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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재정위기’: 정말 위기인가?

‘재정절벽’, ‘부채천장’, ‘1조달러 동전’… 미국경제에 대해 말이 많다. 보통 사람들은 신문을 봐도 대체 뭔 소리가 오가는지, 어떤 사항들이 문제가 되는 것인지 알기가 참으로 어렵다. 아마도 국내에 나오는 기사들이 대부분 깊고 일관된 분석 대신 단편적인 사실 전달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이 블로그를 거의 혼자서 채워놓고 계신 heesang님의 몇몇 포스팅들이 많은 도움을 드렸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어렵다. 나도 모르겠다. ㅠㅠ 그냥 ‘사실들’ 말고, 개략적인 ‘판단’을 도와줄 수 있는 뭔가가 없을까? 이런 ‘열정적인 어려움’을 가지고 계신 분들께 이 포스팅을 바칩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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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영국의 경제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가 미국의 재정위기(fiscal crisis)에 대해 이례적으로 크게 다루고 있다(링크). 이번 포스팅에서는 지난 한주 내내 이어지고 있는 이 씨리즈에 대해 간단하게 리뷰하기로 한다.

시작하기 전에… 내용면에서도 얻을 게 많지만, 나는 그 ‘내용’보다도 그들이 그것을 다루는 ‘태도’가 더 재밌다. 무슨 얘기냐면, 그들의 태도란 게 ‘중립성’과는 아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태도는, 굳이 말하면 미국 민주당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렇다고 그것이 민주당의 (공식적이든 사실상이든) ‘기관지’는 아니라는 점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객관성’이 곧 논쟁의 양 당사자 사이를 점하는 ‘중립성’은 아님을 새삼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점은 과거 2007/08년 ‘금융공황’ 당시에 {파이낸셜 타임스}를 중심으로 ‘국유화’ 논의가 퍼져나갔다는 데서도 드러난 바 있다.)

[사족 1] 과거엔 좌파들이 이데올로기에 갇혀 합리성을 잃는다고 종종 여겨졌지만, 오늘날엔 우파들이야말로 이데올로기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가 되었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파이낸셜 타임스}의 이 기사 참조.

[사족 2] 나는 {파이낸셜 타임스}가 겁없이 ‘국유화’를 주장하고 ‘전국민의료보험체계’를 옹호하는 것이 다른 한편으론 노동자계급 운동의 약화의 한 결과이기도 하다고 본다. 경제가 파탄났을 때 노동자들이 중심이 된 성난 대중이 ‘국유화’과 그에 따른 ‘금융시스템에 대한 대중의 통제’를 주장했다고 해 보자. 그랬다면 과연 어떻게 {파이낸셜 타임스} 따위가 감히 ‘국유화’를 옹호할 수 있었겠는가. 여기서 확인되는 또 한가지 교훈은, ‘국유화’라는 것에도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웅.. 잡설은 그만 두고 본론으로…;;; 현재 문제가 ‘재정위기’이긴 하지만 그 주된 원인으로 엄청난 의료비 증가가 꼽히고 있는 만큼, ‘의료체계개혁’도 중요한 한 주제로 다뤄지고 있다.

 

  • 미국의 부채 딜레마, 본질은 무엇인가?

‘엄습하는 위기, 개혁의 기회'(링크)라는 글에서 Robin Harding은 장기적 안목에서 현재 미국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가 무엇인지를 탐구한다. 그는 최근 언론과 각종 SNS의 타임라인을 달구고 있는 ‘재정절벽’이니 ‘부채한도 조정’이니 하는 단기적인 문제들은 결코 중요한 이슈가 아니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미국 재정과 관련된 진정한 선택은 … 나이 든 인구를 위해 돈을 지불할 것인가,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다. 이에 대한 대답이 21세기 미국경제의 성격을 결정할 것이다. … 선택은 부자들에게 약간의 세금을 더 걷을 것인가, 아니면 째째하게 교육예산을 삭감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미국이 장차 어떤 나라가 될 것이냐에 대한 것이다.

카~ 멋지다. 이런 표현, 배워야 한다. 어쨌든 그는, 현재 말이 많은 재정적자는 그렇게 심각한 게 아니지만 현재 추세대로 2020년에 이르면 심각해질 거라고 본다. 2020년이라면 불과 7년 뒤인데, 그러면 왜 2020년이냐? 바로 그때에 이르면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가 70대가 되어 의료비가 급등할 것이기 때문이다. 무슨 얘기냐면, 글쓴이는 장차 미국의 재정에 가장 큰 위협요인으로 의료비, 그 중에서도 은퇴자를 위해 제공되는 ‘메디케어’를 꼽고 있다는 것인데…

이러한 잠재적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그는 (1) 재정지출 감축, (2) 증세, (3) 의료체계 개혁 노력 등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말한다. 뭐 논리는 간단하다. 첫째, 재정균형을 위해 재정지출을 줄이는 것이 고려되어야 하겠지만, 그것은 현재와 같이 고령화가 진행될 때에는 가능하지도 않고 (경제성장에 부정적이므로) 바람직하지도 않다. 여기서 특기할 것은, ‘선별적 복지’가 힘을 얻고 있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세계적으로는(즉 선진국에서는) 부자들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보건재정지출에 찬성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둘째, (메디케어나 사회보장을 주장하는 민주당 인사들이 암묵적으로 지지하는) 대규모 증세는 가능하긴 하지만 바람직하진 않다. 미국의 경우, 국제표준에 비해 낮은 소비세 등을 높이는 것, 그러니까 제한적 증세는 바람직하지만 자칫 무분별한 증세는 성장동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그보다 더 시급한 것은 잘못된 과세체계를 바로잡는 일이며, 이는 (세수증대에도 기여하면서 동시에) 성장동력도 될 수 있다.

끝으로, 향후 미국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의료비용을 잡아야 한다. 현재 미국은 국내총생산(GDP)의 17.4%를 의료비(공공+민간)에 지출하고 있는데, 이는 OECD평균(9.6%)를 훨씬 넘는 수치다.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여기서 핵심은 ‘환자들이 불필요한 처방을 요구하거나 의사들이 그것을 제공할 유인을 없애는 것’이다. 요컨대, 의사가 단지 환자를 진찰했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의료보험료를 지급하는 게 아니라 이를테면 환자의 상태를 개선시켰을 때, 예방적 조치를 취했을 때, 누군가를 일년 동안 꾸준히 돌봤을 때 지급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다듬을 수 있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의회가 메디케어 비용에 대해 공격적인 제한을 두고 이를 증세와 정부지출 감축으로써 뒷받침할 수 있겠다… 미국을 위협하는 재정적 도전은 엄청나다. 그러나 만약 워싱턴이 오늘날의 재정적자에 대한 집착만 거둔다면 그 도전은 해결될 수 있다.

 [사족] 이상과 같은 기사가 나오자, Paul Krugman이 환호성을 질렀다. ‘씨바, 그게 내가 오래전부터 했던 얘기잖아’라면서(링크). 하여간 재밌고 유쾌한 사람이다. :)

 

  • 미국의 재정적자, 진짜 문제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별 문제 아니라는 평가를 중심으로 기획이 짜여졌다. 먼저 앞서 소개한 Harding의 글과 같은 맥락에서, 씨티그룹의 Peter Orszag은 재정지출이 아니라 보건의료체계가 문제라고 주장한다(링크). 한편 오래 전부터 민주당 정권의 경제자문역으로 활약해온 Lawrence Summers는 재정적자가 문제라고는 해도 그에 대한 집착이 경제성장을 방해할 정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링크).

Summers에 따르면 현재 미국은 재정적자(fiscal deficit) 말고도 다양한 ‘deficit'(결핍)에 시달리고 있는데, 후자를 해결하기 위해 전자에 대한 문제제기는 일정 정도 보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그는 현재 미국은 ‘사회기반시설 결핍'(infrastructure deficit)이 심각한데, 만약 (단기적으로 재정적자 증가를 감수하고) 여기에 재정을 투입해서 일정한 경제성장을 이뤄내고 그 결과 세수를 늘릴 수 있다면 재정적자는 오히려 완화될 수도 있다는 논리다. 더구나 현재 세계적으로 저금리 상황이므로 대규모 투자를 하기에 좋은 시기이기도 하다.

[사족] 하버드대 교수이기도 한 Summers의 이러한 견해는 최근 국내 일간지에도 소개된 바 있다(링크). 이런 주장이 한편으론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좌파들에게 유의미할 수는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MB의 ‘사대강 악몽’을 연상시키는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현재 한국 상황에서는 그와 같은 정부의 경기부양책은 ‘부동산 시장의 억지 부양’과도 일정 정도 연결되어 있다고 하겠다. 따라서 그런 의견에 무조건 따라서는 안 되며, 왜 유독 {매경} 같은 보수경제지가 그런 주장을 선전하는지도 생각해볼 일이다.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Martin Wolf의 주장은 가장 강력하다. 벌써 제목부터가 ‘미국의 재정정책은 위기에 처하지 않았다’다(링크).

미국은 국내외에서 엄청난 도전들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미국의 재정상태는 그 중 하나가 아니다. 이는 매우 논쟁적인 진술이다. 워싱턴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란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미국 연방정부가 파산 직전에 있다고 결론짓는 것도 물는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그렇다. 미국이 장기적으로는 재정적 도전에 직면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는 대부분 미국이 가지고 있는 비효율적인 보건의료체계에서 치솟는 비용 때문이다. 그렇다. 미국이 재정정책을 둘러싼 날선 논쟁의 와중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은 국가의 역할을 둘러싼 철학적 견해차이 때문이다. 그렇다. 미국이 단기적으로는 대규모 적자재정을 운용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은 금융위기의 결과이다.

아.. 글이 완전 물이 올랐…;; 위에 요약된 대로, 결국 그는 현재 마련되어 있는 정부재정운영에 대한 법안들만 제대로 실행해 재정을 좀 더 건전하게 운영하고, 동시에 의료체계개혁을 단행하면 문제될 게 없다고 보는 것이다. 현재 이른바 ‘재정위기’라는 것이 근본적으로는 금융위기의 결과이므로, 문제는 금융위기에 의해 파탄난 경제를 회복시키는 것이고, 이때 정부의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우리의 Wolf 선생의 의견이다.

흠… 이상과 같이, 대체로 {Financial Times}는 현재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동, 즉 미국 의 재정적자가 심각해 연방정부가 거의 파산 직전에 있다는 문제제기에 대해, ‘근거없음’이라는 판정을 내리고 있다. 그러니 재정절벽(fiscal cliff)이나 부채상한조정(debt ceiling) 등의 문제는 경제적이라기보단 정치적인 이슈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재정적자 문제가 심각하게 불거질 수도 있는데, 현재와 같은 비효율적인 의료체계가 지속된다면 특히 그러하다. 따라서 이른바 ‘오바마케어’와 같은 의료개혁을 통해 공적 및 사적 의료체계를 효율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주석] 여기에서 우리는 이른바 ‘복지국가’의 핵심적인 요소인 ‘사회적 의료체계’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되새겨보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의료를 공공재로 보고 국민의 건강을 공적으로 관리함으로써 사회적 삶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또한 동시에 자본주의 체제의 효율성을 높여주는 기제이기도 하다. 현재와 같이 좌파가 지리멸렬할 때 미국과 한국에서 심지어 우파들까지 나서서 옹호하고 있는 ‘공공의료’란 그럼 어느쪽일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현재 미국의 재정, 즉 세입과 세출 구조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문제들은, 이번 {파이낸셜 타임스}의 씨리즈의 세째날과 넷째날에 다뤄지고 있다. 특히 우리에겐 {이번엔 다르다}라는 책으로 친숙한 하버드의 경제학 교수 Kenneth Rogoff는 현재 미국의 재정위기의 뿌리에 있는 다양한 문제들—미국의 세계경찰역할 전망(국방비), 정부역할에 대한 이견, 인프라 투자, 이민, 보건의료 등—을 들춰내면서, ‘정부의 과세와 지출과 관련해서는 얼마나뿐 아니라 어떻게도 매우 중요하다’라는 상식을 새삼 일깨우고 있다. 그는 앞서 소개한 다른 논자들보다는 훨씬 비관적인 전망을 가지고, 세상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이번만큼은 미국이 적절한 해결책을 찾아내기 어려울 것 같다는 조심스런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주석] Rogoff 교수에 대해서는 {조선일보}에 몇년 전에 난 기사에 잘 소개되어 있다(링크). 체스 특기생으로 대학에 갔다는 게 재밌다ㅋ 더불어 {이번엔 다르다}에 대한 저자 자신의 간략한 설명도 얻을 수 있다. 이 책에 대해서는 {프레시안}에 실린 조원희 교수의 서평도 볼만하다(링크).

으아… 일단 이 정도로 해 두자. 씨리즈가 언제까지 계속될 지는 모르겠지만, 필요하면 앞으로 한두번 더 포스팅해보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만으로도 대충 ‘음.. 이렇게 돌아가고 있군’이라는 감은 잡으셨을 줄로 안다.

그러니까 결론은 (버킹검!-_-) 재정절벽이니 뭐니 하는 것은 모두 ‘dog sound’라는 것. 물론 이상의 논의가 노동자계급에게 함의하는 바는? 이라는 매우 심오한 물음을 가지신 분들께는 별 도움을 드리진 못할 것. 그에 대해선 나를 포함한 모든 이들이 앞으로 머리를 맞대봐야 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