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중앙은행

(120) 1조달러 짜리 백금동전과 마르크스 상품화폐론 – 번외편

1. 장관의 재량에 따라 (in the Secretary’s discretion)

2010년 중간선거 이후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의 벼랑 끝 협상 전술은 북한을 무색케할 정도다. 균형재정 근본주의자들, 감세 근본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킬 수 있다면 국가 부도도 감수할 태세다. 이들은 이미 핵실험도 여러번 했다. 부시 시절인 2008년 말에는 구제금융법안을 부결시킨 전례가 있고, 지난해 말 재정절벽 협상에서는 초고소득자에 한정된 감세철회조차 수용하지 않아 권력 서열 3위 하원의장이 협상권을 상원 원내대표에게 넘기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티파티 초선의원들 관리 제대로 안되면 2월이나 3월에 미국 정부 부도라는 핵폭발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솔로몬 법정의 진짜 엄마 역할을 벗어날 수 없는 오바마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 공화당의 요구사항을 상당 부분 수용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유일한 대안은 재무부에 명령하여 고액동전을 주조하는 것이다. 2010년 5월 처음 제시된 (여기) 이 아이디어는 최근 미 언론과 정치권에서 진지하게 논의되면서 관심을 끌고 있다. 관련 법률 조항은 이렇다.

(k) The Secretary may mint and issue platinum bullion coins and proof platinum coins in accordance with such specifications, designs, varieties, quantities, denominations, and inscriptions as the Secretary, in the Secretary’s discretion, may prescribe from time to time. {31 USC § 5112 – Denominations, specifications, and design of coins}

(k) 재무부 장관은 백금 혹은 백금 프루프 주화를 주조, 발행할 수 있다. 재무부 장관은 이 주화의 규격과 디자인, 종류, 양, 표시금액, 글귀를 재량에 따라 정할 수 있다. {주화의 표시금액, 글귀와 디자인에 관한 법률}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은행이 지폐와 주화 발행을 독점하지만, 미국의 경우 주화는 재무부에서 지폐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서 발행한다. 다만 현재 유통 중인 지폐가 1조 달러를 상회함에 반해 유통 중인 주화는 400억 달러 정도 수준임을 감안하면 (자세한 내용은 여기), 재무부의 화폐발행 권한은 거의 완전히 무시할 만하다. 하지만 저 무시무시한 (k)조항은 – 지금까지 거의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 미국 재무부에 FRB에 버금가는 화폐발행권을 부여하고 있다. 단지 발동된 적이 없을 뿐이다.

같은 법률에는 이런 조항도 있다.

(h) The coins issued under this title shall be legal tender …

(h) 이 법률에 의거하여 발행된 주화는 … 법정 통화다.

재무부가 1조 달러 짜리 백금동전을 주조해서 FRB에 넘기면 (혹은 판매하면) FRB는 재무부 계좌잔고를 1조 달러만큼 늘려야 한다 (법정 통화이므로 FRB는 동전 매수 요청을 거부할 수 없다). 재무부는 이 돈을 채권 이자와 원금의 지불, 그리고 정부지출에 활용할 수 있다. 의회에서 부채한도를 증액하지 않더라도 부도 사태를 피할 수 있는 것이다.

2. 백금동전, 양적완화, 인플레이션

백금동전 아이디어는 처음에는 일종의 농담으로 치부됐지만 갈수록 논쟁이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반대하는 측에서는 백금동전 발행은 화폐가치를 떨어뜨려 물가와 시중금리를 상승시켜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고 비판한다.

이런 우려는 이미 양적완화와 관련한 논쟁에서 별 근거 없는 것으로 판명이 났다. 백금동전의 발행과정은 양적완화의 메카니즘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양적완화의 경우 FRB가 새로 발행한 화폐로 민간이 보유한 정부채권과 모기지담보부채권을 구매한다면 (실제로는 화폐를 찍지 않고 판매자의 예치금 계좌잔고를 높여준다), 백금동전의 경우에는 새로 발행한 화폐로 재무부가 주조한 백금동전을 구매한다. 양적완화 후 (대부분 대형금융기관인) 채권 판매자들이 판매대금의 재투자 대신 중앙은행 예치를 선택했기 때문에 물가나 시중 금리에는 별다른 변동이 없었다. 경제 내에 유통 중인 화폐의 총량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경제위기가 시작된 2008년부터 2012년 사이 본원통화(유통 중 화폐 + 중앙은행 예치금)는 8천억 달러에서 2조 8천억 달러로 늘었지만, 유통현금은 8천억 달러에서 1조 2천억 달러로 4천억 달러 상승하는데 그쳤다 (유통 현금은 경제성장에 따라 지속적으로 증가하게 되어 있고, 이 기간 유통화폐량은 이전보다 빠른 속도로 증가하기는 했지만 트렌드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반면 민간의 중앙은행 예치금(reserve balances with Federal Reserve Banks)은 0에서 1조 6천억 달러로 큰 폭으로 늘어났다.

frb

미국의 연방준비법(Federal Reserve Act)은 FRB가 발행한 화폐가 “미국의 채무 (obligations of the United States)”라고 규정한다. 중앙은행 예치금이 언제나 인출 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기간 행정부가 아닌 나라로서의 미국의 채무는 거의 2조달러만큼 늘어난 셈이다. 하지만, 2조 달러 중 거의 80%에 해당하는 금액은 마르크스의 표현을 따르면 퇴장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물가와 금리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일상적인 경제활동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도 미미했다. 마찬가지로 미 재무부가 백금동전 발행을 통해 조달한 1조달러를 적극적으로 유통시키지 않는 이상, 백금동전 발행이 물가와 금리의 상승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3. 근본적인 문제 – 부채의 화폐화

백금동전 주조와 관련된 좀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자. 대부분의 나라에서 (화폐발행을 포함하는) 통화정책을 수행하는 중앙은행은 재정정책을 수행하는 행정부로부터 독립되어 있고, 행정부가 발행하는 정부채권을 사고 파는 방식으로 통화정책을 수행한다 (FRB는 이 글을 쓰는 현재 무려 1조 6,700억 달러 어치의 미국 정부채권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의 경우는 국채시장이 발달하지 않아 한국은행에서 발행한 통화안정증권을 이용한다). 이러한 분리 없이는 정부부채라는 개념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가령 FRB가 재무부와의 협의 하에 민간이 보유한 미국 정부채권을 (새로 발행한 화폐로) 무제한 구매하고, 만기된 채권은 새로 발행한 채권으로 역시 무제한 교환한다면 미국 정부는 부채 문제로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FRB가 정부에 화폐를 길어올릴 수 있는 마르지 않는 샘을 제공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정부채권이라는 일종의 매개를 활용하는 것은 짜고 치는 고스톱에 정상거래라는 외관을 씌우기 위한 것일 뿐이다. 물론 부작용은 명백하다. 지금과 같은 경제적 비상상황이 아니라면 채권 판매대금은 곧장 시중에 풀릴 것이고, 물가와 금리가 급등해 경제활동이 대단히 위축될 것이다. 이런 노골적인 부채의 화폐화(monetization of debt)를 방지하기 위해 중앙은행은 보통 행정부로부터 독립된 국가기관으로 운영된다.

다시 말해 백금동전 주조 권한을 이용하면 미국 정부는 정부부채로부터 합법적으로 완전히 해방될 수 있지만, 동시에 중앙은행과 정부 사이의 경계는 실질적으로 허물어지고 만다. 미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의 수익률이 급등하거나 아니면 더 이상 채권으로 인식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현대의 (불환)지폐 화폐시스템은 그 뿌리부터 흔들릴 것이다. 다시 금화폐의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이 득세할 것이다. 1조달러 백금동전 주조가 나쁜 아이디어라는 것은 아니다. 뭐 한번 정도는 사용할 수 있을 것이고, 의회에 대한 압박용도로도 훌륭하다.

[어쨌든 이런 이유 때문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미국 재무부는 백금 동전 주조 권한을 활용하지 않겠다고 1월 13일 발표했다]

소위 양적완화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양적완화는 장기금리를 안정화시켜 경기를 부양시키는 것을 목적으로하는 통화정책인데, 양적완화를 통해서 실질적으로 탕감되는 채무는 전혀 없고 민간 부문으로부터 FRB로 정부채권이 대량으로 이동할 뿐이다. 따라서 미국의 한 국가기관이 또다른 국가기관에 대한 주채권자로 되는데, 이것은 그냥 그렇다고 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신비로운 사태다 (참고로 FRB는 2012년 770억 달러, 우리돈으로 77조원의 이익을 냈는데, 대부분 채권에 대한 이자 소득이다. 애플 이익의 두 배라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

정리하는 차원에서 지금까지의 논의를 FRB 대차대조표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간단히 요약해보자 (FRB의 최신 대차대조표는 여기 참조).

balance-2

  1. 현재 유통 중인 화폐의 총액이 1조달러, 재무부의 FRB 계좌 잔액이 3천억달러 (합계 1조 3천억달러는 FRB의 부채), FRB의 자산은 전액 금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가정하자.
  2. 경기부양을 위해 FRB는 새로 발행한 화폐로 1조달러 어치의 미국 정부채권을 민간부문으로부터 구입한다. 정부채권 1조달러 어치는 FRB의 대변에, 민간부문의 FRB 예치금 1조 달러는 차변에 더해지며, 총자산은 2조 3천억달러로 늘어난다.
  3. 예치금을 인출할 때 FRB는 실물 화폐를 제공해야 한다. 민간부문에서 예치금 천억 달러를 인출하면, 유통화폐가 그만큼 증가한다. 경제에 인플레이션 압력이 늘어날 수 있다.
  4. 재무부가 만기 도래한 2천억달러 어치의 정부채권의 원금을 상환한다. 차변의 재무부 계좌 항목, 대변의 정부채권 항목이 각각 2천억달러씩 줄어들고, FRB의 자산 총액도 그만큼 감소한다.
  5. 부채한도 증액이 어려워지자 재무부는 1조달러 백금 동전을 주조해서 FRB에 예치한다. 동전은 FRB의 자산항목으로 기입되며, 재무부 계좌 잔액이 1조달러 만큼 증가한다.
  6. 재무부는 부채 규모와 채권 이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FRB가 보유한 정부채권 전액을 되사들여 소각한다.

 4. 화폐는 부채가 아니다

이 정도로 백금동전 주조와 관련된 논의를 정리할 수 있겠지만, (불환)지폐의 신비로운 정체(?)에 대한 의문은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양적완화를 통해 창출된 (그리고 백금동전 주조를 통해 새롭게 창출될) 저 엄청난 금액의 화폐 혹은 부채의 정체는 대체 무엇인가? 양적완화를 통해 무려 2조 달러의 부채가 새롭게 발생했지만 사람들은 기껏해야 물가와 금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만 걱정할 뿐이다. 물론 담보가 있는 부채이고, 이 담보는 대부분 미국 정부채권이다. 하지만, 금리상승으로 정부채권 가격이 떨어지면 FRB는 막대한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새롭게 창출된 화폐가 대차대조표에 부채로 기입된다면 그것을 부채로 취급해야 하는 것이 온당하다. 그런데 명시적인 부채를 실질적으로 부채로 취급하는 것 같지는 않다.

재무부의 부채와 FRB의 부채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재무부의 부채는 정부지출을 위한 부채다. 그래서 재무부가 1조달러 동전을 주조한다면 그 이유는 이 돈을 사용하기 위해서다 (100% 확신할 수는 없지만 재무부가 발행한 동전은 회계 상으로도 미국 정부의 부채로 간주되지 않는 것 같다. 미 정부 대차대조표에서 동전 관련 부채 항목을 찾아볼 수 없었다). 반대로 금욕주의자 FRB는 자신이 생산한 지폐를 완전히 무가치한 것으로 대한다 (그래서 한국은행법은 “한국은행이 보유하는 한국은행권은 한국은행의 자산 또는 부채가 되지 아니한다”고 명시한다). FRB는 윤전기를 돌려 돈을 찍어낼 수 있는 엄청난 초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 돈으로 구매할 수 있는 대상은 법으로 엄격히 제한되어 있기도 하다 (주로 정부채권, 금, 모기지담보부증권 등). FRB는 화폐를 탄생시킨 “사회의 행동”(자본론 1권 2장, 111)의 일종의 대리자로 기능할 뿐, 자기 이익을 구하지 않고 진실로 지폐 보기를 돌같이 한다. (‘(33) 태초에 행함이 있었다’ 참조). 마치 예수의 대리자인 교황의 권한이 교황 그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의 지상의 몸인 가톨릭 교회를 위해서 행사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FRB가 발행한 지폐가 FRB의 부채라는 규정은 얼마나 황당한가? 1달러 짜리 지폐를 들고 FRB 사무실에 가서 ‘내가 당신들이 발행한 1달러 짜리 지폐를 가지고 왔으니 당신들 대차대조표의 자산항목에서 1달러에 해당하는 실물자산으로 부채를 갚으시오’라고 요구하면 아마도 미친놈 취급을 당할거다. 혹시 당혹스러워 할지도 모를 일이다. 화폐는 분명히 국가의 부채라고 법에 규정되어 있는 반면, 실질적으로는 부채라고 볼 구석이 전혀 없으니까 말이다. 우선 부채에는 상환조건이 명시되어 있어야 하는데, 지폐에 그런 조건이 부가되어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또한 부채는 법정화폐로 상환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으니 1달러 짜리 지폐라는 빚은 1달러 짜리 지폐로 갚을 수밖에 없다. 이것은 피로 피를 씻는 것보다 더 부질 없는 일이다. 게다가 부채가 부채일 수 있기 위해서는 채무자가 상환불능상태에 빠졌을 때 그 자산을 정리해주는 파산절차와 제도가 구비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화폐가 더이상 통용될 수 없는 비상 상황이라면 정부와 사회제도가 거의 붕괴 상태에 놓여 있을텐데 그때 누가 FRB의 파산과 자산정리 절차를 책임지고 진행할 것인가.

나는 오늘날 화폐로 통용되는 (불환)지폐는 절대 부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앙은행은 어떤 경우에도 중앙은행권 보유자에게 어떤 지급 의무도 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불환지폐는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상품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FRB와 같은 중앙은행이 보유한 막대한 자산은 화폐라는 부채에 대한 담보가 아니다. 그것은 그냥 중앙은행의 자산일 뿐이다. 중앙은행은 그 나라 최고의 부자다. 그렇다면 중앙은행은 어떻게 그렇게 막대한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는가? 그것은 상품사회의 구성원들이 사회적 부의 일반적 형태인 (상품으로서의) 화폐의 독점적 생산권한을 중앙은행에 사회적 행동을 통해 부여했기 때문이다.

5. 지폐와 마르크스 정치경제학계의 화폐론

자. 이제 마르크스로.

주지하다시피 마르크스의 화폐론은 상품화폐론이다. 많고 많은 상품들 중 하나인 금이 화폐가 된다는 것이다 (물론 마르크스가 (불환)지폐를 다루기는 하지만 그것은 지폐가 진정한 화폐인 금을 대신하여 유통수단으로 기능함에 한해서이다).

그런데 적어도 1971년의 금태환 정지 이후에는 (불환)지폐가 명백히 유일무이한 화폐로 기능하고 있다. 문제는 (액면가에 비해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이 현저히 낮은 지폐가)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에서 일반적으로 무가치물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에 있다. 액면가에 비해 현저히 낮은 가치를 갖는 지폐가 통용될 수 있는 까닭에 대해서는, 국가가 지폐를 법정 화폐로 지정해 통용을 강제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무가치물인 지폐는 화폐가 될 수 없다. 화폐는 가치척도로서 기능해야 하는데 무가치물로 다른 상품의 가치를 표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현대의 불환지폐가 상품화폐가 아니라는 전제 하에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자들은 지폐를 1) 신용화폐(부채)로,  2) 상징화폐로, 3) 혹은 (여전히 화폐인) 금의 대리물로 이론화해왔다. 내가 보기에는 셋 모두 만족스럽지 않다.

먼저 신용화폐론의 문제점은 이미 살펴본 바 있다. 부채가 아닌 것을 부채로 이론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비슷한 시각의 글로는 김수행의 “자본론의 금화와 현재의 중앙은행권“을 참조).

금이 여전히 화폐이며 지폐는 금의 대리물에 불과하다는 주장은 현실성이 없다 (이러한 시각에 대해서는 채만수의 “금폐화론의 비과학성에 대하여” 참조). 불환지폐, 특히 미국의 달러화는 가치척도로, 유통수단으로, 지불수단으로, 세계화폐로, 퇴장화폐로, 전면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런 달러화가 화폐가 아니라면 화폐의 정의 자체를 바꿔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폐가 상징화폐라는 주장은 상품화폐론이 아닌 새로운 화폐론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마르크스의 상품화폐론에서 화폐는 그 자체로 사회적 부이지 화폐와 별도로 존재하는 사회적 부의 상징이 아니다. 가치척도의 기능은 화폐의 상상적 존재에 의해, 유통수단으로서의 기능은 대리물을 통해 수행될 수 있다. 하지만, 화폐가 그 몸체 그대로 나타나야 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부의 축적을 위한 화폐 퇴장, 부채의 상환을 위한 ‘지불’의 경우에 그렇다. 그 자체로서 가치를 갖지 않는 상징물은 결코 이런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 (여기에 대해서는 “(57) 금이 화폐로 기능한다는 것의 의미” 참조). 따라서 지폐가 상품화폐가 아니라 상징화폐라면, 마르크스의 상품화폐론을 폐기하고 마르크스의 이론에 입각해서 상징화폐론을 새로 만들어내는 수밖에 없다. 그런 시도 없이 지폐가 상징화폐라고 주장하는 것에는 별 의미가 없다.

6. 지폐와 마르크스 상품화폐론

나는 심플하게 (불환)지폐가 떳떳한(?) 상품이고 따라서 마르크스 상품화폐론은 불환지폐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일단 예전에 살펴본 것처럼 노동은 특수한 조건 하에서는 고능력 노동(potenzierte Arbeit)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109) 강화된 노동, 아니 고도화된 노동” 참조). 따라서 지폐의 생산에 매우 적은 노동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지폐는 무가치물에 해당하고, 상품화폐가 될 수 없다는 주장에는 별다른 근거가 없다. 다시 말해 사회가 중앙은행에 지폐의 독점적 생산권한이라는 고도의 초능력을 부과했기 때문에 조폐노동자의 노동은 엄청난 고능력노동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노동이 얼마만큼의 고능력노동으로 작용하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구체적으로 깊이 생각해 보지는 않았지만 아래와 같이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1달러 짜리 지폐의 가치는 가격으로 표현되는 경우 언제나 1달러다. 1달러 지폐로 콜라 한 캔을 사먹을 수 있다면 (생산가격으로 전형을 배제할 때) 1달러 지폐의 가치와 콜라 한 캔의 가치는 동일하다. 물론 콜라 한 캔의 가치는 여러가지 이유로 (예: 콜라 생산 노동자의 노동생산성의 변화) 변동하고 있을 것이고, 마찬가지로 콜라 한 캔과 교환되는 1달러 지폐의 가치도 변동하고 있을 것이다.

둘째, 노동의 복잡한 노동(혹은 고능력노동)으로의 환원은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지, 이러한 환원의 어떤 구체적인 사례를 이론적으로 분해해서 해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령 단순노동에 비해 두배로 복잡한 노동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노동이 왜 복잡한 노동으로 작용하는지에 대해서는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예: 노동력의 양성비 등). 하지만, 그것이 왜 꼭 두 배인지를 완전히 해명하는 것은 엄청난 노력을 필요로 할뿐더러 별다른 이론적 가치를 갖지도 않는다.

셋째, 유통화폐량은 불환지폐상품의 가치 결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모든 상품이 가치를 갖는 것은 아니다. 상품은 사회적 필요를 충족시킬 때에만 가치며, 사회적 필요는 양적으로 질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아무도 안 사는 쓸모 없는 상품은 가치를 갖지 않고, 사회적 필요를 초과하여 생산된 상품 역시 가치를 갖지 않는다 (혹은 모든 개별 상품의 가치가 하락한다). 화폐도 상품이기 때문에 동일한 원리를 따른다. 유통에 필요한 화폐가치의 총량은 특정 시점에는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이것보다 많은 화폐가 유통되는 경우 화폐가치가 하락하고 반대의 경우 화폐가치는 상승한다. FRB에서 양적완화가 화폐가치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유통화폐량을 신중히 관리하는 이유다. 중앙은행 예치금은 화폐가치에 영향을 끼치지 않으며, 유통화폐량에 의해 결정되는 화폐가치에 의해 평가될 뿐이다.

이렇게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화폐를 상품으로 간주하는 경우 중앙은행은 오직 자산만을 갖는다. 무려 2조 8천억달러의 자산을 보유한 FRB는 세계최고의 부자이고, 원하는 만큼 이 부의 크기를 늘릴 수 있다. 이것은 물론 마르크스가 말한 “허위의 [하지만 실재하는] 사회적 가치”를 토대로 한 것이다 (이른바 시뇨리지 – [지폐의 액면가 빼기 지폐의 생산비용] – 가 허위의 사회적 가치에 해당한다). 달리 표현하면 FRB가 보유한 엄청난 부는 사회 구성원의 사회적 행동이 만들어낸 불환지폐 화폐시스템의 부산물이다.

상품의 생산자로서 중앙은행은 자본주의 상품경제의 내부에 있다. 그는 화폐라는 상품을 생산하고, 이 상품을 가치대로 판매한다 (화폐로 정부채권이나 금을 구매). 이렇게 축적된 엄청난 부는 중앙은행 자신의 것이다. 동시에 중앙은행은 이윤을 목적으로 화폐를 생산하지 않으며 따라서 자본주의 상품경제의 외부에 있다. 중앙은행이 보유한 엄청난 초능력인 화폐발행권은 이 화폐가 통용되는 상품경제권 전체를 위한 것이다.

등가교환의 논리에 종속되어 있는 중앙은행의 자산은 사회 공동의 자산이 아니다. 등가교환은 여타의 경제주체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경제주체의 존재, 그리고 이 경제주체의 배타적 재산처분권을 토대로 하기 때문이다. 정부기관의 자산이니 결국 모두의 자산이 아니냐고? 그렇지 않다. 오늘날의 불환지폐 화폐시스템은 중앙은행의 자산을 여타의 사회구성원의 자산으로부터 완전히 분리하는 방식으로만 존립가능하다. 이 경계를 허물면 불환지폐 화폐시스템 역시 허물어질 것이다. 중앙은행의 자산을 사회 전체의 자산으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불환지폐 화폐시스템을 그리고 이 화폐시스템이 그 일부인 자본주의 상품경제를 철폐해야 한다. 그 전에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의 것으로 남는다.

일단은 이 정도. 더 깊이 있는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아직 연구와 지식이 부족하다.

마르크스주의적 불환지폐론, 마르크스주의적 중앙은행론은 아직 멀리 나아가지 못했다. 중요한 것은 올바른 출발점을 택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르크스의 상품화폐론이다.

‘근혜노믹스’의 밑그림 (4) ‘국민 행복’론의 한계와 모순

8. 출발은 그랬다. 국민이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따뜻한 자본주의. 그러한 기조 아래 복지도 하고, 경제민주화도 하겠다는 거였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방법론적 개체주의’에 기반을 둔 ‘국민 행복’론과 복지체제/경제민주화가 어울리지 않는 조합임이 드러났다. 이는 선거과정 중에 김종인과 시장주의자들의 갈등으로 외화되기도 했지만, 일정한 내부단속을 통해 극복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선거에서 이겼다.

앞서 말한대로, 선거 이후 그들이 한 것은 자신들의 ‘국민 행복’론에 맞는 한도 내에서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선별하고 각색하는 일이었다. 즉 박근혜 등은 자신들의 외연을 넓혀 (애초 자신들의 문제틀로는 포착되지 않는) ‘구조’의 문제를 수용하려고 하기보다는, 반대로 그러한 문제를 외면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한 듯 하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실용적이진 못해도 일관되긴 하다. 현재 박근혜 쪽의 경제정책 기조는 그들의 본원적인 ‘이념’에 맞게, 좀 더 탄탄하게 세워지고 있는 셈이다. 이명박 때와는 달리 그들이 구체적인 거시경제적 목표를 정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박근혜 쪽의 ‘국민 행복’론의 본질을 이해 못하고 하는 소리다. 예컨대 다음을 보라.

공약의 대상이 국가에서 철저히 개인으로 바뀌었다. … 이종훈 새누리당 의원은 “박 당선인은 경제성장과 물가 안정 등 역대 정부가 초점을 맞췄던 거시(macro) 정책에서 탈피해 국민 개개인의 행복 증진에 중점을 둘 것”이라며 “자본주의의 단점을 보완하는 따뜻한 자본주의, 이른바 ‘자본주의 4.0’이 ‘근혜노믹스(박근혜의 경제학)’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출처)

매우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론적으로 보면 이것은 매우 강력한 신자유주의 경제학이다. 주지하다시피 케인스적 패러다임 아래서 경제학은 두 갈래로 존재했다. 개별 경제주체의 행위를 다루는 미시경제학과 그러한 개체 차원으로 환원되지 않는 구조적 차원을 다루는 거시경제학. 간단히 말해 신자유주의 경제학이란 이러한 구분을 거부한다. 그냥 거부하는 게 아니라 기존의 거시경제학을 모조리 미시경제학의 틀 안으로 해소시켜버린다. 이에 따르면, 경제 전체의 모든 정보는 가격에 반영되고 각 개인은 그러한 가격을 보고 합리적 판단을 내리므로, 모든 경제현상은 개별 경제주체의 차원에서 다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이른바 ‘효율시장가설'[EMH: efficient market hyphthesis]).

아니, 신자유주의를 극복한다면서 극단적인 신자유주의 경제학이라니?! 누구든 이런 의문을 품을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글에서 강조했듯이, 지금 이 대목에서 ‘신자유주의 경제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경제학의 발달사에서 보면 주류경제학의 핵심 기조에 정확히 부합한다. 기이하게도 경제위기가 닥치면 지배블록 내부에서 어떤 투쟁이 벌어지는데, 이는 곧 위기를 통해 자기 자신을 돌아보면서 약간의 ‘개혁’을 꾀하려는 쪽과 위기를 계기로 기존의 노선을 좀 더 강경하게 밀어붙이려는 쪽의 갈등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보면 이 투쟁은 백중세를 보이는 중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후자가 거의 압도하고 있는 셈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9.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문제를 무시한다고 문제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는 문제를 키우기만 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 7.4.7 공약이 실패했다고 해서 경제성장에 대한 목표치를 아예 세우지 않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다. 문제는 ‘7% 성장’이라는 약속을 못 지킨 게 아니라 (7%든 4%든) 성장을 어렵게 만드는 구조적 원인이 현재 자본주의 경제 내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박근혜 당선자 쪽에서는 아예 거시경제(학)을 무시하는 방향으로 가려고 하고 있다. 이것은 지배계급들의 일반적인 생각에 부합하는 것이어서 당연한 반응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매우 충격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왜냐하면 서유럽 등에서는 2007년 이후의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오히려 거시경제학의 중요성을 재발견하는 흐름이 강력하게—지배적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그 선봉에 서 있는 학자들 중에는 노벨상 수상자인 크루그만도 있다).

이론적인 영역에서뿐만이 아니다. 정책적인 차원에서도 현재 서유럽과 북미의 선진 자본주의국들에서는 경제가 (개별 주체의 행위들의 집합으로 환원될 수 없는) 하나의 거대한 구조라는 사실에 대한 인식 아래 일정한 ‘개혁’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그 자체로만 보면 보잘 것 없는 규모인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문의 문제가 미국경제는 물론 유럽경제까지 뒤흔들 수 있었던 것은 왜였겠는가? 이러한 사태로부터 교훈을 얻은 서유럽과 미국의 정책당국자들은 경제 전체에 걸친 이른바 ‘시스템적 위험'(systemic risk/crisis)에 대처하기 위해 기존의 경제부처들 간의 구획을 초월하는 전담기구를 디자인하는 데 지난 몇 년을 보내고 있다.

중앙은행 개혁 문제는 또 어떤가?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하나의 독립된 기관으로서의 중앙은행은 그리 오래된 조직이 아니며, 경제적으로 중요해진 것도 매우 최근의 일이다. 특히 중앙은행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위상이 각별해졌는데, 이때 중앙은행이 부여받은 최고의, 그리고 유일한 정책목표는 물가안정이었다. 그러던 중앙은행에, 이번 경제위기 이후 금융체계 전체의 관리라는 역할이 부여되고 있는 중이다(특히 영국이 그러함). 여기에서 나아가 최근 들어서는 중앙은행이 전통적인 물가안정 외에도 경제성장이나 실업문제에도 관여하고 있음은 이미 국내에도 수차례 보도되고 있는 바다(링크). 왜일까? 표면적인 이유는 현재 주요한 것은 인플레이션 위험보다는 디플레이션 위험이기 때문에, 일정한 물가상승을 허용하고서라도 경기를 부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물가안정이나 경제성장, 고용 등이 사실은 종합적인 경제의 움직임 속에서 결정된다는 (암묵적인) 깨달음이 자리한다.

 

10.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일단 이명박 정부는 위와 같은 세계적인 움직임을 전혀 감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한때 저축은행 부실화를 중심으로 ‘시스템적 위기’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경계가 많이 늦춰져 있다는 느낌이고, 실제로 금융시스템 전반에 걸친 ‘총체적 (위험) 관리’를 전담할 기구조차—그 구체적 방안은 고사하고—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히려 거의 모든 경제전문가들이 올해 한국경제의 ‘뇌관’으로 꼽고 있는 가계부채 문제의 경우, 새로 들어설 박근혜 인수위 쪽에서는 개별 가계의 ‘자력갱생’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 실정이다. 그와 동시에 그들은 부동산에 대한 기대도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다.

가계부채 문제, 그리고 그것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금융시스템 전반의 취약성의 문제는 결코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예컨대 고용시장의 불안과도 궤를 함께 한다. ‘하우스 푸어’라는 사람들이 결국은 노동자요 동네 자영업자 아니겠는가? 불안정한 고용상황에 처한 노동자가 단순히 고용불안에만 시달리는 게 아니다. 그들은, ‘만약 내가 회사에서 잘리면 우리집은 빚더미에 올라 앉는다’라는 두려움에도 시달리고 있다. 주택 대출금 원리금 상환, 자녀들의 교육에 월급의 절반 이상이 깨지는 게 누구이겠는가? 정권이 기획하고 언론 매체가 동조해 조작된 주식시장 붐에 희생된 것은 또 누구인가? 그리고 그러한 부모 밑에서 어렵게 대학은 갔으나 취업을 못해 몇년째 청년백수로 살고 있는 것은 또 누구이겠는가? 한진중공업, 쌍용자동차, 현대자동차 등등의 문제가 어찌 조남호나 정몽구만 악마로 만들어 해결될 수 있는 일이던가? 쌍용차 국정조사가 아니라 청와대 국정조사를 해야하지 않겠는가?

지배계급들이 이제껏 위와 같은 문제들은 다룰 때 가장 애용하는 단어가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니까 ‘니가 그릇된 결정을 한 것이니, 책임도 니가 져야 한다’라는 것. 누가 주제 넘게 비싼 집 사랬냐? 집값 오를 것 예상하고 산 거잖아. 망해도 넌 할 말 없어. 등록금도 제대로 못 내면서 대학은 왜 갔니? 취업 못 한거야 니가 부족해서 그런 거지. 주식대박 좇더니 꼴 좋다…. 어리석은 녀석들! 불행하지? 내가 행복하게 해 줄게. 자, ‘국민 행복’!

그러니까, 박근혜의 ‘국민 행복’은 ‘도덕적 해이’와 논리적 찰떡궁합 관계인 것이다.

 

11. 그러나 이렇게, 박근혜와 그 측근들이 ‘도덕적 해이’와 ‘국민 행복’을 내세우며 사태를 개체적 차원에서 접근하면 할수록, 문제가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며 시스템적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임이 속속 드러날 것이다. 이 대목에서, 미국의 금융규제법인 도드-프랑크(Dodd-Frank) 법안에 반대하던 공화당 의원들이 기존의 입장을 바꾸고 있음을 전한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의 최근 기사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이에 따르면 공화당 상원의원 데이비드 비터(David Vitter)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도드-프랑크 논쟁이 벌어지던] 처음엔 나는 공화당원들이 이에 반대하는 것은 그것이 규제인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은 우리가 필요로하는 제대로 된 시스템 개혁(systemic reform)임을 사람들이 깨닫고 있다.” (출처)

아직까지도 ‘규제완화’ 노래만 부르고 있는 우리나라 보수파들은 언제쯤 위와 같은 깨달음을 얻게 될까? (대체 규제완화 15년에, 더 완화될 규제가 있더란 말이냐…) 그들이 ‘국민 행복’을 부르짖으며 ‘구조’에 대한 문제로부터 눈을 돌리고 있는 동안, 우리가 마침내 대면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의 규모도 걷잡을 수 없게 불어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국민 행복’론에 기초한 근혜노믹스의 모순이다. 즉 박근혜 식 ‘국민 행복’은 그것이 추구되면 추구될 수록 그것이 외면하려고 하는 ‘구조’의 존재를 더욱 강력하게 드러낼 것이며, 나아가 ‘국민 행복’이 아니라 ‘국민 절망’, ‘국민 파멸’로 이르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물론 이렇게 거창한 차원이 아니더라도, ‘국민 행복’을 모토로 한 ‘개체적 접근’은 매우 명확한 한계를 갖는다. 기본적으로 ‘국민 행복’론의 골자는 어려운 국민들에게 구호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누가 어려운가? 지금은 일부 부자들을 빼면 누구나 다 어렵다. 99%까지는 아니어도 줄잡아 80%는 어렵다고 봐야 할 것이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라는 외침이 이제 곧 곳곳에서 들려올 것이다. 깡통주택, 깡통전세에 이어, 최근엔 ‘깡통원룸’도 나왔다(링크).

반값등록금만 해도, 박근혜 식의 ‘차등 등록금’제가 실행가능하려면, 그 이전에 이미 대상자들에 대한 가계소득 및 가계자산/부채조사가 완벽하게 이뤄져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과연 박근혜 측은 이러한 조사를 실시할 것인가? 내가 보기엔 ‘못한다’가 정답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의 이해관계에 반하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박근혜 측은 막대한 조사비용을 핑계로 일정한 한도 안에서 조사의 범위를 결정하려 할 것이다.) 이를테면 상위 1%의 부자들은 장학금을 받지 못할텐데, 이들은 장학금을 받지 않기 위해(!) 소득/자산/부채조사에 응해야 한다는 아이러니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다른 한편, 만에 하나 위와 같은 조사가 충분히 이뤄진다면, 그것은 역설적으로 박근혜 측이 알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을, 즉 현재 한국경제의 온갖 ‘구조적 문제들’을 폭로할 것이다. 이를테면 상당수의 가계들이 겪고 있는 다중채무의 실태가 이를 통해 드러날 것인데, 그것은 현재 한국경제의 금융구조의 실상은 물론 예컨대 가계부채와 청년실업 간의 관계를 보여줄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예전에는 박근혜의 ‘차등 등록금제’에 반대하면서 ‘보편적인 반값등록금’을 주장하는 것이 ‘범좌파’의 입장이었다면, 앞으로는 ‘차등 등록금 제대로 시행하기 위해 모든 가계에 대한 소득/자산/부채조사 철저히 시행하라’가 매우 실효성 있는 구호가 될 수 있으리라 예상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