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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청년수당, 청년배당 — 정부가 더 유능해지는 게 중요

1. 나는 주부나 학생에게 임금 또는 그 어떤 사회적 수당을 줘야 한다는 생각—요샌 이게 ‘기본소득론’이다—이 그 자체로는 딱히 ‘진보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임금이 노동자의 생계비이고, 그것이 직접 자본에 고용되지 않은 가족들(주부, 자녀 등)의 생계까지 포함하는 것이라면, 직접적으로 명시되지만 않았을 뿐 애초 임금 개념에 주부나 자녀에 대한 수당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즉 그동안 ‘비공식 영역’에 대한 지불이 이루어지지 않은 게 아니다.1 (물론 주부 등의 기여를 ‘직접적으로 사회적으로 인식한다’라는 점에서 일정한 진보성이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 의의는 흔히 생각하는 것만큼 크다고 보진 않는다.)

2. 그런데도 요즘 특히나 그와 같은 수당들이 강조되는 까닭은, 한마디로 고용이 불안해지고 임금이 줄었기 때문이다. 물론 역사적으로 보면, 이러한 임금 저하는 국가의 기능 확대에 의해 일정 정도 보완되거나 심지어 상쇄되고도 남았다. 그러나 이른바 ‘신자유주의’ 기간에 국가 기능이 퇴보하면서, 세계화 진전에 따라 인구구성이 다변화하면서,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질 뿐 아니라, 가장 중요하게는 자본 수익성이 떨어지면서, 가계들의 재생산이 위태로워진 것이다.

3. 이러한 사태에 대응하는 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 임금을 전처럼 올리자고 할 수도 있고, 국가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할 수도 있다. 기본소득은 그런 여러 해법들 중 하나.. 내가 보기에는 우리 같이 발전의 여지가 아직 많은 나라에 있어서는 임시방편 성격에 지나지 않는 하나의 해법(미봉책)일 뿐이다. 성남시가 하는 ‘청년배당’이 그 예다. 적어도 현재 시점에서 그것은, ‘얘들아 미안하다. 국가가 무능한데 지방정부 차원에선 어쩔 수가 없구나. 이거라도 받고 기죽지 말고 다니렴’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4. 이렇게 보면, 서울시의 ‘청년수당’은 정말 이상한(?) 정책이다. 겉보기엔 청년배당과 거의 같지만, 그 취지가 완전히 다르다. 서울시에 따르면 청년수당은 고용정책의 일환이다. 즉 ‘부모님 임금도 줄고, 국가가 해주는 것도 없으니, 이거라도 받아서 생계에 보태쓰라’는 돈이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연구용역비 같은 것이다. (실제로 활동계획서를 내고 심사를 통과해야 받을 수 있다.) 국가 입장에선 ‘소득이전’이 아니라 ‘비용지출’이다. 연구용역비로 빵 사먹으면 안 된다. 사 먹으려면 그것이 연구의 일환(이를테면 회의)임을 증빙해야 한다.

그러면 이런 돈을 왜 청년에게 주나. 일자리창출, 노동시장 효율화, 고용주 지원 등 기존의 고용정책들이 다 망했기 때문이다. 서울시 등에서는 이런저런 기존의 일자리정책들을 살펴보니 효과가 별로 없으므로 차라리 애들한테 돈을 주는 게 낫겠다는 것이다. 글쎄..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우리 같이 발전의 여지가 많은 나라에선, 궁극적인 해법이 아니다. 정부가 더 유능해지는 게 훨씬 중요하다.

5(곁다리). 언젠가 박원순 시장은 청년수당 받아서 술도 사먹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발언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과연 박시장다운 인간미 넘치는 발언이지만, 이것은 위 4에 엄밀히 따르면 경솔한 표현이다. 그걸로 별일없이 술이나 사마셔? 그랬다간 비용회수에 들어가야 하는거다. 기업이 고용지원금으로 그랬다면 어쩔건가? 그러나 나는 박시장의 표현이 잘못되었다기보다는, 오히려 청년수당을 고용정책으로 밀어붙이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고 본다. 물론 현실적으로야 중앙정부(복지부)와의 다툼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지만 말이다.


  1. 여기서 만약 누군가가, 주부에 대한 임금 비지불을 주부에 대한 착취와 동일시하면서, 후자의 문제를 들어 주부임금을 정당화하려 한다면, 나는 주부에 대한 임금 지불이 이뤄져도 여전히 착취는 발생한다고 대답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