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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가 ‘경제학 제국주의’에 반대를?

만약 《The Economist》가 ‘경제학 제국주의'(economics imperialism, 지금부터는 EI)에 반대한다면, 그건 아주 놀라운 일일 것이다. EI란, 마치 현실의 제국주의에서처럼, 경제학이 그 특유의 방법론을 가지고 여타의 사회과학 분야들의 고유의 영역들을 침범하는 것을 말한다.

아래 글은, 요즘 《The Economist》에서 야심차게, 그리고 성공적으로 운영중인 블로그 중 하나에서 옮겨온 것이다(링크).

But I do think that this argument points to an overarching cultural trend, namely an increasing tendency to use the language of economics when talking about any social or political issue whatsoever [인용자: 이게 바로 ‘경제학 제국주의’다]. Over the past 15 years, a number of gifted popularisers of economics have helped show laymen how to think about a lot of disparate subjects using economic tools and styles of thought. Paul Krugman was among the first of these; he has been followed by Stephen Levitt, Charles Wheelan, Tim Harford, and many others. But it seems that when Mr Krugman started writing columns suggesting how to look at political and social issues from an economist’s perspective, he didn’t anticipate that people might decide that economic language and styles of thought are always the best way to think about everything.

와우… 재밌다. 여러모로.

첫째로, 위 구절에서 ‘EI’가 매우 제한적으로만 의미있음을 인정하고 있다는 게 재밌다. 이는 매우 쉽게 EI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둘째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구절이 EI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는 것도 재밌다. 저자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가? 바로 그는… EI를 일반화한 ‘주범’ 중 하나인 폴 크루그만(Paul Krugman)의 (매우 애매모호한) ‘진심’을 언급함으로써. 즉 PK의 진심은 그게 아니었는데, 뭣도 모르는 ‘애들’이 PK를 어설프게 따라하다가 이른바 ‘EI’라는 해괴한 습관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위 블로그 포스트를 쓴 기자가 PK 말고 다른 저자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할지도 매우 궁금하다. 위에서 언급되고 있는 스티븐 레빗, 팀 하포드, 찰스 휠란 등은, 우리나라에서도 매우 인기있는 경제학 저자들로, 각각 『괴짜경제학』 씨리즈, 『경제학 콘서트』 씨리즈, 『벌거벗은 경제학』 등을 냈다.

셋째로, EI에 대한 ‘비판’이 《The Economist》에 의해 위와 같이 비록 ‘제한적으로나마’ 나올 수 있다는 것도, 결국은 2007/08년 이후의 범세계적 위기의 결과일 것이라는 점도 재밌다.

원래 위 글은… “환자들은 소비자가 아니다”라는 크루그만의 4월21일자 칼럼에서 비롯된다(링크). 잘 알려져있다시피 크루그만은 미국 의료보험개혁에 매우 헌신적인 경제학자다. 이에 대해 앞서 인용한 《The Economist》 블로그의 한 저자가 논평을 했고(링크), 역시 같은 블로그의 다른 저자가 반론(위 인용부분이 속한 포스트)을 펴는 식으로 논의가 전개되었다. 심심하신 분들은 처음부터 한번 쭈욱 훑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참고로, 나도 예전에 이 블로그에 경제학 제국주의를 비판하면서, 『괴짜경제학』을 언급한 바 있다(링크1, 링크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