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후기

[후기/토론회] 인지자본주의에서 ‘가치’와 ‘주체’의 문제

계간지 {문화/과학}에서 주최하는, “제1회 문화과학 ‘북 클럽’ 논쟁: 인지자본주의에서 ‘가치’와 ‘주체’의 문제”라는 제목의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여했다. 토론자는 나와 조정환 선생, 심광현 선생, 이렇게 셋이었다. (웹자보)

그러니까 애초 기획은, 조정환의 책 {인지자본주의}에 대해 나와 심광현이 ‘가치’와 ‘주체’라는 두 측면에 각각 주목해서 토론을 펼치는 것이었고, 내가 이해하기로는 그 책을 대상으로 두 명의 토론자가 주로 ‘공격’을 하고 저자인 조정환이 ‘방어’를 하는 형식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결과는? 일단, 심광현 선생께서 개인적인 사정으로 토론회에 못 나오시는 ‘사고’가 났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나와 조정환, 이렇게 양자구도로 갈 수밖에 없었는데, 전체적인 느낌은 그곳이 ‘토론회장’이었다기보다는 조정환의 ‘정견발표장’ 같다는 거였다. 물론 그렇게 된 데는, 토론자인 내 책임도 일정하게 있었음을 부인하진 않겠다.

다음은 나의 간단한 후기다. (물론, 매우 주관적일 수 있는 후기이며, 다른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할 수 있겠다.)

*                      *                      *

예전에 무슨 토론회 자리(아마도 ‘맑스 꼬뮤날레’였던 것 같다)에서 한번인가 본 것 빼고는 조정환 선생이 말하는 것을 직접 본 적이 없다. 그만큼 그에겐 관심도 별로 없었고, 내가 그에 대해 가진거라곤 몇몇 이미지뿐이었다. 그 이미지, 그러니까 조정환 하면 평소에 떠오르던 이미지는 이런 거였다. 뻔뻔스러움, 무지, 무시, 열등감, 그리고—이게 백미인데—이상의 모든 악덕들을 커버해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그 어떤 ‘영성적’ 아우라. (특히 이 마지막 것은 토론회에 왔던 누군가도 얘기했던 것이기도.)

이번 토론회를 거치면서 나는 위 이미지들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내겐, 이번 이벤트가 (지루하긴 했지만) 무엇보다 ‘lots of fun’이었다. 하지만 그는 실질적으로 나의 문제제기에 단 하나의 제대로 된 답변도 내놓질 않고, 이리저리 피해다니길 일삼았을 뿐이다. 아니, 그는 자신의 답변을, 지금 자신이 집필중이라는 책에서 길게 내놓을 것이라는, 상당히 ‘민망한’ 책광고로 대신했을 뿐이다. 물론 나는 이 답변을 그다지 읽어볼 필요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이번 토론 덕분에 더더욱.

하여튼 이번 이벤트는 결코 ‘논쟁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게 조정환 선생의 잘못이라 생각하진 않는다(그는 그냥 ‘그’였을 따름이다). 다름아닌 행사를 주최한 {문화/과학}쪽의 문제였다. 그들은 그 자리를 ‘토론회’로 만드는 데 완전히 실패했고, 특히 내겐 엉뚱한 질문을 내놓기도 했다(도대체 조정환이 말하는 ‘명령(가치)’가 뭐냐는 설명을 왜 나한테 요구하냐고! 저도 사실은 그게 뭔지 잘 모르겠어요.. 엉엉). 그들은 조정환 선생의 지루하기 그지없는 하나마나한 발언을 전혀 제지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5시에 마치기로 예정되었던 토론회는 토론자 중 한 명이 빠진 데다가 ‘토론자들 간의 토론’이 거의 없었는데도 무려 6시 반이 되어서야 끝이났다. 덕분에 난 오줌보 터지는 줄 알았고. ㅎㅎ 그밖에 개인적으로 상당히 기분나쁜 일이 있었는데, 당시엔 바쁜일이 있어 그냥 나왔지만 이에 대해선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할 예정이다.

청중은 어땠는가? 사실 이번 토론회에 나선 유일한 이유는 바로 청중 때문이었다. 즉 그 자리에 직접 와주신 좁은 의미의 청중은 물론이고, 나중에 다른 어떤 형태로 그 토론회를 간접경험할 넓은 의미의 청중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그러나 플로어에서 나오는 질문들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 질문들을 내놓은 이들이 ‘가치’보다는 ‘주체’에 더 관심이 많았다는 것은 전혀 문젯거리가 아니었다. 문제는, 그들이 ‘가치’에 대해, 좀 더 일반적으로는 ‘경제’나 ‘경제학’에 대해 매우 단순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그에 대해 전혀 거리낌이 없어 보였다는 것이다(예컨대, 조정환은 현재의 부동산거품을 ‘인지적 요소’에 따른 고평가라고 불렀다ㅋ). 이건 그러니까, ‘나는 경제(학)에 대해 관심이 없다’라는 정도가 아니라(이건 괜찮다), ‘경제(학)이란 게 결국 이렇지 않냐’라는, 경제학에 대한, 그리고 현재 전개되고 있는 세계경제/한국경제의 상태에 대한 매우 ‘강력한 판단’이었던 거다. 결국 마무리 발언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제학을 공부하는 저로서는, 몇 안 되는 여러분들 앞에서조차 철학이니 정치니 하는, 제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발언하는 게 정말 부담스러운데, 여러분들은 경제에 대해 너무도 쉽게 이야기하시는군요.” 물론 모든 청중이 다 이랬다는 건 결코(!) 아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분위기는 그랬다.

끝으로, 조정환이 내 질문에 답변을 아주 안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은 밝혀야겠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그는 두 가지 답변을 했다. 답변의 적절성에 대해선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서 판단해주시리라 믿는다.

(1) 인지자본주의론자들은 마르크스의 가치이론이 갖는 복합적인 성격, 복잡한 구조를 오해하고, ‘가치’의 문제를 모조리 {자본론} 제1권 제1장의 수준에서 이해하고 부당하게 기각한다는 내 질문에 대해: “나 {자본론} 열심히 읽었다. 옛날에 도망다니면서 얼마나 열심히 읽었나 모른다. 아마 내가 웬만한 경제학자들보다 {자본론}에 대해 잘 알껄?” (그렇게 잘 아는 사람이 왜 그러냐고요 ㅠㅠ 물론 이 얘길 그는 어려웠던 지난날의 감상에 젖어 매우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2) 인지자본주의론이 내놓는 인지/삶정치/비물질/정동 등의 노동들은, 처음엔 그저 고도로 복잡한 과학기술노동 정도를, 그러니까 ‘지식노동’을 의미했을 뿐이지만 점차 간병인, 가사도우미, 전화교환원 등도 포괄할 수 있도록 의미확장을 했다. 이와 같은 확장 자체가 상당히 심각한 이론적 무리수이기도 했지만, 그것을 통해 예컨대 ‘대졸/남성/20대 컴퓨터 프로그래머’와 ‘중졸/여성/50대 간병인’을 하나의 범주로 두는 것이 경제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는가? 또한 정치적/주체적 차원에서 보더라도, 중요한 것은 이런 식으로 ‘간병인’을 (무슨 꼭두각시 내세우듯이) ‘이론적 주체’로 만드는 게 아니라 ‘현실적 주체’로 만드는 일이지 않은가? 라는 내 질문에 대해: “무슨 소리냐! 나는 결코 간병인이 프로그래머보다 못난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선 그렇게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에 있는 분들이 더 훌륭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전형적인 논점흐리기! 졸지에 난, 근20년간 청소부, 가사도우미였던 내 어머니, 현재 간병인 일을 하시며 간밤에 환자들 똥오줌 치우는 내 가장 친한 친구의 어머니의 잠재력을 깔본 패악무도한 놈이 되었다ㅎㅎ)

이 정도면 코미디감도 못 된다. 요새 ‘개콘’, ‘코미디 빅리그’가 얼마나 재밌는데! (끝)

p.s. 내가 올초에 인지자본주의론에 대한 비판 논문을 {마르크스주의 연구}에 냈기 때문에, 내가 이번 토론회에 불려나간 것이다. 이번 토론회 때문에 그 글을 간단히 정리해봤는데, 조만간 그걸 여기 올릴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