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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비판적인 기술사

이미 왓트(Wyatt) 이전에도 매우 불완전한 것일지언정 방적기가 – 아마도 최초로 이탈리아에서 – 사용되고 있었다. 비판적인 기술사는 18세기의 발명 중 한 개인의 업적으로 된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다 – 자본론 1권 15장, 501; MEW 23, 392

안타깝게도 마르크스는 비판적인 기술사(Eine kritische Geschichte der Technologie; a critical history of technology)에 관해 상술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기에 비판적 기술사에 대한 내 해석을 간단히 정리해보려고 한다.

1. “비판”은 다음의 구절에서와 같은 용법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상품에 포함된 노동의 이러한 이중적 성질을 비판적으로 지적한 [heesnag: 입증한] 것은 내가 처음이다 – 자본 1권 1장, 96 (길판), 강조 추가

Diese zwieschlächtige Natur der in der Ware enthaltenen Arbeit ist zuerst von mir kritisch nachgewiesen worden – MEW 23, 56

마르크스가 노동의 이중성의 발견을 그의 가장 중요한 공헌으로 간주했음을 감안하면, “비판적으로”라는 표현에 상당한 무게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EM님이 지적했듯이 비판은 부정적이라기 보다는 긍정적인 개념이다.

그렇다면 ‘비판’ 이란 무엇인가? 흔히 분석을 긍정적인 것으로, 비판을 부정적인 것으로 여기는데, 어원적으로 보든 아니면 그 개념이 실제 지성사에서 쓰인 방식으로 보든 ‘비판’이란 부정적이기보다는 긍정적인 개념이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어원적으로 ‘비판’(critique)이라는 단어는 고대 그리스어로까지 소급되는데, 이때 그것은 ‘위기’(crisis)와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crisis란 일종의 의학용어라고 할 수 있는데, 환자의 병세가 하나의 국면에서 다른 하나의 국면으로 넘어가는 어떤 고비 같은 것을 뜻했다고 한다. 당연하게도, 이런 의미에서 crisis는 사태에 대한 면밀한 ‘분석’은 물론 그에 기반해서 내려질 냉철한 ‘판단’까지도 포괄하게 되는데, 이후 이런 ‘분석’이나 ‘판단’의 문제는 대체로 critique이라는 단어로 독립되었다. 나아가 critique은 코젤렉(Reinhart Koselleck)이 밝힌 바 있듯이 근대 서유럽 지성계에서 심지어 ‘이성(reason)의 사용’ 일반을 가리키는 용어로까지 발전하기에 이른다.

물론 그렇다고 ‘비판’에 부정적인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시 이 말의 어원을 보자. 그것은 crisis와 맥을 같이 한다고 했고, 그런 의미에서 ‘비판’이란 비판 대상이 일정한 ‘위기’ 상황에 있다는 판단을, 나아가 그런 판단을 가능케 하는 그 대상에 대한 합리적인 ‘분석’을 전제한다고 했다. 예컨대 마르크스가 ‘정치경제학을 비판하겠다’라고 말했을 때, 그는 현재 정치경제학이 위기에 처했다고 판단하는 것이며, 이런 판단을 설득력 있게 내어놓으려면 정치경제학을 면밀히 파헤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후자의 작업은 필연적으로, 그 자신 하나의 정치경제학 체계를 결과로서 내놓을 텐데, 우리는 그 결과를 《Das Kapital》이라는 형태로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이 《Das Kapital》에 대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기존 정치경제학을 지양하기 위한 것이지 그 자체로 또 다른 정치경제학이기를 지향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반대로, 비판적이지 않은 경제학, 과학적이지 않은 경제학이 현실적으로 힘을 가지고 있는 동안에는, 이렇게 진정으로 비판적이고 과학적인 경제학을 내놓고 증진시키며 예의 그 잘못된 경제학에 그것을 대비시키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비판적’인—‘부정적’ 의미에서의—기획이 될 수 있는 것이다 – What’s in a name? 자본론 vs 자본: ‘비판’의 의미에 대하여, 강조는 원문

기존의 기술사가 “위기에 처했다고 판단하는 것”에서 출발하고, 이를 “면밀히 파헤치”는 것을 통해 “필연적으로” 새로운 기술사 체계 – 비판적인 기술사 – 를 “결과로서 내놓”을 수 있겠다.

2. 그런 측면에서 “18세기의 발명 중 한 개인의 업적으로 된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다”라는 언급에는 이미 비판적인 기술사의 싹이 담겨 있다. 이것은 우선 발명을 개인의 (천재성의) 산물로 이해한 당대의 보편적 이해에 대한 부정적 비판이지만, 동시에 과학기술의 사회적 성격 – 과학기술은 사회적 산물이며 동시에 사회의 규정적 요소이다 – 에 대한 마르크스의 인식을 보여준다.

3. 당연하게도,

현재까지는 그와 같은 저술은 아직 없다.

마르크스 당대에도 없었으며 현재에도 (별로) 없는 것 같다. 마르크스주의적 STS (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 이론은 노동과정론과 인지자본주의론 정도를 들 수 있는데, 전자는 만족스럽지 못하고 후자는 잘못된 이론이라고 생각한다.

여담이지만 석사 혹은 박사과정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Sussex 대학의 Science and Technology Policy Research (SPRU)을 택할 것 같다. 유명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알란 프리만(Alan Freeman)의 더 유명한 아버지인 크리스 프리만(Chris Freeman)이 맹활약한 곳이다. 여기서 “마르크스의 비판적 기술학”이라는 주제로 논문을 쓴다면 꽤 근사하지 않을까. 혹시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에 대한 전문적 연구에 관심 있는 분이 있다면 이런 루트를 추천드리고 싶다.

마르크스 정치경제학 연구에서 전형 논쟁, 오키시오 정리와 같은 기술적인 주제들이 과대평가되는 것을 나는 항상 안타깝게 생각했다. 나름 의미 있는 주제들이라는 것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비판적 자본주의 이론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전형과 오키시오 정리 에 대한 연구가 기여할 수 있는 바는 많지 않다. 긴요한 것은 마르크스 가치론의 정합성에 대한 증명이 아니라, 비판적 이론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다. 비판적 기술학, 비판적 교육학, 비판적 예술학, 비판적 정치학 등등등등.

아.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