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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청과 공개처형 사이 : 최근 북한사태에 관한 메모

장성택 처형으로 남북관계가 악화되는 것은 물론 향후 북한의 개혁개방이 더뎌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생기고 있다. 이른바 ‘비둘기파’의 태두라고 할만한 장성택의 숙청은 향후 북한을 ‘매파’들이 주도할 것이라는 의미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와 별개로, 이번과 같은 비상식적이고 비이성적인 공개처형을 보면서 과연 어떤 나라가 북한과 중장기적인 (경제적) 동반관계를 가지려 하겠느냐는 우려도, 향후 북한의 대외관계, 특히 경제관계가 악화/축소되리라는 예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내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번 장성택 사건은 조만간 북한의 대외적 경제관계가 크게 증진되리라는 일종의 신호탄으로 봐도 무방하다.

왜 그렇게 보는가? 이 대목에서 우리는 장성택의 ‘숙청’과 ‘공개처형’을 구분해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대체로 요즘 언론보도들은 이 둘을 구분하지 않은 채 “대체 장성택은 무슨 잘못을 저질렀길래 남도 아닌 자신의 조카로부터 저리도 잔인한 최후를 강요받은 것인가”라는 잘못된 문제설정에 입각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조금 다른 얘기인데) 요즘 세상에 “죽일만큼 나쁜 죄/인간”은 없다. 현재 장성택 공개처형을 둘러싼 선정적인 언론보도들이 사형제 존속의 당위성을 은근히 사람들의 무의식에 유포시키는 것 같아 걱정이다.

다시 숙청과 공개처형의 구분 문제로 돌아오면… 일단 북한에서 정치적 숙청은 계속해서 이뤄져왔다. 사실 이 문제에 관한 한 우리나라라고 다를 게 없다. 다만 북한에서의 숙청은 좀 더 수법이 잔인하다. 보통 (형식) 민주주의적 체제에서는 쉽게 벌어질 수 없는.. 귀양을 보내거나 사고로 위장해 살인을 하거나.. 이런 방법들은 드물지않게 사용돼 왔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도 불과 3,40년 전만 해도 이런 수법들이 종종 사용됐었다.)

결국 이번 사태에서 특이한 점은, 장성택이 숙청당했다는 게 아니라 그가 공개처형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럼 왜 그는 공개처형되었는가? 역시 숙청과 공개처형을 구분하지 않는 이들은, 그가 매우 큰 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예컨대 리설주와의 ‘썸씽’설 등). 그러나 장성택이 정치적으로 숙청된 것은 이미 꽤 오래전이라는 의견도 있다. 적어도 그는 서서히 권력을 잃어왔다(예컨대, 링크).

그런 의미에서 (단순한 ‘정치적 제거’와 구별되는) 공개처형은 일종의 ‘정치적 행위’이다. 왜 수용소로 보내거나 사고를 위장해 조용히 죽이거나 하지 않고 ‘공개처형’ 하는가? 그것이 ‘공개적’인 것인 한, “주요한 타겟 관객층이 누구인가”가 매우 중요하다. 여기서 그 후보로 크게 세 부류가 존재한다. 북한 내부와 외부, 그리고 내부 중에서도 지배계층과 북한 국민. 이렇게 나눠놓고 보면, 이번 공개처형의 ‘타겟 관객층’은 꽤 명확해진다. 바로 북한의 주민이다.

왜 그러한가? 먼저 이번 공개처형이 외부인들을 위한 것은 아님은 꽤 명확하다. 아무리 북한이 막나가기로서니… 외부인들을 대상으로 이번과 같이 자신들이 ‘또라이집단’임을 스스로 인증하는 짓을 할 필요는 없다. 어떤 이들은 이번 공개처형이 북한에 대한 외부인들의 인상을 매우 나쁘게 할 것이며, 따라서 이로써 북한이 외부와 우호적인 경제(협력)관계를 맺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원래부터 그들은 북한을 ‘또라이집단’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외부인들이 북한과 경제관계를 맺고자하는 것은 그들이 ‘북한 지배층=또라이집단임을 앎에도 불구하고’ 그러는 것이다. 즉 이번 공개처형은 그저 그들의 선입관을 확인시켜주는 꽤 드라마틱한 사례일 뿐이다.

둘째, 이번 공개처형이 북한의 지배층을 겨냥한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만약 그런 것이라면 굳이 ‘공개처형’이라는 형태를 고수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이 경우엔 ‘은밀한 제거’가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실제로 북한은 그런 방법을 즐겨써왔다.

결국 남는 것은 북한의 일반주민이다. 100% 확인된 것은 아니겠지만, 북 당국이 각 가정에 전기를 이례적으로 공급해 일반주민들이 이번 공개처형을 볼 수 있게 했다는 소식도 있다(링크).

그렇다면 북한의 일반주민에게 장성택의 공개처형을 보게 하는 것이 북한의 향후 대외관계, 특히 대외적 경제협력, 개방정책의 향방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기본적으로 북한의 지배계층은, 매파냐 비둘기파냐를 떠나서, 대외적 경제협력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강성대국’을 이루는 데 그것은 필수불가결하기 때문이다. 다만 대외관계가 심화되는 과정에서 체제가 흔들리는 것을 원치는 않으리라. (물론 이와 같은 소요상황을 틈타 권력을 쥐고자하는 집단도 지배계층 내에는 존재할 것이다. 장성택 류의 인물들이 그럴 수 있다.) 이를테면 일반 대중의 삶에 외국의 상품과 정신이 스며들고 국민들이 체제에 대한 불만을 키우는 것을 원치 않는다. 개별적인 거래관계를 수행하는 이들이 외화를 빼돌리는 등 비리를 저지르고, 외국 물품을 몰래 들여와 국내에서 암시장을 형성하는 행위들… 사실은 이미 북한에 만연돼 있는 이러한 사태들이 향후 본격적인 개혁개방이 진행될 경우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리라는 것은 굳이 보지 않아도 뻔한 일. 뭔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상황. 이번 장성택의 공개처형은 바로 그러한 ‘대책’으로서 제격이다. 그의 죄목들은 이러한 가설에 힘을 실어준다.

만약 향후 대외관계를 축소할 것이라면 이와 같은 ‘경고’는 굳이 할 필요가 없다. 다시 말해, 어떤 이들은 대외적인 개혁개방을 선호하는 비둘기파 장성택(세력)의 ‘실각’을 곧장 매파의 정권장악으로, 나아가 대외적 경제(협력)관계의 경색으로 해석하고자 하는데, 만약 문제가 이렇게 세력간 다툼과 정책 패러다음의 교체에 관한 것이라면 굳이 장성택을 (잔인하게) 죽일 필요도, 그리고 그것을 전국민이 보도록 하는 것도 필요치 않다. 그것은 오직 기존의 대외경제관계, 즉 경제특구 정책이나 대외적 외화벌이 사업 등이 유지/확대될 때에만 의미가 있다. 만약 새로운 세력이 집권해 정책을 바꾸고자 한다면 그냥 그렇게 하면 된다. 대외관계가 경색되고 교류의 통로가 막히면 주민들의 오염된 정신도 저절로 정화될 것이다.

그렇다면 장성택의 공개처형은 북한의 대중에게 위와 같은 경각심을 주기에 충분한가? 내가 보기엔 그렇지 않다. 아마도 그간 ‘오염’된 일반 국민들의 정신을 다잡기 위해선 좀 더 ‘쎈’ 처방들이 필요할 것이다. 다음 타겟은 누구일까? 고모부보다 쎄려면 마누라쯤은 돼야하지 않을까. 물론 그렇다고 거대한 파도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쯤해서, 배경음악은 이것이 제격이겠다. Scorpions – Wind of Change

안철수, 욕심쟁이 우후훗!

오늘 무슨 기사를 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독자세력화를 모색하는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정치적 지향점으로 보수와 진보, 좌(左)와 우(右)를 뛰어넘는 새로운 개념으로 ‘진보적 자유주의’를 결정한 것으로 14일 알려졌다. (. . .) 진보적 자유주의는 그동안 우파가 즐겨 사용해온 ‘자유주의’ 개념을 좌파가 주창하는 ‘진보’와 결합시킨 것이라고 안 의원측은 설명했다. (출처: “안철수, 정치적 좌표로 ‘진보적 자유주의’ 제시”, 연합뉴스, 링크)

‘자유주의’를 우파가 즐겨 사용해왔다고? 웃기는 소리. 2003년 유시민의 예에서 드러나듯, 우리나라에서 ‘자유주의’는 원래 오늘날의 기준으로 (굳이) 말하면 ‘진보’쪽에 저작권이 있었다.

 

이 사진을 기억하시는가? (사진 누르심 관련기사로 링크됨) 

 

따라서 안의원이 여기에 ‘진보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은 (1) 그냥 말장난이다. 즉 최근 ‘진보’라는 수사가 유행하니까 붙인것일뿐.

(2) 또한 그것은 ‘진보’ 개념의 타락을 보여준다. 적어도 10년전 유시민이 ‘자유주의’라고 자신을 규정했을 때, 그것은 소위 ‘수꼴’로부터 자신을 구별하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은 (‘노동’을 중심으로 한) ‘진보파’는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 안철수는 ‘노동’과 ‘진보’와 ‘자유주의’를 모두 가지려고 한다. 그게 과연 뭘까? 암튼 안철수, 욕심쟁이 우후훗!

[음악] Groupie (Superstar)

아래 글은, 원래 진보넷 불로그에 썼었던 거다. 지금은 굳게 잠긴 그 불로그에서 잠들어 있던 이 글을 이렇게 살려내는 까닭은, 얼마전 어떤 분께서 당시 내가 올렸던 이 곡이 매우 인상적이었다는 말씀을 내게 해주셨기 때문이다. 블로그에 음악을 올리는 사람들 맘이 다 그렇겠지만, 내게도, 이와 같은 일종의 “피드백”은 (발화자의 의도와 관계없이) 나 자신에 대한 최고의 찬사다. 그분께 다시금 감사드린다. 다만, 이게 그다지 신나는 곡은 아니라… 만약 이 곡을 좋아했다면, 그건 결코 유쾌한 감정 속에서는 아니었을 것이란 점이 맘에 걸린다. 하지만 뭐, 그또한 어떠랴. 인생이라는 게 그런거지..

노래 제목: “Superstar”, a.k.a. “Groupie (Superstar)”

Superstar라는 곡을 좋아한다. 아마 제목은 몰라도 이 노랠 어떤 버전으로든 한번쯤은 들어보셨을 것이다. 그런데 아마도 거의 대부분은 이 곡을 ≪Carpenters≫의 것으로 기억하고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Karen Carpenter의 그 감미로운 목소리가 이 노래에서만큼은 유난히도 거슬린다. 특히 저 후렴부분… “돈츄리멤버 유 톨미 유 럽미 베이베~” 하는 부분은 뭐랄까… 곡의 내용과는 어울리지 않게 지나치게 신나는 느낌이랄까… (아, 이건 단지 목소리 때문이 아니라 연주 때문이기도 하다. )

아니나다를까 이 곡은 원래 ≪Carpenters≫의 것이 아니다. 그건 말하자면 일종의 리메이크다. 물론 그래서 나쁘단 뜻은 절대 아니고. 암튼 원곡은 바로 ≪Delaney, Bonnie & Friends≫의 1969년 싱글에 실려있다. 제목도 그냥 Superstar가 아니라 “Groupie (Superstar)”다. 이 제목을 보고서 무릎을 탁! 치실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다. “아하, 그러니까, 이 노래가 그루피의 이야기였던 게로군!”

≪Delaney, Bonnie & Friends≫는 Delaney Bramlett과 Bonnie Bramlett이라는 부부를 중심으로 한 미국 밴드인데 한때 Eric Clapton이 함께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니까 여기서 “Friends” 중 하나가 에릭이란 얘기다. 그런데 다른 “친구들”도 다 쟁쟁하다. Leon Russell, Duane Allman, Rita Coolidge 등…! 특히 에릭은 이 밴드를 하면서 만나거나 본격적으로 친해진 친구들과 더불어 뒤에 ≪Derek and the Dominos≫를 결성해, 우리에게 “Layla” 등과 같은 명곡을 들려준다.

≪Carpenters≫의 앨범에 실린 것을 보더라도, 이 노래의 크레딧에서 Russell과 Bramlett이라는 이름을 볼 수 있을 것인데, 둘은 바로 레온 러셀과 딜라니 브램릿을 가리킨다. ≪Delaney, Bonnie & Friends≫의 버전에서는, 보니 브램릿이 노랠 부르고, 에릭 클랩튼이 기타를, 레온 러셀이 키보드를, 리타 쿨리지가 코러스를 맡았다. 이렇게 이름만 나열해도 환상적인 조합이다…

물론 이 노래가 위에서 말한 두 가지 버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럿 중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리타 쿨리지가 부른 것이다(방금 생각났는데, Sonic Youth 버전도 독특한 것이.. 좋다). 리타 쿨리지는 We’re All Alone이라는 노래로 유명하다.

리타는 위에서도 말했듯 ≪Delaney, Bonnie & Friends≫의 일원이기도 했는데, 나중에 Joe Cocker가 ≪Mad Dogs and Englishmen≫라는 이름으로 미국투어를 할 때 거기 합류해서 이 곡을 부르곤 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Mad Dogs and Englishmen≫이라는 라이브 앨범에 실려 나왔는데, 내가 듣기엔 이 리타의 버전이야말로 곡의 쓸쓸한 느낌을 가장 잘 살린 것 같다. 아쉽게도 유튜브엔 이 곡의 영상이 없는데, 혹시 어떻게든 듣게되시는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면, 개인적으로 난 이 버전의 연주가 특히 좋다.

끝으로 영상 하나. ≪Delaney, Bonnie & Friends≫의 원곡이다.

가사에서 드러나듯 이 곡은 어떤 남성 록음악스타를 따라다니던 한 여성 그루피가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독백조로 읊조리는 거다. 자기 동네에서 공연을 하고서 다른 동네로 떠난 그 수퍼스타를 그리는 내용. 어디서 보니까 원래 이 곡은 에릭 클랩튼을 염두에 둔 거라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그리움의 노래, Superstar.

[음악] Candlemass – Solitude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하고… 이런 감정들, 색깔이 참 다양하다. 간밤에 홀로 허벅지를 찌르는 외로움과 산업사회에서 느끼는 회색빛 소외감이 어찌 같겠는가. 이를테면 내 경우엔, 90년대 초 한국의 메탈밴드들이 함께 만든 {Power Together} 앨범에 실린 ‘Lonely Avenue’나 Loudness의 ‘So Lonely’를 외로울 때 즐겨듣곤 했지만, 지금 같은 때는 바로 Candlemass의 ‘Sulitide’가 딱이다.

Candlemass는 고딩때 인천 배다리 빽판가게에서 처음 접한 뒤로 한동안 즐겨듣던 밴드다. 스웨덴 출신의 데스/둠메탈 밴드로, 그때 내가 손에 넣었던 앨범은 {Nightfall}(1987)이었다. Messiah Marcolin이라는 카리스마 넘치는 보컬을 새로 맞아 처음 발표한 이 앨범엔, 밴드의 역사에 길이남을 명곡들이 많이 들어있다. 물론 내가 이 앨범을 들을 당시엔 이런 사항들을 잘 알지도 못했다.ㅎㅎ

지금 소개할 ‘Solitude’라는 곡은 그들의 정식 1집 {Epicus Doomicus Metallicus}(1986)에 첫 번째 곡으로 수록되어 있다. 보기에 따라 가사가 매우 유치할 수도 있지만, 팬들 사이에선 ‘고전’으로 꼽히기도 한다. 아… 예전엔, 이런 것만 좋아했는데! 진심으로..

I’m sitting here alone in darkness, waiting to be free,
Lonely and forlorn I am crying
I long for my time to come, death means just life
Please let me die in solitude

Hate is my only friend, pain is my father
Torment is delight to me
Death is my sanctuary, I seek it with pleasure
Please let me die in solitude

Receive my sacrifice, my lifeblood is exhausted!
No one gave love and understanding
Hear these words, vilifiers and pretenders
Please let me die in solitude

Earth to earth
Ashes to ashes
And dust to…
Earth to earth
Ashes to ashes
And dust to dust

Sitting here alone in darkness, waiting to be free,
Lonely and forlorn I am crying
I long for my time to come, death means just life
Please let me die in solitude

Earth to earth
Ashes to ashes
And dust to …. earth to earth
Ashes to ashes
And dust to …. earth to earth
Ashes to ashes
And dust to …. earth to earth
Ashes to ashes
And dust to dust

And please let me die in solitude …

기분과 날씨가 정반대다.

자본론 읽기 개시(재개)!!!

간만에 포스팅입니다ㅋ

지난 겨울방학에 저는 자유인문캠프에서 “자본론 읽기 입문”이라는 이름으로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2장까지 다룬 바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론 매우 재밌고 의미있는 기회였지만, 저 스스로도 그렇고 몇몇 참여자들도 좀 더 많은 부분을 함께 읽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 컸습니다. 따라서 바로 그 읽기를, 계속해 나가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현재 완전히 확정된 것은 딱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첫번째 모임이 잡혔다는 것이고요, 다른 하나는 강독이 격주로 진행될 것이라는 겁니다. 첫번째 모임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장소: 중앙대학교 인문대학(203동) 817호 [강의실 찾아오시는 길]
일시: 2012년 3월 21일 수요일 저녁 7시

향후 모임은 자유인문캠프의 도움으로 중앙대에서 진행될 것입니다(물론 장소에 관해, 더 좋은 대안이 있다면 수용 가능합니다). 또한 시간은 첫 모임과 마찬가지로 수요일로 잠정 결정된 상태입니다. 물론 이 또한 참여희망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어느정도는 변동 가능합니다만, 지금까지 의견을 받은 결과 수요일이 가장 유력하다는 점은 알려드립니다.

기존 강독(또는 강의)의 연장이라고 해서, 꼭 그때 함께했던 분들만을 대상으로 삼는 것은 아닙니다. 당연히(!) 이번 강독의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강독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은 적절치 않지만, 대신 첫 모임에서 앞서 “자본론 읽기 입문”에서 다뤘던 내용들을 간단히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질 것입니다. 따라서 특히 앞서 강독에 참여하지 않으신 분들은 첫 모임에 반드시 참석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또한 이 첫 모임에서는 앞으로 걸어갈 여정을 슬쩍 가늠해보기도 할 것이며, 필요하다면 운영 등과 관련해서 몇몇 사항들이 논의될 것입니다.

읽기용 교재로는… 아무거나 가져오셔도 좋습니다. 현재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두 판본(비봉출판사에서 나온 김수행 번역본, 도서출판 길에서 나온 강신준 번역본) 중 어떤 것을 보셔도 무방하며, 기타 다른 판본을 가져오셔도 상관 없습니다.

우리는 {자본} 또는 {자본론} 제1권을 끝까지 읽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강독의 형태를 가급적 유지하겠지만, 시간 등의 제약으로 전체를 읽지는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형식은 기존의 세미나 + 강독이 될 것입니다.

끝으로 기존 강독에 참여하지 않으셨던 분들, 그리고 기존 강독에 참여했지만 뭔가 “정리”가 필요하신 분들은 다음 글들 및 거기 링크된 글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 [알림] 자본론 읽기 입문
(2) [자캠 자본(론)읽기] 들어가기 전에

(3) [진보신당 청학위 강좌] 제1강의 요약과 보충
(4) [강의를 마치며]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의 개요

이상입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려요! :) (아, 끝으로.. 가장 중요한 거! 참여신청은 여기를 통해 받습니다!!)

 

[사족] 결의를 다지는 뜻에서… 노래 한 곡. 자꾸 외국노래만 올린다는 원성도 있고 해서.. 이번엔 한국노래 한곡 올립니다. :)

우리의 역사 속에도 “결의”의 아이콘들이 몇 있는데요, 그 중에서 어머니와의 떡썰기-글씨쓰기 배틀에서 참패한 뒤 굳은 결의를 안고 산으로 다시 간 한석봉이를 빼놓을 수 없지요.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의 ‘석봉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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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결연하다… (-_-;)

[음악] 겟세마네 etc. – 고통과 결실 그리고 불멸

교회력으로 치면 사순절이다. 광야에서 악마의 유혹에 시달리며 고통을 받으신 예수. 그를 생각하면, 지금 나는 너무 안락하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부끄럽기도 하다. 고통 없이 값진 결실이란 있을 수 없는 법이다.

그런데 ‘고통’, 특히 예수의 고통으로 치면, 죽음을 앞둔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고통을 꼽지 않을 수 없을 것.

Andrew Lloyd Webber의 뮤지컬 {Jesus Christ Superstar}를 바탕으로 제작된 1973년작 동명 영화에서 예수 역할을 맡은 Ted Neeley라는 분이 계신다. 목소리가 정말 죽이는데… 이분이 나중에 {Jesus…}의 뮤지컬 버전에도 출연하신다. 다음은 2006년에 있었던 ‘farewell tour’ 실황공연이다(그러나 이 투어는 2010년까지 거의 만4년간 지속된다).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감동적인 무대가 아닌가 한다. 바로 저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의 고통에 찬 절규를 노래한다.

Ted Neeley 말고도 {Jesus Christ Superstar}에서 예수 역을 맡은 이들은 많다. 그 중 또 하나가 Steve Balsamo다. 웨일스 출신의 발사모는, 타이틀롤을 뽑는 오디션에서 로이드 웨버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했을 정도로 인상적인 모습을 보인 끝에 발탁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앞서 테드 닐리에 비한다면 좀 더 셈세한 대신 조금은 파워가 떨어지는 듯한 보컬을 보이는 발사모는, 얼마전 우리나라에서 끝난 뮤지컬 {Notre Dame de Paris}에 출현하기도 했다(이번 내한팀 명단엔 그가 없는듯).

그러한 스티브 발사모가 내게 각별한 주의를 끄는 것은, 그가 한때 내가 좋아하는 Eric Woolfson과 함께 작업을 하기도 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가 에릭 울프슨이 제작한, Edgar Alan Poe의 삶을 다룬 뮤지컬 {Poe}에 출연한 것이다(포의 삶과 작품은, 울프슨이 함께했던 The Alan Parsons Project의 1집 앨범의 핵심 테마이기도 했다). 그렇다 보니, 에릭과 스티브는 다음과 같이 매우 정겨운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던 것이다.

아… Eye in the Sky가 이렇게 불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리메이크가 다름아닌 원곡을 불렀던 에릭 울프슨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것이 놀랍고, 또 그것을 내가 보고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크… 앞에서 ‘부끄럽다’ 해놓고, 직금은 ‘행복하다’ 한다. 스스로 좀 한심;;). 이제 약 보름 뒤면, 얼마전 세상을 등진 울프슨의 생일이다(참조).

‘불멸의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다.

[음악] Edge of Sanity – When All is Said

한 곡을 들으면 다른 곡으로, 꼬리에 꼬리에 꼬리에…

얼마전에 자캠 마지막 강좌에서, 나는 Edge of Sanity를 아는 사람을 거의 처음으로 만났다. (정말 어찌나 반갑던지!!) 이건 그러니까… 내가 고등학교 2학년땐가에 이들을 처음 알았으니, 그때로부터 거의 20년만에..쿨럭;;

바로 그 20년 전에, 내가 처음으로 접했던 그들의 1991년작 ‘Unorthodox’라는 앨범의 맨마지막 수록곡, ‘When All is Said’다. 우리말로 하면 ‘결국’쯤 되려나? ㅎㅎ 앨범의 마지막에 위치하기 딱 좋은 제목이다.

그당시에 나는 이른바 ‘데스메탈’을 즐겨들었다. 물론 그것만 들은 건 아니지만.. 암튼 당시엔 메탈리카 따위는 간지러워서.. 어디가서 듣는다고 하는 걸 창피해하고 그랬다(물론 그래도 듣긴 들었다만ㅋ). 지금 이 곡을 듣는 사람은, 이것이 매우 헤비하거나 축축 늘어지는 것처럼 여길 수도 있겠지만, 그당시 기준으로 보면 이들은 상당히 소프트한(?) 케이스다. 더구나 이 앨범 다음에 이들은 더욱 멜로딕해졌는데, 골수 데스메탈 팬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그런 변신도 나는 좋다.

내친김에… Edge of Sanity의 1993년작 ‘The Spectral Sorrows’ 수록곡 ‘The Masque’도 연결해둔다.

옛날에 듣던 음악들을 이렇게 되새김질하는 것. 묘한 기분이다.

[음악] 프리다칼로 – 기억상실

트윗 하다보니 내가 잘 모르는 어떤 가수의 ‘기억상실’이라는 얘기가 나오길래… 나는 문득 오래전에 즐겨듣던 프리다칼로라는 밴드의 ‘기억상실’이 떠올랐다.

오랜만에 한번 들어본다. 명곡이고 명반인데, 잊히는 게 안타깝다. 나중에 빛보는 날이 올까? 문희준 1집도 고가로 거래된다는데, 내가 가진 프리다칼로 앨범도 나중에 그렇게 될까.

이 형님들은 뭐하고 계실까. 잘 지내고 계시겠지… 아, “길들여진 자유로 / 나 사는 게 습관처럼…” 하는 부분에서 미친듯이 떼창하던 때가 그립구나..

록/포/에/버

[음악] JJ Cale – Sensitive Kind

요새 자유인문캠프 땜에 네이버에 종종 로그인을 한다. 그리고 자캠 카페에 글도 남긴다. 글을 남기다 보니, 내 닉네임이 눈에 띈다. 바로 jjcale.

지금 이 블로그에서 쓰는 닉네임, EM이 그렇듯… 네이버에서의 jjcale도, 그걸 만들 때 마침 생각나는 이름이었을 뿐이다. 그러니까 닉네임의 “유래” 같은 것은 딱히 없다…;;

J.J. Cale은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음악인이다. 좋은 곡을 많이 만들고 또 스스로 부르기도 했는데, 특히 우리에겐 Eric Clapton이 불러 히트한 Cocaine 같은 게 익숙하다(링크: 아, 정말 밋밋하다;;). 그러니까 이 분은, 좋은 곡을 만들어서 남한테 주는 것을 일종의 낙으로 삼고 계신 분이다. 인터뷰를 보면, 이분은 자기 음반을 대충 만든다고 한다. 그에게 음반이란… 스스로 만든 곡을 시험해보는, 일종의 ‘데모’라는 것.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음반은 대중을 위한 게 아니라고 못박는다.

“나는 음반회사가 원하듯 대중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새로운 뭔가를 찾는 동료 음악인들을 위해 내 음악을 출반하죠.”

“I justtry to get my music out to other musicians who need new material, rather than to the public, like the record company wants me to.” (출처: http://www.answers.com/topic/j-j-cale-1)

뭐 여러 곡이 있겠지만, 또 내가 그의 음악을 다 들어본 것도 아니지만, 어찌어찌해서 나는 그의 ‘Sensitive Kind’란 노래를 좋아하게 되었다. 다음 영상에서, 그는, 그가 나오는 다른 영상들과 마찬가지로 밋밋하기 짝이 없지만, 이 영상은 좀 특별한 게스트들이 나온다. 바로 건반 앞에 앉아있는 Leon Russell이 그 중 하나고(아.. 이 분은 그냥 보기만 해도 왜 이리 웃긴지;; 심지어 이 영상에선 얼굴도 잘 안 나오는데!), 앞에 서서 뭔가 어정쩡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다른 하나다. 그는 바로, JJ의 부인 Christine Lakeland라고 한다.

Sensitive Kind를 리메이크한 음악인 중에는 Santana, John Mayall 등이 있다. 예전엔 John Mayall 버전을 좋아했는데, 요샌 왠지 JJ의 원곡이 더 좋다. 존 메이올 버전은, 방금 들으려 하니, 부담돼서 중간에 껐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ㅠㅠ

Don’t take her for granted, she has a hard time
Don’t misunderstand her or play with her mind
Treat her so gently, it will pay you in time
You’ve got to know she’s the sensitive kind
Tell her you love her, each and every night
And you will discover she will treat you right
If you believe, I know you will find
There ain’t nothing like the sensitive kind
She gets lonely waiting for you
You are the only thing to help her through

 오늘따라 왠지, 자꾸 듣게 된다..

[음악] 이정선 – 우연히 and more

“쩐다”라는 표현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겠지? 네이버에서 모처럼 좋은 일 하나 한 것 같다. 우리 이정선 대인을 모셔놓고, 저렇게 고화질/고음질의 좋은 영상을 만들어주다니…!!! 그의 ‘우연히’라는 곡이다.

참말로 황홀하다… 이정선, 그는 한국 최고의 포크 기타리스트이자 블루스 기타리스트다… 고맙다, 네이버 ㅠㅠ (링크)

‘우연히’는 그의 명반 {30대}에 들어있는데, 여기엔 명곡들이 많다. 지금 소개한 ‘우연히’ 말고도, 나중에 신촌블루스/한영애/정경화 등에 의해 불리면서 크게 히트하는 ‘건널 수 없는 강’, 역시 신촌블루스 1집에 수록되어 이정선 자신이 다시 부르는 ‘바닷가의 선들'(정말 죽이는 블루스),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곁에 없어도 당신은’까지! 아, 맞다. 김광석이 불러서 크게 알려진 ‘그녀가 처음 울던 날’도 있군…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김광석은 리메이크의 황제였던 것 같다. ‘그녀가 처음 울던 날’ 말고도… ‘이등병의 편지’나 ‘먼지가 되어'(원곡) 같은 곡도 모두 남들이 먼저 불렀던 거지만, 오늘날의 그의 목소리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으니까. 특히 ‘이등병…’은, 우리 인권이형…. (-_-)

(김광석이 부르면 마치 내가 군대에 가는 것 같아 서러운데, 전인권이 부르니 전인권이 군대에 가는 것 같아 불쌍하다..;;;; 참고로, 저시절 인권이형 모습… (링크))

그러고 보니, 얼마전 sunanugi님께서 김광석 얘기를 하시기도 했는데… 얼마전이 그의 기일이었다. 솔직히 난 김광석이 죽었을 때 맨날 데쓰메탈만 듣고 살았기에 그의 죽음이 내겐 큰 충격은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따금씩 돌이켜보면, ‘왜 그때 그를 좀 더 좋아하지 못했을까’ 생각하며 자책하곤 한다. 그래도 김광석은 죽어서도 행복하겠지? 이런 훌륭한 후배들이 자기를 추모해주니…

톱밴드… TV로 보진 않았지만, 유튜브로 보았던 게이트플라워즈는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특히 깔끔한 기타, 좋다. 나중에 짬나면 공연 함 봐야지. 아….. 조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