질을 일관되게, 특히 이제는 여러 갈래의 정치경제학들의 고유의/공통의 관심사로 자리잡은 가치・자본축적・계급・권력 등의 범주들을 중심으로 밝히려고 해왔기 때문이다. 물론 특히 최근 들어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은, 이를테면 젠더나 환경 등의 문제를 접근함에 있어 한계를 노출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거꾸로 말하면, 만약 우리가 그런 (새로 인식된) 문제들을 ‘정치경제학적으로’, 즉 현대 자본주의의 물적 현실과 그것의 특수한 재생산 양식에 주의를 기울이며 규명하려 한다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전통적으로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이 벼려놓은 도구들과 시각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 됨을 발견할 것이다. 따라서 그런 문제들의 존재는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의 한계를 드러낸다기보다는 그것이 향후 더욱 발전될 방향을 가리켜준다고 해야 할 것이다.

IIPPE란 이상과 같은 그 목표에 동의하는 연구자・학생・활동가・개인의 네트워크인 셈이다. 이런 네트워크의 존재로써 이제 위와 같은 목표들을 집단적으로, 그리고 범지구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하나의 ‘판’이 벌어졌다고 보면 된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IIPPE의 다양한 방식의 대외활동을 통해, 그 목표의 추구과정에서 획득되고 또 그 과정을 계속해 나가는 데 요구되는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폭넓게 공유할 수도 있을 것이다.

(2) 구성: ‘네트워크’라고는 해도 IIPPE는 그 나름의 체계와 구조를 갖는다. IIPPE가 대표하는 지적 스펙트럼의 폭넓음, 추구하는 목표 달성의 까다로움, 그리고 그것이 상정하는 비판 대상의 견고함과 막강한 현실적 힘을 두고 보면, 매순간 IIPPE의 현상태를 평가하고 그것이 향하는 방향이 위의 다섯 가지 목표의 추구에 부합하는지를 점검할 일종의 ‘집행위원회’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매년 선거를 통해 다수결로 선출될 이 집행위원회는 한 해 동안 IIPPE와 결부될 다양한 업무를 다룰 책임자들을 임명하고 이들은 ‘내각’을 구성한다. 이 업무엔 현재 연2회 발행되고 있는 소식지 발간, 대외관계 관리, 웹사이트 관리, 워킹그룹 지원, 출판, 교육자료 개발 및 관리, 정책고안 등과 관련된 실천활동 지원 등이 포함된다.

여기서 한 가지 특기할 만한 것은, IIPPE의 최고의결권이 ‘워킹그룹코디네이터회의’(Board of Working Group Coordinators)에 있다는 사실이다. 집행위원회도 바로 여기서 투표로 선출된다. 이는 워킹그룹이 IIPPE에서 갖는 독특한 지위를 반영하는 것으로, 워킹그룹이야말로 IIPPE를 구성하는 진정한 ‘단위’다. 3인 이상의 IIPPE 회원이 뜻을 모으면 쉽게 워킹그룹을 구성할 수 있으며, 이렇게 만들어진 워킹그룹은 최대한의 자율성을 보장받으면서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각 워킹그룹을 대표하는 단수 또는 복수의 코디네이터는 워킹그룹코디네이터회의에 참여하게 된다. [IIPPE의 구성과 조직 등을 명시한 일종의 정관(statute)이 현재 임시로 나와 있고, 이는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 올해 9월에 열릴 IIPPE의 첫 번째 연례총회 자리에서 이 정관도 확정되고 승인될 예정이다.]

(3) 워킹그룹: 워킹그룹은 특정한 주제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거기 관심이 있는 회원들 사이의 다양한 교류활동의 장이 될 뿐만 아니라 토론회・강연회를 열거나 해당 주제에 대한 교육자료를 만들고 워킹페이퍼시리즈를 냄으로써 외부와 교류를 꾀하기도 한다. 현재 IIPPE를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통로는 인터넷 홈페이지인데, 거기에선 잘 드러나지 않지만 대부분의 워킹그룹들은 야후나 구글 등에 자체적인 게시판 또는 토론그룹을 두고 상시적으로 정보와 의견을 교환하고 여러 활동들을 도모하고 있다. 요컨대 워킹그룹은, 위에서 제시된 IIPPE의 핵심목표를 실질적으로 구현해 나가는 일상적 수준의 기본단위일 뿐 아니라 개별 회원들 및 그들의 작업을 ‘정치경제학 진흥’이라는 좀 더 커다란 맥락 안에 위치짓는 매개가 된다. 그리하여 한 개인은 IIPPE에 가입한 뒤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워킹그룹에 가입하거나 새로운 워킹그룹을 구성함으로써 본격적으로 IIPPE 활동에 함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개별 회원이 워킹그룹에 들어가는 것이 의무사항은 아니다. (계속)

IIPPE: 경제학을 넘어 사회과학의 재편으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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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PPE: 경제학을 넘어 사회과학의 재편으로 (3)

2. 정치경제학을 통한 ‘사회적인 것’의 복원

결국 IIPPE의 경제학에 대한 문제제기는 크게 두 가지 측면을 갖는다고 요약될 수 있다. 첫째, 내적으로 봤을 때 경제학은 점점 더 편협해지고 있다. 둘째, 외적으로 봤을 때 경제학은 그 편협하고 파괴적인 성격으로 다른 사회과학들을 물들이고 있다. 특히 이 두 번째 사항을 통해 경제학에 대한 문제제기는 곧 사회과학 전체를 시야에 두고 그것을 재편하는 데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게 되는데, 따라서 경제학의 개혁은 경제학 안팎의 다양한 비판들이 건설적으로 소통하는 것을 요구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비록 불가피하게도 벤 파인을 비롯한 몇몇 소수에 의해 체계화되었지만, 그것은 IIPPE 안팎에서의 토론은 물론이고 IIPPE가 생기기도 훨씬 이전부터 경제학 내부와 기타 사회과학들에 지속적으로 존재했던 다양한 비판과 불만을 반영하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하버드 대학교에 사회학과가 신설되어 그 첫 강사로 부임했을 무렵 탈코트 파슨스(Talcott Parsons)는 경제학 제국주의를 두고, “이웃한 ‘나라들’을 부유하게 할 수도 있지만 …… 그들을 그들이 가진 조건들에는 맞지 않는 ‘경제적’ 범주들이라는 구속복(strait jacket)을 입히는 결과를 빚을 수도 있다”며 경계하기도 했다(Parsons, 1934, p. 512). 이는 경제학 제국주의의 파괴적 결과를 비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 구절엔 당시 막 형성되고 있던 사회학의 정체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숨어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비판과 불만은, 경제학의 내부와 외부에서 공히 ‘정치경제학’이라고 불리면서 제기되고 발달해왔다. 바로 이것이 IIPPE가 ‘정치경제학 진흥’이라는 명목으로 그런 비판과 불만들을 북돋고 체계적으로 결집시키려는 까닭이다.

먼저 경제학 내부에서 보면, 앞서 소개한 밀로나키스와 파인의 책 제목에서도 내비쳐지듯이, 정치경제학이란 경제학이 필연적으로 사회적•역사적 성격을 갖기 마련인 그 대상에, 이 대상의 그런 성격을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방법론을 가지고 개입하려던 시절에 불리던 이름이다. 따라서 위에서 묘사한 경제학의―특히 19세기 말부터 현재에 이르는―역사적 발전양상을 참조하면, 이러한 ‘정치경제학’의 정신과 접근법을 복원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그 자체로 의의가 있는 일이다.

그렇다고 이 복원을 꽉막힌 원칙론, 또는 과거로의 회귀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여기서는 정치경제학이란 근대사회 고유의 문제에 관계되는 특수한 학문임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왜 그런가? 고대 그리스에서 ‘경제’란 말이 처음 생겨났을 때 그것이 ‘가계의 관리’를 일컬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물론 여기서 가계란 오늘날의 핵가족이 아니라 가족과 더불어 거기 부속된 노예 등까지 포함하는, 말하자면 하나의 생산 공동체이자 단위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와 같은 ‘가계의 관리’란 곧 ‘공공문제의 관리’와 유사성을 띤다. [크세노폰(Xenophon)이 《소크라테스 회상》에서 전하는 바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친구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개인 업무의 경영과 공공 임무의 처리는 다만 양에 있어서 다를 뿐 그 외의 점에서는 비슷한 것이라네”(크세노폰, 2002[1923], 122쪽). Roncaglia(2005), p. 25n에서 재인용.] 그러나 이런 유비관계는 서유럽으로 치면 대체로 절대왕정과 거의 나란히 근대사회가 떠오름에 따라 더 이상 충분치 않은 것으로 판명난다. 하나의 단위로 묶일 수 있는 공동체의 규모 자체가 커졌을 뿐만 아니라 그 운영도 이제는 가계의 운영만 참조해가지고는 제대로 수행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복잡한, 즉 그 정도와 범위에 있어 엄청나게 심화되고 확장된 분업관계에서 비롯되는 문제들을 동반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기존의 ‘경제’라는 용어로는 더이상 공동체가 직면한 ‘경제적’ 이슈들을 만족스럽게 포착하고 개념화하며 그로부터 떠오르는 질문들에 답변을 구하기가 어렵게 된 상황을 반영해서, ‘공동체의 경제’를 일컫기 위해 ‘정치경제’(political economy)라는 새로운 용어와 그와 결부된 일련의 개념들이 필요하게 되었단 얘기다. 바로 이런 변화를 포착하여, 스미스(Adam Smith)의 《국부론》이 나오기 약 10년 앞서 스튜어트(Sir James Steuart)는 다음과 같은 구절들로 자신의 《정치경제학 원리 탐구》(An Inquiry into the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를 연다. “일반적으로 경제란 한 가계의 모든 결핍을 분별있고 검소하게 채워주는 기술이다. …… 경제가 가족에 대한 것이라면 정치경제는 국가에 대한 것이다”(Steuart, 1805[1767], pp. 1, 2). [물론 ‘정치경제’라는 용어의 기원은 이보다 훨씬 앞선다. 대체로 17세기 초부터 여러 사람에 의해 약간의 시차를 두고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King(1948) 참조.]

결국, 고전파에 의해 발전된 정치경제학이란 ‘(근대) 사회’ 자체에 대한 학문, 좀 더 정확히는 사회 전체를 총체적으로 시야에 넣고서 그 사회를 구성하는 주요한 계급들 사이에서 물적 부가 어떻게 생산되고 교환되는지, 어떻게 분배되고 소비되는지를 체계적으로 좇으며 근대시민사회의 운동방식을 탐구하는 학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을 “시민사회의 해부학”(마르크스, 1988[1859], 6쪽)이라고, 즉 근대사회에 고유한 과학이면서도 동시에 그 물적 근간을 다루는 본원적인 과학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앞서 밀로나키스와 파인의 공동저작을 언급하면서 밝혔듯이, 바로 이와 같은 정치경제학은 만약 그것이 제대로 행해질 경우, 자신이 그 대상―즉 사회―에 접근하는 ‘방법’이라는 문제에 필연적으로 민감할 수밖에 없으며, 또 그 자체가 근대시민사회라는 하나의 역사적으로 특수한 체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대상의 역사성이나 사회성에 대해 사려깊을 것이다.

‘경제학’의 성립, 곧 정치경제학에서 경제학으로의 전환은, 바로 정치경제학이 근대사회라는 특수한 역사적 체제 안에서 할당받은 위와 같은 역할로부터의 이탈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는 사이에 (정치)경제학의 본질적인 과제들은 일부는 경제학 내부의 변두리에서, 또 일부는 경제학 바깥에서 이러저러한 ‘정치경제학’이라는 이름으로 수행되곤 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경제학 내부에서는 그런 ‘비주류’(heterodox) 접근들이 주변화되고 거의 말살되다시피 하고있는 실정이지만, 경제학 외부의 다른 사회과학들에서는 그런 접근들이 꽤 강하게 유지되었고 특히 최근 들어서는 그 어느 때보다 활기를 띠고 있다는 점이다. 실은 바로 이것이, ‘정치경제학’을 장려함으로써 경제학을 개혁할 때 우리가 경제학 외의 학문분야들에도 주목해야 하는 또 다른 까닭이다.

이 자리에서 경제학 내부의 참담한 상황을 새삼 상론할 필요는 없겠고, [한동안 비주류 경제학의 산실이었던 영국 캐임브리지 대학에서 비주류 경제학이 사라지고 있는 데 대한 안타까움을, 그런 전통의 한 주역이었던 저프 하코트(Geoffrey C. Harcourt)는 한 인터뷰에서 내비치고 있다(Mongiovi, 2001). 크게 영국과 미국에서 비주류 경제학의 발달에 대한 좀 더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서술로는 Lee(2009)를 들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사회과학분야들에서 정치경제학이 현재 호황이라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파인(2006[2004]; Fine, 2010)은 이를 신자유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의 극단적인 과잉상태로부터의 ‘후퇴’(retreat)라는 관점에서 이해한다. 즉 1970년대 말 이후 사회과학 전반에 팽배했던 이와 같은 두 극단적 형태의 지적 지향이 1990년대 초반 들어 약해졌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포스트모더니즘과 관련해 말하자면, “사회과학 전반이 해체와 기호학에 사로잡혀 있다가, 이제 오늘날 자본주의의 본질을 권력과 갈등, 가난과 불평등, 환경파괴 등등의 체계로서 이해하는 쪽으로”(파인, 2006[2004], 392쪽) 점차 지적 관심이 이동함을 우리는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는? 위와 같은 지적 지향의 변화는 앞서 신자유주의의 제1국면에서 제2국면으로의 이동과 대체로 겹친다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이 비록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변화를 나타내는 것은 아닐지라도 지적 차원에서는 분명 비판적 사회과학에 좀 더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은 했다. [이런 이중의 후퇴가 지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는, ‘범지구화’(globalisation)와 ‘사회자본’(social capital)이라는 개념이 다뤄지는 방식이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파인(2006[2004]), 404-13쪽 참조.]

이와 같이 지적으로 이완된 상황을 배경으로, 그러나 동시에 경제학 내부에서는 비판적 목소리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위축되어있는 상황 속에서, 비판적 사회과학들은 오늘날의 범지구적 자본주의가 처한 물적 현실의 다양한 면모들을 풍부하게 밝혀낼 수 있었다. 이번 범지구적 차원의 경제위기는 크게 봐서 바로 이와 같은 지적 배경 위에서 터진 것이다. 경제학의 각별한 분발이 요구되는 게 그런 까닭이다. 하지만 그것이 경제학의 ‘자체정화’ 노력이기보다는 ‘정치경제학’이라는 기치 아래 다양한 분야들에서 나오는 비판들을 증진시키고 체계화하는 것이어야 하는 것도 같은 까닭에서다. (계속)

IIPPE: 경제학을 넘어 사회과학의 재편으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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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PPE: 경제학을 넘어 사회과학의 재편으로 (2)

III. 경제학의 위기: 경제학 제국주의에서 정치경제학으로

경제위기라는 것이 실은 그 전부터 장기간 누적되어 온 경제의 모순들의 일시적인 폭발이듯이, 경제위기를 통해 드러나는 경제학의 위기, 그리고 뒤이어 그 위기를 어떻게 파악하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제시되는 경제학 개혁을 위한 청사진들도 이미 오랜 기간에 걸쳐 준비된 것이라고 보는 게 옳다. 따라서 IIPPE를 포함한 현재 진행중인 경제학 개혁을 위한 프로젝트들을 볼 때, 이 각각의 입장들이 자신들이 내세우는 개혁을 필연적이게끔 만드는 경제학의 고질적인 병폐로 무엇을 꼽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1. 경제학의 위기에서 사회과학의 위기로: 경제학 제국주의

IIPPE가 현재의 (주류)경제학에 제기하는 문제의 핵심은 ‘경제학 제국주의’(economics imperialism)라는 표현으로 요약된다. 이는 간단히 말해 경제학이 자신이 그 대상을 대하는 특유의 방식을 여타 사회과학들에 퍼뜨림으로써 그들을 ‘식민화’하고 있음을 일컫는 개념으로, 언뜻 봐서는 경제학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는 아닌 것도 같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것은 경제학의 위기를 그것이 처한 좀 더 폭넓고 역사적인 지적 맥락 안에서 파악하고 그 해결을 구하는 발본적인 성격의 문제제기일 뿐만 아니라, 복잡한 현대사회의 문제들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근대 분과학문 체계 안에서 편협하게 정의된 ‘경제’라는 영역―이에 대응해 그만큼 편협하게 정의된 ‘정치’, ‘사회’, ‘역사’ 등과 구별되는―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당위를 반영하기도 한다. 즉 경제학 제국주의를 통해 IIPPE는 경제학의 위기를 사회과학 전체의 위기로 파악하는 셈이며, 바로 여기에 경제학의 위기에 대한 다른 대안적 접근들에 비해 IIPPE가 갖는 차별성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른바 ‘고전정치경제학’(classical political economy)의 시대엔 (정치)경제학이 어느 정도 학제의 모습을 갖춘 거의 유일한 ‘사회과학’이었다. [흔히 ‘고전정치경제학’이라는 용어를 마르크스가 고안했다고 하는데, 그에 따르면 그것은 스미스(Adam Smith)에 의해 집대성되고 리카도(David Ricardo)에 의해 완성되었으며 이후 쇠락—마르크스의 용어로는 ‘속류화’—의 길을 걸었다고 한다. 이에 비해 보다 일반적으로 ‘고전정치경제학’은 대체로 밀(John Stuart Mill)까지를 포괄한다.] 따라서 ‘경제학 제국주의’란 적어도 두 가지 운동을 전제한다고 봐야 한다. 즉 실질적인 ‘식민화’의 과정이 시작될 수 있으려면 먼저 경제학은 여타의 사회과학들과 구분되도록 그 자신을 하나의 특수자로 정립시켜야 한단 얘기다. 바로 이와 같이 시간차를 둔 두 가지 운동이, IIPPE의 주요 멤버인 밀로나키스(Dimitris Milonakis)와 파인이 최근에 공동으로 낸 《정치경제학에서 경제학으로: 경제이론의 발달에서 방법과 사회적인 것, 역사적인 것의 행방을 중심으로》(From Political Economy to Economics: Method, the Social and the Historical in the Evolution of Economic Theory, 2008) 및 《경제학 제국주의에서 괴짜경제학으로: 경제학과 다른 사회과학들 사이의 경계이동》(From Economics Imperialism to Freakonomics: The Shifting Boundaries between Economics and Other Social Sciences, 2009)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두 책은 최근 비주류경제학 및 비판적 사회과학 분야의 권위있는 상을 연달아 수상한 바 있다. 즉 전자는 2009년도 군나르 뮈르달 상(Gunnar Myrdal Prize)을, 후자는 같은 연도 아이작/타마라 도이처 상(Isaac and Tamara Deutscher Memorial Prize)을 받았다. 이는 저자들의 개인적인 영광이라기보다는 현재 IIPPE와 같은 기획이 얼마나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는지를 방증(傍證)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요컨대 경제학 제국주의가 문제인 것은, 이미 그런 운동이 일어나기 전에 경제학 내부에서는 그 대상이 되는 사태를 바라보는 매우 편협한 안목과 방법론이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의 학문분야로서의 ‘경제학’이 성립되는 과정, 밀로나키스와 파인에 따르면 ‘정치경제학’이 ‘경제학’으로 변모되는 과정과 일치하는데, 여기엔 크게 두 가지 요소가 개입된다. 첫째, 그 자체로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과학일 수밖에 없는 경제학이 ‘사회적인 것’ 및 ‘역사적인 것’과 절연함으로써 자신의 대상을 크게 제한시켰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이제 경제학이 다루는 효용, 초기부존자원(endowments), 투입물, 산출물, 생산함수 등은 시간, 공간, 맥락 등으로부터 유리된 보편적인 범주로 재구성된다. 역설적인 사실은, 이런 축소―“사회적인 것에서 개체적인 것으로, 그리고 인간행위에서 효용극대화로”(Fine, 2000, p. 12)―의 과정에서 경제학은 동시에 ‘보편과학’으로 설 수 있는 기반도 마련했다는 것인데, 덕분에 적어도 잠재적으로는 경제학이 응용될 수 있는 범위가 무한대로 확장된다. 둘째, 경제학은 이렇게 재정의된 범주들을 다루기에 알맞은 독특한 방법들을 고안해낸다. 이는 곧 “반증가능성(또는 통계학적 방법을 통한 경험증거와의 근사성), 추상적 가정으로부터 출발하는 공리적 연역, 특수한 종류의 방법론적 개체주의(효용극대화), [다양한 주체/행위들을] 한데 얽는 개념으로서의 균형(과 효율성) 등에 대한 집착”에 다름 아니다(Milonakis and Fine, 2008, p. 5). 결국 어림잡아 1870년대의 ‘한계혁명’(marginalist revolution)에서부터 수학적•통계학적 기법들이 마침내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하게 만든 제2차세계대전 직후 약 10여 년 동안의 형식주의(formalist) 혁명, 케인스의 《일반이론》 출판(1936년)보다 훨씬 뒤에 이뤄진 케인스주의 혁명,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서의 통화주의 반혁명 등을 거치면서,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앞서 제시한 특징들을 공고히 하면서, 심지어 거의 모든 ‘거시’경제학적 이슈들을 ‘미시’적 기초라는 이름으로 해소시키면서, 경제학은 오늘날 우리가 교과서에서 보는 모습을 차츰 띠어갔다.

이렇게 경제학이 스스로 ‘경제’라고 규정한 매우 협소한 지반 위에서 하나의 보편과학의 면모를 갖춰가는 동안 다른 사회과학 분야들도 각각 나름의 지적 전통과 자원을 바탕으로 형성되고 있었다. 다시 말해 ‘경제학 제국주의’를 위한 조건이 무르익고 있었던 것이다. 기원을 따지자면 경제학 제국주의는 1930년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Swedberg, 1990), 그것이 본격적으로 행해진 것은 잘 알려졌다시피 게리 베커(Gary S. Becker)를 통해서다. 그는 신고전파 경제학의 눈으로 교육, 가족, 범죄 등과 같은 전통적으로는 비경제적 문제로 여겨지던 것들을 해석한다. [‘낡은’ 경제학 제국주의는 “합리적 선택이 나타나는 곳이라면 경제학 바깥에서도 크게 번성했고, 베커에게 있어 합리적 선택이란 인간의 모든 행위에 대한 경제적 접근을 의미한다”(파인, 2006[2004], 400쪽). 한편 경제학 제국주의에 대한 전형적인 옹호로는 Lazear(2000)을 볼 수 있다.] 파인이 ‘낡은’ 제국주의 경제학이라 부르는 이 경향은 그러나 그것이 의도하는 것만큼 큰 재미를 보지는 못한다. 개별 이슈들을 경제학적으로, 즉 효용을 극대화하는 개별주체들의 행위를 통해 균형에 도달한다는 ‘시장 과정’의 결과로 해석하고 의미부여하는 것이 말로야 얼마든지 가능하겠지만, 경제학의 방법과 기법의 낯섦은 그것이 여타 사회과학들이 다루는 문제들―본질적으로 ‘사회적’인―을 완전히 정복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이런 난점을 해결해준 것이 대체로 20여 년 전부터 본격 등장한 ‘새로운’ 경제학 제국주의다. 물론 이것은 단지 경제학과 여타 사회과학들의 간의 관계에 대한 것만은 아니며, 경제학 내부의, 나아가 경제 자체의 좀 더 본질적인 전환을 반영한다. 파인(Fine, 2000; 2008; 파인, 2006[2004])에 따르면, 과거 경제학 제국주의의 기반이 되었던 신고전파 경제학이 대체로 완전한 시장 및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철두철미한 믿음에 기반했으며, 때문에 그런 믿음 또는 가정에 부합하지 않는 현상들을 다루는 데 상당히 제한적이었던 반면, 최근엔 정보 비대칭성과 시장 불완전성을 수용하는 움직임이 경제학 내부에서 서서히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경제학은 ‘거시적’ 내지는 ‘사회적’ 현상들의 ‘미시적 기초/동기’를 강조하는 태도를 계속해서 견지하면서도 “정보의 비대칭성 및 불완전성을 끌어들임으로써 왜 시장이 때로는 파레토 효율적인 수준에서 청산되는지, 왜 때로는 청산되지 않는지, 나아가 왜 어떤 때는 시장이 아예 형성되지조차 않는지를 설명하고자” 한다(Fine, 2000, p. 14). [이런 경향을 대표하는 인물이 바로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다. Fine(2010) 참조. (국제)개발(development)이라는 측면에서 스티글리츠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으로는 Fine and Waeyenberge(2006) 참조.] 결과적으로, 낡은 경제학 제국주의에서는 다루기 어려웠던 제도•관습•문화 등은 이제 “시장 불완정성에 대한 이성적•비시장적 반응, 심지어 집합적 반응”으로 이해되고,

이러한 방식으로 새로운 경제학 제국주의는 낡은 경제학 제국주의보다 한 단계 높은, 그것을 넘어서는 두 가지 과업을 성취해 낸다. 첫째, 그것은 비경제적인 것, 비시장적인 것, 또는 사회적인 것의 특수성을 인정한다. 둘째, 비록 그것이 여전히 방법론적 개인주의(효용 극대화 형태의 합리적 선택)에 의존하고는 있지만, 그것은 사회이론의 언어와 개념을 기꺼이 빌려오고 변용하고자 한다(파인, 2006[2004], 401쪽).

사태를 다른 측면에서 보면, 낡은 경제학 제국주의에서 새로운 경제학 제국주의로의 이행은 신자유주의의 첫 번째 국면에서 두 번째 국면으로의 전환을 나타낸다. 그 첫 번째 국면에서 신자유주의란 시장에 대한 맹신을 기반으로 국가가 사적 자본과 시장을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야 하는 체제였고, 그렇게 해서 가장 큰 ‘혜택’을 본 것이 바로 금융부문이었다. 범지구적 차원에서 보면, 이런 정책은 주로 세계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의 ‘원조’ 정책을 통해 전세계로 확산되었으며, 그로부터 빚어진 참담한 결과를 우리는 지난 30여 년 동안 목격해왔다. 현재의 범지구적 경제위기는 바로 그 최신의 형태다.

신자유주의의 두 번째 국면이란, 바로 이렇게 그 스스로 만들어낸 파괴적인 결과들을 자체 내에서 교정하고자 하는, 즉 “제3의 길(Third Wayism)이나 사회적 시장 따위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신자유주의 자체에 대한 반동”을 가리킨다.

첫 번째 국면이 국가가 시장을 통해, 특히 금융시장을 자유화함으로써 특정 이해관계를 북돋는 것이었다면, 두 번째 국면에서는 이와 같은 충격요법의 결과 및 그것이 지속될 수 있도록 [국가가] 꾸준히 개입하는 데 따른 결과를 개선시킬 필요성이 제기된다. 그리하여 원칙상 강조점은 어떻게 하면 시장이 일반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방식으로 작동하게 만들 것이냐에 두어진다(Fine, 2008, p. 13).

이리하여 신자유주의적 경제 또는 경제학은 전보다 훨씬 더 ‘사회적인’ 색조를 띠게 되고, 그것이 앞서 묘사한 ‘새로운’ 경제학 제국주의와 겹치는 것은 필연적이라 할 수 있다.

시장 및 경제적인 것은 불완전한 것으로, 그리하여 비시장적인 것, 비경제적인 것으로써 보완되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 어떤 장막이 그 새로운 경제학 제국주의가 본래 합리적 선택 접근에 의존하고 있음을 숨기는 경향이 있다. 결과적으로 불완전 정보를 일종의 분석적 도구로 인식함으로써 낡은 경제학 제국주의가 제한적으로만 수정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오직 이 점만 가지고 보더라도, 합리적으로 결합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것들의 범위가 크게 증가한다. …… 비대칭적 정보라는 새로운 어휘는 베커식의 기발함과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new) 장(場)을 열 수 있도록 영감을 주었다(파인, 2006[2004], 401-2쪽).

따라서 최근 경제학이 그 내부에서뿐 아니라 특히 다른 학제와 맞닿은 경계에서, 즉 신성장이론, 신무역이론, 신경제사회학, 신제도경제학, 신복지경제학, 신정치경제학, 신경제지리학, 신개발경제학, 신가계경제학, 신노동경제학, 신금융경제학, 신경제사 등 각종 ‘새로운’ 이름으로 발달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양상이야말로 경제학 제국주의가 띠고 있는 현재 형태다.

이 대목에서, 2005년에 미국에서 처음 출판되어 2009년 말까지 세계적으로 400만부 이상이 팔렸다는 《괴짜경제학》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저자들은 “현대 사회의 삶의 표층을 벗겨내어 그 아래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들여다보는 것”이 자기들의 목적이라면서 “그 어떤 주제도 경제학의 범위 너머에 위치할 필요가 없”다고 의기양양하게 선언한다(레빗•더브너, 2007[2006], 29, 32쪽). 그러나 파인에 따르면 이는 그가 좀비경제학(Zombieeconomics)이라 부르는 것이 띠는 가장 대중적 형태일 뿐이다.

이런 접근은, 결코 도전받지 않는 방법론적 개인주의와 가장 좁아터진 기술적 도구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자신의 역사는 물론 자신의 방법론 및 그에 대한 대안들에 대해 전혀 무지하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런 대안들을 비과학적이고 엄밀성이 결여되었다며 내치는 것 외에는 그것들과 소통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 죽은(dead) 것이나 다름 없다. 여기엔 범지구화(globalisation)와 같은 체계(system)에 관한 개념, 권력과 갈등에 관한 개념이 없으며, 경로의존성, 초기조건, 여러 모델들과 균형들 사이의 선택 등을 정의하는 것 외에는 역사적•사회적 특수성에 관련된 분석범주들의 의미를 이해하려고도 않는다(Fine, 2008, p. 14). [그러나 동시에] 그와 경합하는 관계에 있는 패러다임들을 배제하고 흡수함으로써 공격적이고 노골적으로 …… 자신의 영역과 소재를 점취한다는 의미에서, 뿐만 아니라 그것이 [자신의 독성으로] 감염시킴으로써 …… 자신과 같은 성질의 존재로 뒤바꿔버릴 여타 학문분야들의 육체를 끊임없이 갈구한다는 의미에서, 그것은 살아있다(alive)(Fine, 2009, p. 888).

좀비―그 내용이 없다는 점에서 죽었으면서도 끊임없이 살아있는 육체에 붙어 그 생명력을 빨아먹는, 그러면서 그것이 손대는 것마다 자기와 마찬가지의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존재. 이렇게 좀비와 같은 경제학은 그 스스로 전통적으로 다뤄왔던 대상들에 대해서도, 그리고 그것이 새로 받아들인 대상들에 대해서도 무기력하기만 할 뿐이다. (계속)

IIPPE: 경제학을 넘어 사회과학의 재편으로 (1)

IIPPE: 경제학을 넘어 사회과학의 재편으로 (2)

IIPPE: 경제학을 넘어 사회과학의 재편으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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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PPE: 경제학을 넘어 사회과학의 재편으로 (5)

IIPPE: 경제학을 넘어 사회과학의 재편으로 (1)

다음은 IIPPE에 대한 본격적인 설명이다. 몇 번에 걸쳐 나눠 올릴 예정이다.

I. 머리말

‘정치경제학 진흥을 위한 국제 발의’(International Initiative for Promoting Political Economy, 이하 IIPPE로 부름)는 일종의 진보적인 연구자들의 국제네트워크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현재 런던대학교 아시아아프리카대학(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의 경제학과 교수로 있는 벤 파인(Ben Fine)의 주도로 2006년에 설립되어 2010년 5월 현재 전세계에 걸쳐 600여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으며, 그 포괄범위와 영향력을 계속해서 빠른 속도로 키우고 있다. IIPPE에 대한 가장 간략한 설명으로는 다음과 같은 그 홈페이지에 있는 소개가 적당할 것 같다.

IIPPE는 정치경제학을, 그 자체로서는 물론이고, 주류경제학•그에 대한 비주류적 대안들•학문분야를 가로지르는 연구•제반 실천활동—진보적 정책을 내는 것에서부터 각종 진보적 운동을 지원하는 것에 이르는—등에 비판적이고 건설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장려할 목적으로 2006년에 설립되었다. 그러므로 지적 활동의 내용과 방향의 측면에서 봤을 때 우리는, 우리가 주류경제학을 억누르고 비판한다고, 반대로 여기 대응해 정치경제학 내부에서 대안들을 모색한다고, 현대 자본주의의 본질을 밝히고 그에 대응하는 정책 및 기타 이슈들을 제기한다고, 여타 사회과학 분야들에서 정치경제학의 존재 및 ‘경제학 제국주의’ 비판의 존재를 적극 인정하고 거기 기여한다고 스스로 인식한다. 비록 우리가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이 IIPPE 안에서 크게 자리하고 나아가 참여자들이 거기에 심각하게 개입할 것을 기대하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IIPPE는 모든 종류의 진보적인 정치경제학이 환영받는 다원적인 공론장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양한 이론적•경험적•실천적 이슈들을 가로지르는 보다 건설적인 지적 개입을 희생하는 대가로 상아탑에 갇힌 공론(空論)을 되풀이하는 데는 반대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과 신자유주의라는 양극단으로부터의 지적 후퇴 및 그와 같은 의제설정 프레임으로부터의 후퇴는, 여러 사회과학들을 가로지르는 진보적 전망들이 지난 오랜 기간에 비해 훨씬 더 열려있음을 뜻한다. 여러 사회과학들을 가로지르는 학계 내부에서는 물론 그보다 훨씬 넓은 바깥에서 정치경제학을 조화롭게 증진시킴으로써, 우리는 지속적이고 의미심장한 파급력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출처: IIPPE 홈페이지]

이 글은 바로 이 IIPPE의 내용과 활동을 소개하고, 나아가 한국의 연구자들이 거기에 능동적으로 결합하도록 장려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한다. 실은 위 인용된 단락에 IIPPE의 핵심이 들어있다고도 할 수 있는데, 그런 뜻에서 이 글은 위 소개글에 대한 긴 주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먼저 다음 절부터는 IIPPE의 출현을 둘러싼 몇 가지 직•간접적 배경을 살펴볼 것이다. 그런 뒤에 현재 IIPPE의 구성과 활동, 전망에 대해 서술해 보겠다.

II. 경제의 위기에서 경제학의 위기로

IIPPE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전에, 현재 세계경제를 감싸고 있는 ‘위기’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는 경제의 위기(economic crisis)이기만 할 뿐만 아니라 특히 (경제)학자들에겐 지적 위기(intellectual crisis)이기도 하기 때문이며, IIPPE와 같은 기획이 최근 심상치 않은 주목을 받는 것도 바로 그런 배경에서이기 때문이다.

“왜 누구도 그것이 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는가?” 이것은 2008년 11월 런던정경대(London School of Economics, LSE)에서 열린 한 모임에서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던진 질문이다. 여기서 ‘그것’이란 물론 당시 본격화하기 시작한 범지구적 경제위기를 일컫는다. 이후 이 위기는 주요국 정부들의 발빠른 대응으로 차츰 잦아드는가 싶더니 2010년 5월 현재 그리스를 선두로 한 남부유럽 국가들이 잇따라 파산의 위기로 몰리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추세다. 비록 지금 당장은 세계경제의 가장 취약한 곳에서 위기가 터지고 있지만, 앞으로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 대해선 누구도 쉽게 전망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실 위 질문은 엘리자베스 여왕만의 것이 아니라 오늘날 경제위기로 직간접적으로 고통받고 있는 지구상의 수많은 보통 사람들이 공유할 법한 것이다. 경제학자의 눈에는 대책 없이 단순할 뿐만 아니라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하는, 현재와 같은 스펙터클한 위기만 아니었다면 쉽게 무시해버리고 말았을 위 질문에, 그 나라의 ‘최고’ 경제학자들이 다소 구차한―모든 사람이 눈치채지 못했던 것은 아니라는 식의―답변을 내놓기까지는 무려 8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러는 사이에 신문•방송•인터넷 등 각종 매체는 위기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경제학(자)에 대한 성토장이 되었고, 어떻게 경제학을 개선할 것이냐에 대한 논의도 곧 뒤따랐다. 전문 학술지들은 이와 관련된 특집호를 냈고, 세계 각지에서 세미나와 학술대회가 열렸다.

이런 흐름이 경제학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 것인가? 아직 그 구체적인 모습을 그리기엔 이르지만, 경제학이 좀 더 ‘포용적인’ 모습을 취하게 될 가능성은 커 보인다. 여러 변화의 양상 중에서 무엇보다도 두드러지는 것은 1980년대 이래 ‘신자유주의’ 시대에 ‘죽은 개’ 취급을 받던 케인스(John Maynard Keynes)가 다시 불려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곳곳에서―특히 서유럽에서―마르크스(Karl Marx)의 《자본론》(Das Kapital) 읽기 선풍이 불고 있으며, 민스키(Hyman P. Minsky) 같이 그동안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던 인물이 ‘(재)발견’되기도 했다. 좀 더 미시적 차원에서는, 기존의 주류경제학을 보완할 구원투수로 진화생물학이나 신경과학, 심리학 등의 영향을 받은 ‘새로운’ 경제학이 주목을 끌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다양한 입장에 선 경제학자들이―굳이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더라도―이번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자본주의 경제가 갖는 내재적인 불안정성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에 대한 규제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껏 (주류) 경제학이 그런 문제에 대해 취했던 옹졸한 태도를 떠올리면 매우 커다란 변화다.

사실 돌이켜보면,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는 언제나 그에 대한 새로운 접근 내지는 이론을 낳았다. 1930년대의 대공황이 이른바 ‘거시경제학’을 낳았다면 1970년대를 괴롭힌 장기불황은 오늘날 위기의 주범으로 몰리고 있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을 낳았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현실경제의 위기를 통해 경제학의 위기를 감지하고 나아가 경제학을 혁신한다는 비전을 내놓은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19세기 중반의 마르크스일 것이다. 마르크스는 늘 자신의 이론을 ‘비판’(Kritik; critique)이라고 불렀다. 그는 철학을, 정치학을, 나아가 경제학을 ‘비판’했다. 그가 진정 의도했던 ‘비판’의 의미가 무엇이냐를 둘러싸고 논란이 많은데, 이 대목에서 우리는 ‘비판’(critique)이 ‘위기’(crisis)와 어원적으로 같은 뿌리(κρίσις)를 가지고 있음에 주목할 수 있다. ‘κρίσις’(크리시스)란 고대 그리스에서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등에 의해 쓰였을 때 ‘병세의 전환점’―생사의 갈림길―을 뜻했다. 물론 이 표현은 환자가 그런 상태에 있다는 (의사의) ‘판단’을, 나아가 그런 판단에 이르기까지의 ‘합리적 추론’과 ‘설명’을 전제한다. 곧 ‘κρίσις’란 이 모든 것들을 동시에 품는 개념이었다. 이후 ‘crisis’가 다분히 의학적인 뉘앙스를 갖는―“이 환자는 critical한 상태에 있다”와 같은 예에서처럼―애초의 의미를 보존한 채 발전했던 반면 ‘판단’, ‘설명’, ‘추론’ 등의 의미는 critique로 독립되어, 후자는 라인하르트 코젤렉(Reinhart Koselleck)이 명쾌하게 보여주는 대로 마침내 계몽주의 시대에 이르면 “합리적 사고를 통해 [대상에 대한] 적절한 통찰 및 결론에 이르는 기술”(Koselleck 1988[1959]: 108)을 일컬을 정도로 그 의미폭을 확대하기에 이르렀다. 요컨대 결코 마르크스가 놓쳤을 리 없는 이와 같은 고려를 염두에 둔다면, 그의 ‘(정치)경제학 비판’이라는 기획이 경제의 위기―곧 이미 당시에도 주기적으로 반복되던 공황―에서 경제학의 위기를 읽어내고 나아가 그 위기의 내용과 전후맥락을 면밀히 파악하여 진정한 경제학을 세우는 것이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결국 경제위기가 우리로 하여금 경제학의 위기를 반추케 하고 나아가 경제학의 개혁을 요구하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전개는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이론이란 것이 일차적으로는 현실의 반영이고 나아가서는 그 모태가 되는 현실을 어느 정도는 만들어가는 힘도 있다는 상식적인 사항을 떠올리면, 경제위기가 곧장 경제학의 위기로 전화하는 것은 필연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경제학의 위기를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 (계속)

IIPPE: 경제학을 넘어 사회과학의 재편으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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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마르크스 연구의 새로운 장, 그리고 비판적 사회과학의 재구성

〈마르크스 연구의 새로운 장, 그리고 비판적 사회과학의 재구성: 2007년 《역사유물론》 연례 학술대회 보고〉, 《마르크스주의 연구》 제5권 제3호, 2008년 8월, 228-52쪽.


이 글은 2007년 11월 런던에서 열린 제4회 ≪역사유물론≫ 연례 학술대회를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예년과 같이 매우 다양한 주제의 토론이 이뤄졌지만, 이 글은 그중에서도 특히 마르크스주의는 물론 비판적 사회과학 자체의 발달을 위해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두 가지 흐름에 주목한다. 그중 하나는 마르크스 또는 마르크스주의 연구에 가히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여겨지는 것으로, 주로 독일어권 학자들에 의해 마르크스·엥겔스의 새로 출판된 전집(MEGA)에 대한 면밀한 연구를 바탕으로 이뤄진 성과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정치경제학 진흥을 위한 국제발의(IIPPE)’라는 새로운 국제적 연구프로젝트가 SOAS대학 경제학 교수로 있는 벤 파인(B. Fine) 등의 주도로 이번 학술대회에서 출범함으로써 구체화된 비판적 사회과학 전반의 새로운 연구의제를 가리킨다. 끝으로 이번 학술대회에서 제시된 이런 과업들을 제대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국내 연구자들의 적극적 참여가 필수적임이 강조될 것이다.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