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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혜노믹스’의 밑그림 (4) ‘국민 행복’론의 한계와 모순

8. 출발은 그랬다. 국민이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따뜻한 자본주의. 그러한 기조 아래 복지도 하고, 경제민주화도 하겠다는 거였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방법론적 개체주의’에 기반을 둔 ‘국민 행복’론과 복지체제/경제민주화가 어울리지 않는 조합임이 드러났다. 이는 선거과정 중에 김종인과 시장주의자들의 갈등으로 외화되기도 했지만, 일정한 내부단속을 통해 극복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선거에서 이겼다.

앞서 말한대로, 선거 이후 그들이 한 것은 자신들의 ‘국민 행복’론에 맞는 한도 내에서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선별하고 각색하는 일이었다. 즉 박근혜 등은 자신들의 외연을 넓혀 (애초 자신들의 문제틀로는 포착되지 않는) ‘구조’의 문제를 수용하려고 하기보다는, 반대로 그러한 문제를 외면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한 듯 하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실용적이진 못해도 일관되긴 하다. 현재 박근혜 쪽의 경제정책 기조는 그들의 본원적인 ‘이념’에 맞게, 좀 더 탄탄하게 세워지고 있는 셈이다. 이명박 때와는 달리 그들이 구체적인 거시경제적 목표를 정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박근혜 쪽의 ‘국민 행복’론의 본질을 이해 못하고 하는 소리다. 예컨대 다음을 보라.

공약의 대상이 국가에서 철저히 개인으로 바뀌었다. … 이종훈 새누리당 의원은 “박 당선인은 경제성장과 물가 안정 등 역대 정부가 초점을 맞췄던 거시(macro) 정책에서 탈피해 국민 개개인의 행복 증진에 중점을 둘 것”이라며 “자본주의의 단점을 보완하는 따뜻한 자본주의, 이른바 ‘자본주의 4.0’이 ‘근혜노믹스(박근혜의 경제학)’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출처)

매우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론적으로 보면 이것은 매우 강력한 신자유주의 경제학이다. 주지하다시피 케인스적 패러다임 아래서 경제학은 두 갈래로 존재했다. 개별 경제주체의 행위를 다루는 미시경제학과 그러한 개체 차원으로 환원되지 않는 구조적 차원을 다루는 거시경제학. 간단히 말해 신자유주의 경제학이란 이러한 구분을 거부한다. 그냥 거부하는 게 아니라 기존의 거시경제학을 모조리 미시경제학의 틀 안으로 해소시켜버린다. 이에 따르면, 경제 전체의 모든 정보는 가격에 반영되고 각 개인은 그러한 가격을 보고 합리적 판단을 내리므로, 모든 경제현상은 개별 경제주체의 차원에서 다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이른바 ‘효율시장가설'[EMH: efficient market hyphthesis]).

아니, 신자유주의를 극복한다면서 극단적인 신자유주의 경제학이라니?! 누구든 이런 의문을 품을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글에서 강조했듯이, 지금 이 대목에서 ‘신자유주의 경제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경제학의 발달사에서 보면 주류경제학의 핵심 기조에 정확히 부합한다. 기이하게도 경제위기가 닥치면 지배블록 내부에서 어떤 투쟁이 벌어지는데, 이는 곧 위기를 통해 자기 자신을 돌아보면서 약간의 ‘개혁’을 꾀하려는 쪽과 위기를 계기로 기존의 노선을 좀 더 강경하게 밀어붙이려는 쪽의 갈등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보면 이 투쟁은 백중세를 보이는 중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후자가 거의 압도하고 있는 셈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9.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문제를 무시한다고 문제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는 문제를 키우기만 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 7.4.7 공약이 실패했다고 해서 경제성장에 대한 목표치를 아예 세우지 않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다. 문제는 ‘7% 성장’이라는 약속을 못 지킨 게 아니라 (7%든 4%든) 성장을 어렵게 만드는 구조적 원인이 현재 자본주의 경제 내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박근혜 당선자 쪽에서는 아예 거시경제(학)을 무시하는 방향으로 가려고 하고 있다. 이것은 지배계급들의 일반적인 생각에 부합하는 것이어서 당연한 반응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매우 충격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왜냐하면 서유럽 등에서는 2007년 이후의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오히려 거시경제학의 중요성을 재발견하는 흐름이 강력하게—지배적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그 선봉에 서 있는 학자들 중에는 노벨상 수상자인 크루그만도 있다).

이론적인 영역에서뿐만이 아니다. 정책적인 차원에서도 현재 서유럽과 북미의 선진 자본주의국들에서는 경제가 (개별 주체의 행위들의 집합으로 환원될 수 없는) 하나의 거대한 구조라는 사실에 대한 인식 아래 일정한 ‘개혁’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그 자체로만 보면 보잘 것 없는 규모인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문의 문제가 미국경제는 물론 유럽경제까지 뒤흔들 수 있었던 것은 왜였겠는가? 이러한 사태로부터 교훈을 얻은 서유럽과 미국의 정책당국자들은 경제 전체에 걸친 이른바 ‘시스템적 위험'(systemic risk/crisis)에 대처하기 위해 기존의 경제부처들 간의 구획을 초월하는 전담기구를 디자인하는 데 지난 몇 년을 보내고 있다.

중앙은행 개혁 문제는 또 어떤가?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하나의 독립된 기관으로서의 중앙은행은 그리 오래된 조직이 아니며, 경제적으로 중요해진 것도 매우 최근의 일이다. 특히 중앙은행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위상이 각별해졌는데, 이때 중앙은행이 부여받은 최고의, 그리고 유일한 정책목표는 물가안정이었다. 그러던 중앙은행에, 이번 경제위기 이후 금융체계 전체의 관리라는 역할이 부여되고 있는 중이다(특히 영국이 그러함). 여기에서 나아가 최근 들어서는 중앙은행이 전통적인 물가안정 외에도 경제성장이나 실업문제에도 관여하고 있음은 이미 국내에도 수차례 보도되고 있는 바다(링크). 왜일까? 표면적인 이유는 현재 주요한 것은 인플레이션 위험보다는 디플레이션 위험이기 때문에, 일정한 물가상승을 허용하고서라도 경기를 부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물가안정이나 경제성장, 고용 등이 사실은 종합적인 경제의 움직임 속에서 결정된다는 (암묵적인) 깨달음이 자리한다.

 

10.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일단 이명박 정부는 위와 같은 세계적인 움직임을 전혀 감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한때 저축은행 부실화를 중심으로 ‘시스템적 위기’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경계가 많이 늦춰져 있다는 느낌이고, 실제로 금융시스템 전반에 걸친 ‘총체적 (위험) 관리’를 전담할 기구조차—그 구체적 방안은 고사하고—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히려 거의 모든 경제전문가들이 올해 한국경제의 ‘뇌관’으로 꼽고 있는 가계부채 문제의 경우, 새로 들어설 박근혜 인수위 쪽에서는 개별 가계의 ‘자력갱생’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 실정이다. 그와 동시에 그들은 부동산에 대한 기대도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다.

가계부채 문제, 그리고 그것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금융시스템 전반의 취약성의 문제는 결코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예컨대 고용시장의 불안과도 궤를 함께 한다. ‘하우스 푸어’라는 사람들이 결국은 노동자요 동네 자영업자 아니겠는가? 불안정한 고용상황에 처한 노동자가 단순히 고용불안에만 시달리는 게 아니다. 그들은, ‘만약 내가 회사에서 잘리면 우리집은 빚더미에 올라 앉는다’라는 두려움에도 시달리고 있다. 주택 대출금 원리금 상환, 자녀들의 교육에 월급의 절반 이상이 깨지는 게 누구이겠는가? 정권이 기획하고 언론 매체가 동조해 조작된 주식시장 붐에 희생된 것은 또 누구인가? 그리고 그러한 부모 밑에서 어렵게 대학은 갔으나 취업을 못해 몇년째 청년백수로 살고 있는 것은 또 누구이겠는가? 한진중공업, 쌍용자동차, 현대자동차 등등의 문제가 어찌 조남호나 정몽구만 악마로 만들어 해결될 수 있는 일이던가? 쌍용차 국정조사가 아니라 청와대 국정조사를 해야하지 않겠는가?

지배계급들이 이제껏 위와 같은 문제들은 다룰 때 가장 애용하는 단어가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니까 ‘니가 그릇된 결정을 한 것이니, 책임도 니가 져야 한다’라는 것. 누가 주제 넘게 비싼 집 사랬냐? 집값 오를 것 예상하고 산 거잖아. 망해도 넌 할 말 없어. 등록금도 제대로 못 내면서 대학은 왜 갔니? 취업 못 한거야 니가 부족해서 그런 거지. 주식대박 좇더니 꼴 좋다…. 어리석은 녀석들! 불행하지? 내가 행복하게 해 줄게. 자, ‘국민 행복’!

그러니까, 박근혜의 ‘국민 행복’은 ‘도덕적 해이’와 논리적 찰떡궁합 관계인 것이다.

 

11. 그러나 이렇게, 박근혜와 그 측근들이 ‘도덕적 해이’와 ‘국민 행복’을 내세우며 사태를 개체적 차원에서 접근하면 할수록, 문제가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며 시스템적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임이 속속 드러날 것이다. 이 대목에서, 미국의 금융규제법인 도드-프랑크(Dodd-Frank) 법안에 반대하던 공화당 의원들이 기존의 입장을 바꾸고 있음을 전한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의 최근 기사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이에 따르면 공화당 상원의원 데이비드 비터(David Vitter)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도드-프랑크 논쟁이 벌어지던] 처음엔 나는 공화당원들이 이에 반대하는 것은 그것이 규제인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은 우리가 필요로하는 제대로 된 시스템 개혁(systemic reform)임을 사람들이 깨닫고 있다.” (출처)

아직까지도 ‘규제완화’ 노래만 부르고 있는 우리나라 보수파들은 언제쯤 위와 같은 깨달음을 얻게 될까? (대체 규제완화 15년에, 더 완화될 규제가 있더란 말이냐…) 그들이 ‘국민 행복’을 부르짖으며 ‘구조’에 대한 문제로부터 눈을 돌리고 있는 동안, 우리가 마침내 대면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의 규모도 걷잡을 수 없게 불어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국민 행복’론에 기초한 근혜노믹스의 모순이다. 즉 박근혜 식 ‘국민 행복’은 그것이 추구되면 추구될 수록 그것이 외면하려고 하는 ‘구조’의 존재를 더욱 강력하게 드러낼 것이며, 나아가 ‘국민 행복’이 아니라 ‘국민 절망’, ‘국민 파멸’로 이르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물론 이렇게 거창한 차원이 아니더라도, ‘국민 행복’을 모토로 한 ‘개체적 접근’은 매우 명확한 한계를 갖는다. 기본적으로 ‘국민 행복’론의 골자는 어려운 국민들에게 구호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누가 어려운가? 지금은 일부 부자들을 빼면 누구나 다 어렵다. 99%까지는 아니어도 줄잡아 80%는 어렵다고 봐야 할 것이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라는 외침이 이제 곧 곳곳에서 들려올 것이다. 깡통주택, 깡통전세에 이어, 최근엔 ‘깡통원룸’도 나왔다(링크).

반값등록금만 해도, 박근혜 식의 ‘차등 등록금’제가 실행가능하려면, 그 이전에 이미 대상자들에 대한 가계소득 및 가계자산/부채조사가 완벽하게 이뤄져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과연 박근혜 측은 이러한 조사를 실시할 것인가? 내가 보기엔 ‘못한다’가 정답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의 이해관계에 반하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박근혜 측은 막대한 조사비용을 핑계로 일정한 한도 안에서 조사의 범위를 결정하려 할 것이다.) 이를테면 상위 1%의 부자들은 장학금을 받지 못할텐데, 이들은 장학금을 받지 않기 위해(!) 소득/자산/부채조사에 응해야 한다는 아이러니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다른 한편, 만에 하나 위와 같은 조사가 충분히 이뤄진다면, 그것은 역설적으로 박근혜 측이 알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을, 즉 현재 한국경제의 온갖 ‘구조적 문제들’을 폭로할 것이다. 이를테면 상당수의 가계들이 겪고 있는 다중채무의 실태가 이를 통해 드러날 것인데, 그것은 현재 한국경제의 금융구조의 실상은 물론 예컨대 가계부채와 청년실업 간의 관계를 보여줄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예전에는 박근혜의 ‘차등 등록금제’에 반대하면서 ‘보편적인 반값등록금’을 주장하는 것이 ‘범좌파’의 입장이었다면, 앞으로는 ‘차등 등록금 제대로 시행하기 위해 모든 가계에 대한 소득/자산/부채조사 철저히 시행하라’가 매우 실효성 있는 구호가 될 수 있으리라 예상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