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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의 생각}을 절반 읽고서

누구나 다 하는 얘기겠지만, 나도 안철수 교수의 책에 대해 간단한 메모.

1. 그의 책 {안철수의 생각}을 절반쯤 읽었다. 전반적인 느낌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우등생의 take-home 시험 답안지” 같다는 것. 복지, 정의, 평화를 이른바 “3대원칙”으로 내세우면서, 소통과 합의를 강조하는데, 대체로 내용은 수긍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니까… 반대로 말하면, 별로 깊이가 없다는 거다.

복지나 경제와 관련된 몇몇 구체적인 수치를 내놓는다고 해서 전문적여 보이지는 않는다. 그저 “음, 공부 열심히 했군..”이란 생각이 들 뿐이다. 깊이가 없다는 것은 특히 평화(통일)에 대해 말할 때 크게 드러난다. 분량만 봐도 잘 드러난다. 복지에 대해 21쪽, 정의에 대해 37쪽, 평화(통일)에 대해 9쪽. 뭣하러 평화 얘기를 끼워넣었는지 모르겠을 정도다.

2. 이 책은 제정임이라는 분이 묻고 안철수 교수가 답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형식, 매우 싫다. 짜증난다. 이런 인터뷰 형식의 글은 주어진 생각을 부드럽게 전달해주는 순기능도 있지만(그래서 이런 인터뷰는, 평소에 글을 어렵게 쓰는 사람들의 생각을 엿보기에 좋은 형식이다), 해당 주제에 대한 화자의 깊이를 드러내기가 매우 어렵다. 거꾸로 말하면, 현재 안철수 교수와 같이 해당 주제에 대해 아직 “제대로 진도를 빼지 못한” 사람이 택하기에 그만인 형식이란 얘기다.

이대로는 안교수, 토론회 같은 데 나오면 오나전 개발릴 거 같다. 물론 박근혜 의원한테는 그렇지 않겠지만ㅎ

3. 그래도 이 책에서 괜찮다고 느낀 부분이 있다. 바로 중소기업 육성에 대한 그의 생각이 담긴 부분이다. 당연히 이건, 그가 그런 문제를 직접 겪었고, 또 그러면서 많은 생각이 쌓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안교수는 대통령보다는 자신이 가장 자신있는 분야의 장관이 나을 것 같다.

4. 사실 안교수를 그의 정치적 비전을 근거로 비판하는 것은 그다지 온당치 못하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그는 그런 쪽으론 아직 아마추어고, 그 자신의 말마따나 “(나쁜) 경험”이 별로 없어서 딱히 비판할 “꺼리”도 없다. 따라서 그런 쪽으로 논의가 흐르게 되면, 자칫 말장난으로 귀결되기가 쉽지 않나 싶다. 그리고 이렇게 “말장난”이 되었을 때, 안교수는 꽤나 경쟁력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런식의 비판은 안하니만 못하다.

오히려 그에 대한 비판은 그가 실제로 명성을 얻었던 바로 그 분야, 즉 “성공한 IT기업 창업자/경영자”라는 점에 그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서, 하나의 거대한 “신화”가 그를 둘러싸고 있다는 느낌이다. 즉 “해당 분야 전문가도 아니었던 의사 안철수가, 온갖 부정적인 환경을 딛고 세계 최고의 컴퓨터 바이러스 퇴치 회사를 세워 성공시켰다”라는 것. 그리하여 그의 성공은 “한 인간의 불굴의 의지와 끊임없는 노력, 민첩하고 정확한 판단”의 산물인 것이다.

이것이 그 자체로는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다음과 같은 추가적인 질문들을 통해 좀 더 깊이 다뤄져야만 한다.

– 많은 이들이 안철수가 역경을 딛고 성공했다고 하는데, 그게 정말 사실인가? 어쩌면 그는 (의사 출신이라는 등의) 개인적인 핸디캡이 있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를테면 세계경제 전반의 구조적 차원에서는 1980년대 후반 및 1990년대 초반이 (특히 한국에서) IT 업종이 발달하기에 어떤 의미에선 호기였을 수도 있지 않은가?

– 안철수의 성공이 정말로 그렇게 대단한가? 예를 들면, 내가 대학에 입학하던 시절만 떠올려봐도, 안철수보다는 (한글과 컴퓨터의) 이찬진 같은 사람이 더 칭송받곤 했다(내가 업계 사정을 잘 몰라, “이찬진”이라는 이름을 언급하는 것이다. 그보다 이 대목에서 적절한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15~20년 전만 하더라도, IT 업계엔 안철수 교수보다 대단한 사람들 많았고, 만약 안교수가 온갖 역경 속에서 고군분투하면서 업적을 쌓았다면, 이들의 업적 또한 그에 못지 않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언급한 “이찬진”이라는 이름을 지금까지 기억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그렇다면, 대체로 199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안철수를 제외한 IT 분야의 천재들/혁신가들은 몰락시켰으면서도 안철수만 살아남게 만든, 그 어떤 원인이 있지 않겠는가? 이 원인을, 전적으로 안철수 개인의 뛰어남(그런데 “어떤” 뛰어남?)으로 환원하는 것은 과연 정당한가?

5. 나 개인적으로는 보기엔, 안철수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위와 같은 질문들에 답함으로써 내려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은 하나의 역설적인 결과를 내놓을 수 있다. 만약 위 질문들을 거쳐, 안철수라는 사람이 특별히 대단할 게 없다는 게 밝혀진다면(이를테면 삼성전자의 성공이 이건희 개인의 뛰어남과는 크게 관계가 없다는 것처럼), 그에 대한 기대는 반감될 것이다. 반대로, 만약 위 질문들을 통해 안철수가 진정으로 뛰어났다는 게 밝혀진다면, 그 뛰어남의 정체가 사실은 상당히 전문적인 성격의 것임도, 그리하여 국정의 운영과는 다른 성격의 것임도 덩달아 드러나지 않을까 한다.

그러나 이런 역설에도 불구하고, 아니, 바로 그런 역설 때문에, 위와 같은 질문들을 제기하는 것은, 안철수에게 제대로 된 자리를 찾아주는 데 유용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