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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경제 양성화, 두 번째 이야기: ‘국민행복’에 반하는 지하경제양성화

◯ 주지하다시피 현재 ‘지하경제양성화’는 복지재원 확보라는 목적 아래 추구되고 있다. 그런데 사태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것은 ‘국민 행복’, 다시 말해 ‘개인의 행복 추구’라는 박근혜 당선자 측의 핵심 모토에 정면 배치됨을 발견할 수 있다(박근혜 등에게 있어 ‘국민 행복’의 의미에 대해서는, 앞서 작성된 “‘근혜노믹스’의 밑그림” 씨리즈 참조).

부분적으로는 앞서 heesang님의 덧글에서도 지적된 대로(링크), 지하경제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 ‘존재이유’가 있다. 즉 어떠한 거래행위라도, 그것이 양성적으로 이뤄지든 음성적으로 이뤄지든 상관없이, 그것이 실제로 행해지는 이상 그 당사자들에게 일정한 ‘편익'(benefit)을 제공한다는 얘기다. 주류경제학의 용어를 빌면, 지하경제는 파레토개선 효과가 있고, 그런 한에서 지하경제의 존재는 좋은 것이다.

흔히 지하경제라는 말에는 뭔가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는데, 위와 같은 사정을 염두에 두면 꼭 그렇게 볼 것만은 아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지하경제'(underground economy 또는 shadow economy) 대신 ‘인지되지 않은 경제'(unrecognised economy)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아래서 보겠지만, 여기엔 온갖 좋은 것들도 많이 들어갈 수 있다. 동네 눈길 치우기, 대학생 과외, ‘아.나.바.다’ 등등.

그런데 만약 지하경제가 위와 같은 것이라면, 그것을 굳이 ‘양성화’할 필요가 있을까? 중요한 것은 어떤 거래가 양성적이냐 음성적이냐가 아니라 그것이 실제로 행해지고 있다는 것이고, 나아가 그러한 거래로부터 거래 당사자가 (적어도 그러한 거래가 없을 때에 비해) 이익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하경제를 좀 더 공식화해서 더 효율적으로 만들자는 얘기는 할 수 있어도, ‘양성화’하자는 것은 좀 이치에 안 맞는다. 거꾸로 말하면, 이미 음성적으로 매우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어떤 거래를 ‘양성화’한다는 것은, 거래 당사자들에게 이익을 준다는 것이 아닌, 다른 어떤 목적이 있다고 봐야 한다. 물론 우리는 그 ‘목적’이 뭔지를 안다. 바로 ‘세원 확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과정(양성화)에서 동시에 ‘개인 행복’이 줄어든다는 것이고, 바로 그러한 한에서 ‘지하경제양성화’는 ‘국민 행복’이라는 박 당선자의 핵심 기조에 반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몇 가지 사례를 들어서 따져보면 이해하기가 쉽다. 먼저 지하경제양성화의 첫 번째 타겟으로 나온 ‘가짜석유’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자. 가짜석유가 유통되는 것이 왜 나쁜가? 각종 부수적인 부작용들이 있긴 하지만, 결국 가짜석유라는 것도 그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에게 상당한 편익을 제공하는 상품 아닌가? 정부의 입장에서야 물론 가짜석유에 대해서는 세금을 매길 수 없다는, 그야말로 매우 중요한 단점이 있지만, 개인 입장에서야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만약 가짜석유 시장과 진짜석유 시장이 정확히 나뉘어있고 또 각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권이 보장된다면, 개인은 자신이 선호하는 쪽에서 소비를 하면 그만이다. 가짜석유 사용에서 야기될 수 있는 부작용들을 감수하고 값싼 비용으로 석유를 이용하고자 한다면 전자를 택할 것이고 이 부작용이 두렵다면 후자를 택할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가 나서서 ‘지하경제양성화’를 명목으로 그들이 ‘가짜석유’라고 규정한 재화를 시장에서 근절한다면, 이는 결과적으로 ‘진짜석유’에 비해 ‘가짜석유’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선택을 제한하는 것이며, 이때 그들의 편익, 즉 ‘행복’은 줄어든다. 요컨대 이러한 개개인들의 선택권이 보장될 때 ‘국민 행복’은 극대화될 것이며, 사실 바로 그것이 주류경제학의 가르침이다.

두 번째로, 성형외과에서 쌍꺼풀 수술을 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최근 의사나 변호사를 포함한 고소득 전문직/자영업자이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고, 이때 그들이 저지른 주요한 ‘죄목’은 바로 ‘소득신고 누락에 이은 탈세’다. 박근혜의 인수위원회의 생각은 바로 그러한 누락된 소득을 잡아내(=지하경제를 양성화해) 세수를 늘리자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게 끝일까? 꼭 쌍꺼풀 수술을 해보지 않으신 분들도, 병원에 가면 소비자에게 ‘현금으로 하겠느냐 카드로 하겠느냐’라는 선택지가 주어진다는 것쯤은 아실 것. 당연히 현금으로 할 때가 싼데, 흔히 사람들은 그 까닭이 자신이 현금으로 지불하면 카드수수료를 아낄 수 있기 때문에 더 싼 것이라고 알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카드수수료보다 더 중요한 게 바로 세금이다. 즉 위 선택지의 의미는 ‘현금으로 지불해서 나의 탈세를 도와주면 그 대가로 나는 너에게 쌍꺼풀 수술 비용을 깎아주겠다’라는 것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의사 입장에서는 대체로 현금 거래를 선호할 것인데, 그렇다면 소비자도 그러한가? 꼭 그렇지는 않다. 일반적으로는 현금거래가 선호되겠지만, 당장 현금조달이 어려운 소비자로서는 카드로 지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하경제의 양성화란 바로 이러한 선택지가 소비자에게 주어지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제 모든 소비자가 자신의 선호와 관계없이 카드지불가격을 치러야 한다. 소비자의 행복? 애초부터 카드로 지불하고자 했던 사람은 상관없겠지만, 현금지불을 선호했던 소비자의 행복은 줄어든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상과 같은 ‘양성화’의 결과 성형외과 의사 입장에서는 실질적으로 수입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당연히 가격이 오른다. 어차피 그들은 일정한 ‘독점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격 결정권도 가지고 있다.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의 행복은 더 줄어든다.

마지막으로, 지하경제양성화는 어쩌면 저들도 의도치 않았던 결과까지 낳을 수 있고, 그 과정에서 ‘국민 행복’은 더욱 훼손될 수 있다. 이상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흔히 지하경제에는 마약이나 가짜석유 거래의 경우와 같은 ‘범죄’로 분류되는 거래행위들과 성형외과 의사나 동네 분식집 아줌마 등이 일상적으로 행하는 ‘탈세’ 등이 포함된다. 그런데 지하경제에는 이를테면 인터넷 중고장터에서 이뤄지는 거래도 경우에 따라서는 포함될 수 있다. 지하경제를 ‘양성화해야 한다’라고 하는데, 대체 인터넷 중고장터를 양성화한다는 게 무슨 뜻인가? 아니, 왜 그것을 ‘양성화’해야 하는가??? 하여간에… 바로 이런 사정 때문에 ‘지하경제’의 정의(definition)가 명확하지 않은 것인데, 바꿔 말하면 ‘지하경제’에 대하여 제기하는 문제(여기에서는 ‘세수확보’)가 무엇이냐에 따라 그 범위를 상이하게 설정할 수 있다는 거다.

설명을 쉽게 하기 위해 또 예를 들어보자. 중고차 거래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등록된 업체를 이용할 수도 있고 직거래를 할 수도 있다. 중고차를 팔고자 하는 A가 중고차 매매업자에게 자신의 차를 200만원에 팔 수 있다고 하자. 이때 매매업자는 같은 차를 B에게 300만원에 판다. 이때 그는 100만원의 사업소득을 남기고 이 중에서 일정액을 세금으로 낸다. 반면 직거래의 경우 A는 자신의 차를 예컨대 250만원에 B에게 팔 수 있을 텐데, 이때 둘은 업자를 거칠 때에 비해 각각 50만원씩의 이익을 더 본 셈이고, 정부는 어떠한 세수도 올릴 수 없다.

후자와 같은 물물교환 시장이 대한민국의 한켠에서 매우 발달되어 있다. 네이버 ‘중고나라’ 카페에 가 보시라. 사람들은 이 시장에 참여해 각자 원하는 가격에 물건을 주고받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자신들의 편익 즉 ‘행복’을 극대화하고자 한다. 위의 예에선 250만원이 그러한 가격이다.

그런데 이때 ‘국민 행복’의 극대화를 위해 과감한 복지정책을 펼치고자 하는 ‘자애로운’ 정부가 들어섰다고 해보자. 문제는 돈이 없다는 것인데, 그러나 역시 ‘국민 행복’을 위해 이 정부는 ‘증세’는 절대 불가하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결국 이 훌륭한 정부가 고안해낸 방법은 ‘지하경제양성화’다. 즉 공식적으로 인지되지 않은 경제활동영역을 ‘공식화’함으로써 그로부터 세금을 받아내겠다는 것이다. 이런 기조 아래 이 정부는 불법적으로 발달해 있는 가짜석유시장도 없애고, 의사나 변호사는 물론 동네 분식집 등에서 성행하고 있는 현금거래를 근절했다. 하지만 그랬는데도 돈이 모자란다. 어떻게 할까? 이제 저 물물교환 시장에서 이뤄지는 거래에 눈을 돌린다. 저것도 경제행위가 아닌가? 그들에게 세금을 물려야 한다. 어떻게? 이를테면, 중고거래업을 활성화함으로써! 뭐, 요샌 협동조합이 붐이니까, 중고물품거래 협동조합을 활성화해도 되겠다. 이제 판매자는 자신의 물건에 대해 종전보다 낮은 가격만을 받을 수 있고, 구매자는 종전보다 높은 가격을 치러야 한다. 이 두 가격의 차액은 중고거래업자의 이윤과 정부의 세금으로 나뉠 것이다. 복지재원은 늘었지만, 어째… 사람들이 더 행복해진 것 같지는 않다. (-_-)

 

◯ 이상에서 보듯, 지하경제양성화는 이미 그 지하경제에 참여하고 있던 이들의 ‘행복’을 침해하는 경향이 있고, 만약 지하경제양성화를 통해 일말의 ‘세수증대’를 꾀할 수 있다면 이는 그렇게 줄어든 ‘국민 행복’이 화폐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지하경제양성화로 조성한 재원으로 행해지는 복지란, 한쪽 주머니에서 빼앗은 돈으로 다른 쪽 주머니를 채워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물론 이때 정확히 같은 금액이 빠졌다가 되들어오는 것이라면 그나마 낫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는 과정에서 일정한 ‘비용’이라는 게 발생하지 않을 수 없고(다양한 행정비용, 횡령, 뇌물 등), 그 비용만큼 줄어든 금액만이 다른 쪽 주머니로 돌아올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복지도 뭣도 아니다!

나는 앞서 글에서 지하경제양성화란 ‘재벌증세 없는 보편증세’라고 했는데, 이상의 사정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앞에서 ‘재벌증세 없는 보편증세’라고 한 것은, 지하경제양성화가 결과적으로는 (1) 재벌을 제외한 부자들(의사, 변호사, 대형식당주인 등)의 주머니를 턺으로써, 나아가 (2) ‘부자’도 아닌 ‘그냥’ 자영업자의 쌈지돈을 갉아먹음으로써만 ‘세수 확보’를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보듯이, 지하경제양성화란 (다양한 유형의 재화/서비스 공급자뿐 아니라) 불특정 다수의 선량한 일반 소비자들의 주머니까지 털어가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엔 가짜석유를 소비하는 준범죄자만 포함된 게 아니라, 쌍꺼풀이 없으면 취업이 불가능해 어쩔 수 없이 성형외과의 문을 두드리는 대기씨와 조금이라도 아껴서 살림살이 꾸려가려는 영순씨 같은 보통의 우리 이웃들도 포함된다.

다시, 해답은 재벌과 부자에 대한 대대적인 증세뿐이다. 그것에 의거하지 않은 복지는 복지가 아니다. (끝)

[사족 1] 이상의 내용은 매우 rough하게 작성된 것이다. 즉 논란점이 없는 건 아니다. 예컨대 중고시장에서 직거래를 하는 것보다 중고거래업자가 존재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더 나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른바 ‘거래비용'(transaction cost)가 낮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런 얘길 길게 할 수는 없고, 다만 내가 이런 사항들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란 뜻에서 남겨둔다ㅋ

[사족 2] 이미 눈치채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상의 내용은 ‘주류경제학’의 논리에 크게 기댄 것이다. 따라서 나의 ‘진심’이랑은 약간 거리가 있지만, 주류경제학을 금과옥조로 떠받들고 계시는 분들이 ‘지하경제양성화’를 무분별하게 부르짖는 것은 문제가 아니냐는 생각에 한번 써봤다. ㅎㅎ

지하경제양성화, 재벌이 선택한(!) 증세 방식

◯ 주지하다시피 박근혜와 그 동료들은 ‘증세 없는 복지’를 추구한다. 이것이 그 자체로 ‘형용모순’임은 이미 인수위원회 내부에서도 인정되고 있는 분위기이며, 요새 솔솔 흘러나오고 있는 ‘복지 축소론’이란 사실상 그러한 인식의 필연적 결론이다. 어쩌면 그들은 애초부터 자신들의 복지 공약을 지킬 의도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위와 같은 ‘마술’이 가능하다고 믿는 이들이 있으니, 그들이 기대고 있는 가장 중요한 근거가 바로 ‘지하경제양성화’다. 즉 현재 약 1,300조원인 국민소득(GDP)의 20~30%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지하경제 중 일부만 양성화해도 매년 적게는 1.6조, 많게는 5조의 추가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링크).

그런데 ‘지하경제양성화’도 엄연한 ‘증세’의 한 방식이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박근혜가 ‘증세 없는 복지’를 추구한다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하경제양성화’가 의미하는 ‘증세’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점인데, 지금 그 얘길 좀 풀어보겠다. 미리 말하자면, 내 결론은 지하경제양성화란 ‘재벌증세 없는 부자증세’, 나아가 ‘재벌증세 없는 보편증세’라는 것이다.

 

◯ 가장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원칙상 지하경제가 양성화되는 것은 대자본에게 아무런 해를 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복지재원조달수단’으로서 (민주당에서 제안된) 부자증세와 (새누리당에서 제안된) 지하경제양성화의 차이도, 바로 이런 차원에서 평가할 수 있다. 즉 전자는 대자본을 포함한 ‘부자 일반’에 대한 반발이지만 후자는 대자본을 뺀 부자에 대한 반발이다. 이는 매우 중요한 포인트인데, 흥미롭게도 아직까지는 이런 사항은 어떠한 언론매체에서도 다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어떨지 주목된다.

대충 말하면 이런 거다. 일반적으로 부자에 들어가는 사람들, 그러니까 의사나 변호사, 동네 주유소 사장 등을 포함하는 고소득 자영업자, 건물 몇 채씩 소유하면서 월세 받아서 먹고 사는 지주들과 같은 부자들과 (대)자본은 많은 경우에 이해관계가 일치한다. 적어도 ‘부자증세’라는 문제제기와 관련해서는 그렇다. 그러나 ‘지하경제양성화’와 관련해서는? 일단 재벌도 다양한 방식으로 탈세를 하고, 또 그들이 관여하고 있는 ‘지하경제’의 규모도 상당할 것이다. 그러나 엄청난 금권을 앞세워 행해지는 그러한 행위들이 매우 교묘할 것임은 물론이거니와 국세청이 재벌에 일정 정도 종속된 상황에서 그러한 재벌의 관행에까지 손을 대지는 못할 것이다. 따라서 ‘지하경제양성화’는—만약 그것이 성공한다면—필연적으로 재벌을 제외한 다양한 크고 작은 부자들을 타겟으로 할 것이다. 이를테면 다음 기사를 보라.

국세청이 차명계좌를 이용해 탈세를 저지른 성형외과 의사, 변호사 등 고소득 자영업자 수십 명의 정보를 확보해 정밀 조사에 착수했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한 첫 단계 조치로 올해부터 ‘차명계좌 신고포상금제’를 도입한 덕이다. [. . .] 국세청은 이 제도의 타깃이 변호사, 세무사, 회계사, 공인중개사, 학원, 병·의원, 치과, 한의원, 골프장, 예식장, 유흥주점 등 이른바 탈세 가능성이 큰 30개 현금영수증 발급의무화 업종이 될 것으로 본다. (링크)

바로 그런 의미에서 ‘지하경제양성화’란 ‘재벌증세 없는 부자증세’라고 부를 만하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박근혜를 찍은 ‘부자들’은 재벌을 위해 살신성인을 했다고도 볼 수 있다. 가히 대단한 희생정신의 소유자들이시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국세청이 정말로 위와 같은 부자들—의사, 변호사, 각종 ‘준재벌’들—에게까지 총구를 겨눌지는 확실치 않다. 그들보다는 좀 더 쉬운 상대가 최초의 타겟이 될 가능성이 크단 얘기다. 그게 누구냐면, 바로 ‘(고소득 말고 그냥) 자영업자’, 예를 들면 이번 대선에서 ‘역적’으로 지목된 ‘50대 자영업자’ 말이다.

“국세청에서는 고소득 전문직에 세금 징수가 쉽지 않기 때문에 영세 자영업자한테 세금을 더 거두려고 강하게 세무 조사를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출처)

어떤 이들은 ‘부동산시장 부양’ 문제를 들어 50대가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고 말하는데, 내가 보기엔 적어도 그들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50대 자영업자’는 박근헤를 당선시킴으로써 자신의 소득원이었던 ‘지하경제’를 대놓고 포기한 셈이고 나아가 재벌 좋은 일만 해준 격이며,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자기 발등을 찍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지하경제양성화’가 ‘(고소득 말고 그냥) 자영업자’까지 포괄하는 것임을 고려하면, 그것은 단순한 ‘재벌증세 없는 부자증세’가 아니라 ‘재벌증세 없는 보편증세’라고까지 할 만하다.

아, 이런 아이러니를 어쩔 것인가?! 이 정도면, ‘지하경제양성화’를 (적어도 결과적으로는) ‘재벌이 선택한 증세 방식’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그런데 ‘지하경제양성화’는 간접적으로도 대자본에 이익이 된다. 만약 위에서와 같이 지하경제양성화 정책이 특히 의사와 변호사, 동네 음식점 사장님 등을 타겟으로 한다면, 이들 중 상당수는 대자본 아래 편입되는 길을 선택하도록 강요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 식으로 말하면, 자본의 활동영역, 착취영역이 커지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바로 이런 성격 때문에 나는 전부터 ‘지하경제양성화’를 진보세력이 재벌과 타협할 수 있는 매우 유력한 협상수단이라고 보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이번에 문재인이 당선되었다고 해도 박근혜가 내세운 ‘지하경제양성화’는 받아들일만 했다. 재벌에 일정한 양보를 요구하고 그 반대급부로 법인세 인상을 보류해주는 것인데, 이때 모자라는 세수를 ‘지하경제양성화’로 조달한다면 재벌도 이에 기쁘게 동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박근혜도 ‘지하경제양성화’를 재벌에 대한 협상카드로 사용할 것인가? 아무런 압력이 없다면 당연히 그러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지하경제양성화’가 재벌을 위한 정책임을 분명히 드러내고, 이를 근거로 재벌로부터 뭔가를 얻어낼 것을 압박하는 것, 그것은 향후 (범)진보세력의 중요한 의제의 하나가 될 수도 있다.

 

◯ 말이 나왔으니, ‘지하경제양성화’와 대자본(=재벌)의 관계에 대해 한 가지만 더. 말할 것도 없이 지하경제 양성화는 장기적으로 한국경제가 추구해야 할 바이지만, 그것이 현재와 같이 특정한 목적 아래 ‘정치적으로’ 추구된다면 걷잡을 수 없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그 중 특히 우려되는 부분은 국세청과 관련된 것인데, 크게 두 가지 포인트에 주목할 수 있다.

첫째, 국세청 권력의 비대화 문제다. 연예인 강호동을 최고의 자리에서 곧장 은퇴시킨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이미 국세청은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곧 들어설 차기 정부는 지하경제를 양성화한다는 명목으로 그러한 국세청에 더 많은 권한을 주려 하고 있다. 특히 금융정보분석원(FIU)의 자료에 대한 접근권 확대의 경우엔 단순히 부처 간 기싸움의 차원의 문제로 치부할 것은 아니다.

둘째, (국세청 권력의 비대화의 결과로서) 국세청의 중립화/독립화 문제다. 국세청이 권한이 막강해지면 막강해질 수록 국세청의 중립성이 화제로 떠오를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 정치사에서 매우 흔한 일인데, 예컨대 기존의 관치금융의 폐해에 반대하면서 1990년대 들어서는 ‘금융의 독립’이 이슈였고, 노무현 정권기에는 ‘검찰의 독립’을 통해 기존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을 씼고자 했다.

그러나 금융이든 검찰이든 정치권력의 ‘도구’인 것이 문제라고 해서 곧장 ‘독립화’가 해답은 아니다. 실제로 위의 두 사례에서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된 금융과 검찰이 이후 ‘거대자본(=재벌)’에 종속되는 길을 걸었음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바다. 사유화된 금융은 오늘날 한국경제는 물론 세계경제를 파탄낸 주범이 되었고, 사유화된 검찰은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이렇게 금융과 검찰을 손에 쥔 대자본에 정치권이 종속되는 것은 시간문제 아니겠는가?

달리 말해, 금융과 검찰의 경우 문제는 그것들을 통제하던 정치권력이 몇몇 개인들의 ‘사유물’로 존재했다는 것—그리하여 금융과 검찰이 몇몇 개인/집단의 사유물로 존재했다는 것—이지, 그것들이 정치권의 통제를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었다. 이 경우 금융과 검찰을 진정으로 개혁하고자 했다면, 사유화된 정치권력을 민주적 방식으로 개편한 뒤 금융과 검찰에 대해서도 그러한 민주성에 기반한 통제가 가해지는 방식으로 방향이 설정되었어야 했다.

이러한 사례는 현재 국세청의 변화 행로에 대해서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단적으로 말해, 현재 그 권한이 막강해지고 있는 국세청은 향후 ‘독립성 강화’를 명목으로 오히려 자본에 더욱 강하게 종속되는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것은 쉽게 가늠할 수 없는 재앙적인 결과를 한국경제에 가져올 수 있지만, 앞서 밝힌 ‘지하경제양성화’의 진정한 의미 등을 보면 그리 비현실적인 공상도 아니다. 이에 대해 좌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어려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